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4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48화(147/300)
148화 나한테도 의리라는 게 있다 (1)
떠오른 문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명왕의 권능〉
불사의 마석을 소재로 새로이 얻은 특수 능력. 풀어 해석하자면 내가 벤 적, 즉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것이었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성을 터뜨렸다. 유저들이 특수 능력, 특수 능력 꿍얼거렸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정도면 중형차 한 대 값을 태우는 게 아니라, 집 몇 채를 태워도 이득이겠는데?”
몇 가지 조건과 제약이 붙어 있으나 분명히 어마어마한 능력이었다. 다만 좀 찝찝한 마음도 있었다.
죽인 상대를 내가 부활시켜서 부린다니. 비유하자면 회 쳤던 생선을 사시미로 소생시키는 꼴이었다.
‘…네크로맨서냐?’
애매한 이 기분과는 별개로, 반짝 스프린터인 나로선 희소식이었다. 각기 전투에서 [검신의 가호]는 적을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일대다 전투에선 약점을 보인다. 1분이란 찰나의 순간에 승부를 봐야 한다. 결국엔 시간 싸움.
상대가 작정하고 물고 늘어지는 물량 공세를 펼칠 시, 한순간에 전황이 역전된다.
언데드 던진 때도 그렇다. 군집한 무리가 D급 언데드였음에도, 드라우그에게 가는 길을 뚫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심지어 그것도 후방을 살펴 줄 아벨과 샤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 혼자선 드라우그 목전에 결코 다다르지 못했을 터.
‘빌런들을 숙청했던 밤에도 녹스나 알’타이르의 보조 없이는 힘들었을 거야.’
그렇기에 누군가가 나를 보조해 줄 수 있다면, 더 유연한 전투가 가능할 것이다, 그게 비록 내가 죽인 시체일지언정.
앞으로 공략해야 할 던전들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능력이었다. 상위급 던전부턴 못해도 B급 마수들이 무슨 잡몹처럼 튀어나온다.
종마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무통의 가호]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종마가 싸늘한 주검이라도,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던전에 가기 전에 특수 능력을 한번 써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저 이 특수 능력을 끌어 올려 준 뷜란트 아재한테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중에 촌지나 두둑이 찔러 주든지 해야지.
“종마라…….”
달빛에 칼날을 이리저리 비껴 보던 도중, 문득 ‘종마’란 단어가 한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최설아, 걔는 뭐 하고 지내는 거지?’
신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며칠. 오전에 잠깐 스치듯 본 게 처음이었다. 그 짧은 만남에서도 최설아는 나를 슬슬 피하는 눈치였다.
‘…뭐, 딴맘 품고 그런 거 아니야?’
걔는 도무지 믿음이 안 가는 스타일이다. 빌런 출신에, 그 묘하게 삶에 집착하는 얌체 같은 모습하며.
최설아는 의리 따위는 개나 줘 버리고, 제 살길만 찾는 성격이었다. 나를 다람쥐처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지.
“최설아는 교관이니까… 걔가 손 좀 보태면 선거가 좀 수월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사시미를 검집에 넣은 뒤, 서랍장을 열었다. 생필품의 틈바구니에서 요사스레 반짝이는 귀걸이.
어디로 튈지 모를 최설아를 꽉 옭아맬 수 있는 수단. 종마의 증표였다.
이게 내 손에 있는 한, 최설아가 배반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다만 불안 요소도 있었다.
아카데미 내에 있던 빌런은 대부분이 뒈졌으나, 외부의 적은 아직 남은 상황.
혹시 모를 일이다. 최설아가 그들에게 빌붙어 먹을지. 이 귀걸이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참에 한번 확인 들어가야겠네.”
나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두드렸다.
톡톡.
[나: 뭐 하냐.] [최설아: (……)] [나: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도 있으니까. 시간 되면 내일 좀 보자.] [최설아: (……)]이마가 화악-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바로 치솟는 화를 삭여 냈다.
그래, 밤이 늦었잖아. 답장 좀 못 할 수 있지, 암. 그리고 퍼뜩 칼답이 와도 그거대로 좀 그렇다. 연인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 20분이 지난 즈음에.
롤린~
[최설아: (사진)]피 칠갑을 한 최설아가 담긴 사진이 날아왔다.
* * *
으슥한 외곽, 암흑에 젖어 든 장소.
쇠사슬로 포박된 최설아를 중앙에 두고서, 스물이 넘는 빌런들이 빙 둘러쌌다. 덩치 큰 장정 둘은 입구를 지켰다.
뚜벅― 뚜벅― 검은 코트를 걸친 남자가 중앙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최설아 무릎 앞에서 멈추는 발소리.
