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3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30화(130/300)
130화 자격 (1)
장내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묘소라는 장소에 맞물리는 나직한 침묵이었다.
파스스.
개미 무리처럼 들끓었던 언데드들은 저마다 흙으로 변해 영원한 안식에 접어들었다.
그들 중엔 당연히 미켈란도 포함됐다. 그가 시선만 떨구어 손바닥을 바라봤다. 손가락 끝부터 먼지가 되어 흩날리고 있다.
“허허-”
미켈란의 입가에 달뜬 미소가 떠올랐다. 육신이 바스러져 간다. 지상에 남아 있을 시간은 이제 수 분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가슴엔 조금의 미련도 없었다. 그저 홀가분한 감정만을 느끼며 미켈란이 눈을 감은 때였다.
“미켈란 아저씨!”
아벨이 다급한 말투로 그를 불렀다. 그녀의 눈시울엔 붉은 홍조가 맺혀 있었다.
그에 미켈란은 수더분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검성의 후예님, 그런 표정 짓지 마십쇼. 이 쇤네, 무려 700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늘 바라 왔던 안락한 마지막이니 웃으며 보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그래도.”
아벨은 울지 않으려 코를 찡그렸다. 몇 시간의 인연이었지만 미켈란은 큰 의지가 되어 주었다.
조금 전, 정신이 반쯤 나가 있을 때도 미켈란이 타일렀다. 비록 움직이는 사체인 그였으나 누구보다 인간적인 사내였다.
그런 그가 한 줌의 흙으로 변해 간다. 맑은 미소를 걸고서 작별을 건네고 있다.
미켈란이 잔잔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후예님께선 부친의 슬픔만을 느끼셔도 됩니다.”
아벨은 아버지의 만종의 순간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아버지와 찰나에 시선이 마주쳤다.
초승달을 그리는 부드러운 눈웃음. 그걸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먼지로 화했다. 눈부신 햇살이 그가 누워 있던 자리에 빛을 쏟아 냈다.
아벨이 흐르는 눈물을 슥슥 훔쳤다. 일곱부터 품어 왔던 염원에 대한 보답은 아버지의 그 미소였다.
비록 어머니는 찾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안식에 취했으리라.
아벨은 애도하기보다 성장한 자신을 보이고자 했다.
“…….”
한편, 미켈란은 무너져 내리는 탑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한 소년이 등을 보이며 서 있다. 흑색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느릿하게 넘실거린다.
강검마는 이질적인 소년이었다.
말투와 태도가 다소 딱딱한 감이 있었다. 눈빛도 냉소적이고 손속도 무자비했다.
하물며 귀신같이 검을 놀리더니 곧장 오라도 피워 냈다.
남들보다 몇 곱절은 오래 살아온 미켈란에게조차 그 무엇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흑발에 흑채라…….’
미켈란은 강검마의 외적 특징을 곱씹었다. 팔의 절반이 사라지는 가운데, 그는 연신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데… 지적 호기심이 남다른 미켈란이었다. 이대로라면 찝찝한 결말, 유일한 여한이 남을 것 같았다.
미켈란의 눈썹이 일자로 좁혀졌다. 그는 과거에 잠긴 채 차분히 주마등을 훑었다.
“……!”
그러다 문득 뇌리에 한 조각의 기억이 떠올랐다.
700년 전의 일이었다. 사촌의 친구를 통해 우연히 아론 니벨룽 님과 만났을 무렵이다.
생전에도 말재주가 좋았기에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론 님은 검의 사랑을 받는 분치곤 몹시 소탈한 성품이셨다.
게다가 별처럼 반짝이는 금안엔 사람을 끌어당기는 미력이 어려 있었다. 매사에 주목받는 여인이었다, 당신의 후예 아벨처럼.
그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생동감이 넘쳤고, 매사가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확신과 자비심이 차 있었다.
특히나, 당신의 스승이신 시조의 영웅, 발로르 호아킨 님에 대해 말씀하시던 그 모습이 머릿속에 선연하다.
* * *
“미켈란, 그거 알아요? 사람들은 제 스승님을 엄청난 사람으로 보지만, 사실 대부분이 엉터리예요.”
모닥불을 피우며 말을 툭 내뱉던 아론. 그녀의 말에 미켈란은 질겁했다.
“아, 아니. 아무리 검성님이시라도 시조의 영웅님을 그리 헐뜯으시면 천벌받으십니다!”
