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3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33화(296/300)
133화 검성의 숙원 (1)
“그, 그럼 모쪼록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저 호출기로 말씀하시면 곧장 대령하겠습니다.”
은행장이 탁상 위의 동그란 버튼을 가리켰다. 그리고 내시처럼 뒷걸음질로 후다닥 방을 빠져나가는 모습.
딱히 비열해 보이진 않았다. 한국에서 살아온 나로선, 그냥 전형적인 중간관리직처럼 보였다.
‘그건 그렇고…….’
나는 눈을 굴려 방을 살펴보았다. 장식품들은 전부 유리에 벽면과 바닥은 쇠붙이로 된 밀실이었다.
얼마나 밀폐되어 있는지 숨쉬기가 불편했다. 떠나간 은행장 말로는 최소한의 산소만 방에 주입된다던데. 여기서 한 시간만 머물러도 현기증이 올라올 것 같다.
발부리로 벽을 가볍게 톡톡 찼다. 캉캉- 쇠라기엔 이질적인 소리. 대저 평범한 소재는 아니었다.
‘진짜 비브라늄 같은 걸로 만든 거 아니야?’
속으로 하는 우스갯소리지만, 마냥 허황된 잡생각이라기엔 여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그랬으니까.
보안 문을 10개 넘게 뚫고 지나왔다. 은행장은 도어락을 시작으로, 지문, 안구, 얼굴, 목소리 순으로 보안을 해제했다. SF 영화 같은 데서나 보던 보안 체계였다.
처음엔 생소했지만 납득했다. 무려 아티팩트를 보관하는데 이 정도의 삼엄함은 과하지 않으리라.
방 이곳저곳을 신기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가운데, 검제가 나를 불렀다.
“이리로 와 보게, 생도 강검마.”
유리로 만들어진 탁상 앞에 서 있는 검제와 카론. 상 위엔 세월의 때가 다분히 묻은 나무함이 있었다. 그을리고, 곰팡이가 찐득하게 눌어붙고. 정말 오래돼 보이는 상자다.
그쪽으로 바투 다가갔다. 그제야 검제가 한 손을 함 위에 얹은 채 간략히 설명했다.
“이 안에 안드바라나우트가 들어 있네. 사람들 입에선 ‘니벨룽의 반지’라고도 불리는 아티팩트지만, 정말 반지 형태인지 아는 사람은 없네, 나를 포함해서. 사실 나도 궁금하긴 하네 정말 반지이긴 한 건가 의문이었거든.”
“……?”
본 주인인 검제가 모른다니? 저 두 손바닥만 한 상자 문만 열면 되는데? 뭐 대대로 열면 안 된다는 전통이 있나?
검제는 내 표정을 읽었다는 듯 말을 계속했다.
“나라고 열어 볼 생각을 안 했겠나? 천만에. 내가 스물여섯에 니벨룽의 당주가 된 직후에 한 일이 바로 이 상자 열기였네. 다만… 실패했을 뿐이지. 정확히는 반만 성공했지.”
“반만 성공했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야. 여는 건 무리가 없었네. 다만 이 함을 열고 난 뒤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네. 그게 실패했다는 방증이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다시 열어 보려 해도 열리지 않더군.”
검제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하지만 잠깐잠깐 상자를 향하는 그의 시선엔 뜨거운 기백이 끓고 있었다.
이미 노인이었으나 투쟁심은 여전한 검제였다. 그는 이내 함에서 시선을 떼고서 나를 직시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선대 당주님들도 나와 마찬기지였네. 나만 억울해할 건 아니란 소리지. 물론 아쉽긴 하네만, 어쩔 수 있나. 내 능력이 미달인 것을.”
검제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주름진 입매에서 회환이 묻어났다.
검제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아쉬움을 털어 내듯 진한 숨을 토해 낸다.
“그렇지만 우리 가문의 유서 깊은 숙원도 오늘로 끝이겠구먼, 하하하.”
검제가 소리 내어 웃었다. 자그마했음에도 소리는 밀실의 철편에 반사되어 크게 번졌다.
웃음소리가 귓가에서 여러 번 맴도는 가운데, 의념 하나가 떠올랐다.
검제가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야 얼추 알겠다. 뿐만 아니라 이 아티팩트가 예사 물건이 아니라는 것도.
그러나 논점은 그게 아니었다. 분명 검제는 내게 ‘검성의 숙원을 이뤄 주라’ 말했다.
하여 검제에게 물었다.
“…그런데 검제님, 이 상자를 여는 행위가 그 검성의 숙원이라는 말과 무슨 연관 있는 겁니까?”
“음? 당연한 거 아닌가?”
도리어 검제가 고개를 기울였다.
