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3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39화(138/300)
139화 변수 (1)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학원장실로 향했다. 식사까지 걸렀다.
원계획은 동아리 부원들이나 두런두런 만나 보려 했다. 근데 메디아의 긴급 콜 업이 왔다.
어제 ‘검마, 너는 앞으로 아카데미 생활만 즐겨!’라고 문자 보냈던 본인의 말을 번복한 것이다.
아마 매우 심각하거나 급한 일. 아니면 둘 다일 확률이 높다.
‘아직 빌런 잔바리들이 남아 있는 건가? 아니면 원로 끄나풀이라든가.’
품속을 더듬었다. 딱딱한 감촉. 사람의 피가 고픈지 사시미가 애달프게 울었다.
“…나 진짜 미쳐 버린 건가?”
왜 바로 사시미부터 찾은 거지? 아무리 무의식의 발로라지만 칼부터 더듬는다니. 아니, 그리고 언제부터 손버릇이 이렇게 살벌해진 건데.
탈력감이 치솟아 손끝에 힘이 풀렸다. 현타가 몰려왔다.
“그놈의 동화율이 지랄이지.”
쯧- 나는 혀를 찼다.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검신의 가호] 동화율. 그게 오를 때마다 ‘인간의 격’이 실시간으로 떨어진다.
어제 보니 다음 해금 조건인 35%까지 한두 발짝밖에 안 남은 상태. 그에 몰려오는 위기감 때문인지 상태창을 보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 절반도 안 넘겼음에도 이런데, 나중에 가서 나는 어떻게 변해 있는 걸까? 그때 가서는 진짜 문답 무용으로 칼만 쓰게 될 것 같았다.
‘오르는 동화율은 성장 요소로 치더라도, 인(人)의 격 하락을 막을 방법은 없는 건가…….’
아등바등 살아 보려고 사시미를 쥐었다. 한데 그 대가로 인간성이 양초처럼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다움을 포기한다라… 여러모로 아이러니였다.
이런저런 상념을 하다 보니 학원장 집무실에 금세 다다랐다.
항상 집무실 문 앞 책상에 대기 중이던 비서가 보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라 밥 먹으러 간 모양.
똑똑똑― 세 번 문을 두드렸다. 어느새 유럽의 노크 매너(?)가 자연스레 몸에 뱄다.
“강검마입니다.”
“어~ 들어와.”
문 너머에서 흘러오는 고혹적인 음성.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흠칫했다.
다급했던 문자와 달리 목소리에선 농염한 여유가 뚝뚝 묻어났다.
엉뚱한 상황. 기시감이 확 들었다. 문을 열기에 앞서 확인이 우선이었다.
“학원장님, 전처럼 옷 제대로 안 입으셨으면 그냥 이대로 돌아가겠습니다.”
“…….”
“급한 용무라고 해서 왔는데, 설마 점심시간에 생도를 불러서 장난치시진 않으실 테고.”
“…….”
“메디아 학원장님?”
한순간 가라앉은 침묵. 사락- 부드럽게 천이 쓸리는 소리가 나더니 재차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와…….”
“예.”
집무실에 들어섬과 동시에 나는 메디아의 옷매무새를 살폈다. 로브 단추가 끝까지 꼼꼼히 여며져 있었다.
메디아가 헤실헤실 웃으며 나를 반겼다.
“와아- 우리 검마, 이게 얼마 만이야! 진짜 요새 애들 빨리 큰다는 건 알지만, 진짜 하루가 다르게 몰라보겠네. 키도 더 큰 거 같은데?”
“키는 그대론데 살이 좀 빠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뭐!? 원래도 늘씬했던 애가 더 말라서 왔다고? 설마 틀딱 그 새끼가 너 굶기고 그랬어?”
“밥은 잘 먹었습니다. 그냥… 스위스에서 워낙 여러 일이 있었어요. 거기다 운동도 꾸준히 했고요. 그래서 살이 빠지는 대신 근육이 더 붙었습니다.”
“흠- 근데 그 나이대는 살이 토실토실한 게 보기 좋아. 십 대는 밥 잘 먹고 건강하면 장땡이지!”
“예…….”
그렇게 근황 토크를 몇 분 주고받았다. 이어서 메디아는 표정을 반색했다.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검마 네게 전할 말은 크게 두 가지, 좋은 소식과 애매한 소식. 어떤 거부터 듣고 싶어?”
