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4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45화(144/300)
145화 기호 7번 강검마 (3)
연무장 관중석의 한쪽 모퉁이. 영웅 협회 소속 성 과장과 부하 직원 하 주임이 앉아 모의시험을 지켜봤다. 두 사람 손엔 도톰한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생도 =레온 반 라인하르트=의 점수는 98점입니다!]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셨습니다!]“와. 아직 각성 전이라지만, 용사는 용사네요.”
순둥순둥한 인상의 하 주임이 경이롭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성 과장 쪽으로 고개를 홱 틀었다.
“과장님! 솔직히 이건 기대 이상이 아니라 그냥 기대를 아득히 초월했는데요?”
“그러게나 말이다. 황금의 세대다 뭐다 했을 땐 안 믿었는데, 직접 보니까 말이 안 나오긴 하네. 이래서 호아킨 호아킨 하나 싶어.”
“맞아요. 솔직히 직전에 용 클래스 대표는 기대에 한참 미달이었는데, 레온을 보니까 딱 알겠어요. 진짜 저보다 열 살은 어린애들한테 존경심이 들 정도예요.”
“…….”
성 과장은 입을 다물었다. 하 주임은 그 침묵의 의미가 긍정이란 걸 알았다. 협회 직원들에게 눈치는 기본 소양이었다.
또한 그들은 날밤을 까며 같이 일만 하다 보니, 전우애(?)도 끈끈했다.
하여 부하 직원의 농담도 별 대수롭지 않아 하는 성 과장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 모의시험 생각보다 더 순항인데요? 우리 성 과장님, 내심 뿌듯하시겠네.”
“나? 전혀 안 뿌듯한데? 그리고 이거 주관하느라고 너나 다른 팀원들 사흘 내리 밤샌 거 생각 안 하냐?”
“에이~ 저희야 밤낮없이 일하는 게 하루 이틀인가요. 고생은 성 과장님이 다 하셨잖아요. 무려 그 깐깐하기로 유명한 학원장님을 설득하셨고요.”
하 주임의 격찬에 성 과장은 되레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말도 마라. 목숨 내놓고 일하고 싶지 않아서 샐러리맨이 됐는데, 아카데미로 파견 나오고 목숨 줄이 가늘어졌어.”
성 과장이 찌근거리는 편두통에 관자놀이를 꾹꾹 문질렀다.
‘그래도 시작은 나쁘지 않으니까……. 이대로만 가면 원이 없을 텐데.’
이번 깜짝 모의시험은 아카데미와 협회의 첫 합작 이벤트였다. 2주 앞으로 바투 다가온 회장 선거.
본디 출마 자격은 2학년부터였으나 올해는 달랐다. 황금의 세대라 불리는 한 해 아니던가.
성 과장은 딱딱한 학칙 때문에 1학년이 출마하지 못하는 건 재원 낭비라고 학원장 메디아를 설득했다.
당연히 성 과장의 의사는 아니었다. 그는 순전히 윗선의 말을 전달하는 전서구였다. 그리고 말이 좋아 제안이지 기실은 학원장에게 기다시피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직장인은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법이다.
간부급인 과장이라 해도 결국엔 중간 관리직에 불과했다. 호아킨 아카데미와 영웅 협회 사이에서 외줄 다리를 타며 조율하는 것. 그게 성 과장 자신의 역할이었다.
그런 성 과장의 애환이 감성을 자극했는지, 메디아의 입에서 승인이 떨어졌다.
‘알았어. 이 기획안, 추진해 봐.’
‘저, 정말 이대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학원장님!?’
‘그래. 어찌 되었건, 이번 회장 선거는 협회 너희한테 어느 정도 일임하기로 했으니까. 대신 우리 생도들한테 뭔 일이 나기라도 하면 협정이고 나발이고 없어.’
차갑게 쏘아붙이긴 했지만, 사실 메디아 또한 아카데미에 변혁이 필요한 시기라 판단했다.
기존의 틀을 하나씩 깨부술 기점이 바로 지금이리라. 메디아는 서서히 곪아 가는 아카데미에 변혁의 바람을 일기 바랐다.
하여, 이번 깜짝 이벤트의 특별 보상.
