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2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25화(125/300)
125화 망자의 왕 (4)
“…그게 무슨?”
내 말을 전부 들은 이들의 면면에 경악과 황당함이 차올랐다. 아벨, 샤일, 심지어 언데드 던전의 터줏대감 미켈란조차도.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 모아 같은 말을 내뱉었다.
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방금 한 말 그대로야. 그 개구멍 같은 곳 아래에는 S급 마수가 봉인되어 있어. 그리고 아벨, 네 부모님은 아마 그 마수를 토벌하려 하셨던 것 같다.”
“…….”
사실을 돌려 말하진 않았다. 원래는 나 혼자 토벌할 요량이었지만, 아벨의 부모님이 그곳을 향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그래서 거짓을 더한 설득보단 다소 충격적인 팩트만을 말했다.
다만 저들이 어벙해진 반응 역시 깊이 공감한다. 난데없이 D-급 던전에 S급 마수가 잠들어 있다니, 영락없는 날벼락.
내가 저들이어도 똑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세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받아 내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마수는 ‘드라우그’라는 놈인데, 언데드를 군세로 다루는 까다로운 녀석이야.”
“…….”
일대가 적막에 빠졌다. 안 그래도 고요하기 그지없는 던전이었는데, 적막이 가중되었다.
저마다 여러 의념과 상념을 떠올리는 중이겠지.
여기서부터는 연속적인 충격을 가해 줘야 한다. 그래야 이목이 자연스레 ‘드라우그’에 쏠릴 테니까.
“참고로 마수인 만큼 ‘마법’은 못 다루지만, 마장인 ‘사신의 지팡이’를 부립니다. 그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세가 불어나는 매우 까다로운 능력이죠.”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검마 님은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죠?”
역시나 샤일이 물어 왔다. 혼란으로 거세게 일렁거리는 동공. 나는 짧게 대꾸했다.
“자료 조사를 통해서요.”
“…….”
샤일이 눈썹을 꿈틀거리길래 좀 더 부연해 주었다.
“저는 원래 던전을 토벌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서적들을 전부 들춰 봅니다.”
샤일이 ‘그걸 말이라고……?’ 이런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 궁금증은 해소해 줄 생각이 없다.
현재 시점에선 ‘왜 알고 있는지’가 아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물론 이들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나에 대한 위화감이 차오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 이 세계는 게임이고, 저는 다른 세계에서 떨어진 인간입니다.’라고 포고할 순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그게 저들이 느끼는 이 기분을 ‘따위’로 전락시킬 폭탄선언이겠지.
“샤일 씨 마음도 잘 압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의 출처보다도 ‘어떻게’ 녀석을 상대해야 할지가 중요하단 겁니다.”
나는 곧바로 화제를 매끄럽게 돌려 버렸다. 한참 동안 나를 응시하던 샤일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서 의심이 걷어진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일단은 내 말에 동조한다는 의미일 터.
나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미켈란을 불렀다.
“아저씨.”
“아, 네. 귀인님.”
“…그냥 강검마라고 부르십쇼. 아무튼, 혹시 조금 전 제가 말한 마수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정보는 딱 이 정도입니다.”
“허……. 제가 이곳에 머문 지 700년이지만, 그런 마수가 있는지조차 몰라서 말입니다. 참, 저로서도 너무 큰 충격이로군요. 다만…….”
미켈란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미간을 잔뜩 좁히며 골몰하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갑자기 입구 쪽에 있던 비석이 뇌리에 스치는군요.”
“그 룬어로 적혀 있던 글귀들 말입니까?”
샤일이 되물었다. 그에 미켈란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턱을 쓸어 만졌다.
“요즘 사람들도 룬어를 압니까?”
“그냥 제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조금 익혔습니다. 룬어가 사어가 된 지는 이미 수백 년 됐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하긴 제 생전에도 서서히 구사자들이 줄어 가던 추세였었습니다. 모든 방면에서 어려운 언어였으니 말입니다.”
미켈란은 쓰게 미소 지었다. 아쉬움이 담긴 웃음이었다. 잠시 후, 그의 말이 돌아왔다.
“그 비석을 보셨다시피, 그 내용은 어떠한 ‘대상’을 다루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게… 온전한 건 끄트머리뿐이었고, 윗부분은 손상이 너무 심해 해독을 못 했습니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훼손을 가한 것 같았습니다.”
“흠. 누가 그랬는지 알 순 없지만, 그래도 몇 세기에 걸쳐 있던 비석이니 그리돼도 이상할 건 없죠.”
미켈란이 예상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쇼. 저 미켈란의 머리에 전부 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걸 전부 기억하신다고요?”
