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2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26화(126/300)
126화 망자의 왕 (5)
쿠구구구구궁―!
두꺼운 문짝이 검격 한 번에 무너져내렸다.
그 여파로 삭풍이 일고, 도열 됐던 돌무더기가 도미노처럼 주르륵 쓰러졌다.
묘지처럼 잠잠하기만 했던 던전 전체가 진동했다.
“…….”
“…….”
“…….”
지켜보던 면면은 침을 꿀꺽 삼킬 뿐이었다. 특히 실제로는 처음 보는 샤일. 그녀의 눈동자는 황당함을 넘어 몽롱하기까지 했다.
설령 꿈이라 해도 믿을 법한, 상정을 벗어난 현상이었으니까. 누구라도 금붕어처럼 입술만 뻥긋거릴 것이다.
강검마가 동강 낸 문의 크기는 못해도 지름이 10M. 혹은 그 이상은 됨 직한 거대한 문이었다.
한데, 칼질 한 번에 엮여 있던 자물쇠와 개구멍의 문이 버터처럼 절단 났다.
그것도 저 회칼로. 땅을 흔드는 충격 이상으로 샤일은 상식이 허물어지는 걸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동시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안도감이 몰려왔다.
사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샤일은 계속 망설였다.
오늘 하루만 해도, 어처구니없는 상황만 수어 번이었다.
대뜸 S급 마수를 토벌하러 가자는 강검마.
처음엔 그저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지만, 요모조모를 반추해보니 상황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고.
모든 정황은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더군다나 묻는 족족 강검마는 깡그리 얼버무렸다.
기분 탓, 자료 조사를 열심히 했다. 등등…….
추가로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추궁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으나, 샤일은 그러지 못했다.
아벨 아가씨가 언데드 던전에 온 이유도 있거니와, 강검마에게 느끼는 두려움이 더 컸다.
애써 부정하고 있지만 강검마의 시선이라도 느껴지면 어깨가 잘게 떨렸다.
매사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흉금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인물이 강검마다.
서늘하면서도 온아하고.
차분하면서도 불같았다.
혼돈스러운 그 성품은 샤일에게 코스믹 호러처럼 다가왔다.
“후…….”
강검마가 숨을 몰아 뱉고서 사시미를 도로 검집에 찔러 넣었다.
그는 사과라도 깎은 사람처럼 무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들어가기 전에 상태 점검 한 번씩 하고 가시죠. 아, 그리고 미켈란 아저씨는 수고했어요.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이에 미켈란이 희열에 찬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생기가 가신 동공에서 이채마저 번들거렸다.
“아아, 아닙니다. 끝까지 강검마 님의 옆에 있겠습니다. 심장이 뛰는 이 기분, 수백 년 만에 처음입니다! 저 미켈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아저씨 개그 많이 악취미네요.”
경악이 내려앉은 가운데, 둘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샤일은 시선을 슬며시 아벨에게로 돌렸다.
아가씨 또한 자신과 비슷한 눈빛이었다. 한데, 그 정도가 샤일보다 옅었다. 놀란 것과는 별개로 예상은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시선을 눈치챘는지 아벨도 샤일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리곤 짐짓 이해한다는 얼굴로 입을 뗐다.
“샤일, 너 조금 전까지 엄청나게 불안해했는데, 얼굴이 조금은 유해졌네. 너도 쟤가 검 다루는 거 보고 안도해 버린 거지?”
“…예, 아가씨. 솔직히 예상 이상, 아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네요. 검마 님은…….”
“나도 네 기분 알아. 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놀라지 않은 적이 없거든.”
아벨이 쓰게 웃었다. 그녀는 시선을 도로 강검마에게 두었다. 금안에 여러 감정이 깃들었다.
“가끔은 쟤를 보면서 벽을 느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그리고 머리를 아무리 뒤로 젖혀도 위가 안 보이는 그런 벽 있잖아.”
“…….”
“…근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벽이란 거. 나만 느끼는 게 아니지. 생각해 봐, 강검마와 맞닥뜨린 적은 어떻겠어.”
상상은 찰나로 충분했다.
그 상념이 스침과 함께 샤일의 등골에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 강검마의 칼부림은 절로 갈비뼈를 오므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벨은 입술을 잠깐 샐쭉거리더니 바로 반색했다.