‘1학년생의 학생회장 출마’를 허가했다.
비록 정원은 겨우 두 자리. 후보 기호는 끄트머리의 6번과 7번이지만, 700년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메디아의 승인이 떨어짐과 동시에 성 과장과 팀원은 비밀리에 그리고 신속히 일을 진행했다.
더구나 아카데미에서 처음 진행하는 기획인 만큼 협회의 업무 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그 불철주야의 노고가 눈앞에 있다. 성 과장은 조금 전 레온과 오우거의 대치를 복기했다.
오우거를 단칼에 베어 버린 레온의 검격. 차기 용사의 성장세는 협회의 예상치보다 가파른 우상향을 그렸다.
‘설마 여태껏 2학년들만 토벌해 왔던 오우거를, 그것도 최고점으로 토벌할 줄이야…….’
협회 윗선이 가장 원하던 장면이었다. 이를 위해 2학년 학기 과정인 오우거 토벌을 굳이 끄집어낸 거니까.
‘어째서인지 협회장님께선 저 레온이란 소년이 차기 학생회장이 되기를 원하신다.’
협회장님의 심중이야 일개 과장인 자신이 알 리 만무했다. 안다 해도 딱히 이해할 것 같지도 않고.
두 세기를 넘게 살아온 그 인간의 속내를 일반인이 어찌 헤아리겠는가. 정신적으론 진즉에 인간의 태를 벗은 요괴일 텐데.
‘…협회장, 부협회장, 학원장, 칠성. 그 괴물들 사이에서 차이는 건 이젠 지긋지긋하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 틈바구니에 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간 제 명에 못 죽을 것이다.
승진을 포기하고 말지. 성 과장은 빨리 명예퇴직하고 연금 따박따박 받아먹는 미래를 꿈꿨다.
성 과장이 자그맣게 떨리는 입술을 매만지던 때였다.
[다음, 랑(狼) 클래스의 생도 =강검마= 나와 주세요.]하 주임이 화들짝 소리쳤다.
“과장님! 걔 나와요, 사시미 검성!”
“아.”
그녀의 말에 성 과장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입구 쪽으로 넘어갔다.
화제의 검은 머리 소년. 회칼을 무장으로 사용하는 기묘한 생도.
‘사시미 검성…….’
강검마가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그의 등장만으로 축구장 크기의 연무장이 공동묘지처럼 숙연해졌다.
성 과장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강검마는 바로 전 순서인 레온과는 정반대의 인상이었다.
레온이 정오의 태양 같다면, 강검마는 빛 한 점 없는 삭월의 밤이었다.
낮과 밤. 어떻게 동시대에 저리 대비되는 천재들이 두 명이나 나타난 것일까.
다만 명과 암의 공존은 뭔가 위태로워 보였다. 공생할 수 없을 것 같다 해야 하나? 성 과장은 문득 그런 기분을 느꼈다.
하 주임이 성 과장에게 물었다.
“과장님은 저 생도가 몇 점 받을 것 같으세요?”
“그래도 사시미 검성이란 이름값이 있는데 90점은 넘지 않을까? 그 이상은 하기 나름이겠지만. 아무래도 레온이 방금 막 신기록을 달성한 참이잖아.”
“하긴, 레온이 한 번에 벤 데다 걸린 시간도 1초 남짓인데. 그 이상의 점수를 따내려면… 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겠죠?”
성 과장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치. 뭐, 기대를 걸어 본다면 동점인 98점? 근데 우리가 눈높이가 너무 높아진 거지, 90점만 넘어도 괴물이야. 봐봐, 우리 부협회장님 기록. 93점이잖아. 그리고 저것도 2학년 당시 기록이잖아.”
“그러게요. 그렇게 보니까 확 피부로 와닿네. 열여덟의 창성님께서 93점이면… 아, 근데 저 2위에 있는 메아인 포이즌이란 이름. 저분이 현학원장님의 쌍둥이 언니시죠?”
“어, 맞아. 전대 학원장님이시기도 하고.”
“맞다! 근데 어느 날 갑자기 현학원장님한테 학원장직 떠넘기고 잠적하셨다면서요.”
