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4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46화(145/300)
146화 기호 7번 강검마 (4)
연무장, 성 클래스 진영.
“아, 아벨. 방금 오우거, 저거 어떻게 죽은 거야? 내가 잘못 본 거야? 아니면 검술에는 저런 기술이 따로 있어?”
레이첼이 아벨의 옷을 끌며 보채듯이 물었다.
“아파, 레이첼! 이것 좀 놔!”
아벨은 일단 옷을 꽉 움켜쥔 레이첼의 손부터 쳐 냈다. 우악스러운 아귀힘에 소매가 꾸깃- 주름이 졌다.
레이첼이 혀를 빼물며 사과했다.
“앗, 미안. 너무 흥분했나 봐. 헤헤.”
“휴, 어쨌든.”
아벨이 지친 얼굴로 입을 뗐다.
“내가 아는 한, 검술에 저런 기술 같은 건 없어. 그리고 저건… 내가 보기엔 기술이라기보단 좀 다른 걸 거야. 창을 다루는 너라도, 강검마 쟤가 구사하는 검술이 이질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거 아니야.”
“응응, 뭐라 해야 하지, 기술이라기보다는 약간 현상 같다고 해야 하나? 전에 중간고사 때 마법을 베기도 했고.”
“그러니까, 우리가 기존에 알던 상식의 잣대를 강검마한테 들이미는 건 우스운 거야.”
“하긴, 점수부터 이미 측정 불가, 무한대라니까.”
“나도 그건 많이 충격적이긴 해. 근데 우리뿐만이 아니라 이 상황을 목격한 전부가 그렇겠지…….”
아벨이 주변을 둘러보는 가운데, 유세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세인은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저 홀로 눈매를 찡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저 멀리 앉은, 강검마를 지그시 응시했다. 왜인지 눈에 우려가 잔뜩 서려 있었다.
“동화되는 속도가 터무니없이 빨라…….”
세인의 중얼거림이 아벨의 귓전에 맴돌았다.
‘동화, 속도?’
바로 그때 시선을 느꼈는지 세인이 냉큼 고개를 이쪽으로 홱 돌렸다.
“!”
돌연 마주친 시선에 아벨의 어깨가 높게 들썩거렸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남의 혼잣말을 훔쳐 들은 모양새였다.
아벨이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녀는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려 검은 눈빛을 피했다.
…그런데 저 지긋한 시선에 아벨은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뭐지?’
세인은 그런 아벨을 빤히 쳐다보다 이내 자리를 떠났다.
허리까지 곱게 내린 은발이 바람에 낭창낭창 흔들렸다.
* * *
료조가 궁금한 걸 계속해서 물어 왔다.
“그래, 가호를 활용해서 피어를 벴다는 건 알겠어. 솔직히 아직도 소리나 파장을 벴다느니. 완전히 믿진 못하겠지만, 눈으로 봤는데도 못 본 척할 순 없긴 한데… 그러면 피어를 내뿜는 모든 마수는 그렇게 다 심장 마비(?)로 즉사시킬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상황이 좀 특수하긴 했어. 오우거가 유독 피어 의존도가 높은 마수잖아. 거기다 광폭화로 맥동이 엄청나게 증폭되기도 했고. 사실 광폭화가 아니었으면 딱 한 방에 끝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운이 좋았지.”
료조가 버럭 기함했다.
“야! 어떻게 그걸 운이 좋다고 퉁치냐!? 기본적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실력이 있으니까 가능했던 거잖아! 아무리 상황이 잘 맞물렸다고 해도, 그래 방금은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것도 아니고, 드래곤을 잡은 격이라고!”
“오- 료조, 너 한국 속담도 아네.”
“지금 그게 중요해? 조건부라곤 해도, 애당초 열일곱에 심상의 영역을 발동하고, 소리를 벴다는 거 자체가 말이나 돼, 어? 이 바카 재능충아!”
료조가 갑갑한 기색으로 제 가슴을 퉁퉁 쳤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 웃었다. 그래도 실없는 농담 덕에 잠겼던 분위기가 환기됐다.
저벅, 저벅.
일전으로 곤두선 감각이 가까워지는 기척을 감지했다.
지금 현장은 혼절한 생도들로 가득했다. 하물며 랑, 범 클래스 진영에선 유이하게 나와 료조만이 제정신이었다.
그러니 다가오는 인기척은 명백히 이쪽에 용무가 있는 것. 짐작은 금세 현실로 이어졌다.