“그러니까 샤일, 너무 걱정하지 마. 물론 나도 무서워. 무려 S급 마수를 만나러 가는 거잖아. 하지만 불안할 때마다 방금 그 감각을 돋우면 될 거야. 강검마가 우군이라서 느끼는 안도감과 적으로 마주할 때의… 그거.”
그리 생각하니 마음속 응어리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으레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전마다 하는 ‘루틴’이란 개념.
“…네, 아가씨.”
샤일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검마는 아벨과 샤일에게 각각 역할을 부여했다. 그리고 책사를 자처하는 미켈란과 전략을 조율, 정정했다.
계획은 단순했다.
속전속결.
드라우그가 군세를 불리기 전에 해치우는 것.
강검마가 신속으로 도약해 벤다. [무통의 가호] 발동 시간은 ‘50초’. 하지만 속도전을 내세운다면 그 제한은 무색해질 것이다.
가장 껄끄러운 건, 잔바리들인데. 후방에서 아벨과 샤일이 그것들의 수를 억제하기로 했다.
또한, 비전투원인 미켈란이 사각에서 튀어나올 가능성을 대비해 시야를 확보, 더불어 아벨의 부모님을 찾아낸다.
비록 미켈란은 전투 능력은 티끌만큼도 없지만, 셋이 전투에 집중할 수 있게끔 돕는 역할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강검마의 사인이 떨어지는 즉시 바로 줄행랑을 칠 것.
어찌 보면 이번 토벌전의 핵심이었다.
고집부리면서 버티면 몰매 맞아 개죽음 확정이니 당연했다.
살아 있어야 다음을 기약하는 법. 마석 때문에 목숨까지 걸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까지가 계획이고, 다들 이견 있으면 지금 말해 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긍정의 의미였다.
사실, 급히 합을 맞추는지라 체계보단 효율에 치중된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최선이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었다.
강검마가 면면을 슥 훑어본 뒤 낮췄던 몸을 일으켰다. 그는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시다.”
* * *
아래로 향하는 통로를 걷길 30분.
우리는 길이를 가늠키 힘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어휴.’
을씨년스러운 공기와 물기가 흥건한 냄새가 피부와 코끝에 스민다. 그 때문인지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그래도 처음 개구멍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감각은 정말……. 담력이 센 나조차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생명의 흔적, 외부의 빛, 인기척이 완연히 차단된 내부.
손전등이 있어도 딱 발 앞까지만 밝힐 수 있었다.
경사도 가파르고 해서, 벽면을 더듬더듬 짚어 가며 긴장의 끈을 유지했다.
‘이거 보스 몹보다 가는 길이 더 음산하네.’
다행인 건 미켈란의 존재였다.
그는 진열의 맨 앞에서 우리를 인도했는데, 조명 없이도 어둠을 거침없이 가르며 나아갔다.
중간중간 잘 따라오는지 확인도 잊지 않았다. 그는 길잡이로서 모든 걸 해 주고 있었다.
‘확실히 기대 이상이야.’
나무랄 데가 없는 조력자.
저벅.
미켈란의 발소리가 정지했다. 그는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팔만 뒤로 뻗었다. 잠깐 대기하란 신호였다.
미켈란은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곤 고개만 비틀어서 조용히 말했다.
“드디어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미켈란의 표정이 영 좋지 못했다. 그의 얼굴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동공이 불안함으로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저씨.”
“그게… 사실, 언데드끼리는 서로 영체를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비석 내용을 듣고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언데드는 육체가 바스러져도 영혼이 던전에 머무는 듯합니다. 영혼을 가둬 둔 허물이 벗겨져도 영영 던전에서 탈출할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전 아직 사지가 멀쩡한 언데드라 확실친 않습니다만…….”
쉽게 비유하자면 육체가 말소되었어도 영혼은 남아 있단 뜻. 몸이 괴사해도 영혼은 이 던전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무간지옥이었다. 표면상 D- 등급의 던전이 이런 지옥이었다니, 사람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지상, 그러니까 계단 위쪽에는 돌아다니는 영혼의 수가 얼마 안 됩니다. 수세기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10 남짓을 못 봤으니 말입니다. 그냥 그때는 유령이라도 봤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갑자기 저리 말하는 의도야 한 가지다.
“여기는 그 수가 많다는 겁니까?”
