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4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41화(140/300)
141화 변수 (3)
성(星) 클래스.
뿅↑ 뿅→ 뿅↓
맨 뒷줄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그에 여생도 두 명이 등 돌려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맨 뒷자리에서 휴대폰 두드리기 삼매경인 여생도. 오늘 전학 온 유세인이었다.
어이없다는 눈으로 세인을 바라보던 여생도 둘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쟤 지금 뭐 하는 거야?”
“아까 물어보니까 무슨 모바일 게임이라던데……?”
“…게임? 헐, 완전 웃기다. 쟤 완전 관종 아니야? 얼굴만 예쁘면 다인 줄 알아…. 그리고 쟤 아까 자기소개도 뭐라 했더라, ‘이름 유세인. 특이 사항 없음. 끝.’ 이러지 않았어?”
“맞아. 말끝마다 음슴 거리고……. 그냥 딱 보기에도 특별한 ‘척’하는 애 같은데, 진짜 별꼴이야. 호아킨 아카데미 클래스 배속 부서는 대체 뭐 하는 건지, 쯧. 저런 애를 성 클래스에 집어넣고.”
“그러니까. 저런 애랑 같은 클래스면 우리 수준도 떨어지는 거라고. 그리고 얼핏 듣기론, 세인 쟤, 변방의 소 귀족 삼녀라잖아.”
“헐. 그거 그냥 준 평민이잖아. 왜 나댄대?”
“그러게. 쟤·뭐·돼?”
세인에게 다 들리게끔 비웃음을 흘리는 여 생도들.
하지만 세인은 그 얄팍한 조롱들을 일절 무시했다. 그녀는 시선을 오롯이 휴대폰 액정에 둔 채 손가락만 화려하게 놀렸다.
뿅↗ 뿅↘ 뿅↘
그에 여생도 중 하나가 입매를 비틀었다.
“…설마 쟤, 우리 무시하는 거야?”
“완전 어이없어. 안 되겠다. 아직 수업 종도 안 울렸는데, 내가 가서 한 소리 해야겠어. ‘신분’의 차이를 알려 줘야지.”
“내가 뒤 봐줄게. 후딱 가서 참교육하고 와.”
그 순간.
“야, 너희들.”
앞쪽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단음절. 그 예기 깃든 목소리가 일어나려던 여생도의 몸을 굳혔다.
여생도가 로봇처럼 고개를 비틀었다. 시선이 향한 곳엔 아벨이 자신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벨의 옆자리엔 레이첼이 재밌다는 얼굴로 턱을 괸 채 관망했다.
니벨룽과 뮈라가(家)의 눈총을 한 몸으로 받아 내는 여생도. 그녀의 낯빛이 노랗게 떴다.
‘하필이면…….’
본인도 영국에서 알아주는 귀족 가문의 자제였지만, 저 두 사람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무리 한 나라에서 잘난 집안일지언정 초국적인 두 가문 앞에선 한없이 초라해지기 마련.
비유 따위가 아니라 신분의 간극이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였으니까.
게다가 하필 저 두 사람, 아벨과 레이첼은 성 클래스 내에서 귀족적인 사상과 가장 동떨어진 생도들이었다.
특히나 아벨은 간혹 지금 같은 상황이 연출되면 대놓고 인상을 구겼다.
아벨이 여생도를 쏘아붙였다.
“아직 수업 종 치기 전이잖아. 쉬는 시간에 개인이 뭘 하든 남이 무슨 상관이지?”
“아니, 그게… 너무 시끄러워서.”
“대놓고 남 헐뜯는 소리는 괜찮고, 게임하는 소리는 안 된다는 거야?”
“…….”
아벨이 항거를 통렬히 일축했다. 지켜보던 레이첼이 돌연 거들었다.
“내가 보기엔 그냥 전학생 기 잡으려는 것 같은데? 뭐, 그런 거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 근데 말이야.”
“…….”
하트형 눈동자에 이채가 번들거렸다. 오들오들 떠는 여생도를 보며 레이첼이 키득 조소했다.
“원래 이런 건 무력으로 서열 정하는 게 공정하잖아. 신분 들먹이면서 그러는 건 너무 촌스러워~ 아니면, 이참에 나랑도 서열 정리 한번 어때?”
“……!”
여생도가 눈썹을 내리깔았다. 노르스름했던 안색이 이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눈빛으로 조금까지 떠들던 짝꿍에게 도움을 요청을…….
…그러나 짝은 일찌감치 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비겁한 년!’
반면 사색이 된 여생도를 두고서 투덕투덕하는 아벨과 레이첼.
“레이첼! 그건 본말전도잖아!”
“왜~ 아벨 아씨,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안 그래도 초가을이라 으슬으슬한데, 몸도 데우고 얼마나 좋아!”