“하하하! 사람들이 너무 스승님을 띄워 줘서 그렇지. 스승님도 그저 인간이에요. 오히려 다른 부분에선 더 모지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특이하면서도 바보 같은 그런 인물. 이 표현이 딱 맞겠네요.”
“…….”
부지깽이를 쿡쿡 들쑤시며 아론도 덩달아 쿡쿡 웃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소가 만연했다. 그에 미켈란은 입을 앙다물 뿐이었다.
“근데 사실, 저도 말은 이렇게 하지. 그 양반이 난놈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네요. 뭐랄까. 생김새나 분위기도 다른 사람들이랑 완전히 다르기도 하고……. 어떨 땐 다른 세상에서 뚝 떨어진 것 같다니까요?”
“황송하오나, 혹시 시조의 영웅님께선 어떻게 다르신 겁니까?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신지라……. 혹여 나중에 못 알아뵙는 결례를 저지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딱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예?”
뒷말을 잇기 전, 싱긋- 미소 지으시던 아론 님. 그녀는 톡톡 튀기는 불티를 응시하며 말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어때요? 직접 보면 딱 알아보겠죠? 아, 맞다. 그리고 제가 스승님 뒷담 깠다는 건 꼭 비밀로 해 주세요. 무덤까지요. 꼭이요! 꼭!”
* * *
“…허.”
미켈란의 잇새로 절로 헛숨이 삐져나왔다. 어쩌면 날조된 기억일지도 모른다.
기나긴 세월로 인해 분별력이 흐트러진 건가 싶었다. 한데, 팔뚝에 오소소 돋은 이 소름은 뭐란 말인가.
그때 탑의 정상에서 강검마가 폴짝 뛰어내린다. 그는 살포시 지상에 착지하고서 성큼성큼 발걸음을 뗐다.
저벅, 저벅.
미켈란이 하나 남은 손을 내밀었다. 그 팔마저 산화가 빨리 진행되어 형체가 투명해졌다. 몸 선의 윤곽마저 안개처럼 흐릿하다.
저자가 이쪽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버틸 순 없으리라. 미켈란은 쓴웃음을 흘리며 아쉬움을 털었다.
그저 이 순간을 함께했다는 자부심으로 충분하다. 아무나 누리기 힘든 영광일 것이다.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샤일이 그에게 물었다.
“검마 님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초면엔 미켈란의 토벌을 주장했던 샤일이었으나, 그녀의 표정 또한 침통했다.
미켈란은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곧 절레절레 고개 저었다.
“없습니다.”
“…….”
완고한 대답이 돌아왔다.
희뿌예지는 가운데, 미켈란이 활짝 소리 내어 웃는다.
“아는 분과 무덤까지 갖고 가기로 약속해서 말입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 하나만 전해 주십쇼.”
“아저씨!”
아벨이 화들짝 외쳤다. 미켈란이 맑게 웃어 보인다.
“앞날을 부탁합니다.”
* * *
언데드 던전에서 빠져나온 직후, 우리는 숙소로 직행했다.
“…….”
“…….”
“…….”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 무거운 공기가 깔렸다. 기사님은 룸미러로 표정들을 읽고선 말없이 악셀만 밟으셨다.
방에 도착한 나는 기절하듯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이번 여정에서 대단한 쾌거를 이뤘다. 본래 목적이었던 ‘불사의 마석’을 얻었을 뿐 아니라 피해도 전무했다.
샤일이 가벼운 철과상을 입은 정도. 그녀는 파스 몇 장 붙이면 낫는다고 말했다.
‘걱정은 되긴 하는데, 당사자가 그렇다니까.’
그에 반해 아벨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단 점? 택시 안에서 창 너머만 망연히 바라보던데. 몸은 괜찮은데 머리가 복잡한 모양이었다.
나는 [검신의 가호]의 후통 때문에 뼈마디가 저렸다. 그래도 겉보기엔 잔부상 하나 없이 말끔했다.
고통의 경감률 덕에 다행히 병원행은 면했다. 솔직히 딱- 입원만 피했지, 몸은 완전히 녹초 상태였다.
당분간 가호 발현은 무리다. 그때는 정말 병원 침대에서 닷새는 누워 있게 될 터다. 해외까지 와서 약 냄새나 맡는다니.
상상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하아.”
왜인지 목 아래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갑갑했다. 나는 팔로 머리를 받쳐 누웠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
바로 잠들까 하다 갈무리했던 마석을 꺼냈다. 집게 손으로 잡고서 나직한 조명에 요리조리 비껴 보았다.
