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2화(12/300)
12화 아디토레 디 시칠리아 (1)
내가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 클로이는 이미 강단 위에 앉아서 발만 휘휘 엇갈리게 젓고 있었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콧노래까지 기분 좋게 흥얼거린다. 가까이 다가서자 그녀는 고개를 이쪽으로 휙 돌려 반갑게 손 인사했다.
“어! 검마 군, 왔어요?”
“뭐야, 벌써 와 있었어? 아직 일곱 시 반도 안 됐는데.”
“아, 저도 방금 전에 왔어요!”
“방금 전… 몇 시?”
“여섯 시 반이요…….”
“여덟 시 약속인데?”
클로이는 대답 대신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상시와는 다른, 다소 힘이 들어간 옷차림. 며칠 전 아벨과 비슷하게 타이즈에 크롭 티를 입고 외투로는 옷소매가 헐렁한 추리닝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항상 통이 큰 교복 치마를 입고 있어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클로이도 작은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몸의 굴곡이 두드러졌다.
‘이건 귀하군.’
배에 선명하게 잡혀 있는 튼실한 복근과 착 달라붙는 타이즈 너머로 비치는 잔근육들은 클로이가 어째서 그토록 강한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한참을 빤히 쳐다보자 클로이는 손바닥까지 내려온 옷소매로 입을 가린 채로 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동글동글한 눈매가 야릇한 반월을 그렸다.
‘귀엽긴 해.’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허리에 걸린 연습용 목검 중 하나를 그녀한테 건넸다. 교내 마트에서 할인 판매가로 개당 3만 원에 산 거라 무게가 가벼운 감이 있었지만, 달리 선택지도 없었다. 목검을 받아 든 클로이는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검으로 하는 거 아니었나요?”
“응?”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사생결단도 아니고,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훈련을 진검으로 한단 말인가. 어쩐지 클로이의 허리에 전에 봤던 서슬 퍼런 일본도가 걸려 있다 했다. 참 귀엽다가도 뜬금없는 부분에서 닭살 돋게 하는 재주가 있는 소녀다.
“훈련이잖아. 진검으로 하면 둘 다 크게 다칠 염려가 있으니까. 일단 당분간은 목검으로 하자.”
“…상냥해.”
클로이는 혼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목검을 한 손에 쥐고 허공에 휘휘 휘둘렀다. 붕- 붕- 공기가 썰리는 살벌한 소리가 났다. 아귀힘이 대체 얼마나 세야 목검으로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클로이가 진심으로 내려친다면 누구든 머리통이 수박 깨지듯 쪼개지겠지.
나는 양손으로 칼 몸을 말아 쥐었다. 칼을 쥘 때는 항상 한 손으로만 잡아 봤었는데, 목검이라곤 해도 장검을 쥐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행히 규격에 벗어나 가호는 발현되지 않았다.
‘나쁘지 않네.’
나는 대련에 앞서, 마지막 확인을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파앗―
== ==
[검신(劍神)의 가호]베면 잘릴 것입니다.
◎육신(肉身)의 격 : (2▶5) ▷ 검(劍)의 규격이 완화됩니다.
◎정신(精神)의 격 : 3 ▷ 말과 행동에 위압감이 깃듭니다.
◎무장(武裝)의 격 : 1 ▷ 해금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동화율 : 2%
★【???】
[※ 길이가 32+(3) 센티 이하, 폭은 6+(2) 센티 미만의 검일 때만 가호가 발동됩니다.]== ==
꾸준한 신체 단련의 성과인지 육신의 격은 5로 상승해 있었다. 생각과는 달리 검의 규격 완화가 격의 수치에 비례하진 않는지, 다소 더딘 감이 있다.
그래도 검의 규격보다 중요한 건, 내 스텟 상태 검증이었기에 이 정도 성장치면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근데 생각해 보니 가호란 거에 원래 이런 요소가 있었던가? 통상적으로 숙련도에 따라 가호 자체가 업그레이드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부가적인 요소들이 딸려 오는 경우는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없었다.
