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2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22화(122/300)
122화 망자의 왕 (1)
이튿날 아침.
9시 정각에 우리 일행은 1층 프런트에 모였다.
“잠은 잘 잤어?”
내 물음에 아벨이 움찔 놀랐다. 그녀가 시선을 회피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다, 당연하지. 아무리 D급 던전이라도 난 방심하지 않거든.”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녀를 들여다보았다. 안색이 퍽퍽한 게 잠을 뒤척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말은 저리하지만 목소리에도 묘한 감정이 묻어 나왔다.
‘아벨, 얘는 거짓말을 참 못하는 성격이네.’
그래도 그 앞뒤가 똑 닮은 면이 퍽 싱그럽다 느꼈다.
나는 굳이 부연하진 않았다.
“아가씨, 검마 님, 준비되셨으면 바로 출발할까요?”
샤일이 물었다. 그에 아벨이 일순 표정을 굳히며 끄덕였다.
“응.”
많은 것이 함축된 짧은 대답.
나는 그런 아벨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동공이 차갑게 타오르고 있었다.
* * *
하루가 꼬박 걸려 국경을 넘어온 만큼, 숙소에서 던전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차 타고 30분 어림의 거리.
이동은 어제와 같이 택시. 이곳 지리에 밝은 기사님 덕에 굼벵이 기어가는 시속에도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사님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픽업하러 오겠단 말을 남기시곤 다시 거북이처럼 하산했다.
나는 입구 바로 앞에 선 채 전방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언데드 던전.’
던전의 등급 책정은 협회가 관할하며 여러 복합적인 기준들로 던전에 부합하는 위험도를 알파벳으로 구분한다.
〈D〉, 〈C〉, 〈B〉, 〈A〉, 〈S〉 낮은 등급부터 크게 이 순이다.
공식적으로는 저렇게 다섯 개지만, 암암리에 +나 -를 뒤에 덧붙이기도 한다.
개중 언데드 던전의 위험 등급은 ‘D-’.
바닥 중의 바닥이었다. 심지어 인기조차 밑바닥을 기는지라 검문소도 상설되어 있지 않았다.
전에 말했듯 보상도 마땅찮고, 나오는 마수도 걸어 다니는 시체다.
뾰족한 뿔이나, 날카로운 송곳니의 마수도 잘만 토벌하는 영웅들이다.
그러나 인간과 유사한 ‘언데드’는 불쾌한 골짜기를 유발하기엔 충분했다.
하여 언데드 던전은 ‘등급 낮고’, ‘인기 없으며’, ‘사실상 방치’의 밑바닥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근데―
“…여기 언데드 던전 맞지?”
아벨이 황망히 중얼거렸다. 샤일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답했다.
“여러 번 체크하고 지리도 점검해 봤는데 여기가 확실합니다. 다만…….”
샤일은 말을 매듭짓지 못했다.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그녀는 거듭 GPS 앱만 확인했다. 그럼에도 앱이 가리키는 위치는 같았다.
나는 두 사람 쪽에 시선을 떼고서 도로 입구를 바라봤다.
‘이거 던전 포스가 왜 이래?’
―최하급 던전일 터인 이 장소.
아무리 S급 마수가 잠들어 있다고 한들, 입구부터 벌써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쏟아 냈다.
거진 성채와 같은 웅대한 스케일.
유령 저택을 연상케 하는 싸늘한 공기가 표표하다. 주변 풍광도 해가 중천임에도 음산하고 척박했다.
예의 C급인 버팔러 던전을 동네 놀이동산으로 전락시키는 흉험한 포스였다.
‘기사님이 도망치듯 내려간 이유가 있네.’
죽음의 냄새가 코를 저민다.
나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그리곤 반사적으로 품을 더듬었다. 사시미가 심장 가까이 있었다.
“일단 들어가 보자.”
내가 먼저 입을 열어 둘의 정신을 일깨웠다.
“어어… 응.”
“죄송합니다, 검마 님. 저도 이런 곳은 처음이라 잠깐 당황한 모양입니다.”
아벨과 샤일은 저마다의 대꾸를 했다. 그렇게 입구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막상 접근하자 훨씬 괴괴한 분위기에 다시 한번 등골이 식었다. 싸늘한 바람이 뺨을 핥고 지나갔다.
해골과 뼛조각들로 어지럽게 구성된 인골(人骨)의 문.
곳곳마다 얼기설기 걸려 있는 거미줄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우리 셋이 압도된 가운데, 시야의 모퉁이에 우뚝한 형체가 맺혔다.
