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4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43화(142/300)
143화 기호 7번 강검마 (1)
뷜란트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혔다.
“하아… 하아…….”
뷜란트는 필사적으로 가빠지는 호흡을 고른 뒤 강검마를 봤다. 왼손에 사시미를 잡은 채 오른손은 마석에 가져다 대는 모습.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상황에 뷜란트의 동공이 멍하니 확장됐다.
마석에서 표표하게 뿜어져 나오는 흉신 악살 같은 기운에도 강검마는 무표정했다.
마치 낙엽을 즈려밟듯 한 손으로 가볍게 마력을 억제했다.
강검마가 눈을 게슴츠레 좁히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반발이 좀 심하네.”
“…….”
뷜란트의 낯빛이 아연해졌다. 강검마의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저 포악한 사념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딸려 오는 괴성이 고막을 찢는 것 같았다. 뷜란트는 마석의 감정을 정정했다.
저건 A급이 아니었다. 적게 쳐도 S급. 개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마수이리라.
…근데 저놈은 그걸 ‘반발이 좀 심하네’라 말하며 여유롭게 받아 낸다, 아무렇지 않게 안온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보통내기가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아득할 줄이야.
이쯤 되면 마석 쪽이 아니라 저놈이 괴물이 아닐까? 이름에도 마귀 마(魔) 자가 떡하니 있지 않은가? 일리 있는 가설이었다.
강검마가 뷜란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저씨, 지금입니다.”
“아, 아.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강검마가 정제하면 뷜란트가 망치질을 가해 연단해야 했다.
그 공정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해야 비로소 강화 재료로 거듭나는 것이다.
뷜란트는 축 늘어진 몸을 비척비척 일으켰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손끝에 힘을 돋워 냈다. 움츠렸던 어깨를 쭉 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대장장이로서의 한 단계 진일보할 분기점이었다.
뷜란트가 질끈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퉤퉤- 양 손바닥에 번갈아 침을 뱉고서 망치를 꼬나 쥐었다.
굳센 결의가 실리는 손아귀. 뷜란트의 팔뚝에 굵은 핏발이 솟았다. 그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지금이다!”
“예.”
강검마가 마석에 얹었던 손을 뗐다. 그에 맞춰 높게 치들은 망치가 기세 좋게 낙하했다.
깡-! 두툼한 망치에 가격당하는 마석. 다시 한번 괴성이 일자 강검마는 즉각 손을 뻗어 마력을 짓눌렀다.
그다음, 재차 마석을 향해 내리꽂히는 쇠뭉치.
그렇게 같은 과정의 연속이었다.
깡-! 한 번.
깡-! 두 번.
깡-! 세 번.
깡-! 네 번…
말이 오가지 않음에도 합이 척척 잘도 맞았다. 턱 끝에 뭉치는 땀방울. 화로가 토해내는 불씨에 치지직- 바닥에 닿기도 전에 수증기가 되었다.
끄에에에에에…….
서서히 사그라드는 사념의 괴성. 대장간의 열풍이 이내 농밀했던 마력을 뒤덮었다.
뷜란트는 고개를 들었다. 딱 그 순간 강검마와 눈이 마주쳤다.
“…….”
두 사람은 서로를 말없이 마주 보았다. 소년에게 뷜란트가 눈빛만으로 말했다.
‘어쩌면 내 대장장이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역작이 나올 듯싶구나.’
그에 답하듯, 강검마도 씨익- 이를 드러내어 웃었다.
* * *
삼십 분이 흘렀다.
파앗⎯!
[불사의 마력이 ‘멸(滅)’로 인해 소멸되었습니다.] [외부의 침입에 대한 면역이 생겼습니다.] [「정신의 격」이 소폭 상승했습니다.]망막에 떠오른 상태창에 안도감이 몰려왔다. 혹여 실패할까 조마조마했는데, 성공했다. 그 성과가 눈앞에 있다.
원념이 연소한 마석은 완전한 강화 재료로 탈바꿈했다.
‘시작은 괜찮네.’
다만 마석만 정제시켰을 뿐, 본격적인 강화는 아직이긴 하다.
그래도 일단 첫 단추를 잘 끼웠다. 이제부턴 오로지 뷜란트에 솜씨에 달렸다.
‘그건 그렇고.’
