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4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42화(141/300)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을 반추했다.
“…유세인.”
헤어지기 전, 그녀가 작별 인사처럼 건넸던 한마디.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가호 발현 시마다 흘러 들어오는 여인의 목소리. 그 묘령의 음색은 유세인의 그것과 일치했다.
하나 그 말을 끝으로, 세인은 더 이상 말해 줄 수 없다며 자리를 피했다. 누차 ‘신벌’이라는 페널티를 운운하며.
[검신의 가호]로 감응력을 돋아 세인을 관찰했지만, 그 눈빛엔 조금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마지막에 너무 자주 만나면 안 된다는 첨언까지.’
내게 해 줄 수 있는 말도 한정되어 있고, 만남도 자중해야 한단다.
…그렇다면 세인은 어째서 아카데미에 전학을 온 것일까? 오늘 처음 만났으니만큼 의도를 알 턱 없었다.
다만 이야기의 맥락을 되짚어 보면 결국 세인은 내 조력자임을 어필하고 있었다.
‘내 레벨 업을 돕고자 왔다고 했으니까.’
이불 위를 뒤척이던 난 상반신을 일으켜 벽에 기대었다. 차가운 감촉이 등허리를 훑었다.
말갛게 떠오른 보름달. 창틀을 비추는 달빛의 각도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나는 물끄러미 만월을 쳐다보다가 문득 주머니에서 돌조각을 꺼냈다. 불사의 마석. 월광을 머금어 교태롭게 빛을 발한다.
나는 마석의 표면을 만지작거렸다. 까끌까끌하다. 뭐랄까, 칼을 대기 전의 생선 비늘 느낌? 날것의 느낌이 충만했다.
정화됐다고 한들, 마석은 마력의 응집체. 이 돌멩이 하나가 웬만한 마수쯤은 한참 상회하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나는 한참을 불사의 마석을 노려보았다.
…근데 이걸로 과연 무라사메의 강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 만약, 만에 하나라도 부랄트 아재가 실패하면?
방학 동안 치렀던 고생이 한시에 거품처럼 터지는 거잖아. 상상만 해도 살이 떨린다.
진짜 그러면 분노를 넘어선 뭔가가 치솟을 것 같았다. 하물며 ‘기적의 가호 M’ 플레이 경험상 실패 확률이 그리 높지도 않았으니.
높게 잡아도 7% 내외? 문제는 뷜란트는 제련에 실패한 전력이 있다는 것이다.
“아, 불안한데.”
다만… 그가 못 미더워도 차선책이 없었다. 내일의 그가 뷫란트이길 믿어 보는 수밖에.
“그래도 실패 확률이 있어서 강화에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 배가 되긴 하지.”
나지막이 두근거리는 심장. 손끝의 박동이 마석에까지 전해져 차가운 돌이 살붙이처럼 꿈틀거렸다.
나는 마석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천성이 한국 사람인지라 강화에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도박이 이리 무서운 것이다.
* * *
이튿날 점심시간, 나는 곧장 뷜란트를 찾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훅 뺨을 스치는 열풍과 땀 냄새.
불 싸라기를 뿜어내는 풀무 옆에서, 커다란 망치에 기름을 먹이는 뒷모습이 보였다.
“아저씨, 저 왔습니다.”
“뭐야… 너냐?”
뷜란트는 고개를 뒤틀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던 일을 끊고서 앉으라며 의자 하나를 빼 왔다.
자영업자의 서비스 정신인지, 아니면 예의 겁박 때문인지. 기껍잖은 태도와는 달리, 응대는 구색을 갖췄다.
“오랜만입니다.”
“더 오랜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 달이 생각보다 짧구나. 일단 앉아라.”
뷜란트가 탁상을 어지럽히던 물품을 치웠다. 무기 설계도, 의뢰서, 삼각자, 연필. 이것저것 많았다.
얼추 정리를 마친 그는 찻장에서 주전자와 찌그러진 막걸리 잔을 챙겨 왔다.
무심히 말하며 뷜란트는 막걸리 잔을 채웠다. 고객을, 그것도 생도를 앞에 두고 대뜸 술상이라니.
이 아재도 참 한결같다.
“참고로 말해 두지만, 학기 초라서 쌓인 무기 의뢰가 많아. 지금 의뢰해도 적게 잡으면 한 달, 또는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뷜란트가 꼴깍꼴깍 목을 축였다. 그는 입술에 묻은 막걸리를 팔뚝으로 닦으며 물어 왔다.
“그래, 이번에는 또 어떤 걸 가져왔나? 네 사나운 성미상 방학을 허송세월하며 보냈을 것 같진 않고. 뭐, 전처럼 A급 마수 소재라도 가지고 온 게냐?”
“A급 소재를 ‘따위’로 만드는 걸 갖고 왔습니다.”
