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3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35화(134/300)
135화 방학 끝 (1)
검제와 카론은 한참을 얼을 탔다. 두 사람의 시선은 강검마의 얼굴과 「안드바라나우트」를 번갈아 보았다.
“정말로 해냈을 줄이야…….”
검제가 중얼거렸다. 강검마에게 제안했던 그지만, 숙원의 내용을 알기에 믿음과 불신이 7대 3이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
흔히 말하는 관용구가 아닌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성질이 아공간과 비슷한 곳에 들어가서 자신의 분신과 싸운다.
투견처럼 한쪽이 죽을 때까지 서로를 지리멸렬하게 물고 뜯어야 했다.
거울 앞 가위바위보나 다름없잖은가. 다만 공방이 계속될수록 격전의 양상은 분신 쪽으로 서서히 기울었다.
격전은 사흘 동안 주야장천 이어졌었다. 무승부까진 가 보려던 지크였으나 결국은 패배했다.
아직도 그의 뇌리엔 또렷이 남아 있다. 제 분신이 구사하던 때 묻지 않은 검술이.
분명 지크 자신의 검이었으나, 소나기처럼 몰아치는 공격은 과감하고 거침없는 쾌검이었다.
마치 ‘이것이 본디 네 검술이다.’라고 몸소 보이는 듯한 검 재간이었다. 이에 지크는 크게 깨우쳤다.
깨달음을 현실에 대입해 수련하고, 걷어 내고 갈무리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크는 서른에 인류 최강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자기 자신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
그것이 검제가 강검마에게 호기롭게 장담한 ‘보상’의 의미였다
물론 그에게 물질적 지원 역시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고 즉시 실행했다.
검제는 강검마가 숙원을 치르는 동안 익명으로 호아킨 아카데미 재단에 거금을 송금했다.
‘100억.’
호아킨 아카데미의 양심 없는 물가를 고려한 금액. 적어도 재학 중에 금전적인 문제는 없을 만한 넉넉한 돈이었다.
부러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과 재단에 송금한 이유는 혹여 강검마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
순수한 선의라 할지언정, 적선 받으면 거지 취급받는다 여겨 불쾌해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특히나 까칠한 성미의 강검마라면 더욱이.
하지만 애어른인 강검마라도 아직 약관이 지나지 않은 청소년이다.
소년의 씀씀이에 대해 잘 모르니 아카데미의 재단이 장학금 형식으로 달마다 생활비를 지급한다.
남은 돈은 강검마가 아카데미를 졸업 시기에 소년의 계좌로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다.
검제가 강검마를 바라보았다. 소년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
“…….”
구태여 그를 부르지는 않았다. 소년은 지금 일전을 되짚는 중일 테니.
‘그리 엄청난 걸 이뤘음에도, 기쁨보다 복기를 우선한다니.’
검제의 잇새로 얕은 헛웃음이 흘렀다. 이어 그는 슬며시 시선을 내렸다.
안드바라나우트엔 차츰 빛이 가시더니 절로 상자 뚜껑이 내려앉았다. 마치 생물처럼 의지가 깃든 것 같았다.
검제가 쓴웃음 지었다. 설익은 감을 먹은 것처럼 입맛이 떫었다.
‘숙원을 통과하지 못하면 볼 자격이 없단 건가…….’
하지만 이게 당연했다. 승자만 맛볼 수 있는 특권이었다. 공유하면 그 특별함이 퇴색된다.
검제는 고개 저어 가슴에 남아 있던 야트막한 아쉬움도 털어 냈다.
…반면 강검마는 눈을 얇게 뜬 채 생각에 잠겼다. 금붙이는 시야 바깥에 있었다.
강검마에겐 손에 들린 가락지는 하잘것없는 물건이었다. 망막에 더 중요한 것이 떠올랐기에.
* * *
[【???】 첫 번째 기억 편린, ‘눈동자에 별을 담은 소녀의 회상’을 획득했습니다.]―파앗!
== ==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한 소녀가 있었다.
고귀함과 거리가 먼 신분이었다.
양동이에 물을 기르고, 소의 여물통을 채우며, 양젖을 짜는 나날이었다.
어느 날, 소녀는 철검 하나를 차고 여행을 떠났다. 한시의 변덕이었으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밤하늘을 올려 보며 별자리를 지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정처 없이 걷길 3년, 소녀는 한 사내를 만났다. 오밤중 같은 어두운 인상.
그날 이후로, 소녀는 별 대신 사내를 쫓았고.
그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
== ==
[NEW! 시스템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두 번째 기억 편린은 ‘아티팩트: 모노리스(Monolith)’에 접근 시 획득이 가능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곱 개의 아티팩트에 접근해 보세요!] [그러면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요^^?] [※ 총 획득 수 (1/7).]“…….”
나는 몇 분을 떨떠름한 눈으로 문구를 읽어 내려갔다. 잠시 뒤, 내가 내놓은 감상은 짧았다.
