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3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34화(133/300)
134화 검성의 숙원 (2)
스위스 중앙은행 귀빈실.
“…저, 검제 님. 뭐 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음? 뭔가.”
카론의 물음에 검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사실 의문이 한둘은 아니었지만, 카론은 짧게 간추렸다.
“초대 검성님께서도 이루지 못하신 것을 과연 검마 님이 이루실 수 있을는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이른 감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민감한 주제였다. 검제의 선택에 의문을 품은 것이었으니까.
카론의 눈빛에 수심이 맴돌았다. 그 역시 강검마의 비범함을 안다.
피부를 따끔따끔 찌르는 분위기를 뿜는 소년. 더구나 샤일이 언데드 던전에서 있던 일을 귀띔해 주기도 했다.
강검마는 천재를 넘어서 전설을 엮어 가고 있는 소년이다. 젊은 나이에 워리어 계위를 달성한 자신조차 범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능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라는 말이 자꾸만 입안에 돌았다.
검성, 아론 니벨룽 님도 달성하지 못한 숙원이다.
강검마의 잠재력이 대단하다 해도, 그의 나이는 아직 열일곱이었다. 이 세계에서 재능이 만개하려면 적어도 서른. 일반적으로는 불혹은 되어야 하는데.
카론은 이 상황이 너무 성급하다 싶었다.
심지어 ‘검성의 숙원’의 내용을 아는 이조차 없다 하지 않았던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는 검제가 말이다.
이런 카론의 상념을 잘라 내듯 검제가 짧게 대꾸했다.
“이른 감은 분명히 있지,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말이야.”
카론이 눈을 크게 떴다. 검제를 앞두지 않았다면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탁탁 쳤을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란 말씀은, 설마 검제님도 포함해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허- 이 친구도 말귀가 어두워졌나. 당연한 거 아니겠나? 아무렴, 내가 인간이지, 뭐 신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란 거 아시지 않습니까.”
검제가 턱만 올려 카론을 봤다. 어리둥절한 반응을 즐기는 듯 검제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새겼다.
“저 소년 같은 자에겐 우리가 알고 있는 기준을 들이밀면 안 되네. 저런 부류는 실전이나 시련을 통해서 깨우치고 발전하는 자들이야. 설령 강검마가 검성의 숙원에 실패한다 한들, 그를 통해 뭐라도 깨우칠 거다 이 말이지.”
“하지만 검제님께서도 검성의 숙원이 뭔지 모르지 않습니까? 기억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신다고…….”
“아, 그거 말인가? 내용 자체는 얼추 기억에 남아 있네.”
“…예?”
카론의 얼굴에 당황이 넘쳐흘렀다. 그에 검제가 짓궂은 미소로 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너무 다 말해 주면 재미없잖은가. 뭐, 차라리 잊는 게 신상에 좋긴 하네만……. 숙원에 실패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
“…….”
“전부 거짓말은 아닐세. 나도 ‘니벨룽의 반지’의 형태를 본 적이 없으니까. 숙원에 실패하면 절로 함이 닫히고, 안의 내용물은 영영 볼 수도 없고, 기억에서 말끔히 사라지지.”
카론이 얼얼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검제가 다시 찻잔을 들었다.
“여튼, 검마 그 친구에겐 특히나 더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뭐가 그리 즐거운지 슬며시 올라간 입꼬리를 숨기지 못한 검제였다.
***
공기가 찢기는 소리가 짧게 맞물렸다.
기묘한 각도로 날아오는 칼날이 강검마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작게 생겨난 생채기임에도 배어 나오는 피가 흥건했다. 닦아 낼 기회는 없었다. 강검마는 관자놀이를 노리는 사시미를 사시미로 튕겼다.
쨍-! 하는 소음과 칼날이 서로를 탐하려는 뱀처럼 허공에서 어지럽게 꼬이며 뒤섞였다.
‘이런, 씹. 개 빠르네.’
강검마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생각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법.’이라니.
검성 아론도 달성하지 못했다길래, S++급 마수나 저주를 버텨야 하는 줄 알았다.
기실은 나 자신과의 칼부림. 그 누가 와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싸움이었다. 잘 쳐줘야 무승부일 테니까.
