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4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49화(148/300)
149화 나한테도 의리라는 게 있다 (2)
“제기랄, 갑자기 저 새끼가 왜 튀어나오고 지랄이야!?”
사시미 검성, 강검마. 그는 빌런 연합에서도 널리 알려진 생도였다.
리퍼 자신의 주군이신 2군단장 쿠아른 님이 눈독을 들이시는 생도. 그 관심은 쿠아른 님께서 당신의 그릇으로 쓰기 위함이셨다.
확실히 강검마는 쿠아른 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을 만했다. 그 결과물이 리퍼의 발밑에 세 개나 있었고.
두 놈은 목이 달아났고, 한 놈은 모가지에 칼이 박혀 나자빠졌다. 기습이라 해도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회칼을 귀신처럼 놀려 상대를 싹둑싹둑 썰어 재낀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휘이잉-
강검마가 등장과 함께 보인 손속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러나 경악은 잠시, 벤테타는 금세 전열을 가다듬었다. 각자 장갑을 벗어 던진 뒤, 손가락을 튀길 준비를 끝냈다.
그들은 빌런 연합에서 손꼽히는 정병인 벤테타였다. 이런 상황이 흔하진 않았으나, 처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 큰 어른에 프로 히트맨이 칼 좀 쓰는 애송이 하나에게 쫀다니, 쪽팔려서 어디서 얼굴이나 들고 살겠나. 솔직히 애 하나 갖고 다구리 치는 시점에서 이미 가오가 잔뜩 상했다.
별 수 있나. 다년간 이 짓거리를 해 오면서 배운 건, 방심은 금물이라는 것. 그리고 저놈은 되도록 생포해야 하는 타깃이기에, 여럿이서 덮치는 게 효율적이었다.
후- 리퍼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쭉 쓸어 넘겼다. 장갑에 묻은 피를 왁스처럼 발라 머리카락을 고정했다.
리퍼가 벤테타 전원에게 명령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각자 속성별로 구성 맞춰서 전열 맞추고. 사시미 검성 저 새끼 실력이야 다들 영상으로 봤을 테니, 요령껏 공격해.”
“보스, 저 씹새끼 고문하지 말고 그냥 냅다 죽이면 안 됩니까?”
“아니, 웬만하면 생포해라. 만약 죽일 것 같으면, 사지 멀쩡한 상태로 죽이고. 그냥 고급 상품이라 생각해. 생채기는 최대한 덜 나게. 어쩌다 빵꾸 두세 개 뚫리는 건 괜찮다.”
“옛!”
…으히히히히히히히.
사슬에 뒤엉켜 콘크리트에 축 늘어진 최설아. 그녀가 처녀 귀신처럼 음산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피로 물든 시뻘건 치아까지 드러내는 게 영락없이 실성한 광년이었다.
“보스, 이 새끼 웃는데요?”
“냅 둬. 대가리가 맛이 갔나 보지. 그리고 최설아 이거, 전투에 휩쓸리지 않게 해. 연합 본부로 데려가서 개인적으로 손 좀 봐 줘야 하니까.”
“옛!”
“저 고른 옥수수들부터 해서, 손톱 발톱 모조리 뽑아 버리든지 해야지, 원.”
이어서 리퍼는 강검마에게 시선을 던졌다. 삐쭉 곤두서는 눈매. 그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새파란 핏덩이 새끼가, 지금까지 양학만 해 와서 어깨가 아주 치솟지?”
“…….”
리퍼의 안광이 뱀의 비늘처럼 번들거렸다.
“걱정 마라, 우리는 프로거든. 갈기갈기 찢어서 밑천을 들춰 줄게. 재밌을 거야, 아주.”
“…….”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는 강검마. 그에 기세등등하게 말하던 리퍼가 움찔했다.
‘염병, 저딴 게 열일곱이라고?’
저 감정이 식어 버린 눈깔하며, 완전히 맛이 간 새끼 아닌가. 온갖 미친놈을 만나 왔지만, 이토록 살벌하게 나사 빠진 놈은 오랜만이었다.
더구나 조금 전만 해도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던 최설아도 강검마가 오자마자 광년처럼 처 웃기 시작했다. 미친 연놈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이 떠올랐다.
리퍼가 허리춤에서 리볼버를 뽑았다. 그에 강검마의 눈이 약간 가늘어졌다.
‘…총?’
‘기적의 가호 M’의 세계에서 화기는 취급이 좋지 못했다. 무장과 비교하면 효율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무장을 잡고 가호를 발현하면 소리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세상인데, 뭣 하러 저딴 철붙이를 쓰겠나.
화약 냄새 때문에 흔적이 쉽게 남고, 유지비도 빌어먹게 비쌌다. 탄알 하나당 돈 100만 원이었다. 왜냐면, 수요와 공급 둘 다 적으니까.
총기 규제에 가장 좋은 방안은 총이 아닌, 총알의 값을 올려 쳐 버리는 것이었다.
강검마가 바싹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리고 무라사메와 만년서리를 단단히 붙들었다.
‘무장의 방편으로 총을 쓴다는 건가…….’
