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2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23화(123/300)
123화 망자의 왕 (2)
문득 아벨에게 물었다.
“근데 아까 언데드들 해치울 때 ‘미안합니다’라고 말한 거 맞지?”
“…뭐야, 그 거리에서 그걸 들었어?”
아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귀가 좀 밝은 편이어서.”
“20미터 거리에서 혼잣말한 걸 들을 정도면 거의 초능력 아니야?”
실제로는 [검신의 가호] 버프 덕에 초능력에 가까운 오감을 얻은 것이지만, 어쨌건.
애초에 가호와 마법이 범람하는 세계인데.
아벨이 저리 놀라며 ‘초능력’이라 말하는 게 웃기긴 했다.
지구 출신인 내가 보기엔, 그녀가 선보인 검격이 더 비현실에 가까운데 말이다.
아벨은 짧게 한숨 쉬면서 말했다.
“옛날부터 습관 같은 거야. 아버지가 그러셨거든. 풀 한 포기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데, 설령 마수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지.”
“아까 걔네는 언데드였잖아. 이미 사체(死體)들인데.”
“그러니까 더더욱 예를 표해야지. 넌 왜 영웅들이 언데드를 토벌하길 꺼리는지 알아?”
“인간형 마수여서 아니야? 살인하는 기분이어서.”
“살인하는 기분이라… 절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마수에 따른 세부적인 설정은 알지 못한다. 토벌에 그다지 중요한 정보도 아니니까.
인간형 마수라 그렇다고 알음알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마수 백과사전에도 그리 적혀 있었고.
아벨이 말했다.
“언데드도 원래는 인간이었어. 다들 처음부터 저런 모습은 아니었단 거지.”
“…사람이었다고? 근데 왜 지금은 저런데?”
“정확한 경위는 나도 몰라. 다만 검마 너도 알다시피 언데드는 이곳에서만 출몰하잖아.”
아벨이 발부리로 노면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설명을 계속했다.
“그 말은즉- 장소의 문제라는 거지.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 어쩌다 걸어 다니는 시체가 되는 거고.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곳엔 뭔가 있는 게 확실하단 거야.”
아벨이 내놓은 가설은 꽤 예리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배후는 분명히 존재하며, 높은 확률로 ‘드라우그’일 것이다. 그놈의 마장 효과와 얼추 부합하기도 하고.
나는 아벨의 말을 경청했다. 이런 사소한 한마디가 나중에 가서 유의미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돌연 아벨이 코웃음 쳤다.
“그리고 말이야, 언데드가 마수라는 것도 참 웃기지 않아? 지금은 사람이 아니라고 ‘악한 짐승’이라니. 더구나 언데드가 다른 마수들처럼 던전 밖으로 나와서 사람을 습격했단 기사 본 적 있어?”
확실히 그런 말을 듣거나 기사를 본 적은 없었다.
언데드는 흉측한 외형에 비해 유해성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마수였으니까.
예의 온순한 버팔로도 인간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는데 말이다.
아벨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영 탐탁잖다는 말투로 말했다.
“결국엔 산 사람들, 아니 영웅 협회가 멋대로 유해성을 매긴 거잖아. 그러니까 사실을 아는 영웅들로선 언데드 토벌이 꺼려지는 거지. 죽은 사람한테 마수라고 하는 거, 완전 고인 모독이잖아.”
그 말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어찌 되었건 아벨은 언데드를 베지 않았던가. 그것도 한 합에 다섯을 우르르.
그리 생각하던 차.
“…그래도 이곳에 입장한 이상 언데드 토벌이 불가결하긴 하지. 결국 우리는 목적이 있어서 찾아온 거니까. 유감이지만 마냥 저들을 피해서 다닐 순 없는 노릇이잖아.”
아벨은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읊조렸다. 이 정도면 진심으로 독심술인지 의심해 봄 직하다.
일순 그녀의 얼굴에 아연함이 떠올랐다. 그러다 머리를 털고는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아무튼, 명복을 빌어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 그뿐이야. 앞을 가로막는 적을 베는 게 검사니까.”
말을 마무리 지은 아벨은 고개를 앞쪽으로 돌렸다. 그녀는 덤덤히 앞으로 나아갔다.
“…….”
그 뒷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려와 폭력이 공존하는 성격이라…….’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던가.
아벨은 자신의 할아버지와 무섭도록 닮아 가고 있었다.
* * *
밖에서 봤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이 던전, 상상한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면적이었다.