‘이런 걸 뭐라 하지? 분신? 도플갱어?’
미처 무엇인지 반추하기도 전에, 자신과 똑 닮은 녀석이 칼침을 내쏘았다.
심지어 가호까지 재현했는지 검극이 인정사정없었다. 기괴한 궤도로 피부를 핥아 대는 칼날들. 두렵고 사악한 사시미였다.
이런 칼질을 녹스와 마오 랑한테 퍼부었던 자신을 짧게 반성했다. 저런 칼질이면 사시미만 보면 발작하는 그 반응들도 일견 이해됐다.
타닥-!
!-타닥
타닥-!
!-타닥
요란한 발소리. 분신이 지그재그로 노면의 좌우를 번갈아 밟으며 다가온다.
속도가 빠르다 못해 사나웠다. 한 명이었던 분신이 백의 열화상으로 늘어난 듯한 환각이 일었다.
시야 한가득 강검마, 강검마, 강검마였다. 그들의 뒤쪽에선 삭막한 흙바람이 배기가스처럼 퍼져 나왔다.
분신이 쓰는 분신술이라. 어이가 없으면서도 피부가 바싹 말랐다.
‘칼질은 무승부일 테니까, 속도전으로 승부를 거는 건가?’
강검마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되레 동공과 두뇌가 바쁘게 회전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이리저리 칼날을 피하면서 분신의 속도가 느슨해지길 기다린다. 타이밍이 오면 바로 이쪽의 턴으로 넘어올 터.
아니면, 미련하게 맞대응해 서로의 몸과 체력을 사정없이 갉아먹는 것. 상남자식 잡도리였다.
“…….”
강검마가 눈을 감았다가 반만 떴다. 속눈썹이 동공의 반쯤에 내려앉았다.
그는 분신을 고요히 응시했다. 눈동자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수십이었던 열화상이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분신의 신형이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완연한 형태를 갖춘 분신이 승부를 걸듯 발을 크게 굴렸다.
우드득- 굵직한 뼈가 부서지는 소리. 피 묻은 뼛점이 분신의 정강이를 송곳처럼 쭉 뚫고 나왔다.
그럼에도 분신은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정강이의 자상에선 어느새 보글보글 핏방울이 끓었다. 이어 깨진 뼈대가 레고처럼 짜 맞춰졌다.
저런 야만적인 방식은 처음이었다. 가속도를 올리기 위해 신체를 부수다니.
정상인이라면 감히 생각조차 못 할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그 장면은 강검마에게 강렬한 파격으로 느껴졌다. 팔뚝에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무통의 가호]로 고통은 전혀 없다. 하여 [재생의 가호]로 파괴된 다리를 회복한다.강검마로선 상상치도 못했던 가호의 활용법이었다. 적을 베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파괴한다니. 그야말로 모순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조금 전 공방을 되새겨 보니 분신은 칼을 받아 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허벅지를 찌르면 녀석은 그냥 내어 주고 목이나 관자놀이를 파고들었다.
명치나 급소 정도만 반보 뒤로 물러나 적당히 피할 뿐이었다. 최소한의 동선. 그럴 찰나에 사시미를 한 번 더 휘두른다.
그 때문에 분명 피는 분신이 더 흘리는데 수세에 몰린 건 자신이었다. 강검마는 방어와 회피에만 급급해 공격을 가하지 못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
강검마가 분신을 마주 봤다.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외줄 다리를 타는 도박에 가까웠다.
한데, 강검마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
파바바박!
분신이 삭막한 대지를 빛살처럼 가르며 접근한다.
그때 머릿속에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내면의 소리였다.
‘육체의 파괴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기술이란 굴레에 얽매이지 말며.’
분신이 지근거리에 다다랐다. 강검마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강검마의 입술이 뒷말을 이었다.
“베고 자르는 것만 생각해라.”
강검마는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며 칼자루를 역수로 잡았다. 그리고 눈을 치떴다. 거미줄처럼 핏줄이 눈자위 주변을 빙 둘러싸며 솟아났다.
“저 녀석이 저렇게 움직였다는 건.”
강검마가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나라면 저랬다는 거지.”