희비가 교차하는 가운데, 세인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뒷덜미를 긁었다.
“아- 버닝 이벤트라면서 경험치 이렇게 짜게 주는 거 실화임? 이벤트 템도 별로고. 운빨 망겜!”
세인은 책상 위로 폰을 툭 던졌다. 그리고 등을 의자에 풀썩 기대었다.
“…….”
“…….”
“…….”
아벨도 김이 팍 새는 표정이 되었다. 멍한 눈으로 천장을 쳐다보는 세인.
‘아무리 생각해도 세인, 쟤 너무 특이해.’
첫 번째 전학생인 레온 반 라인하르트에 이은 두 번째 전학생, 유세인.
첫인상부터 세인은 비범했다. 다소 특이한 외모도 그렇고.
오늘 오전, 세인에게 치근덕거리던 남생도가 더러 있었다.
은발에 조막만 한 얼굴은 남성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차고 넘쳤다. 세인은 학기 초의 아벨과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
그러나 남생도들은 세인의 눈길 한 번 못 받아 냈다. 그녀는 아벨 이상으로 그들을 차갑게 대했다.
나중 가서 세인은 이어폰으로 귀까지 틀어막았다. 그리고 게임- 게임- 게임-.
‘쟤는 호아킨 아카데미에 온 목적이 대체 뭐지? 게임하러 온 거야?’
아벨이 세인을 멀거니 바라보던 그때.
벌컥- 클래스의 문짝이 드세게 열렸다. 생도들이 모두 그곳을 보았다. 미어캣처럼 서 있던 아벨도 시선을 옮겼다.
누군가 외부인이 클래스에 들어섰다. 강검마였다. 그의 등장만으로 공기가 싸늘하게 일변했다.
강검마가 교단에 서서 전경을 휘휘 둘러보았다.
“검마야!”
반갑게 소리치는 레이첼. 그녀가 책상을 밟고 폴짝 점프했다.
“오-랜만이야아!”
두 팔 벌려 와락 얼싸안으려는 레이첼.
강검마가 어깨를 가볍게 비틀어 회피했다.
콰앙!
그대로 레이첼의 안면이 칠판과 충돌했다. 초록색 표면이 얼굴 모양으로 움푹 찌그러졌다.
칠판에 얼굴이 심어진 레이첼. 빠각- 하는 소음과 읍읍- 새된 신음.
그녀의 전신이 개구리처럼 잘게 경련하더니 곧 팔다리가 축 늘어졌다.
성 클래스에 고요가 들어앉은 가운데 료조가 헐레벌떡 뒤이어 들어왔다. 급하게 달렸는지 호흡이 가빴다.
“하아… 하아… 검마 너 걷는 거 맞아? 뭐 이렇게 발이 빨라?”
벙쪄 버린 성 클래스의 분위기. 수업 종 칠 타이밍에 쟤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하는 표정들. 아벨도 마찬가지였다.
저벅 저벅.
강검마가 발걸음을 뗐다. 그의 무거운 표정에 누구도 무어라 하지 못했다.
강검마는 아벨과 생도들을 지나쳐 맨 뒷자리에 다다랐다.
그가 낮게 입을 뗐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세인이 뒤로 젖혔던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그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세인이 강검마에게 물었다.
“여기서? 아님, 밖에서?”
“…….”
슥- 주변을 보는 강검마. 그의 시선이 도로 세인에게로 옮겨갔다.
“복도.”
세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
강검마와 세인은 복도로 빠져나왔다. 성 클래스 생도들의 발걸음이 밖으로 향하려 했으나, 교실 문은 이미 선점당한 상태였다.
빼꼼 얼굴의 절반만 내밀고 강검마와 세인을 관찰하는 세 소녀. 수직으로 위에서부터―
교 | 레이첼
실 | 료조
문 | 아벨
―순이었다.
레이첼이 부러진 코뼈를 짜 맞추며 중얼거렸다.
“뭐야, 뭔데. 검마랑 전학생이랑 이미 알던 사이야? 아니면 설마… 막 숨은 전 여친, 그런 거야?!”
레이첼이 킁- 코를 풀자 핏덩이가 한 뭉텅이가 쏟아졌다. 그녀는 피 냄새 짙은 콧김을 뿜으면서 씩씩거렸다.
“아 좀, 레이첼! 제발 머리가 무식하면 입 좀 다물어. 코피 닦을 거면 절로 가든지. 아무리 멍청해도 그렇지, 칠판에 얼굴을 들이박는 게 정상이냐?”
료조의 눈썹이 곱게 휘었다. 그녀는 혀를 차며 뇌까렸다.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괜한 흥분 좀 하지 마.”
“그럼 뭔데! 뭔데 전학생한테 검마가 먼저 말을 걸어 주는 건데! 나한테는 맨날 쌀쌀맞은 검마가!”
