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3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31화(131/300)
131화 자격 (2)
강검마 일행은 캐슬 시구르드로 무사 귀환했다. 경로는 출발 무렵과 거의 같았다.
하지만 갈 때와 올 때의 분위기는 판이했다. 출발쯤만 해도 긴장감만 조금 팽팽할 뿐, 얼굴들이 밝았다.
근데 귀가 직후인 지금은…….
연무처럼 낮게 가라앉은 기류가 세 사람 사이에서 맴돌았다.
그에 검제와 카론은 선뜻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들 중에서도 아벨의 표정이 유독 침울함으로 젖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음은 분명했다.
하여, 검제는 인솔자였던 샤일을 따로 서재로 불러냈다. 그녀의 책무엔 던전에서의 상황 보고 또한 포함됐다. 샤일은 검제에게 상세하게, 있는 그대로를 설명했다.
“…지금까지가 언데드 던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검제 님.”
샤일이 시선을 떨군 채 말을 마무리지었다.
“…….”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짓눌리는 어깨가 무겁다. 차라리 따끔한 질책이라도 쏘아 내신다면 좋았을 것이다.
비유가 아니라 이 적막은 그녀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일정 내내 샤일은 소임을 다했다. 모든 절차와 일 처리를 도맡았으며, 생도인 두 사람의 인솔도 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가슴을 꽉 조이는 이 갑갑함. 리치 킹의 사원 이후, 어두워진 아가씨의 얼굴…….
샤일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시니어 영웅이니 뭐니 해도 현장에서 접근하는 적만 저지할 뿐이었다. 샤일은 무력함을 느꼈다.
‘그래도…….’
그곳엔 강검마가 있었다. 십수만의 전력을 홀로 제압했다. 그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어림잡아 못해도 A+급이었을, 오리온 님의 탈을 쓴 적을 벴다. 악에 침잠되어 버린 그분께 칼질로 안식을 안겨다 주었다.
뒤이어 모든 언데드들이 강검마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은 사라지는 순간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신하가 군주에게 예를 표하듯이.
현실감을 마비시키는 풍경. 샤일은 종래에도 그 장면이 꿈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간혹 볼도 꼬집어 보았다. 따끔함과 함께 몽롱함이 싹 가셨다.
어쩌면 자신은 역사적인 한순간을 보았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상념이 맴돌았다.
“…….”
샤일은 휘휘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올리려던 차, 먼저 입을 뗀 건 검제였다.
“그렇군.”
한마디가 돌아왔다. 말을 받아 낸 샤일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검제를 바라봤다. 다소 굳은 안색이었지만 딱 거기까지. 추가적인 반응은 없었다.
검제가 이어 말했다.
“수고했네, 샤일. 자네도 정신적으로 충격이 상당할 텐데, 며칠은 몸조리하면서 푹 쉬게. 당분간은 나와 카론이 영지 일을 도맡을 테니.”
그 말에 샤일의 몸이 졸아붙었다. 당주님의 저 덤덤한 태도를 그녀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눈가에 그늘이 지긴 했는데 딱 그뿐.
당신의 아들이 언데드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한데, 당주님의 얼굴은 명경지수처럼 잔잔했다. 평소와도 달랐다. 도저히 심중을 가늠이 안 됐다.
하여, 샤일이 조심스레 물었다.
“한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당주님.”
검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게.”
“혹시 당주님께선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까?”
검제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곤 쓰게 말을 내뱉었다.
“샤일, 자네는 예전부터 눈치가 참 좋았단 말이지.”
“죄송합니다…….”
“아닐세. 죄송할 게 뭐가 있나. 오히려 내가 사실을 숨겨 미안해야 할 마당이지.”
검제가 홍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건초 된 차향이 서재에 스몄다. 그는 말랐던 입술을 축이고서야 부연을 덧붙였다.
“자네 예상이 맞네. 나는 오리온이 그리됐다는 걸, 알고 있었네, 그것도 8년 전에 말이지.”
“……!”
“입구 앞에 있던 석판을 봤을 테지. 룬어로 적혀 있던 비문도 언어에 조예가 있는 자네라면 당연히 알아봤을 테고. 안 그런가?”
“…예.”
“그 석판을 훼손한 것도 나일세. 거기에 지하 사원으로 향하는 개구멍을 봉인한 것도. 뭐, 원래 잠겨 있던 곳을 추가로 손본 정도지만 말이네. 조금 전, 내가 놀란 건 다름이 아닌 자네들이 그 봉인을 해제했다는 점이었어.”