기진한 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뷜란트. 새하얗게 불태운 포즈였다. 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그를 신뢰하지 못했다. 본디 B급이었던 무라사메를 D급으로 만들어 놨었으니까.
하지만 난 눈앞에서 직접 뷜란트의 작업 과정을 보았고, 불신을 거두었다.
‘저 아저씨 열정이 무슨.’
화로의 불길과 마력에 휩싸여서도 뷜란트는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나야 ‘정신의 격’이 있다지만 저 아저씨는 순전히 정신력으로 버틴 것이다.
장인 정신, 이 한 단어로 설명된다.
“…어우. 죽겠다, 죽겠어.”
뷜란트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는 진이 빠진 기색으로 목을 좌우로 스트레칭했다.
나는 그에게 냉수 한 컵을 건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장사 포기하면서까지 하실 필욘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컵을 건네받은 뷜란트의 입가에 미약한 웃음이 떠올랐다.
“아니다. 나야말로 네 덕에 좋은 경험 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뷜란트는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수더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앞치마를 툭툭 털더니 벽시계를 봤다. 어느새 5교시 십오 분 전을 가리키는 분침.
뷫란트의 시선에 내 쪽으로 넘어왔다.
“수업 시작하겠다, 무장 놓고 가면 내가 이번 주 내로 강화해서 네 기숙사 사감한테 건네주마.”
“…아까는 한 달 내리 바쁘다고 하셨잖아요.”
“밀린 의뢰 하루 이틀 미룬다고 티도 안 나. 기세를 탄 김에 마무리를 지어야지. 그리고 말이다, 마석을 주물거릴 생각하니 벌써부터 손이 근질거려서 못 참겠어.”
마석을 보는 그의 눈이 뜨겁게 빛났다. 가려운 사람처럼 주먹을 연신 쥐었다 폈다.
저 모습은 과거의 나, 그러니까 전생의 내가 참치 배를 가르기 전의 표정과 비슷했다. 좋은 재료를 어서 손질하고 싶은 이. 그것이 곧 장인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꾸벅 고개 숙였다. 장인에겐 그에 걸맞은 예우를 갖추는 게 맞다.
화들짝 당황하는 뷜란트. 내 태도가 몹시 의외라는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이윽고 그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호언장담했다.
“오냐, 무장 받아 볼 때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들어 주마.”
* * *
같은 시각, 학원장 집무실.
응접용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메디아. 그녀가 나직한 눈으로 서류를 훑어보았다.
그 맞은편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뒷짐을 진 채 우두커니 서 있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사내는 영웅 협회 소속 직원이었다. 그것도 호아킨 아카데미 학원장과 독대할 수 있는 간부급 과장. 협회에선 그를 성 과장이라 불렀다.
성 과장은 호아킨 아카데미에 영웅 협회 임시 기관 상설에 앞서, 학원장 메디아의 허가를 받고자 왔다.
협회와 아카데미. 이례적인 제휴 협정인 만큼 토의해야 할 내용이 산더미였지만…….
집무실에 무겁게 깔린 적막. 성 과장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협회를 떠나오기 전 들은 부협회장님, 창성 리차 드 뮈라 님의 당부 때문이었다.
‘그 뭐야, 다른 건 다 몰라도, 메디아의 심기는 건드리지 말거라. 성격이 워낙 까칠하거든. 걔가 꼭지 돌면 나도 감당 못 해. 지금이야 펜대나 잡지만 왕년엔 장난 아니었다. 발작 버튼 잘못 눌렀다간 바로 피떡이야. 알겠나?’
폭군.
사실 메디아의 또 하나의 별호는 협회 안에선 이미 파다했다. 이 살벌한 네이밍의 출처 또한 창성님께 익히 들었다.
칠성 영웅에서 현자 메디아의 역할은 힐러였다. 하나 그 포지션에 대한 개념이 조금 달랐는데.
⎯힐러는 피해를 치료하는 역할이 아니다. 피해를 입히는 ‘대상’을 찾아 제거하는 자. 그게 진정한 힐러.
미친 논리였다. 저 말대로면 ‘힐러’가 아니라 ‘딜러’가 아닌가? 가호가 서포팅 계열이면 그냥 힐러로 퉁치는 건가?
“하.”