“…비석?”
높이가 2미터 남짓한 비석이었다.
석면에는 무슨 문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문자가 한글이 아니었다.
“저기 뭐라 쓰여 있는데?”
“어, 그러게.”
어느새 이목은 그 석비로 쏠렸다.
나는 아벨에게 물었다.
“근데 어느 나라 말인지를 모르겠네. 너는 알아?”
“음, 글쎄… 유럽권에서 쓰이는 언어라면 대충은 다 아는데도 뭐라고 적혀 있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음, 왠지 그냥 넘기기엔 조금 찜찜하단 말이지.”
나와 아벨이 눈썹을 좁히며 관찰하는 사이, 가만히 있던 샤일이 넌지시 말했다.
“아마 룬어 같습니다.”
“룬어?”
아벨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샤일이 턱만 무겁게 끄덕였다.
“두 분이 모르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룬어는 신화시대부터 700년 전까지 통용되던 언어거든요. 지금은 쓰지 않는 사어(死語)가 된 지 오래입니다.”
…죽은 언어라.
이곳저곳 생명의 흔적이라곤 먼지만큼도 없는, 불길하기 짝에 없는 장소다.
“근데 샤일 씨는 룬어인지 어떻게 아세요?”
내가 물었다. 샤일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카데미 재학 중에 고대 언어에 취미가 들었었거든요. 그때 야트막하게 룬어를 익혔습니다. 물론 독학인지라 전문적이진 않아요.”
“그럼 혹시 뭐라고 적혀 있는지 해독할 수 있습니까?”
“음- 글쎄요, 심심풀이로 익힌 거라…….”
샤일이 살짝 말을 흐렸다. 그런 그녀를 아벨이 눈을 반짝이며 바라본다.
샤일이 작게 미소 지었다.
“정확도는 보장 못 하지만, 되는 데까진 해 보겠습니다.”
혹여 이 비문에 ‘드라우그’에 대한 단서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사소한 힌트여도 좋다. 내겐 그조차도 절실했다.
“부탁드립니다.”
“예, 검마 님.”
샤일은 한 손으로 턱받침 한 자세로 비문을 들여다보았다.
내려앉은 속눈썹 아래 그녀의 동공이 좌우상하로 천천히 움직였다.
곧 샤일의 시선이 이쪽으로 넘어왔다. 그녀가 입을 뗐다.
“어째서인지 윗부분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읽지 못하게 훼손해 놨습니다. 보시다시피 검 같은 것으로 직직 그어 놓은 것 같습니다.”
“…….”
한순간 시무룩해진 표정에도 왜인지 샤일의 입가엔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도 뒷부분은 몇 낱말 추릴 순 있겠네요.”
“……!”
“의역이 많이 섞여 있겠지만, 감안하고 들어 주세요.”
흠흠- 헛기침을 두 번 뒤, 샤일이 내용을 시처럼 읊조렸다.
망자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
그자 또한 같게 될 것이며.
망자에게 안식을 안기는 자.
그자가 곧 망자의 왕이라.
“…흠.”
조금 섬뜩했다. 저주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유추할 수 있는 거라면… 「망자의 왕」은 리치들의 왕인 「드라우그」를 말하는 것일 터.
하지만 위 세 문장과 연결점이 모호했다.
‘…뭔가 좀 애매하네.’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곱씹던 중, 샤일이 겸연쩍게 말을 건넸다.
“제가 알아본 건 이 정도까지네요. 그 이상은 말씀드리고 싶어도 제 능력 밖이라.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애초에 샤일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700년 전에 사멸한 언어 앞에서 나나 아벨은 까막눈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이번 여정에서 샤일 덕을 여럿 봤다.
‘일단 들어가 보자.’
더욱 정확한 단서는 언제나 현장에 있기 마련이니.
나는 곧바로 문을 거세게 밀었다.
―끄어어어어어어어어.
문틈이 벌어지며 불길한 소음을 내뿜는다. 언뜻 사람의 비명 같기도 했다.
가장 먼저 한 발짝 내디뎠다. 흉증 서린 공기가 해일처럼 떠밀려 나왔다.
“““…….”””
나는 빳빳해진 고개를 애써 뒤로 돌렸다.
“…들어갑시다.”
* * *
저벅, 저벅.
빛이라곤 한 줌 없는 공간. 우리는 암막이 드리운 통로를 거닐고 있다.
이에 대비해 손전등을 챙겨 왔기에 이동에 지장은 없었다.