“응. 그게 대략 20년 전 일이니까… 하 주임이 일곱 살 때인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근데 그분은 원래부터 특이한 분이어서.”
“특이한 분이요?”
“자세한 건 네가 짬 차고 협회 비밀 관리 기록부 뒤져 봐. 보면 깜짝 놀랄 거다.”
하 주임이 입술을 샐쭉이 했다.
“치사해요! 조금만 귀띔해 주시면 안 돼요?”
“치사하면 너도 출세하든가. 그래도 하나 알려 주자면, ‘포이즌’이라는 그 집안 자체가 좀 남다르다는 거? 협회장님도 그쪽 계열이시잖아. 하여튼 이제 시작한다. 조용.”
위이잉.
노면에서 철창이 솟아났다. 한데 오우거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놈은 새빨갛게 물든 눈으로 삐쭉 돋은 송곳니를 부서지라 갈아 댔다.
하 주임이 당황에 찬 목소리로 성 과장을 불렀다.
“과장님……! 오우거 저거 상태가 이상한데요?”
“저, 저 새끼 설마?”
오우거가 몽둥이를 사방팔방 휘둘렀다. 목퇴가 부딪힐수록 쇠창살에 균열이 일었다.
빠각!
가두리를 부숴 버린 오우거가 철문을 박찼다. 철창을 나온 놈은 굽었던 등이 펴져 키가 4미터에 육박했다. 누런 이빨을 전부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는 모습.
성 과장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젠장! 저놈 저거 레온한테 당해서 맛이 가버린 거야. 한 큐에 당했다는 수치심이 녀석의 호전성을 자극한 거라고. 광폭화야, 광폭화!”
“광폭화요!? 눈깔 뒤집힌 오우거면 등급이 A급으로 치솟잖아요!”
“모의시험은 당장 중지야. 하 주임, 빨리 교관들한테 말해서 인원 투입해. 당장!”
“예!”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오우거가 연무장이 떠나가라 피어를 뿜어냈다. 그에 관중석의 생도들이 픽픽 혼절하기 시작했다.
그 수가 무려 절반이었다. 나머지도 기절만 안 했을 뿐, 손가락조차 달싹하지 못했다.
“야야, 정신 차려! 교관님, 애들이 막 정신을 잃어요!”
“다, 다들 일단 자리를 지키세요!”
“꺄아아아악!”
연무장은 순식간에 혼돈의 도가니로 일변했다. 생도들의 비명에 힘입어 오우거가 내달렸다.
쿠구구구궁.
광기에 침잠된 오우거가 맥진했다. 육중한 발자국이 흙바닥을 도장처럼 찍어 파냈다.
오우거가 몽둥이를 휘두르기 직전, 강검마가 사시미를 까딱였다.
삭.
그와 동시에 일시 정지되는 피어. 새빨갛던 오우거의 안구에 백탁이 드리웠다. 두 눈의 초점이 좌우로 벌어졌다.
-오거얽…….
오우거가 하얗게 풀린 눈으로 꼬인 스텝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관성에 못이긴 오우거가 강검마의 옆을 쓸며 지나갔다.
허물어진 몸체는 빙판 위처럼 저항감 없이 쭉 나아갔다. 넙데데한 가슴과 배가 바닥을 닦았다.
* * *
[랑(狼) 클래스의 시험이 끝났습니다.]적막을 유리창 깨듯 울리는 기계음.
분위기에 동떨어진 음성에 성 과장은 멍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전신을 맴도는 전율에 뭐라 말이 나오진 못했다.
성 과장이 하 주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 주임도 한껏 동그래진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였어요?’ 하 주임이 입만 움직여 물어왔다.
‘나라고 알겠냐?’ 성 과장은 눈빛으로 일축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연무장 한가운데로 모였다.
강검마의 뒤편에 쓰러진 오우거. 놈은 가슴께를 부여잡고 있었는데, 몸엔 티끌만큼의 생채기도 없었다.
‘뭐, 뭐야 저건?’
쾌검을 선보였던 레온. 그 실력 행사에 모두가 감탄하고 환호했다.