서류를 전부 읽은 메디아의 미간이 팔자로 좁혀졌다. 성 과장의 어깨도 흠칫 움츠러들었다.
“협회, 너희 진짜 웃긴다.”
“무엇이…….”
메디아가 턱을 괴며 성 과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단지 그뿐임에도 전신의 모든 털이 곤두섰다. 뇌리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메디아가 서류를 팔랑팔랑 흔들며 말했다.
“이 서류 내용을 보니까, 결국은 10월에 있을 학생회 선거에 협회가 관여하고 싶다는 건데……. 너희가 생각해도 너무 속 보이지 않아?”
“…요청 사항이 있으시면 바로 반영하겠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학원장님.”
성 과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메디아의 눈썹 각도가 뾰족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영웅 협회는 차기 학생회를 우선으로 옆에서 불손한 세력으로부터 케어하겠다.’, 그리고 ‘학생회장 선거 관리 위원회에 협회 측에서 이바지하겠다.’”
“…….”
“그래, 명분은 참 그럴싸해. 근데 이거, 결국엔 너희 ‘케어’를 빌미로 학생회 애들 살살 꼬드기려는 거잖아.”
“…….”
성 과장은 그 어떤 항변도 하지 못했다. 사흘 밤낮을 새서 내용을 간추리고 축약해 정리한 보고서건만. 메디아는 몇 초 훑고서 내용의 본질을 간단히 논파했다.
메디아가 손가락만 까닥여 서류를 툭 던졌다. 허공을 나풀거린 종이가 성 과장의 발밑에 내려앉았다.
“협회가 인력난에 시달리는 건 잘 아는데. 그래도 이건 좀 경우가 아니지. 클라디 그 새끼 끄나풀 잡는 거 도와준다고 해서 기껏 협정해 줬는데. 한다는 게 내 생도들 감으려는 수작이야?”
“…….”
반박할 수 없는 전부 맞는 말이었다. 처맞는 말…….
성 과장은 머릿속으로 메디아에게 처맞는 상상을 했다.
피떡이 된 본인의 모습, 숨만 간신히 붙어 있고, 이가 부러져 임플란트를 박는 그런 불길한 장면들…….
부르르 몸을 떠는 성 과장을 가만히 보는 메디아. 그녀가 후- 짧게 한숨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허락해 줄게.”
“…예?”
성 과장의 눈이 띠용- 휘둥그레졌다. 메디아는 혀를 차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올해 유독 사건·사고가 많이 터져서 고사리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거든. 속내가 구리긴 해도 어쩌겠어, 창성 그 고릴라랑 대충 이야기된 건데. 이 정돈 아카데미 측에서 감수해야지.”
“가, 감사합니다!”
성 과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살았다는 기쁨도.
메디아는 성 과장 발치의 서류를 까딱 턱짓했다.
“됐고, 거기에 적힌 ‘차기 학생회장은 영웅 협회 한국 지부의 출입증을 부여한다.’ 그 항목 때문에 허가하는 거야. 그래도 투명해 보이려는 노력이 조금은 가상해서.”
“예, 예. 당연합니다.”
성 과장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얼추 매듭지어졌다.
흥- 흥- 성 과장은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흘렸다. 그가 주섬주섬 서류를 챙기고 있자 메디아가 한마디 내뱉었다.
“아, 그리고 틀딱한테 들었는데. 협회 너희, 우리 검마 뒤 캐고 다녔다면서.”
“…….”
“또 그딴 개수작 부리면…….”
그 말에 성 과장은 허리를 구부린 채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그는 새우처럼 숙인 자세로 동공만 굴려 메디아를 봤다.
감정이 식어 버린 눈으로 지그시 노려보는 모습. 여인의 형상을 한 죽음이었다. 성 과장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질식할 것 같은 침묵 뒤에 메디아의 입술이 움직였다.
“…나머지는 알아서 상상해.”
흐릿한 그 말이 말뚝처럼 성 과장의 가슴에 박혔다.
끄… 끄덕. 끄덕끄덕.
백지장처럼 표백된 성 과장이 연신 주억였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협회로 복귀한다면 그 즉시 부하 직원들에게 조사 중단 명령을 내리겠노라고.
부협회장 창성조차 두려워하는 저 여인.
폭군의 엄포를 거스를 만큼 성 과장은 담이 큰 인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