“…뭐?”
입으로 향하던 막걸리 잔이 순간 멈칫했다. 나는 마석을 꺼내 탁상 위에 놓았다. 뷜란트의 눈이 데구루루 구르는 마석을 따라 움직였다.
“이, 이건. 서, 서, 설마?”
뷜란트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그는 숨을 들이마시더니 조심스레 마석을 집었다.
“이거 마석 아니야?!”
두 배 커진 눈동자가 요리조리 심홍빛 보석을 살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정확한 명칭은 ‘불사의 마석’. 어떤가요, 이 정도면 A급을 따위로 만드는 소재 아닙니까?”
“…허허, 참. 아니.”
뷜란트가 기가 찬다는 얼굴로 헛웃음 쳤다. 그는 장난감을 처음 받아 든 아이처럼 마석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강화할 수 있겠습니까?”
“어- 음.”
내 물음에 뷜란트는 머뭇거렸다. 그가 난처한 기색으로 눈썹께를 긁적였다.
“나도 망치 밥을 수십 년 먹은 프로인 만큼 솔직하게 말하마. 마석으로 무장 강화? 물론 가능하지. 마석이 워낙 희귀한 광석이라 다뤄 본 적은 없지만, 선례는 분명히 있어.”
뷜란트는 무거운 어조로 설명을 계속했다.
“…근데 문제는 이 마석을 가공하는 과정이야. 네가 알는지 모르겠는데, 삐끗- 잘못 다루면 내재된 마력이 폭주할 수 있거든. 지금이야 한낱 돌조각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 억눌린 원념(怨念)이 장난이 아니야. 못해도 A+급, 아니면 그 이상 마수의 파생인 것 같구나.”
한 번 조물조물했을 뿐인데 그 실체를 단박에 파악했다. 나는 그 눈썰미에 속으로 감탄성을 흘렸다.
까먹고 있었는데 뷜란트는 ‘기적의 가호 M’ 공인 최고위 대장장이였다.
“어디서 구했는진 구태여 묻진 않으마……. 뭐, 어차피 말해 줄 것 같지도 않고. 강검마, 너라면 뭔들 못 하겠나. 무려 ‘사시미 검성’님이신데.”
내 관자놀이에 혈관이 튀었다. 뷜란트가 재빨리 말을 주워 담았다.
“치, 칭찬이야, 칭찬! 아무튼, 내 말의 요는 그거야. 강화? 가능해. 근데 그 전에 이 원념, 그러니까 마석이 품은 마력을 억누르는 정제 공정이 필수로 들어가야 해.”
“그럼 그 정제를 하면 되잖아요. 아니면 따로 어디에 맡겨야 하는 겁니까?”
“맡아 주는 데도 없고, 가능한 곳도 전무해, 내가 아는 한은.”
뷜란트가 고개를 저었다.
“설사 있다고 해도 불가능하지. 왜냐면 인위적인 제련, 즉 세공을 거치면 마력은 그 상태로 효력을 잃어. 방법은 딱 하나뿐. 마수의 원념을 인간의 정념으로 누르는 것.”
“……?”
“그냥 인간의 정신력으로 이 마력을 찍어 누르면 돼. 좀 더 쉽게 비유해 주자면, 들짐승을 애완동물로 길들이는 거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뷜란트의 설명 자체는 이해됐다. 사악한 사념이 걷히긴 했어도 마석은 마석. 제련 전 정제는 필수란 소리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나는 바로 물었다.
“그 정신력으로 마력을 찍어 누른다는 거. 어떻게 하는 겁니까?”
“방법은 어렵지 않아. 내가 가호를 발현해서 보석을 망치로 내려칠 때, 어마 무시한 마력이 새어 나올 거야. 그때 손을 갖다 대서 억누르면 그걸로 끝이야.”
“…아저씨 가호도 있었어요?”
“예끼-! 이놈아, 그럼 내가 허투루 호아킨 아카데미에 자리 잡은 줄 아느냐?! …비록 전투 능력이 터럭만큼도 없는 가호라 영웅은 못 됐지만…….”
뷜란트의 얼굴에 한순간 침울함이 번졌다. 그는 휘휘 잡념을 털어 낸 뒤 덧붙여 말했다.
“여튼. 정리하자면, 강화 제련은 가능하다만 내 정신력으론 이 사념을 억누를 수 없어. 추측대로 A+나 S급 마수의 사념이라면 더더욱. 아마 칠성 영웅급이 아닌 이상 웬만해선 불가능할 거야.”
“…….”
뷜란트가 내게 마석을 내밀었다. 그는 아쉬움 가득한 기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대장장이로서의 긍지가 구겨진 모양이었다.
‘…음.’