…근데 방금은 뭔데? 강검마가 칼자루를 깔짝이자 오우거는 눈 뒤집힌 채 즉사했다.
‘심장마비?’
성 과장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저 가슴 붙잡고 뒈진 모습. 저건 영락없이 심장마비가 아닌가?
하다 하다 이젠 눈만 마주치면 죽는 그런 거냐? 뭐, 데 X노트야? 저건 그럼 데스 사시미 그런 건가?
괴물이 득실거리는 호아킨 아카데미라지만, 이건 정말 뭔가 싶었다.
그 순간에도 아공간은 강검마의 점수를 추산 중이었다. 소요 시간이 상당히 지연됐다.
[생도 =강검마=의 점수는…….]강검마는 찌뿌둥한지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결과를 기다렸다. 저 태연한 표정이 성 과장은 어이가 없었다.
삐빅-!
[…측정 불가인 ∞ 입니다.] [무한(Infinity)은 수가 아니기에 점수로 환산이 불가합니다.] [단, 기록 일람표는 순위에 맞게 경신됩니다.] [0위. 강검마 / ∞.] [1위. 레온 반 라인하르트 / 98점.] [2위. 메아인 포이즌 / 96점.] [3위. 지크프리트 폰 니벨룽 / 95점.] [4위. 메디아 포이즌 / 94점.] [5위. 리차 드 뮈라 / 93점.]“…….”
더 놀랄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성 과장은 그저 어질어질했다.
***
“너 이번엔 또 뭐야, 어떻게 한 건데!?”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료조가 냉큼 물었다. 퍼뜩 대답을 종용하듯 그녀는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칼을 뽑지도 않고, 오우거를 벤다는 게 말이나 돼? 아니, 뭐부터 놀라야 할지도 모르겠어. 점수는 무슨 무한대가 떠오르질 않나. 오우거는 픽 쓰러지질 않나. 뭐, 너 저 마수랑 말이라도 통한 거야? 타이밍 맞게 퍽 쓰러져 달라고? 아니면… 그 심상의 영역 그거로 벤 건가?”
“칼날을 안 뽑으려고 심상의 영역을 펼치긴 했는데, 평소랑은 활용법을 달리했어.”
“……?”
료조의 동공이 커졌다. 나는 볼을 긁적이며 설명해 주었다.
“료조, 너 ‘피어’가 뭔지 알지? 저 오우거가 소리 지르며 뿜었던 거.”
“알지. 상위급 마수가 내뿜는 기백의 일종이잖아. 원리는 포식자가 피식자를 압도해서 사냥을 손쉽게 만드는 초저주파인데, 학술적으론 아직 의견이 분분…….”
“학술적인 것까진 모르겠고, 아무튼 그 피어란 건 결국 마수의 심장과 바로 연결되는 맥동음, 즉 파장이거든. 차로 비유하면, 엔진 소리.”
“조금 다른 개념이긴 한데, 꽤 맞아 드는 비유긴 해. 아무튼, 그래서 피어랑 오우거가 갑자기 쓰러진 거랑 무슨 관계야?”
“별건 없고, 그냥 피어를 베면 심장이 멈추지 않을까 했는데 정답이었나 봐. 솔직히 점수가 측정 불가가 뜰 줄은 몰랐-”
“자, 잠깐! 잠깐!”
료조가 손을 쭉 뻗어 이야기를 잘랐다. 하늘색 눈동자가 커졌다 작아지길 반복했다.
“네 말은 피어, 파장 혹은 소리를 벴다는 거야? 물리적 형태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걸 벤다고?”
“아, 그게… 내 눈엔 보여.”
“뭐?”
[검신의 가호]는 베지 못할 것을 자르는 가호.소리든, 공기든, 파장이든 어떠한 것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가호가 대충 그런 거거든.”
“…….”
벙찐 기색으로 나를 빤히 보던 료조는 이내 얕은 한숨을 폭 흘렸다.
“검마, 너는 발상이 천재적이라 해야 할지, 맛이 갔다고 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다. 어쩜 점수도 측정 불가인 게 너랑 딱 맞는 것 같기도 해.”
“…칭찬인가?”
료조의 미간에 빠직 주름이 잡혔다.
“그럼, 욕이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