뭔데, 그 당연히 나라면 눈치챘을 거란 그 표정은. 이 양반한테 나는 어떤 존재로 비치는 걸까?
검제가 이내 물음에 답했다.
“검성, 아론 니벨룽 님께서도 못 이루신 일이니 ‘검성의 숙원’이란 말이 딱 어울리지 않겠나?”
“…….”
“아무튼 나와 카론은 밖에 나가 있겠네. 옆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네만, 그랬던 이들 중 뒤탈 없이 넘어간 자들이 없다고 해서 말이야. 끝났으면 아까 은행장이 말한 호출기를 누르게나. 그럼.”
검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문을 열었다.
뒤따르는 카론은 난처한 표정으로 ‘건투를 빕니다.’라고 야트막하게 응원하고서 문을 닫았다.
…….
완벽한 밀실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와 작은 상자. 나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다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초대 검성도 못 이룬 걸 내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검제의 나에 대한 기대는 얼마나 비대한 걸까. 심지어 자신의 선조 격 인물보다 나를 고평가하는 거잖아. 그것도 검성이라 불리는 아론 니벨룽을 말이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냥 여기서 못 하겠다 딱 잡아뗄까 싶었지만, ‘물질적 보상보다 더 가치 있는 보상’이란 검제의 말이 목 아래에서 맴돌았다.
보상이란 말 때문에 호출기 버튼에 손 뻗기가 망설여졌다. 저 두 글자에 약해지는 건 한국인 게이머로서 당연한 심리였다.
“…뭐, 검제님이 심심해서 나를 여기에 데려온 것도 아닐 테고.”
일단 해 보자. 나는 호흡을 한 차례 다듬은 뒤, 함에 손을 갖다 댔다.
그때 돌연 눈앞에 불현듯 나타나는 상태창.
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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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돌발 퀘스트 발생.]검성(劍聖)의 숙원을 이뤄 보세요!
[※【???】의 기억 편린 획득이 가능합니다. 획득 총수(0/7).] [※ 추가적인 보상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 단, 상자를 닫을 시에 자동으로 종료됩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수락까지 남은 시간 – 00:03]========
“…….”
고민은 짧았다. 나는 그대로 상자 뚜껑을 뒤로 재껴 버렸다.
끼릭.
녹슨 경첩이 맞물리는 소음. 곧바로 암흑이 망막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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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
▲
* * *
같은 시각, 캐슬 시구르드.
“…으음, 이렇게 감는 거 맞나?”
개인 훈련에 앞서, 아벨이 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 손 건강을 보호해 주는 이른바 핸드 랩.
원래의 아벨이라면 굳은살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근래에 부쩍 이런 것들에 신경이 쓰였다.
손바닥에 박힌 굴곡진 굳은살하며, 항상 짧게 정돈된 손톱. 색이 한 번도 묻어 보지 못한 손톱이었다.
분명 손의 선 자체는 고아했다. 하나, 또래 여자애들과 비교해 보면 자못 투박한 손이었다.
“으음.”
아벨이 괜스레 손을 쭈물거렸다. 손바닥이 사포처럼 까끌까끌했다. 만지면 만질수록 그녀의 눈썹이 점차 아래로 휘었다.
“핸드크림이라도 사 봐야 하나…….”
―똑똑똑. 노크 세 번. 샤일이었다.
“들어와.”
“네, 아가씨.”
샤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휴가 중인 그녀는 모처럼 메이드복이 아닌 일상복을 입고 있었다.
맨 얼굴도 아름다운 샤일이었다. 한데, 리본 블라우스에 화장까지 한 그녀는 시선을 절로 사로잡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참고로, 강검마와 데이트 때 아벨의 화장은 샤일의 솜씨였다. 그날이 아벨 생에 처음으로 얼굴에 수분 크림 이외의 것을 발라본 날이었다.
샤일을 바라보던 아벨의 눈동자에 선망이 맴돌았다. 친언니 같던 샤일이 오늘따라 유독 멀게 느껴졌다.
“…저, 아가씨. 오늘 외출 좀 할까 해서요. 근데 검제님이 안 계셔서 일단 아가씨께 말은 해 두어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아, 그래? 밖에 나가기 끔찍하게 싫어하시는 분이 요즘 외출이 잦으시네. 그러고 보니 오늘 카론도 안 보였고……. 혹시 어디 가셨는지 알아?”
“아침 일찍 검마 님을 데리고 잠깐 시내로 나가셨다는 것까진 전해 들었습니다. 그 이상으로 정확히 들은 바는 없습니다.”
“…아, 검마 걔도 나갔어?”
그렇게 말하는 아벨의 얼굴에 작은 아쉬움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외출 중이시면 검마 걔한테 훈련 좀 도와 달라고 하려 했는데…….’