샤일이 헙- 헛숨을 삼켰다. 그녀가 입술을 발발 떨며 되물었다.
“알고 계셨었다면, 어째서―”
“―내가 오리온을 토벌하지 않았나 묻고 싶은 게로군.”
검제가 그녀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의 동공이 깊게 가라앉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나를 고평가해 주는 건 고맙지만, 아무리 나라도 그 전력에 단신으로 맞설 순 없네. 그것도 강검마니까 가능한 것이지.”
“그, 그렇다면 왜 석판을 그렇게……?”
“여기까지 하지, 많이 피곤할 텐데.”
홀짝.
그 말을 끝으로, 검제는 그저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뒤 돌아 차장만을 바라보았다. 추가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제스처였다.
그에 샤일은 옅게 침음했다. 자각이 뒤늦게 밀려왔다. 검제가 일일이 설명해 줄 이유는 없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를 넘었습니다.”
“어허, 내 자네를 손녀처럼 생각하니 그런 말은 하지 말고. 일단 고생 많았네. 피곤할 텐데 당분간은 여독 좀 풀고 있게나.”
샤일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서재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몇 분이 더 흘렀다.
“…그렇게 됐군.”
검제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참혹해진 아들 내외를 마주했을 때, 검제는 깨달았다.
혹여 협회에서 알아차린다면 토벌대를 꾸려 끝없이 습격할 것이다.
그걸로 저주가 끊긴다면 모를까. 석문에서 말하는 ‘검의 성인’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함을 몸소 느낀 검제였다.
하면, 결과는 뻔했다. 토벌대는 마력에 물든 오리온의 손에 괴멸하리라. 그 끔찍한 장면이 눈에 훤했다.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불멸의 굴레에서 고통받을 아들이 그 이상의 죄악을 저지르게 놔둘 순 없었다.
영웅으로서의, 아비 된 자로서의 책무였다.
하여, 예언이 적힌 석판을 훼손했다. 협회에게 강력히 요구해 통문소도 폐관시켰다. 발길을 끊을 수 있다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기대를 품었다. 언젠가 아들 오리온을 구제해 줄 예언의 인물이 나타나기를.
그리고 강검마가 아벨을 따라 카타콤으로 향했다. 처음엔 막아 보려 했다.
짐짓 불안했다. 그라면 봉인마저 끊고 그곳에 도달할 것 같았다.
원래라면 그 여정을 막았어야 했지만, 검제는 그러지 않았다.
신의 은총을 받는 듯한 그 소년이라면.
이 가혹한 악순환을 베어 줄 검의 성인이지 않을까, 그러한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강검마는 보란 듯이 해냈다. 한 가정의 비극사를 잘라 낸 것이다.
똑.
찻잔 표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주름진 눈시울이 붉어지고, 한 줄기 눈물이 미끄러졌다.
“이젠 편히 쉬거라.”
그리 말하곤 검제의 동공이 결의로 굳세어졌다. 그 소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베풀고 도우리라.
강검마가 니벨룽가(家)를 구제해 주었다.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할 차례였다.
* * *
성에 돌아온 지 삼 일이 지났다. 그동안에 난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휴식도 수련의 일환이라며 선뜻 검제가 권유했고, 나는 냉큼 끄덕였다.
솔직히 스위스까지 와서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잖아. 이참에 바짝 긴장이 올랐던 근육도 좀 풀고, 잠도 충분히 자 두자.
‘방학이잖아. 이럴 때 쉬는 거지.’
그렇게,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전생부터 불철주야 일만 했다. 하물며 현생도 맘 편히 보낸 날이 드물었다.
얼마 전까지 아카데미 테두리 안에도 내부의 적이 도사렸으니까. 매사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생활했다. 잘 때마저도 베개 아래 사시미를 깔고 잤다.
한데, 여기 캐슬 시구르드는 그런 우려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다.
검제의 개인 영지이자 초법적 지역. 미치지 않고서야 여기까지 마수를 뻗치진 못한다.
설령, 검제에 준하는 권력층인 남은 원로단들도 말이다. 클라디 건으로 이빨이 완전히 뽑힌 까닭도 있지만―
어제 저녁 식사 중, 종이 신문으로 봤던 기사 표제가 스쳤다. 여기는 와이파이도 LTE도 안 터지는 산골짜기라 소식이 한 박자 느렸다.
하여튼 간에 기사 제목은 이러했다.