날씬한 손가락을 V자로 펴 보이는 메디아. 검지가 좋은 소식, 중지가 애매한 소식일 것이다.
“애매한 소식이란 것부터 듣겠습니다.”
“너라면 그것부터 궁금해할 줄 알았어.”
메디아가 옅게 웃으며 중지를 접었다.
“일단 짚고 넘어갈 건, 아직까진 애매한 소식이지 나쁜 소식은 아니야. 다만 이대로 가면 조금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갈 것 같아서…….”
메디아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무튼,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해 줄게. 검마, 너한테 피해 갈 일이 생긴다면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거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교육자로서 당연한 건데. 어쨌든 이 애매한 소식이란 건, 어젯밤 문자로 보낸 내용과 관련이 있어. 여러 말을 보냈지만, 그중에서 영웅 협회에 관한 거야. 기억하지?”
“영웅 협회랑 협업해서 남은 끄나풀들 색출하신다고.”
“맞아. 말했다시피 협회 놈들이 워낙 FM이라 딱딱하긴 한데, 일 잘하는 건 누구나 인정해, 여러 방면에서. 역사가 짧은 대신 능력을 키운 거거든. 일이라도 못했어 봐. 그 콧대 높은 귀족 연놈들이 가만히 있겠어?”
“그렇겠네요.”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동의했다.
“이 일 잘하는 협회 놈들이 냄새를 정말 잘 맡거든. 한번 의심 가거나 하는 인물이 있으면 정말 집요하리만큼 파기도 하고.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학원장님 말씀은 그들이 저를 주시한다는 건가요?”
“…응. 아무래도 협회가 5군단장 토벌에 검마 네가 관여된 걸 어렴풋하나마 눈치챈 것 같아. 이건 나도 오늘 오전에야 알게 된 사실이야. 알았으면 걔네가 도와준다 했을 때, 승낙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메디아가 폭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한 듯 제 가슴을 퉁퉁 치면서 녹차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근데 웃긴 건 뭔지 알아? 이 말을 협회 간부가 직접 찾아와서 나한테 통보했다는 거야. 검마 너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그래서 내가 이 소식이 애매하다고 이야기하는 거고.”
“협회가 대놓고 이야기했다고요? 왜죠?”
“웃기지? 사실 이건 ‘협회식’이라기보다는 ‘창성식’ 일 처리야. 그 고릴라는 옛날부터 ‘음습하게 뒤나 캐는 건 남자답지 못하다!’ 이랬거든. 설마 노인이 돼서까지 그럴 줄이야……. 정말 철 안 드는 건 틀딱이나 고릴라나, 원.”
검제가 한번 말한 적 있었지. 협회장과 부협회장인 창성이 나를 눈여겨본다고 했었나.
통상 생도에게 매겨질 리 없는 【H.P.】도 나만 따로 추산 중이었으니까.
‘어째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얼마 전까지 소시민에 불과했던 내가 작금엔 범세계적 거물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기분.
“근데 이게 우리로선 마냥 나쁘지만은 않아. 창성이 검마 너를 눈여겨본다는 건, 아마 호의적인 의미일 거거든. 그러면 추후 네 칠성 영웅 승계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메디아가 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칠성 중에서 나, 틀딱, 고릴라 이렇게 셋이 검마 너를 밀면 웬만해선 반박하기 힘들 거야. 다만 코지마가 좀 문제긴 한데……. 사실 그 녀석이 가장 까다롭거든.”
말하던 중 문득 메디아가 고개 돌려 벽시계를 쳐다봤다. 점심시간이 10분이 채 남지 않았다.
“앗,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 후딱 좋은 소식도 말해 줄게.”
신이 나서 눈까지 반짝이는 메디아.
“이제 학비랑 생활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거야!”
나는 무슨 말인가 싶어 눈만 껌뻑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메디아의 입가엔 기분 좋은 호선이 그려졌다.
“누.군.진. 몰라도 네 이름 앞으로 후원금을 보냈거든. 학비랑 생활비 등등, 매달 꼬박꼬박 계좌로 입금될 거야.”
“…혹시 누구―”
메디아가 세워 뒀던 검지를 내 입술 중앙에 갖다 댔다.
“원래 이런 건 익명이야.”
그녀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을 덧붙였다.
“이제는 돈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구. 안 그래도 열일곱에 너무 많은 일을 겪고 있잖아. 학생은 학생다워야 할 필요가 있어.”
“…….”
“여튼, 우리 검마 출세했다! 심지어 팬클럽까지 생겼다며!? 으이구, 장하다, 장해!”