‘염병.’
그동안 잠잠했던 상태창이 작금에 유독 자주 나타난다.
그래, 뭔가 역사서 같은 글귀들이야 그러려니 넘겼다. 뭔가의 기억이라고 했으니 썩 이상하진 않았다.
현학적인 낱말들의 나열인데, 저것은 일종의 설명일 뿐 핵심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눈짓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아티팩트 모노리스에 접근하라…….’
이 부분이 난처했다. 모노리스의 현 소재지를 정확히 모른다.
‘뭘 알려 줘야 하든 말든 하지, 씨발.’
표정이 절로 썩어들어 갔다. 퀘스트만 덩그러니 던져 놓고서 찾으라니. 그것도 70억 인류에 마경 게헤나까지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말이다.
하다못해 어느 쪽에 있는지 실마리라도 주든가. 이건 그냥 사막에서 모래알 찾기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맨 밑의 앙증맞은 두 문장. 영락없이 사람 놀리는 말투였다.
‘눈웃음? 웃어?’
어처구니없었다. 돌이켜 보니 이 시스템. 인지 능력이라도 탑재했는지 알게 모르게 사람 속을 살살 긁었다.
처음엔 이 녀석이 ‘검의 신’ 혹은 ‘G.M’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폐기했다.
전자는 좀 더 이 세계 내부의 존재일 것이며, 후자는 외부의 존재일 거라 결론 내렸다.
그러나 둘 다 하나같이 꿈에 나타나지,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찔러 보기만 할 뿐, 뭔가에 차단당한 듯 현실에 개입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은 명백히 이질적이었다.
〈검의 신〉 〈G.M.〉 〈시스템〉
이 중에서 시스템만이 다른 두 놈들과 달리 현실에 영향을 끼치니까.
‘그리고…….’
선인지 악인지 모르겠는 건, 세 녀석의 공통이다. 그래도 시스템은 나름 우군인 것 같은데…….
은근슬쩍 사람 약 올리는 말투 빼곤, 요모조모 단서도 던지고 하니 말이다.
근데 저놈의 눈웃음이 사람을 팍 불쾌하게 만든다. 사서 욕먹는다는 건, 딱 이런 것이었다.
[검신의 가호]를 발현할 때마다 맴도는 그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이란 여인의 목소리도 시스템 아니야?그렇다면 저 시스템이란 놈도 사람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어디서 변태처럼 나를 관망하고 짬짬이 힌트랑 떡밥도 던져 주면서.
썩 그럴싸한 추측이다.
잠시 턱을 짚고서 이것저것 정리하는 가운데, 카론이 내 안위를 물었다.
“검마 님, 괜찮으신 겁니까?”
하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서 있는데, 몇 분간 조용한 게 이상했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용케도 기다려 줬다 싶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숙원도 통과하셨다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론의 입이 두 배쯤 쩍 벌어졌다.
“허억!”
이내 헛숨을 삼켜 버리는 카론. 그의 안광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며칠 전까진 묵언 수행 하는 도인인 줄 알았는데, 리액션이 참 좋은 아저씨다. 스피드 웨폰의 반응이 주접이라면, 카론은 통통 튀는 찐텐이었다.
‘뭔가 놀리는 맛이 있는 아저씨야.’
카론은 기울어진 외눈 안경을 다시 올리고서 재차 물어왔다.
“그럼 예전과 뭐, 달라진 게 생긴 겁니까?”
“아.”
나는 대답하기에 앞서, 검제의 얼굴을 한 차례 살폈다. 낯색이 애매했다. 나는 시선을 다시 카론에게 넘기고서야 입을 열었다.
“비밀입니다.”
“…….”
내 대답에 카론이 얼을 탔다. 원하던 반응에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그때 돌연 검제에게 할 말이 머리에 스쳤다.
“아, 검제님.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아아, 말해 보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은 아닙니다……. 아니, 어렵나. 아무튼, 꼭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내 가능한 거라면 들어주겠네.”
난 손에 들린 작은 상자에 시선을 두었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숙원을 통해 얻은 경험도 그에 못지않았다.
‘이건 나한테만 필요한 게 아니지.’
나는 손에서 시선을 뗐다.
“저희 아카데미에 레온이란 녀석 알고 계시죠?”
“용사 후보를 말한다면 알고 있네.”
나는 함을 손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말을 이었다. 녹슨 촉감이 손에 닿았다.
“아티팩트라서 외부 반출은 안 될 테니, 그 녀석도 여기로 한번 데려와 주셨으면 합니다.”
“……!”
검제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새하얀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그리곤 곧 이마를 붙잡으며 폭소를 터뜨렸다.
“자네는 정말 종잡을 수 없지만, 진정한 사내로군!”
“가능하겠습니까?”
“가문의 법도에 살짝 어긋나긴 하나, 그 정도는 자네의 부탁에 비하면 솜털보다 가벼운 것이지.”