라고 생각하는 그녀. 하나, 아벨이 느끼는 아쉬움과는 다소 결이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훈련은 그저 구실일지 모른다. 아벨의 무의식은 강검마와 좀 더 대화하기를 원했다. 왜냐면 복귀 이후, 강검마와 제대로 마주칠 기회가 적었으니까.
강검마는 식사 때를 제외하곤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마치 그녀의 할아버지처럼. 그는 히키코모리 유망주였다.
쩝- 아벨은 소리 나지 않게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샤일에게 미소로 답해 주었다.
“응! 할아버지나 카론한텐 돌아오면 나갔다고 말해 줄게. 재밌게 다녀와~”
“네, 아가씨도…….”
샤일이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 머무른 곳은 엉성하게 붕대가 반쯤 감긴 손이었다.
‘이상하네.’ 아가씨가 핸드 랩을 한 적이 있었나? 전부터 검사의 굳은살은 영광이라 뿌듯해하셨는데.
샤일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깨우쳤다. 새로운 가설이 뇌리를 잽싸게 스쳤기에.
‘아가씨는 지금 십 대셨지.’
아무리 무딘 성미의 아벨이라도 그녀는 엄연히 소녀다. 외모에 신경 쓰는 건, 저 나이대엔 당연하였다.
하물며 한 지붕 아래 머무는 이성이 있으니. 바로 강검마였다.
연애에 백치인 아가씨는 자각이 없을 테지만, 아벨 님은 검마 님을 상당히 의식했다. 아니, 의식뿐이면 모를까.
연애 눈치 백 단 샤일 눈에는 영락없이 호감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하기야 검마 님이 알맹이는 광인이긴 하다만 겉보기엔 멀끔하니까.’
무력, 외모, 성격. 여러모로 무기질적인 소년. 그런 점에 아가씨는 마음이 기울어지신 걸까? 조금 불안감이 엄습했다.
언니로서의 염려였다. 그러나 상념과는 별개로 샤일의 입술은 흐물흐물 움직였다. 코끝이 찡하고, 눈물샘이 찌릿했다.
‘아가씨가 드디어 남자한테 관심을……!’
샤일이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그런 그녀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아벨. 순진무구한 얼굴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성큼, 성큼.
찰싹 달라붙는 샤일. 그에 아벨이 흠칫했다.
“어엉?”
이내 샤일은 아벨의 두 손을 살포지 잡았다. 그녀의 뺨과 콧등에는 분홍색 홍조가 맺혀 있었다.
“아가씨, 저랑 같이 시내 내려갈래요?”
“어, 어…….”
머뭇거리는 아벨. 그녀의 손을 붙잡은 샤일의 손에 힘이 실렸다.
“여자끼리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하고 그래요. 저 샤일, 나름 패션에는 자신이 있답니다?”
“…….”
방 안에 침묵이 일었다. 아벨이 슬며시 눈동자만 움직여 샤일의 옷맵시를 살폈다. 예뻤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벨이 손을 감은 붕대를 풀었다.
“음음, 그러고 보니 샤일이랑 밖에서 논 적이 별로 없었네. 옷에는 큰 관심 없지만, 추억도 만들 겸 같이 가자.”
“네!”
샤일이 미소를 머금고서 연신 끄덕였다. 눈물이 맺힐 정도로 맑은 웃음이었다.
* * *
“…뭐지?”
상자를 열자 곧바로 어둠이 안구를 파고들었다. 깊은 수렁에 빠진 것처럼 아래로 쑥 빨리는 감각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다음이 지금. 나는 웬 개활지, 사막에 가까운 벌판에 서 있다.
다만 전혀 뜨겁지도 건조하지도 않았다. 이따금 부는 바람도 쾌적했다.
그때 재차 망막에 떠오르는 낯익은 문구.
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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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퀘스트: 검성(劍聖)의 숙원.]모름지기 검사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법. 그제야 진정한 고수로 거듭나는 것이다.
-발로르 호아킨이 아론 니벨룽에게 보내는 편지 中.
[※ 보상 – 【???】의 편린, 가호 중 하나의 ‘등급’이 임의로 한 단계 격상됩니다.]========
……!
잠시 뒤, 파앗- 하고 다시 사라져 버리는 상태창. 이어 내 시선은 그 너머로 넘어갔다.
“아니, 씹. 진짜 이 뜻이었어?”
반사적으로 말을 더듬어 버렸다. 그리고 곧장 품 안에서 사시미를 빼 들었다.
“젠장, 이러니 검성 그 인간도 못 이뤘지!”
나, 그러니까 강검마와 똑같이 생긴 녀석이 사시미를 쥐고서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