* * *
그 시각, 호아킨 아카데미 본관 뒤뜰.
여행 동아리 부원 세 사람. 사키 료조, 스피드 웨폰, 산하나가 모였다. 모처럼 한 달 만에 만났건만 다섯 중 두 명이나 빠졌다.
웨폰이 물었다.
“부장이랑 클로이는? 오늘 랑 클래스는 따로 점심시간에 수업이 있었나?”
료조가 두 사람의 부재를 간략히 대답해 주었다.
클로이는 집안 사정, 강검마는 메디아의 호출로 급히 학원장실로 향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못 온단 말이지.”
웨폰이 중얼거렸다. 그는 미간을 잔뜩 좁힌 채 생각에 잠겼다.
웨폰은 이 세 사람 가운데 숙청 날 밤의 내막을 유일하게 알고 있었다.
그날, 원로 클라디는 숙청했으나 아디토레 측에도 출혈이 뒤따랐다. 무려 암살자 열이 죽은 대참사였다.
하여 아디토레의 일원인 클로이가 늦게 합류하는 건 당연한 절차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방방곡곡을 거닐며 잔당들을 암살하고 있을 것이다.
햄스터처럼 생긴 그녀가 무표정으로 적을 찌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
상상만 해도 몸이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웨폰은 머리를 거세게 흔들어 공포 영화를 떨쳐 냈다.
‘…그리고.’
2학기 첫날에 강검마가 학원장에게 불려 간 까닭? 웨폰은 그 또한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강검마는 이제 노는 물이 달랐다. 지금도 부장이 뱉었던 선언이 뇌리에 선명했다.
‘저는 검제님을 이을 차기 칠성이잖습니까.’
그때를 떠올리면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 발언에 웨폰은 같은 부원으로서, 사나이로서 뜨거운 낭만을 느꼈다.
열일곱에 차기 칠성으로 점쳐지다니. 소년 만화가 따로 없었다. 하물며 이건 생도 중에선 웨폰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설명이 투머치한 웨폰은 종래에 항상 입이 간질간질했다.
어디 가서 ‘내 친구, 강검마가 차기 칠성이다아!’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루하루 대나무 숲이 절실한 웨폰이었다.
하지만 웨폰은 그 욕망을 꾹 참아 냈다. 강검마가 당부했을뿐더러, 밝혀지게 된다면 너무도 큰 파란이 일 테니까.
웨폰에겐 사적인 욕망보다 우정이 몇 곱절은 더 중요했다. 사내가 의리를 저버리면 아랫도리가 가벼워진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전부 털어 내긴 힘들었다. 강검마의 활약상을 아는 이가 이토록 적다니.
‘부장은 당연히 받아야 할 인정을 전부 못 받고 있어…….’
웨폰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정작 당사자인 강검마와 달리 자신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속이 타들어 갔다.
‘제기랄.’
웨폰의 표정이 초 단위로 바뀌자, 료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곧바로 료조가 웨폰을 추궁했다.
“뭐야, 너 뭐 숨기는 눈치인데?”
“얘, 얘는 무슨. 내가 숨기긴 뭘 숨긴다고!”
웨폰이 크게 도리질했다. 료조의 눈이 좀 더 얇아지더니 곧 피식- 조소했다.
“너는 어디 가서 거짓말하지 마라. 다 티 나니까. 그리고 어차피 네가 숨겨 봤자 뭘 숨기겠어. 끽해야 침대 밑에 숨긴 빨간 잡지 정도겠지.”
“…….”
…어떻게 알았지?
세 배는 커진 눈동자로 료조를 바라보는 웨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산하나는 흐릿한 미소만 지었다.
저벅, 저벅.
돌연 여행 동아리를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 점차 선명해지는 소리에 부원들의 시선이 일거에 옮겨졌다.
웬 여생도였다.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는 은발과 나직한 이채가 깃든 흑채. 다소 특이한 외모는 주변의 시선을 대번에 사로잡았다.
웨폰이 ‘강검마를 빼곤 검은 눈은 본 적이 없는데.’라고 생각하던 차, 그녀가 바투 가까이 섰다.
? ? ?
여행 동아리 일동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 올랐다.
여생도가 잠잠한 눈으로 면면을 훑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기 강검마라는 애 어딨음?”
두리번거리며 강검마의 부재를 재차 살핀 은발이 상심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걔 보려고 점심도 포기하고 한 시간을 찾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