아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켈란이 이가 드러나도록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래 봬도 한 기억력 합니다. 물론 근래 깜빡깜빡하는 게 잦아지곤 있습니다만.”
그리 말하면서 미켈란은 흠흠 헛기침했다. 죽은 자의 탁한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찌 되었건, 그 비석의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 *
== ==
이 앞은 망자들의 쉼터이자 안식의 궁전이었다.
하나, 모름지기 ■해(■害)란 불시에 찾아드는 법.
죽음을 구속하고 얽매는 저주가 이곳에 도래했나니.
그것은 불멸이라는 미명하에 살아 썩게 만드는 저주였다.
들리는가.
고통받는 망자들의 비명이.
해방을 원하는 몸부림이.
죽음을 갈망하는 아우성이.
산 자여. 우리의 저주를, 우리의 족쇄를 부디 끊어 다오.
보이는 것에 속지 말며, 망자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라.
저주의 본질은 인(人)이 아닌 마(魔)에 있을 것이다.
망자는 바란다.
이 저주를 끊어 내 줄 인간이 나타나기를.
불사의 속박을 베어 줄 ■의 성인이 강림키를.
그자는 삼라(森羅)한 우리의 무한한 축복을 받으며 우리의 ■으로 옹립할 것이다.
반대로 우둔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불멸의 굴레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그렇기에 경고한다.
망자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
그자 또한 같게 될 것이며.
망자에게 안식을 안기는 자.
그자가 곧 망자의 왕이라.
== ==
* * *
미켈란의 말이 끝남과 함께 샤일이 희미하게 눈썹을 찡그렸다.
“뒷부분의 내용도 살짝 소름이 돋았었는데… 앞내용은 그 이상으로 훨씬 암울한 내용이었군요.”
“그러게. 아까 샤일 네가 말했을 땐 순전한 경고성 멘트라고 생각했어. 근데 앞 내용까지 들어 보니까…….”
옆에 있던 아벨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그녀는 그 글귀에서 뻗어져 나오는 처절함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내가 벴던 언데드들은 구원자를 바라고 있었던 거야.’
아벨이 제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죄인처럼 고개를 깊게 숙였다.
의무감과 소명으로 애써 죄책감을 지워 왔건만. 아벨은 그것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걸 느꼈다.
미켈란과 샤일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벨은 침통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음이 갑갑했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기분이었다.
목적만을 우선시하려 다짐한 아벨이었다. 검제의 그 우직함을 본받고자 했다.
‘…할아버지는 본인이 하신 일에는 절대 미련을 두지 않으셨어.’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었다. 후회하고 있었다. 가슴속에 멍이 든 것처럼 둔통이 느껴졌다.
그렇게 아벨의 낯빛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 있던 순간.
덥썩.
단단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붙잡았다.
“……?”
강검마였다. 그가 나긋이 웃더니 입을 뗐다.
“넌 걱정이 너무 많아.”
그 말에 아벨은 두 눈을 끔뻑거렸다.
걱정? 그녀의 표정은 걱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리고 강검마의 눈썰미가 이것을 구분 못 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아벨과 강검마의 눈이 맞닿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득 들어찬 부정적인 감정들을 쫓아내는 온화한 시선.
가끔씩 실없는 농을 던지는 강검마였다. 그때마다 아벨은 황당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 어렴풋한 저의가 헤아려졌다.
무심결에 툭 던지는 어쭙잖은 말보다, 오히려 저런 묵직함에서 위안받는다.
아벨이 진정된 것을 확인한 강검마. 그는 옅게 미소 지으며 어깨의 손을 뗐다. 그리고는 샤일과 미켈란이 나누는 대화에 끼었다.
“…….”
그런 그의 옆모습을 아벨은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오른 어깨를 쓸어 보았다.
따스한 온기가 머물러 있었다.
* * *
…잠시 후, 비석 글귀에 관한 토의가 끝났다.
크게 기대감은 없었는데, 미켈란 덕분에 꽤 중요한 단서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무려 수세기를 살아온 그였다. 한데, 그의 기억력과 두뇌는 대단히 영민했다.
한 번 봤다던 비문(碑文)을 대번에 읊지를 않나, 게다가 그에 대한 요모조모 첨언도 아끼지 않았다.
불현듯 미켈란이 생전에 뭘 했는지가 궁금했다.
다만 그에게선 선명한 기억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심지어 본인이 왜 이 던전에 입장했고, 어떻게 언데드로 변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미켈란은 그저 초대 검성, 아론 니벨룽과 연관되었다 정도만 떠올리는 듯했다.
뭐, 그의 과거사가 크게 중요친 않았기에 일단은 넘어갔다.