교태로운 광채를 발하는 돌덩이. 보석이라기엔 마감이 상당히 투박했다.
“이딴 돌멩이가 그 많은 사람을…….”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수많은 망자가 이 한 뼘 크기만 한 마석에 수백 년을 고통받았다.
리치 킹 드라우그, 그도 이 빌어먹을 마석의 피해자였으니… 사실상, 이 조그마한 돌멩이가 본체나 다름없었다.
“마음 같아선, 으적- 씹어 버리고 싶지만.”
나는 쯧- 혀를 차며 마석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아까 상태창에서 분명―
‘망자의 원기가 걷힌 순수한 형태의 보석입니다.’
―라고 했으니 불길할지언정, 전처럼 마력을 흘리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설령, 그럴 기미가 보인다면 그 자리에서 박살을 내 버릴 셈이다.
무장 강화. 정확히는 ‘특수 능력 부여’가 아무리 탐난다지만, 리스크를 떠안고 가는 건 어리석다.
다만 그와 별개로, 어떤 추가 능력이 생길진 궁금했다. 방학이 끝난 뒤, 뷜란트에게 가져다 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두 배쯤 커진 눈으로 ‘어디서 구한 거냐?’ 하며 요목조목 캐묻겠지. 그땐 대충 오다 주웠다 말해야지.
딱 봐도 입이 가벼운 아재인데 무턱대고 출처를 밝히긴 싫다.
그리고 오늘 샤일을 설득하면서 배운 처세술도 있다. 뻔뻔하게 나가기. 쭉- 밀어붙이니 그녀는 입술만 달싹이다 말았다.
‘앞으로도 설명은 최대한 생략해도 돼. 결과로 보이면 입을 다물기 마련이니까.’
천장을 바라보던 중, 불현듯이 중얼거렸다.
“아벨은 좀 괜찮으려나.”
걔가 유독 표정이 안 좋았는데. 하긴, 자신의 아버지가 해괴한 마수로 변한 다음 완전히 사라졌다.
아벨로선 ‘아버지의 끝을 봤다.’라는 소기의 목적만 달성했을 뿐. 궁극적인 건 어느 것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그 아버지를 벤 게 나다. 어찌 보면 그녀에게 미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아벨은 조금의 불만도 표출하지 않았다.
되레 내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었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줘서 정말로 고맙다고. 목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그 말을 내뱉기 위해서 아벨은 얼마나 마음을 다듬었을까. 같은 십 대가 맞나 싶은 초인적인 자제력이다.
심지어 아벨의 아버지는 괜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전할 말조차 아낀 채 눈을 감았다.
과연 그 할아버지에, 그 아버지, 그 손녀라고 해야 하나……. 니벨룽가의 족보가 범상치 않다는 걸 새삼 느낀다.
‘몇 마디 지어내서 전해 줄 걸 그랬나.’
그런 상념은 찰나였다. 바로 고개 저어 부정했다. 누구보다 간절했을 인물이 그녀의 아버지다.
한데, 그는 끝끝내 말을 아꼈다. 당신의 딸이 더더욱 성장하길 바라며.
거기다 내가 말을 끼얹는다? 그의 유지를 배반하는 행위다.
생각 정리를 마친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전신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잔통이 흘렀다.
그래도 어찌어찌 창틀에 앉았다. 내일 아침 일찍 스위스로 귀국하는 일정이다.
원래는 며칠 더 머무를 예정이었으나, 곧장 돌아가기로 했다. 아벨이 마음을 추스르는 데 집만 한 장소는 없을 테니.
그러니 지금이 프랑스 리옹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나는 잠잠한 눈으로 도시의 정경을 눈에 담았다.
노을이 저문다. 아스라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 아래엔 사람들과 차가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길거리의 간판들에 다양한 색감의 조명이 걸리기 시작한다.
안락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 이를 이룩하기 위해 700년 전, 인류는 마족과 싸웠다. 나는 오늘 그들을 직접 보았다.
그들이 무수한 피를 흘려 가면서 지켜 낸 세계다. 하나 3년 후엔 더 큰 재앙이 예정되어 있다.
오늘, 그들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받았다. 대물려 준 이 세계를 지켜 달라는.
나는 볼을 긁적였다.
“근데 번지수가 잘못된 거 아닌가? 용사는 레온인데.”
혼잣말을 매듭짓고서 창틀에서 내려왔다. 어깨 위가 괜스레 묵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