게다가 하단에 있는 물음표로만 채워진 문구. 육신이 어느 정도 성장한 지금도 가닥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좀 더 알아볼 필요는 있겠네.’
턱을 쓸어 만지며 상태창을 주시하고 있자, 클로이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 검마 군? 무슨 일 있나요?”
“아, 미안. 잠시만.”
역시 클로이에게는 상태창이 안 보이는 듯했다. 그녀 시점에서 나는 허공에 멍을 때리고 있었겠지. 불러 놓고 기다리게 했다는 마음에 급히 상태창을 닫았다.
“그럼 시작할까?”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오늘은 처음이니까 살살 부탁할게.”
“아, 네!”
“진짜 살살 부탁할게.”
우리는 성큼성큼 걸어서 20M 정도의 거리를 벌려 섰다. 도약에서부터 검격을 받아 내는 것까지 몸으로 배워 낼 요량이었다.
나는 전생부터 뭐든지 실전 위주였다. 생선 배 가르는 영상을 백 번 천 번 볼지라도 한 번 갈라 보느니만 못한 것처럼.
어떤 기술을 익히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이론보다 손맛이라는 걸 깨우친 지 오래였다. 내가 이 아카데미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어려서부터 해 온 박치기식 학습의 산물일 터.
물론, 위험성은 이편이 압도적으로 크다. 그러나 무엇을 배우고자 할 때 그마저도 안고 가려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 뼈와 살을 내 주는 단계에서 그치면 딱 거기까지. 육신 전부를 도려낼 각오가 있어야 비로소 정점이란 타이틀을 달 수 있다.
목검을 휘휘 저어 준비됐다는 사인을 보내자, 클로이도 같은 동작으로 화답했다. 나는 목검을 손에 탁 틀어쥐고 눈을 가늘게 떴다. 모의 전투라 해도 내겐 가호에 의지하지 않은 첫 전투였기에 긴장감이 몰려왔다.
손에는 땀이 밴다.
자세도 어색하다.
하지만 검극의 끝은 정확히 상대를 겨누고 있었다.
사뭇 진지해진 분위기에 그녀의 서글서글한 미소가 어느덧 지워졌다. 전과 다른 점은 이성이 끊어진 게 아닌, 한 명의 어엿한 무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 서로를 가늠하는 침묵이 내려앉는다.
내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자 곧바로 클로이는 지면을 차고 달려들었다. 붉은 머리칼이 그녀를 뒤늦게 쫓았다.
사악―
클로이는 두 걸음 만에 간격을 좁혀 버렸다. 가호인지, 본연의 힘인지 몰라도 스피드만큼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눈 깜박하는 찰나, 목검이 경동맥을 노리며 파고들었다.
‘씨발, 살살한다며!’
나는 목만을 꺾어 칼끝을 흘렸다. 귓가에 부웅 하는 공기를 찌르는 소리가 내다 꽂혔다. 뒤이어 클로이는 검을 반대 손으로 재빠르게 토스한 후, 아래에서 위로 대각선을 그리며 휘둘렀다.
까드득!
클로이가 각도를 의도한 건지 받아 낼 수는 있었다. 정확히는 받아 낼 수만 있었다. 다만 딱 한 합을 받아 냈을 뿐인데 손이 마비될 듯 저리고,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등골이 오싹하다. 찰나도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클로이는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사방으로 연격을 퍼부었다. 연이은 뾰족한 검의 소나기가 급소만을 찔러 왔다.
빠르고 매섭다.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지만, 군더더기가 없다. 타점도 목검의 한 곳만을 집요하게 노렸다.
우지직―
나무 쪼개지는 소리와 동시에 받아 내는 내 검에 실금이 갔다. 하지만 클로이의 감정 없는 연계는 멈추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연쇄적인 타작을 아슬아슬하게 쳐 내 흘렸다. 한 번이라도 타격을 허용한다면 허리가 접힐 것이다.
숨이 턱 막힌다.
나는 어금니에 힘을 주며, 헐떡이는 숨을 가다듬었다.
빠직!
결국은 내 목검이 버티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 버린다.