“강검마 생도님.”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사내 뒤에서 빼꼼 눈만 내미는 여자도.
단정한 착의만 봐도 아카데미 임직원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교수, 교관 복은 배지들이 치렁치렁 많았으니까.
남자가 땀을 삐질 흘리며 명함을 건넸다. 종이가 땀에 젖어 축축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아카데미에 파견 나온, 협회 소속 전략 기획부 과장인 성유창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성 과장이라 불러 주시면 됩니다.”
잘생긴 중년 사내, 성 과장이 팔꿈치로 제 뒤를 콕 찔렀다. 숨어 있던 여성이 꽁지에 불붙은 두더지처럼 튀어나왔다.
“혀, 협회 소속 전략 기획부 차석 주임인 하나은이라고 합니다!”
소개를 마친 하나은도 퍼뜩 명함을 내밀었다. 그녀는 안쓰러울 정도로 손을 부르르 떨었다.
눈동자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내 시선을 피하는 모습. 눈 마주치면 죽는 병 걸린 사람처럼 필사적이었다.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협회 분들이 저를 왜 찾아온 겁니까?”
아카데미에 협회가 터를 잡았다는 건, 메디아를 통해 들었다. 하여, 별안간 이들이 등장한 것이 그다지 당황스럽진 않았다.
다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내게 접근해도 되는 건가? 이런 행태는 메디아가 싫어할 게 뻔한데. 의아했다.
살짝 굳은 내 표정에 하 주임이 화들짝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잠깐만요. 일단 진짜 협회 분들이 맞는지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료조가 내게서 명함을 가로채 살폈다.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면밀히 살피고서야 끄덕였다.
“일련번호 확인해 보니까 협회 분들은 맞네요. 직분과 부서도 다 맞는 것 같고.”
““……!””
료조가 그리 말하자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표정은 놀람 일색. 료조가 그들에게 요모조모를 짚어 주었다.
“앞의 네 자리는 기관 번호, 중간 세 자리는 부서, 그 뒤는 직분 표기일 거고. 뒤에 다섯 자리는 개인 보안 번호겠죠.”
“그, 그걸 어떻게.”
“집구석에서 어려서부터 이런 쪽으로 훈련을 시켜 와서. 각 정부 기관, 국제 시설의 명함 양식은 어려서부터 숱하게 봐 왔어요.”
“…허.”
성 과장이 흐릿한 웃음을 흘렸다.
웬 여생도가 귀퉁이에 보일 듯 말 듯 적힌 번호로 파악해 냈으니. 어처구니없다는 저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료조의 영특함을 아는 나조차도 흠칫했다. 아니, 섬찟했다.
일련번호로 직분까지 식별할 수 있는 인간이 나한테 재능충이니 뭐니 하는 게 맞나? 지는 두 발 달린 컴퓨터면서 말이다.
나는 료조를 힐끗 바라봤다. 그에 그녀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톡톡 건드렸다.
‘알파고냐?’
험험- 성 과장은 헛기침으로 어색한 침묵을 깼다. 그가 반색하며 말했다.
“일단 사시미 검- 아니, 강검마 님의 의문에 먼저 답해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찾아온 건, 이번 모의시험의 특별 보상 건으로 찾아온 겁니다.”
“아카데미의 특별 보상인데 협회 측에서 찾아온 까닭은 뭐죠?”
“이 시험을 기획하고 주관한 게 저희여서 특별 보상 부여 또한 학원장님께 일임받았습니다. 일단 이곳 분위기가 좋지 못하니, 따로 시간 내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성 과장의 태도는 몹시 공손했다. 얼핏 나보다 스물은 많아 보이는데도, 존대하는 말투. 그래도 의심을 거둘 순 없는 노릇이다.
검제와 학원장의 염려가 떠올랐다. 그들은 나와 협회가 엮이는 걸 영 내키지 않아 했다.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터.
다만 그와 별개로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더러 있었다. 비단 특별 보상뿐만 아니라, ‘모노리스’에 관해서도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전에 말했듯 아티팩트 대부분이 협회 산하에서 관리된다.
두 사람이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이야 이해한다. 그들은 나를 가족처럼 여겨 주었다.
하지만 매사 내 의지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어찌 되었건, 선택과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니.
결심이 섰다. 지금은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게 맞았다.
나는 성 과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시죠.”
“아,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모시겠-”
띠리리리.
앙칼진 소음이 성 과장의 주머니에서 났다. 휴대폰을 꺼내 본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저 잠깐 전화 좀 받겠습니다.”