빌런은 무장을 다룰 수 없었다. 무장은 영웅의 가호와 공명하는 무기였다. 빌런은 무장에 마력을 살짝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게거품을 물고 쓰려졌다.
하여 몇몇 빌런은 총기를 자신들의 무장으로써 활용했다. 이른바, 마탄(魔彈). 화약 대신 마력을 주입해 격발할 시, 탄환 속도와 위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었다.
휘리릭-
리볼버의 실린더가 돌아갔다. 리퍼는 여유롭게 총알을 구멍에 꽂아 넣은 뒤, 실린더를 닫았다. 그가 음충맞은 미소로 말했다.
“강검마, 네가 어떻게 싸우는지 우리도 나름 연구했거든. 너 존나 빠르더라? 근데 영웅이라도 아무리 빨라 봤자야.”
리퍼는 어깨를 으쓱이고서 재차 입을 놀렸다.
“이마에 구멍 뚫리기 전에 하나 알려 주마. 공(空) 속성 마법으로 공기의 저항을 없앤 총탄의 속도는 기본 탄속의 10배. 기본 소총이 마하 3 정도니까, 내 마탄은 음속의 30배다.”
강검마에게 리퍼가 총구를 겨누었다. 엄지로 공이를 당기고, 검지를 방아쇠에 걸었다. 입가에도 히죽 비릿한 호선이 걸렸다.
“그래도 웬만하면 산 채로 데려가야 하니까. 알아서 요리조리 피해 봐라.”
강검마가 스냅을 주어 칼집을 털었다. 그와 동시에 탕-! 리볼버의 총성이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스르르르르르릉-
[검신(劍神)의 가호가 발현됩니다.]한 뼘 뽑힌 칼날이 빛을 흩뿌리더니, 곧장 강검마가 내달렸다.
멋진 구덩이가 뒤엉킨 바람이 혓바닥처럼 뺨을 핥는 가운데, 강검마는 문득 의문이 어렸다.
과연 검신의 가호가 문명의 이기보다 빠를지. 문득 그게 궁금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최설아가 정신 놓고 웃으며 배경음을 깔았다.
* * *
투다다다다다닥!
빌런들이 발소리를 쫓아 마법을 갈겨 댔다. -물, 불, 돌- 따위가 뒤엉켜 -바닥, 천장, 벽-을 짓이겼다. 안 그래도 어두침침했던 콘크리트가 새카맣게 됐다.
“우측이다! 우측! 폭격!”
한 번의 손짓. 공터의 구석을 마법이 가득 채워 넣었다.
‘이 새끼들, 빌련 주제에 합이 너무 잘 맞는데?’
강검마는 직감적으로 이들이 보통내기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예의 빌런 무리는 허둥지둥 허접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놈들은 보스인 리퍼의 말 짓 손짓에 손가락을 기민하게 튀겨 댔다.
진열도 체계가 딱 잡혀 있었다. 프로라 들먹거리던 게 마냥 허세는 아니었다.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네.’
각기 전투가 아닌 일대다전이었다. 다행인 건, 장소가 그리 넓지 않다는 점. 사방이 꽉 막혀 밟을 곳이 많아서 할 만하다는 것 정도?
그마저도 시간이 뒷받침되어야지. 회피하는 데만 벌써 20초가량 허비했다. 납도, 발검을 감안해도 촉박했다.
남은 시간은 50초. 가능한 그 안에는 모조리 해치우자 마음먹었다. 숨어 있는 적이 있거나, 호출할 가능성을 완전히 지우긴 힘들었다.
어째서 이들이 이곳에 모여 있는지 목적을 몰랐다. 보아하니 저희끼리 간만에 정모나 동창회 겸 모인 건 아닐 테고, 왜일까. 돌연 불길하디불길한 상상이 스쳤다.
…정말 만 분의 일 확률로, 이들이 군단장 중 하나를 강림시키기 위한 의식 중이었다면? 무인도 생존 훈련 때도 전조 없이 5군단장 아고르가 강림했었으니까.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일단 최설아가 이 빌런들과 한통속이 아니란 건 확인됐다. 저기 피떡이 된 채 행주처럼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같은 편이라면 저리 복날 개 패듯 두들기진 않았겠지. 최대한 빨리 모조리 썰어 버린 다음, 바로 최설아를 데리고 간다.
‘어떻게 접근하지.’
거리부터 좁혀야 한다. 저들은 마법사, 총잡이 원딜인데 반해 이쪽은 칼잡이였다. 거리 싸움에 밀리면 답도 없었다.
강검마는 온갖 마법을 회피하며 두뇌를 굴렸다. 불화살과 물 송곳, 가시 돋친 돌 조각이 주변을 할퀴어 콘크리트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뒤늦게 터지는 산발적인 폭음.
삐이-
귓전에 맴도는 이명. 그 느릿한 시간 속에서, 팽이처럼 회전하던 강검마의 두뇌가 정지했다. 진영에 어떻게든 유격을 만들어 한 번에 몰아친다.
으레 체계가 잘 잡혀 있을수록 변수에 취약한 법이다. 전생에 군 생활을 통해 배운 작은 지혜였다.