딱히 거짓말하는 기색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는 적극적으로 조력자를 자처했다.
“비석의 글귀는 저도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한데, 강검마 님이 제공해 주신 정보 덕에 윤곽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미켈란이 검지를 세우며 강조했다.
“물론 사견입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저주’는 그 ‘드라우그’라는 마수가 아닐까 짐작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처음엔 ‘망자의 왕’이 아닐까 싶었지만, 검마 님께서 설명해 주신 마장의 특성과 ‘저주’의 내용이 얼추 맞아 드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샤일이 수긍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켈란이 바통을 넘겨받듯 말을 받았다.
“추론이 맞는다면, 저희가 가장 주목해야 하는 어구는 ‘저주의 본질은 인(人)이 아닌 마(魔)에 있을 것이다.’입니다. 이 부분이 글귀를 새긴 누군가가 제공한 힌트인 셈이죠.”
“마(魔)라…….”
그리 중얼거리던 샤일이 돌연 고개를 홱 내 쪽으로 옮겼다.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한참을 응시하더니 이내 절레절레 고개 저었다.
딜레마에 빠진 사람처럼 복잡한 심경이 샤일의 얼굴에 그대로 비쳤다.
그런 가운데, 잠자코 있던 아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가 직접 토벌하는 거 너무 위험한 생각 아닐까……? S급 마수잖아. 제아무리 검마 너랑 시니어급인 샤일이 있다고 해도, 너무 리스크가 크잖아.”
당연히 이런 의문이 제기될 줄 알았다. 확실히 위험 부담이 몹시 컸다.
자연재해로 여겨지는 S급에, 물량 공세를 퍼붓는 드라우그.
이 멤버로도 무조건 토벌할 수 있다고 전혀 장담할 수 없었다.
아벨의 말마따나 협회 측에 제보하는 것이 정상일 터.
그러나, 나는 그 경우를 완전히 배제했다.
협회에 알릴 시, 분명히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할 터.
그렇다면 당연히 시간도 지체되며, 자칫 그들이 마석을 눈치챌 수도 있다.
듣기론 협회 쪽 연구소에서 마석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고 있다고 했으니까.
그만큼 이 세계에서 마석은 희소하고 귀한 물건이었다.
내가 여태 입 꾹 다문 채 혼자 토벌하려 한 이유기도 했고.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으란 말이 있지만, 마석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면, 마석은 인위적인 가공을 시도할 경우 폭탄처럼 터져 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거든.
다만 강화에 쓰여 ‘세공’될 때만큼은 예외였다. 애매한 차이긴 하다. 근데 시스템이 그렇다는데, 뭐.
아무튼 거기에 더해, 아벨의 부모님도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농후하다. 이러한 이유로 외부의 개입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해 둔 공략법도 있었다.
“나는 그 의견에 반대.”
“그럼, 이렇게 셋이서 S급 마수를 토벌하자는 거야!?”
당황스러워하는 아벨과 샤일에게 위의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마석에 관한 이야기는 보류하면서.
그리고 두 사람에겐 부담스럽다면 나 혼자라도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애당초 계획도 그러했고, 리스크를 분담할 필요성도 없으니.
…대충 30분이 흘러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건대 아벨의 목적, 즉 부모님의 수급을 확인키 위해서겠지.
“…해보자. S급 마수긴 하지만, 샤일 너도 있고 검마도 있잖아.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아.”
살짝 머뭇거리는 샤일. 그러나 주인 이기는 메이드 없다고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만, 너무 위험하다 판단되면 바로 도망치는 걸 약속해 주십시오.”
“당연합니다.”
이윽고, 모두의 승낙을 받아 냈다.
“미켈란 아저씨, 아까 말한 개구멍까지 안내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습니다. 이 미켈란,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안내해 드립죠.”
그렇게 미켈란의 안내받으며 목적지로 향했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미켈란이 웬 돌무더기에 빙 둘러싸인 곳을 가리켰다.
그 중앙에는 지저로 향하는 개구멍이 있었는데, 시커먼 재질의 문과 여섯 개의 자물쇠로 굳게 막혀 있었다.
다만 경첩이 조금 헐거운 게, 열린 적은 있는 모양이었다.
여러 번은 아니고 많아 봐야 두 번 정도. 하지만 여전히 닫혀 있는 걸로 봤을 때, 토벌에 성공한 적은 없는 듯했다.
‘원래는 저 여섯 열쇠를 찾아야만 입장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미 마스터키를 보유 중이다.
“잠깐 다들 물러서 있어.”
그리 말하곤 곧장 사시미를 빼 들었다.
키리링―
[검신(劍神)의 가호가 발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