목에 힘이 풀린 최설아의 눈엔 남자의 구두 끝만 담겼다. 입술을 타고 똑똑 흐르는 핏물이 구두 부리에 떨어졌다.
“야, 최설아.”
“…….”
음울한 목소리가 최설아의 간담을 훑었다. 그녀가 대답이 없자 남자는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박쥐에다 머저리라도 그렇지, 우리를 배신하고 무사할 줄 안거야? 뭐, 아카데미 안에 있으면 우리가 못 잡아 낼 줄 알고?”
퍽! 본인 피가 묻은 구두 부리가 최설아의 배에 꽂혔다.
“커헉.”
최설아가 크게 신음했다. 단순한 발길질인데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내장이 상했는지 핏덩이를 게웠다.
“얼씨구? 빌런 가오 상하게 엄살은. 머리 들어. 아고르 님이 서거하셨어도 아직 마력 좀 남았잖아. 퍼뜩퍼뜩 회복해.”
장갑 낀 손이 최설아의 퉁퉁 부은 뺨을 짝짝 쳤다. 그는 그대로 머리채를 꽉 쥐어 뒤로 젖혔다.
“…….”
“쯧- 이거 혀 씹어서 말 못 하는 거 아니야?”
남자가 고개만 뒤로 비틀었다. 그는 노트북을 두드리던 부하에게 뾰족하게 소리쳤다.
“조금 전에 사진 보낸 새끼한테 연락 온 거 없어? 저장된 이름이… ‘★나의 주군★’? 뭐 하는 새낀진 몰라도 무조건 찾아내. 안 왔으면 역추적이라도 해서 잡아내라.”
“추적 중입니다! 근데, 이게 호아킨 아카데미 교관 전용 단말기라서 보안 뚫기가 영 신통치 않네요. 상대 쪽에서 연락이 먼저 오면 모를까.”
남자가 혀를 차며 뇌까렸다.
“그거 못 뚫으면 이 새끼랑 사이좋게 네가 여기 묻힐 거다. 어떻게든 그 새끼 데려와.”
“예, 옛!”
하아- 하아-
최설아는 숨이 고르지 못했다. 입술이 터져 말도 안 나오고, 오른쪽 눈은 시퍼렇게 멍울진 상태였다. 코끝엔 죽음의 잔향이 맴돌았다.
“숨 쉬어, 숨. 최설아, 너 같은 배신자가 이렇게 곱게 뒈지면 안 돼. 뒷맛이 안 좋다고.”
우그러진 시야에 차갑게 조소하는 남자의 얼굴이 맺혔다. 기괴하게 삐쩍 마른 풍모는 한기를 풍겼다.
며칠 전부터 돌연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쏟아졌다. 최설아는 평범한 스팸, 보이스 피싱, 보험 문자로 여겨 차단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치솟는 위화감에 눈에 띄는 행동을 줄였다. 그 때문에 오늘, 주군과 시선이 마주치고도 눈인사만 건네는 무례를 범했다.
‘빌어먹을.’
하지만 오늘 저녁, 납치당하고서야 그 문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이 한 단체가 보낸 사망 통보였음을.
빌련 연합. 짐승에 가까운 빌런들을 그나마 단체를 꾸리게끔 하는 연합체.
그들이 히트맨 부대, 벤테타(Vendetta)를 보냈다. 배반자인 자신을 처단키 위해.
안일했다. 예상 못 한 바는 아니었다. 다만 호아킨 아카데미의 포근함에 너무 녹아들어서일까.
최설아는 자신이 빌런이었다는 걸 잠시 망각했다. 어느새 스스로를 김 교관으로만 인지했다.
‘…젠장.’
벤테타는 배신자를 절대 놔두지 않는다. 사냥개처럼 추적해, 끝내 투견처럼 물어뜯는다.
이들은 단순히 사냥감을 죽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지리멸렬하게 타깃을 농락한 뒤 처형한다. 비명과 몸부림을 음미하며.
빌런 사이에서도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강함을 떠나서 벤테타는 살인과 고문에 특화된 미친 새끼들의 집합소였다.
특히나, 벤테타의 우두머리인 이 녀석. 빌런이기에 본명은 없으나, 해골처럼 생긴 면상과 악명이 맞물려 ‘리퍼’라 불렸다.
이놈은 데미안, 그 교수 코스프레 새끼와 같은 2군단장의 심복. 근데 이놈의 손속은 교수와는 궤를 달리하는 잔악함을 자랑했다. 리퍼에 비하면 교수는 개념인이었다.
“…쓸모없는 새끼.”
리퍼는 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움푹 꺼진 눈덩이와 날카로운 두상이 두드러졌다.
리퍼가 다시 최설아를 불렀다.