호쾌한 답변. 나는 조용히 웃었다.
“될 수 있으면 제가 부탁했다고 말 안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네. 내 꼭 약속하지.”
첫 스승님께 콩 한쪽도 나눠 먹으라고 배웠다. 더군다나 레온도 슬슬 성장이 더뎌질 타이밍이다.
주인공에게 조력한다고 정사가 크게 비틀리진 않을 것이다. 그게 배경 인물 A인 내가 뒤에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 * *
같은 시각, 스위스 제네바시의 명품 거리.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명품관이 양옆으로 길게 도열한 광경. 간판마저 번쩍번쩍했다.
매장 쇼윈도 너머의 마네킹이 두르고 있는 착상에 억! 소리가 절로 났다. 구두에 붙은 태그에 0이 일곱 자리 붙어 있으니.
짐짓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사치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저런 것들은 한낱 겉치레에 불과하다. 으레 사람이 명품이면 뭘 입든 명품이라 하지 않던가.
여기 두 여인이 사치의 거리를 걷고 있다. 아벨과 샤일이었다. 그에 모든 시선과 관심이 자석처럼 그녀들에게로 쏠렸다.
“아가씨! 우리 저 매장 가 볼래요? 마침 신상이 나온 것 같은데!”
“어어, 그래.”
샤일이 눈을 반짝였다. 반면 아벨은 그저 어색함을 느꼈다. 옷에 수천, 수억을 태운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돈이면 무장을 강화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와중에도 샤일은 아벨의 팔짱을 꽉 붙들었다. 그녀가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도 괜찮아 보이는데, 아니 저기는 이듬해 S/S가 벌써 들어왔어요!”
“S/S가 뭐야? 옷에도 무장처럼 등급이 있어?”
그렇다면 좀 솔깃한데.
“봄의 스프링(Spring)이랑 여름의 썸머(Summer)의 S를 각각 따서 S/S. 쉽게 말해서 봄여름 옷을 뭉뚱그려 부르는 거죠.”
“아… 그렇구나.”
아벨은 살짝 탈력감을 느꼈다.
막상 오니 그녀의 흥미를 사로잡는 게 이 거리엔 전혀 없었다.
‘그래도 샤일이 저리 즐거워하니까 나도 기분 좋네.’
아벨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샤일에게 휘말려 매장 곳곳을 둘러보던 때였다.
“어? 아가씨. 저기 보세요.”
샤일이 검지로 가리킨 곳엔 추레한 노파가 양탄자 위에 앉아 있었다. 노파는 수정 구슬을 쓸어 만지며 무어라 웅얼웅얼 주문을 읊조렸다.
번쩍번쩍한 거리와 괴리감이 느껴지는 묘한 광경이었다.
“점 봐 주는 사람인가 본데요?”
“근데 여기서 점 보려는 사람이 있으려나? 좀 뜬금없긴 한데.”
그때였다. 노파가 시선을 홱 이쪽으로 돌렸다. 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아벨과 샤일을 째려봤다.
그러더니 씩- 웃었다. 드러난 치열은 쭈글쭈글한 피부와 어울리지 않게 희고 정갈했다.
노파가 말했다.
“이 용한 점쟁이한테 점이라도 봐 보겠나? 내 알프스산맥의 정기를 30년 이어받은 몸이야. 도사야, 도사.”
노파가 이리 오라는 듯 살랑살랑 손짓했다. 샤일이 아벨에게 속삭였다.
“재밌어 보이는데 한번 보고 가는 건 어때요?”
“글쎄……. 보통 저런 길거리 점 태반이 대충 때려 맞추는 거잖아. 쓸데없는 곳에 돈 낭비하는 건 좀.”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노파가 아벨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거기, 어린 쪽.”
“어린 쪽이면… 저요?”
“아직 얼굴에 애티가 뚝뚝 묻어나잖나. 여튼, 내가 복채는 딱 오십 달러만 받지.”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그런 걸 안 믿―”
“요새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어 보이는데.”
노파는 눈을 감은 채 구슬을 어루만졌다. 그리곤 점괘를 중얼거렸다.
“아아, 보인다. 보여. 그것도 무척이나 특이한 인상이야. 근데… 쯧쯧쯧, 그자 주변에 너무 많은 여자가 꼬여 있어. 내 평생 이런 팔자는 본 적이 없을 정도야. 가는 곳마다 사람이 꼬인다니, 비집고 나아가기 여간 힘든 게 아니겠어.”
“…….”
“아-아-! 하지만 내겐 보여. 옹이구멍이지만 뚫고 나갈 구멍이!”
노파가 감았던 눈을 떴다. 앞에 어느새 아벨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녀가 신사임당 한 장을 쓱 내밀었다.
“…한국 돈도 되죠?”
노파의 입꼬리가 길게 치솟았다.
“아무렴, 이 세계에 원화 안 받는 곳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