성 과장은 짧게 전화하더니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곧 하 주임에게 말했다.
“나, 이번 일 때문에 학원장실 좀 가 봐야 하니까. 하 주임이 나 대신해서 설명해 드려.”
“학원장실이라면… 설마 과장님…….”
사정을 짐작했는지 하 주임이 침음했다. 성 과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얼굴에 어느샌가 그늘이 드리웠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검마 님이나 잘 모셔.”
성 과장은 가타부타 설명 없이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그의 마지막 표정은 몹시도 무거웠다.
상사의 등을 바라보던 하 주임이 애써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검마 님, 저를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료조가 손을 척 들며 물었다.
“검마, 얘가 그… 사고 회로가 좀 남다르거든요. 아마 제가 중간책으로 끼어 있으면 소통이 원활할 겁니다.”
이건 나를 너무 과잉보호하는 거 아닌가?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무슨 그런 걱정을 해.”
“아니.”
료조가 나를 찌릿- 째려봤다. 그녀는 ‘너 혼자 가게 놔두는 게 말이 돼?’ 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하 주임은 잠시 생각하더니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내 시선은 슬슬 회피했던 하 주임인데, 료조는 똑바로 직시했다.
“단, 당사자가 아니라면 모든 대화 내용은 비밀 유지가 필수입니다. 동의하십니까?”
“…….”
료조는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하나은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신다면 비밀 유지 계약서라도 써 드릴게요.”
* * *
앞장선 하 주임의 뒤를 따라서 아카데미 본관으로 이동했다. 하 주임은 엘리베이터 5층을 눌렀다.
띵- 문이 열리고 나와 료조는 사뭇 달라진 정경에 두 눈을 깜빡거렸다.
본관의 5층 대객실이 ‘영웅 협회 전략 기획 임시 부서’로 바뀌어 있었다.
빈틈없이 채운 오피스 책상과 컴퓨터. 일견 회사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 주임의 안내를 받아 별실에 다다랐다. 그렇게 나와 료조는 널찍한 테이블을 가운데 둔 채로, 하 주임과 마주 앉게 되었다.
“…….”
어쩐지 묘한 분위기가 내려앉은 가운데, 료조가 손가락을 깍지 끼었다. 그녀는 눈을 얇게 뜨고서 선수를 쳤다.
“하 주임님, 어떤 이야기이길래 저희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그 이유부터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료조의 싸늘한 기세에 눌린 하 주임이 더듬더듬 말했다.
“이, 일단 저희가 모의시험을 기획한 취지와 강검마 님을 초빙한 까닭을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료조가 바로 이야기의 논점을 정정했다.
“음, 잡설은 사양하겠습니다. 어차피 이곳까지 오면서 대충 짐작은 했거든요.”
“……?”
료조는 설핏 웃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오우거 토벌은 본디 2학년 학기 과정입니다. 그리고 호아킨 아카데미는 커리큘럼이 웬만해선 바뀌지 않기도 하죠.”
“…….”
“이상하지 않나요? 원래 ‘오우거 토벌’은 각반에 한 명씩이 아니라, 모든 생도가 참여하는 겁니다. 근데 이번 저희가 치르는 건, 각반 대표자 한 명만 내세웠잖아요.”
“…….”
“그게 어째 영 찝찝하더라고요. 뭐랄까. 특출난 인물을 선별하고 접근하기 위한 구실처럼 보였다고 해야 하나. 굳이 여기로 데려온 것도 그 일환인 것 같고.”
“…….”
“협회가 항상 호아킨 아카데미 출신에게 알짱거리는 건, 뭐. 아까 검마한테 냅다 명함부터 건네는 거 보니까, 대충 알겠고.”
“…….”
하 주임은 비밀이 전부 까발려진 사람처럼 입술만 달싹였다. 그녀는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수세에 내몰렸다.
저 젊은 나이에 차석 주임을 단 걸 보면 하나은도 엘리트일 텐데, 료조는 그런 그녀를 상대로 언변으로 압승. 침묵을 강제했다.
솔직히 탁상공론 세계관 최강자는 료조가 아닐까 싶다. 묵묵히 잠자코 있는 게 얘를 도와주는 것일 테지.
료조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그러니까 하 주임님은 협회가 검마 얘한테 품은 저의 같은 건 배제하고, 그냥 특별 보상이 무엇인지만 말해 주시면 됩니다.”
“…….”
하 주임은 끝내 반쯤 체념한 얼굴로 주억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