“아, 앗! 죄송해요! 살살한다는 게 그만……!”
[무장(武裝)의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클로이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무장(武裝)이 파손되어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조금씩 그녀의 모습이 희뿌예진다.
[억제력을 사용해 사용자의 인격 조정을 시작합니다.]
지지직―
[인(人)의 격이 하락합니다.]
[검신(劍神)의 가호 ‘열(劣)’이 발현됩니다.]
* * *
클로이는 강검마의 이름을 외침 섞어 불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귓가에 닿지는 못한 듯하다. 다만 그의 새카만 동공에서 피어오른 살기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그녀의 뇌리에 새겼다. 곧이어 밤바람에 흙먼지가 불길하게 일더니.
팟!
강검마가 안광을 쭉 늘어뜨리며 일순 다중의 열화상을 그리며 클로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곧바로 반으로 쪼개진 뭉툭한 목검이 그녀가 쥔 목검을 휘둘러 때렸다.
빠직!
클로이는 반사적으로 검을 몸에 견착해 체중을 실어 막아 냈지만, 충격의 여파로 그녀의 발이 땅에서 떠 그대로 옆으로 날아갔다.
“커억……!”
그녀의 입에서 고통 섞인 신음이 토해졌다.
팔근육을 수축시켰는데도 충격의 여파가 뼈까지 전이된다. 알싸한 통증이 어깨 전체를 후볐다.
일순의 강타에 무게 중심이 틀어지며, 균형을 잃은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클로이는 목검을 목발 삼아 몸을 지탱했다. 경련과 같은 떨림이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클로이는 그제야 정신을 바짝 차렸다. 순망한 눈망울에 힘을 꽉 주고, 시야를 확보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파르르 떨리는 손을 완전히 다잡을 순 없었다. 진지함을 넘어 목검으로 살기까지 흘릴 정도로 일변한 강검마의 기세에 클로이는 공포를 느꼈다. 다른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 따위는 없었다.
그 순간, 강검마가 팔을 쭉 뻗으며 부러진 목검을 포환처럼 쏘아 냈다. 그녀는 우측으로 허리를 꺾어 쏘아진 목검을 흘려 냈다.
흩날리는 적갈빛 머리칼이 시야를 가린 찰나의 순간.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강검마의 코가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클로이가 눈을 질끈 감기 직전, 흐릿해지는 어깨가 망막에 비쳤다.
톡!
“…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이마가 미미하게 얼얼했다. 강검마가 싱긋 웃으며 가볍게 말아 쥔 주먹을 보였다.
‘꿀밤?’
“연습 도와줘서 고마워. 난 먼저 들어갈게.”
강검마는 클로이의 머리를 한번 헤집듯 쓰다듬고선 등을 돌려 손 인사만을 남기고 연무장 문쪽을 향했다.
“…….”
클로이는 강검마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 *
반 배정 시험 때부터 느끼는 거지만, 검마 군의 무재는 강함을 넘어 기이함이 담겨 있다. 기술이 아닌, 날것의 감각과도 같은.
하다못해 무의식중에 모든 가호를 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그것도 반쪽짜리 목검에.
클로이는 짧은 고뇌에 빠졌다. 그러다 이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더니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몸을 간신히 이끌며 걸었다. 등골에 오소소 돋은 소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클로이가 기숙사 문턱에 거의 도달했을 때 즈음, 적발의 남자가 건물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즐거워 보이는구나, 클로이.”
“오빠?”
클로이의 눈동자에 옅은 건조함이 스며들었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을 이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기껏 한다는 게 천한 놈과 어울리는 거냐.”
“…검마 군을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
클로이의 눈매가 곱게 휘었다. 잘끈 씹은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이름이 검마인가.”
“…….”
“네가 그 녀석과 계속 어울리려 든다면 아디토레는 놈을 제거하려 들 거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가라앉았다. 그러던 중, 클로이는 떨리는 몸을 추스르다 이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아디토레 전체가 와도 검마 군한테는 안 돼.”
그 말을 끝으로 클로이는 쌩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기숙사 학사동으로 들어갔다.
“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