“…….”
끄덕끄덕하는 아벨. 료조가 폭 한숨과 함께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점심시간에 우연히 만났는데. 유세인 쟤, 검마 먼 친척이래.”
“!”
“!”
료조의 위아래를 도맡은 두 사람이 흠칫했다. 셋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 레이첼이 눈을 빛냈다.
“친척? 가족? …그러면 내 시댁?!”
한껏 확장되는 하트형 눈동자. 금방이라고 튀어 나갈 기세에 사키가 정수리로 레이첼의 턱에 박치기했다.
“꽤-액!”
“진짜 내가 레이첼 너 때문에라도 랑 클래스로 옮기길 잘했지. 근데…….”
“…….”
료조가 힐끔 눈을 내렸다. 아벨이 가만히 그리고 고요히 강검마와 세인을 응시했다.
강검마에게 꽂힌 저 황금빛 눈동자. 아벨을 보고 있자니 사키는 내심 불안했다.
‘아벨, 넌 항상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 항상 아닌 척하기만 하고. 너처럼 그럴 바엔 차라리 이 노랑머리 야생마처럼 대놓고 저러는 게 나아.’
료조의 볼이 부풀고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급기야, 그녀의 무의식이 몸을 움직였다. 료조는 이마로 있는 힘껏 아벨의 새하얀 머리꼭지를 강타했다.
“그-악!”
아벨의 정수리에서 모락모락 증기가 피었다. 아벨이 머리를 감싸며 홱 고개를 위로 틀었다.
“야, 사키! 갑자기 뭔 짓이야?!”
“미안.”
료조는 벌게진 이마를 문지르며 사과했다.
“실수.”
*
“그래서 넌 누구지?”
나는 에둘러 가지 않고 본론부터 꺼냈다. 뒤쪽에서 나는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긴 하다만.
내 미간에 주름이 잡히자 은발 머리가 피식- 옅게 웃었다. 그녀는 내 너머 교실 문 쪽에 있던 시선을 내게 두었다.
“우리 사이, 일단 먼 친척 컨셉임. 그러니까 표정 좀 펴셈. 누가 보면 원수지간인 줄 알겠음.”
나는 움찔했다. 얘 말투가 왜 이래? MZ 세대도 이런 식의 말투를 구사하진 않을 터다.
“항상 멀리 떨어져서 소식만 전달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신기함.”
“…….”
“이름 유세인. 소속은 외신교청. 직책은 성녀.”
외신교청과 성녀. ‘기적의 가호 M’을 플레이했던 나에게도 낯선 개념이었다. 기억을 되뇌어 봐도 그런 단체명은 들은 적이 없었다.
성녀(聖女). 말뜻 그대로라면 성스러운 여인.
그런 자가 호아킨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유. 그리고 어떻게 ‘상태창’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 한둘이 아니었다.
‘애초에 성녀가 이런 어린애라고?’
세인이 엷게 웃었다. 그녀의 왼 보조개가 예쁘게 들어갔다.
“원래는 내가 개입하는 건, ‘변수’ 같은 거임.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작은 치트 스킬? 그래서 내가 개입하는 건 본디 옳지 않음, 어차피 신벌이란 페널티 땜에 깊게 개입할 수 없기도 하고. 하지만 지침 혹은 공략집 역할 정도는 가능함.”
“변수든, 치트키든 빙 돌려 말하지 말고. 그래서 네가 누군데.”
“아니, 이렇게까지 단서를 뿌렸는데 아직도 눈치를 못 챔? 이렇게 눈치가 없으니까. 저 뒤쪽 세 명이 맨날 속앓이하지.”
세인이 내 너머를 눈짓했다. 나도 고개를 슬쩍 돌렸다. 문 바깥에 나왔던 노랑, 하늘, 파랑 머리들이 두더지처럼 쏙 들어갔다.
“죄가 너무 큼.”
설레설레 고개 젓는 세인. 내 시선은 곧장 그녀를 노렸다.
세인이 재빨리 부연했다.
“이왕 아카데미까지 온 거, 나도 다 말해 주고 싶어도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거는 한계가 있음. 많이 말해 주면 게임 페널티, 신벌을 받아서임. 그리고 나는 일개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걸 답해 줄 수도 없음. 음, 그래도 모르겠다면야…….”
세인은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 자세를 취했다.
이어서 눈을 감고서 조용히 읊었다. 정순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헛숨을 들이마셨다. 저 음성을 나는 여태껏 익히 들어 왔기에.
“…너였냐?”
세인의 얼굴에 은은한 웃음이 피었다.
♬~♩♪♫♪
이어질 대답을 대신 하듯이, 5교시 수업 종이 울려 퍼졌다.
세인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청빈한 은색 머리칼이 허공에 물결처럼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