“끄어어어어어러어어어억.”
언데드들은 우왕좌왕 전열(?)을 이뤄 나타났다. 기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엉성하고 느렸다.
썩뚝―
아벨의 어깨가 흔들렸다. 빛살이 언데드 여섯의 성대를 끊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통이 힘없이 바스러졌다.
그 장면을 눈에 담아 두는 와중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분이 묘했다.
뭐랄까, 과연 저들이 공격 의사를 품고서 달려드는 게 맞나?
팔을 쭉 뻗은 채 다가오는 모습은 흡사 우리를 맞이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아벨도 나와 비슷하게 느꼈는지 칼질을 거듭할수록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사체들을 향한 묵념이 초반보다 길게 이어졌다.
‘여러모로 이상한 던전이다.’
단순히 드라우그의 존재 여부뿐 아니라, 근원적인 다름이 느껴진다. 위화감이 엄습했다.
‘…일단 어느 정도 던전 심부에 가까워진 거 같으니, 중간 점검차 확인해 봐야겠어.’
나는 눈을 감았다. 검제와 좌선하며 했던 명상이었다.
머릿속을 깨끗이 비우고, 감각을 하나씩 지워 나간다.
감각권을 팽창시키기 앞서 응축하는 것. 더 뚜렷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투사하기 위한 신경의 집중.
그 공정은 기민하고 똑똑하게 이뤄졌다. 명상 수련의 성과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당시엔 도가니를 마모시키는 쓸모없는 짓인 줄 알았는데…….
나는 송곳처럼 날카로워진 오감을 느꼈다. 여기서 그치기엔 부족하다. 더 광범위하게 감각을 방사해야 한다.
[검신의 가호]로 임계까지 끌어모은다. 곧바로 감응력을 [전이의 가호]로 곧장 사방에 흩뿌렸다.우우우우웅.
나는 눈을 감고 있다. 하나, 이 일대를 관조하고 있었다. 한없이 확장된 시야가 던전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이 앞에 몇의 언데드가 도사리는지,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틀어야 하는지, 드라우그가 어디에 잠들어 있을지.
그 모든 정보가 머릿속에 선명히 영사됐다.
박쥐가 초음파로 동굴에서 길을 찾는 것처럼. 파장이 벽면과 천장에 튕겨 돌아와 내 나침반이 되어 준다.
그렇게 나는 [검신의 가호]를 촉매로 던전 지리의 3할가량을 살펴보았다.
이쯤 되니 지도가 더 이상 필요할까 싶었다. 내가 곧 인간 GPS니까.
물론 체력적인 부담도 있기에 원 없이 쓰는 건 무리였다. 계산하건대 하루 최대 횟수가 두 번 정도이지 않을까.
그때였다.
‘…저건 뭐야?’
감고 있던 한쪽 눈썹이 씰룩였다. 50미터 앞에서 인영 하나가 이쪽을 향해 손을 휘휘 흔들고 있었다.
처음엔 언데드라 생각했다. 생기 따위 없는 이 장소에 우리 외에 산 사람이 있을 리가. 강도 새끼들도 이딴 데 터를 잡을 리 만무했다.
나는 사시미를 꺼냈다. 그리고 아벨과 샤일에게 말했다.
“전방에 사람 같은 게 있는 거 같아.”
“…이런 데 사람이 있다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척은 점점 가까워진다. 가타부타 말을 덧붙일 상황이 아니었다.
두 사람도 이해했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들도 소리를 죽인 채 무장을 빼 들었다.
…저벅, 저… 벅.
발소리가 불안정하다. 생명의 유동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소리였다. 다만 여타 언데드들과는 판이했다.
선뜻 달려 나가진 않았다. 조그마한 손 조명에 의존하는 마당이다. 정체 모를 상대에게 나방처럼 달려들 순 없었다.
저어… 벅.
이윽고, 삐그덕거리는 소리는 10M 앞에서 멈추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샤일이 플래시로 전방을 비추었다. 곧바로 화한 시야가 확보됐다.
“지그―!?”
“뭐, 뭐야… 저건?”
암순응에 작아졌던 동공들이 일순 커졌다. 우리의 얼굴에도 혼란이 스쳐 갔다.
“으얽어러어럭어…….”
웬 언데드(?)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조명을 막고 있었다.
그는 겁에 질린 사람처럼 다리를 달달 떨면서 마주 바라보았다.