나는 뷜란트와 마석을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뷜란트 아재가 저리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첫 단추를 잘 꿰매야 앞으로 두 번이 수월할 터.
남은 두 번의 마석 강화를 위해서라도 그는 이 시점에서 숙련치를 쌓고 가야 한다. 하면, 후에 더 높은 결괏값을 기대해 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씁쓸한 표정으로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뷜란트. 자존심에 진한 스크래치가 그인 모습이었다.
“아저씨!”
난 그를 냉큼 붙들었다. 저대로 두면 저 인간 금세 얼큰하게 취해 인사불성이 될 각이다.
“그 마력 길들이는 거, 제가 하겠습니다.”
“칵- 뭐, 뭐?”
사레 들린 뷜란트가 기침했다. 그는 혼이 쏙 나간 표정을 짓다가 곧 와락 눈살을 찌푸렸다.
“얌마-! 너 그거 무슨 말인지 알고 하는 소리야? 잘못하다간 너 임마, 그 나이에 정신이 맛이 가 버릴 수 있다고!”
뷜란트가 버럭 기함 쳤다. 몹시 사나운 어투와 달리 내용은 나에 대한 걱정, 노파심이었다.
그 마음은 감사했다. 그렇지만 사사로운 감정보단 뷜란트가 발돋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원래는 말 안 할 생각이었는데.’
나는 뷜란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는 움찔하더니 잔을 내려놓았다. 열기 가득한 공간에 찬 기운이 맴돌았다.
“이 마석을 뱉어낸 마수, 제가 토벌했습니다.”
“…그렇구나.”
뷜란트는 살짝 더듬거렸지만, 안정된 음색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아까 보니까 마석 강화에 욕심 있으신 것 같은데, 아저씨도 그냥 포기하기엔 아쉬운 거 아닙니까?”
“…….”
“그리고 제가 미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 이래 봬도 정신력만큼은 자신 있거든요.”
전생에선 열일곱 살부터 개똥밭을 굴렀다. 거기다 국방부의 시간 3년에, ‘정신의 격’까지 겸비했는데. 그깟 사념 따위에 굴복할 리가 있나.
뷜란트가 잠시 표정을 굳히며 뭔가 생각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더니 주전자 부리를 덥석 물었다.
“?!”
“크아!”
막걸리를 털어 마신 그가 탄성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술 톤인 낯빛이 벌겋게 익었다.
뷜란트는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그래, 까짓거 해 보자꾸나. 내가 가호로 최대한 새어 나오는 마력량을 조절해 보마.”
“화로에 불 지피시죠.”
뷜란트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일단 셔터부터 내리고.”
* * *
뷜란트는 분주히 강화 준비를 마쳤다. 일생일대 이런 기회가 있을까. 무려 마석을 이용한 무장 강화.
산더미처럼 쌓인 의뢰는 뒷전으로 미뤘다. 셔터도 내렸다. 오늘 하루 장사는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뷜란트의 심장은 쿵쿵 뛰었다. 그는 숨을 들이켜 대장간의 훈기를 마셨다. 폐부에 스미는 후끈한 공기가 혈관을 내달렸다.
꿀꺽- 삼키는 마른침. 뷜란트가 풀무를 밟자 대장간에 불똥이 흩날렸다.
후우우욱.
쇠를 액체로 녹이는 어마어마한 열기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하나 뷜란트는 여념 없이 불을 거세게 태웠다.
‘화력은 이쯤이면 충분하다.’
뷜란트가 망치를 높게 치들었다. 마석을 때리기에 앞서, 그는 강검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작하마.”
강검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뷜란트가 가호를 발현한 뒤 있는 힘껏 마석을 내리찍었다.
깡!
탁음성과 동시에 쩌적- 금이 가는 불사의 마석. 곧바로 틈새에서 새카만 연무가 흘러나왔다.
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
뷜란트는 등골이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어둠보다 짙은 안개가 대장간의 열풍을 짓눌렀다. 괴괴한 기운이 정신을 침식해 그림자가 시야를 갉아먹는다.
“…크흨.”
상정을 벗어난 흉흉함. 망치를 꼬나 쥔 손아귀에 힘이 서서히 풀렸다.
키이이잉.
옆에서 매끄러운 소리가 뽑혔다.
사시미의 검집을 벗겨 낸 강검마. 몰아치는 기세에도 그는 덤덤히 남은 팔을 뻗었다.
삐빅―
[외부의 무단적 침입이 감지되었습니다.] [다만, 프로그램이 작동되기엔 상대의 격이 낮습니다.] [「정신의 격」을 사용하여 「불사의 마력」을 제압합니다.]이윽고, 전신을 살라 먹는 마기의 원천에 손이 닿은 때에.
강검마가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작 이 정도냐.”
……파아앗!
[검신(劍神)의 가호 ‘멸(滅)’이 발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