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2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24화(124/300)
124화 망자의 왕 (3)
“…오, 오.”
언데드의 감탄이 이어졌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연신 턱 주변을 매만졌다.
[재생의 가호]와 [전이의 가호]로 근육과 조직을 최대한 되살려 냈다. 일전에 레온의 뼈를 짜 맞춰 본 적도 있었으니까.다만 푸르죽죽한 살점을 과연 살려 낼 수 있나 싶었다. 가호의 효과는 ‘증식’이지만, 저건 ‘소생’이 필요한 정도였으니.
한데, 결과는 보란 듯이 성공했다. 포까지 다 뜬 생선을 되살린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에 아벨과 샤일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어째 이 가호 활용법이 사람 여럿 놀라게 하는 것 같은데.
이번 경우는 나도 굉장히 당황했다. 웬만한 외과의 뺨 때리는 대단한 재주였다.
‘나, 이번 생에 잘하면 뒤에 사(師)자 직업 달아 보는 거 아니야?’
물론 세포 손상이 몹시 심했던지라 완전한 수복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아슬아슬했던 이전보단 입에서 뚜렷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나는 두 사람에겐 손짓으로 설명을 뒤로 미뤘다. 그녀들은 침을 삼키며 끄덕였다. 일단 알겠다는 의미였다.
당장의 우선순위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다시금 앞을 바라봤다. 언데드가 잉어처럼 입을 뻐끔거려 보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당신 뭡니까?”
검증차 던진 질문이었다. 가호 두 개를 병용하여 완파된 턱을 반파 정도로 만들어 놨다.
정말 대화가 가능한지, 그만한 지능이 남아 있는지. 무엇보다 전자가 중요했다.
한참 경이로움에 빠져 있던 언데드가 대뜸 내게 절부터 올렸다.
그 상태로 우렁차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소. 귀인 양반……!”
망가진 턱 때문인지 발음이 어눌했다. 그러나 진심이 뚝뚝 묻어 나왔다.
이윽고 그가 무릎을 털고 일어나 예를 갖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산 자들이시여. 제 이름은 미켈란.”
팔다리가 덜렁거리는 가운데, 몸짓엔 기품이 깃들어 있었다. 아벨과 샤일은 움찔하며 몇 발자국 물러났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
반면 미켈란은 그 반응이 이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눈알이 눈구멍 안에서 탁구공처럼 데구루루 굴러다녔다.
표정은 순진무구했지만, 겉모습이란 게 참…….
이런 데 무던한 나조차도 거부감이 들 정도니.
다만, 미켈란에게서 느껴지는 악의는 전혀 없었다. 되레 생기가 가신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바라본다.
미켈란의 두 눈에는 각각 감사와 경외가 차 있었다. 그가 진즉에 말라 버린 혀로 입술을 축이며 재차 말했다.
“대략 700년 동안 종종 찾아오는 산 자들을 봐 왔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거나, 칼부터 들이밀려 했죠. 그·런·데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로군요.”
“…700년?”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미켈란이 눈을 한 번 껌뻑이더니 주억였다.
“네. 사실 689년까지는 샜었지만 딱 1년 놓치니 까먹더군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깜빡하나 봅니다, 하하하!”
저 언데드, 수백 년 단위를 저리 대수롭지 않게 입에 담는다.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말까지 가능하게 해 주시다니. 말 그대로 신의 기적인 듯합니다. 시체 생활을 700년 하다 보니… 이러쿵저러쿵.”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수다쟁이였다. 그간 참아 왔던 말을 쏟아 내듯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였다. 그때마다 그의 턱뼈에선 삐그덕- 소리가 났다.
‘…방금 고쳐 준 건데 저러다가 금세 다시 망가지는 거 아니야?’
나는 미켈란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거, 턱 계속 놀리다간 헐거워져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붙일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거든.”
“흡.”
미켈란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미켈란, 당신 사정이 딱하단 건 알겠습니다, 이곳에서 700년 가까이 갇혀 있었단 것도. 근데 제 성격이 좀 급하거든요? 되도록 묻는 말에만 대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
“그게 싫으면 아까 상태로 원상 복구시켜 줄 수도 있으니까, 네 선택에 맡길게.”
“……!”
나는 사시미로 제 어깨를 툭툭 두드려 보였다. 미켈란이 새파랗게 죽은 안색으로 도리질했다.
돌연 아벨이 내 귓전에 속삭였다.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냥 놔뒀으면 종일 떠들었을걸? 안 그래도 시간이 촉박한데 쓸데없는 곳에서 낭비할 순 없잖아. 뭐, 아벨 네가 저 언데드랑 계속 말동무할 생각이라면 말리진 않을게.”
그 말에 아벨이 흠칫했다. 그녀가 슬며시 미켈란을 쳐다보고는 도로 뒤로 빠지려던 때였다.