내 물음에 미켈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인제 와서 제가 이 사실을 말씀드리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터무니없는 영혼의 수, 이걸 보고 있으니 확신이 드는군요.”
“터무니없다면 어느 정도입니까?”
미켈란은 근방을 슥 한 차례 더 둘러보았다. 시선이 넘어갈수록 그의 눈썹이 크게 들썩였다.
이내 확인을 끝마친 그가 낮게 입을 열었다.
“적어도 십만 명은 훌쩍 넘는 것 같습니다.”
“……?!”
“추산치긴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거의 물리적인 형태를 갖출 정도로 말입니다.”
그 말에 전부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이 캄캄한 암전막에 갇힌 영혼이 십만 명 이상이라니, 그냥 귀신 소굴이지 않은가.
그때였다.
쿠후우으으후우쿠후으으우쿠꾸루후으으후우쿠구우후으으후쿠후우으으후우쿠후으으우쿠꾸루후으으후우쿠구우후으쿠후우으으후우쿠후으으우쿠꾸루후으으후우쿠구우후으으후쿠후우으으후우쿠후으으우쿠꾸루후으으후우쿠구우후으으후우쿠구우후
장내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끈적끈적해지는 공기와 기괴해지는 분위기. 노면에선 벌레가 우글거리는 것 같은 징그러운 소음이 났다.
“다들 무장 꺼내!”
나는 일행에게 소리쳤다. 잠깐 넋이 나가 있던 아벨과 샤일의 손이 곧장 허리춤으로 옮겨졌다.
파앗!
돌연, 암흑뿐이었던 풍광에 쨍한 빛이 드리웠다. 오밤중이 한시에 대낮으로 변한 것 같았다.
“으윽.”
안구를 사정없이 때리는 빛에 신음을 흘렸다. 눈이 따끔거린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최대한 가늘게 좁혀 어떻게든 시야를 확보해야만 한다.
쏟아져 나오는 광선 속에서 나는 끝끝내 안력을 돋워 냈다. 이어 망막이 담아내는 일대 광경에 나는 멍해졌다.
“…미친.”
예의 카우 킹의 그곳보다 대저 열 배는 넓은 공간. 이미 면적에서부터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규모뿐이었다면 그리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S급 마수의 터전인데 공간이 협소한 게 더 이상하니까.
거대한 사원이 눈앞에 있다. 형태적인 면에선 사원이지만 그 규모가 가히 압도적이었다.
사실상 지하 도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음모론에서 종종 언급되는 그러한 신비한 성소 같았다.
다만 이 웅대한 축조물을 구성한 재료가 실로 오싹했다. 뼈, 해골, 문드러진 살. 이 세 가지만으로 이뤄져 있었다. 심지어 바닥마저 꿀렁거리는 게 일반적인 노면이 아니었다.
“아, 아니…….”
뒤이어 눈을 뜬 세 사람. 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전신을 훑는다. 인세의 지옥도에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저, 저기를 보십쇼.”
미켈란이 경악하며 발발 떨리는 손가락으로 들었다. 그의 시선의 끝은 사원의 탑 중 가장 높은 탑이었다.
그 정상에는 옥좌가 있었다. 이 공간 전부를 굽어볼 수 있는 지점. 그리고 그 왕위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인영 하나.
멀찍한 거리. 하나 저 존재가 무엇인지는 뿜어내는 기운만으로 알 수 있었다.
‘드라우그.’
황금과 각종 보석으로 화려하게 세공된 금 갑주. 머리 위에는 왕관이 얹어져 있어 자신이 왕임을 상대에게 각인시킨다.
회색과 빨강만이 그득한 이 공간 속에서 명백히 이질적인 색감. 그러나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드라우그는 싸지를 사용하지 않나?’
반면 저놈의 무기는 검이었다. 의아한 눈으로 홀린 듯 바라보고 있자 재차 공기가 흔들렸다.
우우우우우웅!
일대가 들썩이고 벽면이 녹아내린다.
그다음 순간, 저 옥좌에 앉아 있던 드라우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직이 두 눈이 뜨인다.
그와 동시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앞이 아닌 뒤에서.
“아, 아…….”
몹시 흐트러진 음색. 급기야 온 시선이 한 사람에게 집중됐다. 바로 아벨이었다.
그녀는 경련하듯 몸을 떨며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지만 잇새에 새는 음성을 미처 삼키지 못했다.
“아.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