“최설아.”
“…….”
“아니, 호아킨 아카데미니까 김 교관이라 불러 줘야 하나? 좋게 좋게 실토하면 얼마나 좋아. 너 빼고 아카데미에 잠입한 빌런이 전부 죽었어. 경위만 말하면 된다니?”
최설아는 터지고 시퍼래진 입술로 되물었다.
“마하며는 사려어 주울 겅? (말하면 살려 줄 거?)”
최설아의 말에 리퍼의 눈썹 아래 음영이 짙어졌다. 잠깐 인 침묵.
바로 그다음, 리퍼가 이마를 감싸며 실소했다.
“푸하핫! 그 와중에 제 살길 찾는 거 봐. 이거 완전 순병신이었네? 야, 넌 여기서 뒈져. 무조건. 대신 무슨 일이 있었고, 왜 배신했는지 술술 실토하면 어느 정돈 참작해 주지. 팔다리만 자르고 죽여 줄게.”
“…아아.”
리퍼가 머리채를 놓자 최설아의 머리가 푹 떨구어졌다. 그녀는 푹 조아린 채로 어깨를 떨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털을 쭈뼛 세우는 이 감각이 리퍼 때문이라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이 날것의 느낌은…….
최설아의 푸르죽죽한 입술이 씰룩였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리퍼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이거, 원. 망가졌네. 오랜만에 재미 좀 보나 했더니. 리퍼가 그리 중얼거리던 순간이었다.
서걱―!
입구에서 울리는 한 번의 파육음. 퉁퉁- 덩어리가 떨어지는 소리는 한 번에 두 개였다.
스무 쌍의 눈이 약속한 것처럼 입구를 향했다. 때맞춰 풀썩- 어깨 위가 허전한 몸/체 둘이 쓰러졌다.
사부작- 낙엽 떨어지는 소리. 입구 저편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없다. 좀 더 정확히는 감각이 감지를 거부했다.
“…보스! 신호 추적에 성공했습니다! 근데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신호가 이 근방 20M 내외로 잡-”
노트북을 두드리기 열심이던 빌런이 한 박자 늦게, 시선을 돌렸다. 검광이 어둠을 뚫고 살갗을 후볐다.
푸칵-
‘이게 뭔 소립니까, 보스?’
노트북 빌런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독한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목 주변이 알싸했다.
노트북이 시선을 살짝 내렸다. 웬 길쭉한 작대기가 턱밑에 틀어박혀 있었다. 30% 할인 스티커와 다이쏘 로고가 새겨진 칼자루였다.
‘?’
사태를 인지함과 동시에 화등잔만 하게 열리는 눈동자. 노트북의 동공이 전방위로 빙글 구르더니 눈자위가 드러났다.
“…….”
“…….”
순식간에 생명 반응 셋이 사라졌다. 두 놈은 어깨 위가 허전해졌고, 한 놈은 모가지에 칼이 박혀 나동그라졌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최설아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이내 이상을 느낀 리퍼가 최설아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사슬에 묶인 최설아가 바닥에서 몇 센티 떴다. 리퍼가 움켜쥔 최설아를 흔들었다. 허공에서 대롱대롱 움직이는 길쭉한 다리선.
“이 씨발, 웃어? 이 개같은 새끼가! 이거 뭐야!? 최설아, 네가 지랄한 거냐?”
자홍색 앞머리가 최설아의 눈을 커튼처럼 가렸다. 입가에 가느다란 호선이 히죽- 높이 그려졌다.
“긁어 아라? (그거 알아?)”
최설아의 입이 열렸다. 윗니 아랫니를 끈적하게 잇는 핏물. 그녀는 환히 웃고 있었다.
반면 벤테타 전원이 반사적으로 장갑을 벗어 던지고 캐스팅을 준비했다.
공포를 조성하기만 했던 히트맨들이 돌연 두려움에 휩싸였다.
“다들 적의 정체를 파악하기 전까진 대기해라!”
“염병! 갑자기 이게 뭔 개같은 상황이야!”
그들은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등을 대고 옹기종기 뭉쳤다.
인간성 없는 빌런일지라도 생존 본능 앞에선 한마음 한뜻이었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걸음. 곧 침입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 사시미 검성?”
칠흑처럼 새카만 흑발과 흑채의 소년이 들어섰다. 흡사 어둠이 어둠을 낳는 듯한 장면이었다.
“…으히히.”
앞머리 사이, 최설아의 동공에 광채가 스쳤다. 눈꼬리에 빌런이었을 적의 자신만만했던 고리눈이 걸렸다.
그녀가 거친 숨을 누른 뒤, 간신히 부르튼 입술을 움직였다.
“느히 좉돼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