아벨은 짐짓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그녀가 중얼거리듯 되물었다.
“언데드…인 거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아가씨.”
샤일의 말마따나 지금까지와는 차이가 있었다. 상태가 양호하다 해야 하나.
언데드치곤 관절 위치도 정상인 편이었다. 살점도 뼈대에 꽤 붙어 있어 얼핏 보면 거의 인간이었다.
하지만 얼굴 하관이 유독 부패가 심했다. 혀도 보라색 행주처럼 축 처져 있고, 턱뼈도 대롱대롱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저 정도야, 뭐. 백골에 가까운 여타 언데드에 비하면…….’
우리 셋 사이에 시선이 오가는 가운데, 언데드가 재차 신음했다.
“으랑라어어러강럭알.”
나는 칼자루 밑동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언데드가 어깨를 크게 들썩인다.
지레 겁먹은 제스처이지 않은가. 손이라도 움직이면 냉큼 팔을 더 뻗었다. 명백히 비(非)저항 의사를 밝히는 것이리라.
나는 아벨과 샤일에게 물었다.
“아직 자아가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두 사람 생각은 어때?”
“…어, 반응 보니까.”
아벨은 몹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여태껏 튀어나오는 족족 베던 그녀였는데.
느닷없이 사람같이 행동하는 언데드가 튀어나왔다. 아벨의 머릿속은 현재 혼란 일색일 터다.
머뭇거리는 아벨을 대신해 샤일이 입을 열었다.
“언데드로 가장한 지능이 깃든 마수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토벌하는 게 맞다 생각합니다.”
“으어러어걸어럭……!”
언데드가 손사래를 쳤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데 턱이 완전히 작살 나 항변하지 못했다.
잠시 언데드를 빤히 바라보며 고민했다.
눈앞에 있는 녀석, 척 보아도 전혀 위험해 보이진 않는다.
물론 샤일의 말처럼 비수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닐 시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능이 남아 있는 언데드. 잘만 하면 이 더럽게 넓은 언데드 던전의 안내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겐 무조건 필요한 존재다. 가호로 둘러보긴 했어도 길잡이가 있다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운이 좋다면 ‘드라우그’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턱이 저래서 길잡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네.’
나는 한참이나 언데드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살려 주죠.”
“…그렇지만 위험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샤일 씨 말도 일리는 있는데. 솔직히 해코지할 그걸로는 안 보여서요. 그리고 마냥 살려 주자는 게 아닙니다.”
내 말에 아벨과 언데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벨은 예뻤는데, 언데드는 징그러웠다.
아무튼――
“지능이 있는 것 같으니까, 길잡이를 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요. 슬슬 걷는 것도 지치고 한군데만 빙빙 도는 것 같았잖아요.”
“…가능하다면 분명 시간은 단축되겠군요. 근데 좀…….”
샤일이 문득 언데드를 흘겼다. 언데드는 아직도 비에 쫄딱 젖은 새끼 강아지처럼 차갑게 몸을 떨었다.
그의 회백색 동공은 샤일의 쇠꼬챙이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
그에 샤일이 한숨 짓고서 말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아가씨는 어떠신가요. 검마 님 말에 동의하시나요? 싫으면 싫다고 말씀하셔요. 제가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아, 아니야. 지능이 있는 언데드를 본 적 없어서 당황했을 뿐이야.”
아벨은 호흡을 다듬었다. 그리고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자도 본디 사람이었을 거잖아. 불필요한 손속은 삼가고 싶어.”
“네, 아가씨의 뜻이 그러시다면.”
아벨과 대화를 마친 샤일. 그녀는 언데드를 찬찬히 관찰하더니 내게 말을 건넨다.
“그런데, 검마 님. 저 언데드, 도저히 말을 할 상태로는 안 보이는데……. 자고로 길잡이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아, 그건 괜찮습니다.”
“…예?”
나는 둘을 등지고 언데드를 향해 바투 다가갔다. 바들바들 떨리는 뼈 소리가 요란하다.
언데드는 눈동자만 슬며시 올려다본다. 그런 그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따끔해도 참아라.”
“?”
손을 까딱여 검집을 벗겨 냈다.
칼날이 빛을 뿜음과 동시에.
[의협(薏俠)을 발휘하여 정신(精神)의 격이 상승합니다.]콰직!
“얽!”
그대로 칼자루가 덜렁이는 턱에 박혔다.
[재생(再生)의 가호가 발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