서슬이 일 만큼 흉흉했던 외관과는 달리 문 너머는 고요뿐이었다.
입구는 긴장감을 잔뜩 끌어 올렸다. 반면 안쪽은 묘지처럼 정적이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그 점에 되레 김이 팍 샌다.
‘이러니까 D-급인 건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비명 비스름한 소리가 영 께름직하다만.
셋이 뭉쳐 있으니 대수롭지 않았다.
아벨도 어깨만 살짝 떨었고, 샤일은 묵묵히 후방을 살폈다.
‘이쯤에서 뭐 안 튀어나오나.’
그렇게 심심함마저 느껴질 무렵이었다.
…잠시 뒤, 심연 같은 어둠 속에서 신형의 무리가 꿈틀거렸다. 그에 원초적인 혐오감이 전신을 건드린다.
““““끄어얽어러얼엉러엉어어어어.””””
찌그러지고 비틀린 절규성이 공동에 울려 퍼졌다.
‘언데드.’
다섯 구의 시체가 비틀비틀 다가왔다. 미라처럼 양팔을 쭉 뻗고서 비척거리는 언데드들.
결코 위협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저들의 접근이 극히 꺼려진다.
뼈대에 드문드문 붙어 있는 살점. 구더기가 썩어 문드러진 피부 위로 기어 다니고, 팔다리 관절이 덜렁거렸다.
과연 걸어 다니는 시체라는 말마따나 대단히 흉한 외형이다. 심약한 웨폰이 봤다면 꽥! 소리 지르며 뒤로 자지러졌겠지.
눈동자만 슬쩍 옆으로 돌렸다. 아벨의 얼굴엔 한 줌의 놀람이 떠올라 있었다. 하나, 그녀는 금세 반색하고서 검을 뽑았다.
키리링.
반드러운 검명이 검집에서 끌려 나왔다.
아벨은 칼자루를 비스듬히 잡은 채 한 발짝 나아갔다.
“아가씨, 제가 하겠습니다.”
샤일의 말에 아벨은 설레설레 고개 저었다.
“내가 먼저 할게.”
“그렇지만…….”
샤일의 동공이 수심으로 마구 떨렸다.
위험도를 떠나서 언데드는 기피 대상이다. 혹여 썩은 살점이 아벨에게 달라붙지 않을까, 그런 염려였다.
아벨은 샤일에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가 부드럽게 달랬다.
“샤일, 네 걱정은 언제나 고마워. 다만 오늘은 지구력 싸움이잖아. 그저 내가 선순위인 것뿐이야. 이따 내 체력이 고갈되면 샤일이 나설 차례니까, 지금은 푹 쉬어 둬. 알았지?”
“…예, 아가씨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대답에 만족스레 웃는 아벨.
그녀의 시선이 아주 잠시 나를 거치다 이내 망자를 향해 넘어갔다.
아벨은 잠잠한 동공으로 저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가 찾고자 하는 면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벅, 저벅.
예기가 깃든 걸음걸이. 머리카락이 푸르게 나부꼈다.
아벨이 검을 비틀었다.
검날을 희미한 빛무리가 둘러쌌다. 오러는 아니었다. 그저 정교하게 갈무리된 기세. 노력의 성과가 쇠에 맺힌 것이다.
이윽고, 아벨이 가까이 닿았다.
““““끄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거겅!””””
언데드 무리가 포효를 터뜨린다. 망자들의 울음이었다.
아벨이 눈을 감았다 뜨며 자그맣게 읊조렸다.
“…미안합니다.”
―사락.
한 번의 횡 베기.
검날이 다섯의 목을 일거에 훑고 나왔다.
툭.
잠시 소음이 그친 뒤, 머리들이 노면에 데굴데굴 굴렀다.
“…허.”
나는 헛웃음을 금치 못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완벽한 검격이다. 열일곱의 경지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근데 게임상에선 저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설마?
본디 아벨은 수석이었다. 근데 정사가 살짝 꼬여 내가 그 자리를 찬탈했다.
하면, 긍지 높은 검성의 후예에게 호승심을 안겨 주기에 충분한 자극일 터.
결론은 나로 인해 아벨이 정사보다 몇 곱절 빨리 성장했다는 것이다.
아벨은 바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흡사 망자의 명복을 빌어 주는 묵념이었다.
‘…대단하네.’
입술만 움직여 혼잣말하던 차, 아벨이 돌연 고개를 틀었다.
““…….””
30초간 이어지는 눈싸움. 아벨은 새초롬하게 시선을 거두고서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