『[영웅 협회 원로단에 엄격 대응] 협·원 대립 격화… 원로단 권력 전면 박탈까지 이야기 나와.』
―상황이 훨씬 터프하게 돌아간다. 협회가 원로단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 정확한 내막은 기사에 안 실렸지만, 추측은 쉬웠다.
‘협회가 클라디가 빌런과 결탁했다는 걸 눈치챘구나.’
사실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긴 했다.
정황 증거가 원체 확실한 데다 아디토레가 조사를 계속 감행하고 있으니까.
제아무리 혓바닥 긴 원로단도 언제까지고 발뺌할 순 없는 법이다.
“남은 원로들은 뒈진 클라디한테 덤터기를 씌우려 했겠지만.”
협회가 독이 바짝 오른 모양이었다. 협회장이 기자 회견에 직접 나와 자초지종을 홀라당 까 버리겠다고 엄포했다.
그 말인즉슨-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아카데미 원로단의 사실상 와해 선언이다.
원래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협회의 역사는 꼴랑 40년. 전통과 유서를 중시하는 이 세계에선 걸림돌이 많았다.
근데 하필이면 원로단, 정확히는 클라디가 너무나도 큰 빌미를 제공했다는 거지.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있는데, 작금의 원로단은 좀 더 가서.
“좆된 거지.”
축약하자면 원로단은 국제적인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다. 당연히 전만도 못한 위세에 골방에 갇혀 썩을 팔자들이다.
‘던전의 언데드보다도 원로 쓰레기 새끼들이 썩는 게 맞긴 해.’
다만 이걸 마냥 좋게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냐면, 협회가 원로단의 자리를 꿰찬다는 소문이 돌았으니까.
“…뭔 산 넘어 산이냐.”
나는 폭 한숨을 흘렸다.
원로단은 빛 좋은 감투뿐인 족속이었다. 으레 콧대만 높고 돈만 많지 하등 무능한 놈들이다.
그런데 협회는 여러 면에서 훨씬 까다롭다.
무력, 결속력, 정보력.
그 어떠한 것도 뒤처지지 않는 세력이다.
전에 최설아에게 듣기론, 「아티팩트」도 재가공해 배포하는 과학력까지 겸유했으니.
엮이게 될 거물들도 궤를 달리하는 강자들.
창성 리차 드 뮈라와 협회장. 왕년에 한가락 했던 주먹이다.
…근데 그런 협회가 나를 주시한다는 걸 막 전해 들은 참이다. 상당히 께름칙하다.
“……하아.”
나는 사시미를 챙겼다.
이대로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번뇌가 들이찰 수밖에.
이럴 땐, 몸을 예열해야 잡생각이 안 든다.
안 그래도 손가락이 간질간질하던 차다.
지금처럼 여유로운 시즌은 앞으로 드물 터.
이참에 ‘납도’, ‘발검’의 숙달이나 하자.
그때였다.
―똑, ―똑.
두 번의 노크 소리.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샤일은 무조건 노크 세 번인데.’
아벨인가? 싶었지만, 걔도 문을 세 번 두드린다.
잘은 몰라도 유럽권에선 노크 삼세번이 매너인 것 같다.
잠깐 뚫어져라 문을 바라보았다.
곧바로 한 손으로 문고리를, 다른 손엔 사시미를 쥐었다. 참고로 칼부터 잡는 건 그냥 손버릇이다.
벌컥.
문을 열었다. 문 틈새를 비집고 보이는 실루엣에 나는 움찔 놀랐다. 뜻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검제님?”
“거, 한 지붕 아래에서 얼굴 보기 영 어렵군. 잠깐 시간 되면 나랑 같이 스위스 중앙은행으로 좀 가세. 그곳이 니베룽가의 보물고이기도 해서 말이야. 걱정은 말게. 금융 사기 이런 건 아니니까, 허허.”
툭 내뱉는 시시껄렁한 농담.
이어 검제는 갈무리된 기세로 나를 한 차례 응시한다.
“겸사겸사 내 일도 좀 보고, 자네한테 양도 할 것도 있네.”
“양도… 어떤 걸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내 얼굴에 의문 부호가 마구 떠올랐다, 검제가 다시 입을 떼기 전까지.
“혹시 안드바라나우(Andvaranaut)라고 알고 있나?”
“예, 들어는 봤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구먼.”
안드바라나우트. ‘니벨룽의 반지’라고도 불리는, 신화시대부터 전해져 오는 유물.
“자네한테 마침 필요하겠다 싶어서 말이야.”
아티팩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