입을 틀어막고 있던 미켈란의 손가락 사이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잠깐! 거기 여인분, 혹시 그 황금색 눈… 서, 설마 검성 아론 니벨룽 님의 후예십니까?!”
아벨이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나와 샤일 또한 정도만 덜할 뿐, 놀라기는 마찬가지.
아벨이 당혹감이 차오른 얼굴로 말을 받았다.
“초대 당주님을 아세요?”
미켈란이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그는 입 봉인을 해제했다.
“물론입니다! 저는 검성님의 최측근……!의 사촌의 친구 정도 되는 사람입니다!”
그 정도면 완전히 남 아닌가?
“세상에, 이런 우연이 다시 한번 일어나다니. 아직 신께서 저를 버리진 않았군요! 아아, 감사합니다.”
미켈란이 흐느끼듯 중얼거렸다. 다만 아벨은 그가 뱉었던 말을 되새기더니 되물었다.
“방금 분명 ‘다시 한번’이라고 하셨죠.”
“아, 네네. 제 기억이 맞는다면 10년 전 즈음에도 검성님의 후예께서 들르셨었습니다. 사모님으로 보이던 분과 함께 셨었죠, 아마. 700년 평생 살면서 그토록 잘생기고 아름다우신 선남선녀 부부는 처음이었―.”
“그거.”
단호한 부름에 미켈란이 멈칫했다.
저벅저벅. 아벨이 앞으로 나아갔다. 한 손엔 칼자루를 꽉 꼬나쥔 채로.
미켈란이 헛숨을 들이켰다. 아벨은 그의 바로 코앞에 우뚝 섰다.
…그렇게 침묵이 잠시 일었다. 숨소리마저 죽은 듯한 고요였다.
이내 아벨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분들에 대해서 더 상세하게 말해 주세요.”
* * *
“…그렇게 지금까지 말씀드린 게 제가 기억하는 것의 전부입니다.”
미켈란이 조심스럽게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그는 면면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
“…….”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 침샘은 말라 버린 지 오래였으나 미켈란은 괜스레 마른침 삼키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나, 뭐 말실수한 건가?’
셀 수도 없는 영겁의 세월 동안 입을 봉인당한 채 살아온 그였다.
절대다수의 언데드는 육신이 썩기도 전에 지능을 박탈당한다. 신체 기관, 장기를 통틀어 제일 부패 진행이 빠른 곳이 ‘뇌’.
그렇기에 ‘어어러거어어럭억’ 같은 원시적인 신음만 지껄이는 게 언데드의 표준이었다.
하나, 미켈란은 또렷한 사고 능력을 유지해 왔다, 무려 700년이란 세월 동안 말이다.
백골과 살점이 허물어져 흙에 스며들었을 수백 년을, 그는 죽은 육신과 살아 있는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생전 혀를 많이 털어서인지 턱주변이 유달리 빠르게 엉망진창이 되긴 했다.
‘근데 그걸 저 귀인께서 단번에 치료해 주셨지.’
미켈란의 시선이 슬며시 옆으로 넘어갔다. 흑발과 흑채의 소년이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서 있다.
존함이 ‘강검마’셨던가. 그 석 자는 죽어서도 가슴에 새기고 가겠다고 마켈란은 다짐했다.
‘…이미 죽은 몸이지만!’
다만 계속해서 보고 있자니, 저 외모,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어디서 본 적 있는 듯했다.
미켈란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강검마를 바라봤다. 한 움큼 잡은 모래알처럼 기억이 슉슉 빠져나간다.
7세기를 넘게 살아온 그였기에 한참을 더듬어도 찾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미켈란은 현재의 이 위화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관자놀이까지 긁어 가며 시선을 던지는 가운데, 조용히 있던 아벨이 입을 열었다.
“…잠깐, 생각 정리할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죄송합니다, 미켈란 아저씨.”
“아아, 아닙니다. 충분히 충격받으실 만 합니다, 검성의 후예님.”
미켈란은 고개를 맹렬히 저었다.
미켈란은 생전에 1차 인마 대전을 겪은 이였다.
물론 언데드 던전 내 그런 자가 한둘이겠냐마는, 그들의 사고 회로는 정지된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그 산지옥을 생생히 기억하는 존재는 인류 측에선 적어도 자신이 유일할 터였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소녀의 선조. 초대 검성이 어떤 위인이었는지 또한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검에게 사랑을, 아니 편애를 받는 듯한 그 무용.
시조의 영웅님과 함께 마족 토벌에 가장 앞장선 인간이자 인류의 희망이셨던 분.
그런데 그런 검성의 후예께서 자신에게 사죄하시다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이미 죽은 몸이나 사리 분별은 명확한 미켈란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반응에도 아벨은 공손히 예를 표했다.