분신이 사시미 두 자루를 내뻗었다. 강검마는 피하지 않았다. 되레 가슴을 넓게 부풀려 칼날을 맞이했다.
꾸드득.
길게 질러진 칼끝이 강검마의 갈비뼈를 꿰고서 심장을 두드렸다.
“…컥.”
강검마가 옅게 신음했다. 뇌가 골통 안에서 좌우로 흔들렸다. 안력이 탁 풀려 눈앞이 대번에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검마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 그는 동공이 풀려 가는 가운데, 있는 힘껏 [재생의 가호]를 발현시켰다.
꾸르륵.
새롭게 돋아난 살과 근육이 분신의 칼날을 주둥이처럼 꽉 물었다. 분신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시스템이건, 뭐건 간에 녀석도 감정이라는 걸 느끼는 모양이었다.
분신은 몇 번이고 칼을 빼내 보려 낑낑거렸다. 숫제 칼날이 강검마의 폐부와 심장을 할퀴었다. 실시간으로 몸 안이 망가지는 감각.
분신은 칼을 빼는 걸 포기했다. 그는 칼자루의 끝동을 다른 손으로 툭 쳐 쑥 밀어 넣었다. 칼날이 심장을 비집었다.
강검마의 턱을 타고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어마어마한 고통에 몸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하나, 강검마는 피식- 조소했다.
“어차피 여기도 아공간처럼 현실 세계도 아닐 거고.”
“…….”
“이런 개싸움은 아카데미에서 도가 텄거든.”
강검마가 사시미를 휘둘렀다. 빛이 분신의 망막에서 번뜩이더니 점멸했다.
서걱! 툭.
검은 머리가 노면에 떨어졌다.
파앗-!
[돌발 퀘스트: 검성(劍聖)의 숙원 달성!] [▷축하합니다!【???】의 첫 번째 편린을 획득하였습니다. 획득 총수(1/7).]♪♬♩♫♪
[NEW! 추가적 보상도 증여됩니다.] [▷‘재생(再生)의 가호’의 격이 상승하였습니다.]파앗-!
== ==
[재생(再生)의 가호]손상된 세포를 빠르게 증식시켜 회복시킵니다.
◈ 등급
: 수호령▶정령
◈ 추가 능력
: 《아드레날린(adrenaline)》
: 가호의 발현이 지속될수록 특정 신경 물질을 분비. 더 빠른 세포와 혈액 증식이 가능합니다. 이제는 피를 마음껏 흩뿌려 보세요!
[※ 단, 떨어져 나간 신체 부위는 재생되지 않습니다.] [※ 일정 조건을 만족할 시, 《특수·칭호》가 부여됩니다.]== ==
* * *
삐비비비빅-!
귀빈실에 신경질적인 기계음이 울렸다. 강검마가 끝났다는 호출 신호였다.
검제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굳어 있긴 카론도 마찬가지였다.
“가지.”
“네, 검제님.”
두 사람은 강검마가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서로 짧게 시선을 마주치는 둘. 카론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문을 밀었다.
“…읍.”
틈새를 비집고 빠져나오는 냄새에 둘은 코를 찡그렸다. 지독한 악취. 머리가 핑 돌 정도로 피비린내가 진했다.
게다가 밀실임에도 열풍이 훅훅 불었다. 뜨거운 기운이 철로 된 바닥과 벽을 달구는 것 같았다.
카론이 검지와 엄지로 코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눈을 치떠 강검마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겉보기엔 몇 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었다.
한데, 이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강검마의 몸 선을 타고 너울거리는 저 사나운 아지랑이는. 묵직하게 내려앉은 공기와 맞물리자 경련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생도 강검마.”
검제가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강검마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의 눈빛이 시커멓게 가라앉았다.
카론이 그 광경을 보고 움찔 놀랐다. 그와는 달리 검제의 시선은 강검마의 얼굴이 아닌 그의 손에 꽂혀 있었다.
검제의 눈썹과 목소리가 파르라니 떨렸다.
“서, 설마 자네……!”
강검마의 손에 들린 활짝 열린 작은 상자. 그 안에서 작은 금고리가 빛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