“아닙니다. 미켈란 아저씨 덕에 제 부모님이 이곳에 들르셨다는 걸 재차 확인하게 됐습니다. 사실 언데드 던전에 도착해서도 부모님이 정말로 이곳에서 사라지셨는지 의문이었습니다.”
“…뭔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드린 거 같아서 이 쇤네가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유감을 드러내는 미켈란과 연신 고개 숙이는 아벨. 둘 사이에 형식적인 대화가 오갔다.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검마가 툭,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아벨의 부모님 두 분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는 사실이 있습니까?”
그에 미켈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타깝게도 멀찍한 기둥 뒤에 숨어 있던지라 두 분께서 어디로 향하셨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굳이 숨어 있던 이유는 뭡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엔 영웅들의 출입이 잦았습니다. 그들은 입장만 했다하면 언데드를 무차별 도륙 냈었지요. 다른 언데들이야 달려 나갔겠지만 저로선 선뜻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
그 말에 아벨의 어두운 기색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미켈란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다만 검성의 후예님께선 여타 영웅들과 달리 막무가내로 언데드를 토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두 분께선 반대하셨죠. 최대한 손속을 삼가시고, 혹여 가하더라도 예를 갖추셨습니다. 후예님과 마찬가지로요.”
“……!”
아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걱정을 덜어 주려는 듯, 미켈란이 푸르죽죽한 입매를 끌어 올렸다. 동공은 탁했으나 빛이 머물러 있었다.
미켈란이 말했다.
“그래서인지 아까 전, 검성의 후예님께서 망자들을 베실 때 목례를 하시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다리가 움직이더군요. 본디 겁쟁이인 저로선 절대로 낼 수 없는 용기였습니다만, 10년 전의 기시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랬군요…….”
아벨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미켈란 아저씨, 혹시 더 기억나시는 건 없으신가요?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작은 거라도, 뭐든 좋아요.”
“…허허, 제 머릿속에 있는 건 전부 말해 드려서…….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할 따름⎯”
그 순간 문득 미켈란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두 분께서 하시던 대화가 생각나는군요. 분명 ‘사신의 주박을 끊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던 표정이 몹시 어두웠었습니다.”
“…사신의 주박.”
사실 부모님께서 이 던전에 입장한 목적이 묘연했다. 왜 그분들이 D-급인 언데드 던전에 왔던 것인가.
그들은 당시에 가장 유명한 페어이자, 칠성을 제하곤 최정상급의 영웅이었다.
한데 어느 날, 최하급 던전 토벌을 나섰다. 모종의 까닭이 있다곤 짐작은 했다. 하지만 그것이 뭔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언데드 던전에 대해 조사하고 공부했다. 필시 있을 그들의 목적을 찾고자.
“주박을 끊어야 한다…….”
아벨은 그 말만을 반복하며 되뇌었다.
아리송하기만 한 저 한마디에서 단서가 숨어 있을 것이다.
“…왜 항상 일이.”
잠시 침묵이 일은 가운데, 강검마는 진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낯빛엔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강검마가 미켈란에게 물었다.
“아저씨, 혹시 이 던전 심부에 사람 한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개구멍 같은 거 본 적 있어요? 그… 아마 자물쇠 몇 개로 대충 잠겨 있을 텐데.”
미켈란이 눈을 껌벅이다 얼결에 대답했다.
“네, 여기서 20분 정도 거리에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셨는지……? 저도 500년 만에 거기를 알았습니다만.”
“책에서 봤습니다.”
“…….”
“일단 거기로 안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자, 잠시만요.”
샤일이 흠칫 놀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뭔가 설명이 많이 생략된 거 같은데요, 검마 님?”
“기분 탓입니다.”
“…아, 아니.”
돌아오는 짤막한 대꾸에 말이 그녀의 목구멍에서 멈췄다. 너무나 빠른 상황 전개에 너도나도 멍한 얼굴이었다.
물론 말을 내뱉은 당사자, 강검마의 표정은 판이했다. 눈썹을 잔뜩 좁힌 채, 그는 복잡함을 느끼고 있었다.
‘‘주박을 끊는다’까지는 잘 모르겠고, 사신(死神)이라 하면 거기밖에 없잖아.’
강검마는 아벨의 부모님의 소재지를 확신했다. 하필이면 빌어먹게도 이따위로 동선이 겹칠 줄이야.
강검마가 면면을 둘러보았다. 마주 보는 이도 긴장시킬 정도로 무거운 표정이다.
“아벨.”
강검마가 낮은 목소리로 아벨을 불렀다.
“어?”
“아무래도 네 부모님은 엮여선 안 될 것과 엮여 버린 것 같다.”
그에 아벨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어 갔다. 강검마의 말뜻을 전혀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말투만 들어도 느껴졌다. 저 말은 거짓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저 표정이 그리 말한다.
“그래도.”
강검마가 사시미를 재차 꽉 잡은 뒤, 심호흡했다. 그리고 선언하듯 입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