적의 수는 총 16이었다. 다섯 명씩 세 팀. 1팀이 강검마의 시야를 어지럽히고, 2팀이 동작 범위를 좁혔다. 마지막 3팀은 강검마의 사각을 깎는 데 집중했다.
〈1팀〉
/ 리퍼 \
〈2팀〉――〈3팀〉
최설아
한 팀당 꼭짓점을 도맡아 세모꼴의 형세를 취했다. 이 세 팀 전부가 허술하지 않고 단단했다.
개중에서 가장 거슬리는 건, 역시나 중앙의 총잡이였다. 부하들을 고기방패로 세우고 얍삽하게 총질해 대는 꼴 하고는. 이래서 총보다 칼이 좋았다. 칼질은 훨씬 정직하고 낭만이 있으니까.
전투가 어지럽게 흘러가던 중, 총잡이가 방아쇠를 당겼다.
철컹- 타-ㅇ!
리볼버의 총구가 불을 뿜기 전, 강검마가 먼저 움직였다. 마하 30이란 극초음속의 총알을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총잡이의 검지가 깔짝일 때, 맞춰 움직인다.
ㅇ-앙!
강검마가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탄알이 그의 뺨을 훑고 지나갔다. 빗맞은 총알이 뒷벽에 박혔다.
“…….”
얕게 그어진 생채기에서 피가 조금 배어 나왔다. 뺨을 쓱 쓸어 보는 강검마. 그가 오만상을 구겼다.
그 장면에 리퍼는 어이가 없었다. 어지럽게 빗발치는 마법을 요리조리 피하는 동시에, 마탄을 피한다고? 그것도 전후좌우가 꽉 틀어막힌 판에?
회칼을 잘 다루는 걸 떠나서, 그냥 전투 센스가 미친놈이었다. 거기다 저놈은 혼자면서 살금살금 달려들려 간을 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하도 지그재그로 움직여 대서 조준점도 좀처럼 잡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마구마구 쏴 대기엔 잔탄이 넉넉지 못했다. 열 발 썼으니 이제 열 발 남았다.
‘제기랄, 벌써 천만 원이 녹다니!’
그때였다.
“이런, 씹.”
…캐스팅하던 빌런 한 명의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하도 열심히 튕겨 땀이 차 삑사리가 난 것이다.
강검마의 동공이 번뜩였다. 그는 품 안에서 고이 잠자던 다이쏘 사시미를 뽑아 투창처럼 던졌다.
“억!”
단말마의 신음. 명치에 칼침 주사를 한 방 맞은 빌런이 꿈틀- 풀썩- 쓰러졌다.
! ! !
전우였‘던’ 것을 향해 굴러가는 눈동자들. 쇄도한 칼날이 그들을 전우와 같은 곳, 요단강으로 보내 주었다.
눈알 뒤집힌 시신들이 픽픽 허물어졌다. 눈 깜짝한 사이 진형에 빈 곳이 생겼다.
“…염병?”
리퍼의 가슴 밑바닥에 미약한 감정이 피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조바심을 일으켰다.
빠득 어금니를 간 리퍼가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겨 댔다.
칠컹- 탕-! 탕 탕 탕탕-!
실린더가 뱉어 낸 탄피가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마구잡이로 쏘아진 5발의 탄환. 궤도를 읽어도 회피 불가한 탄속이었다.
그 순간, 강검마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의식이 뚝 끊기고 본능이 몸을 움직였다.
탓- 강검마의 발이 벽면을 살포시 밟았다. 그리고 천장을 향해 튀어 올랐다.
빙글- 천장에 발이 닿기 직전, 공중에서 반 바퀴 공중제비를 돌았다. 이윽고 발바닥이 천장에 붙었다.
그 상태로 강검마가 사시미를 한 다스 꺼내 뿌려 댔다. 이따금 회칼끼리 허공에서 맞물리고, 튕겨 기상천외한 각도로 낙하했다.
은빛 칼날들이 장마철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억!” “악!” “칵!” “끅!”
벤테타의 포위망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남은 목숨은 리퍼 한 명이었다.
‘…염병!’
리퍼는 속으로 욕을 뇌까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오른손이 다급히 허리춤의 탄창을 더듬었다.
“악, 씨발!”
쇠사슬에 칭칭 묶인 최설아가 덥석 그 손을 깨물었다. 그녀는 눈짓 턱짓 섞어 가며 강검마에게 외쳤다.
“찌익음이헤효! (지금이에요!)”
“이 미친 새끼가! 아까 그냥 확 죽여 놨어야 했는데.”
리퍼가 왼손을 쳐들어 최설아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어째 손목에 허한 바람이 스쳤다. 그는 눈을 왼쪽으로 굴렸다.
“?”
있어야 할 왼손이 사라진 손목에선 핏줄기만 몇 가닥 솟구쳤다.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리퍼의 머릿속은 백지였다.
“너, 너너너, 너 노트북! 어,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진즉에 뒈졌던 노트북이 노끈 감긴 사시미를 꼬나 쥔 모습. 방금까지 강검마가 쥐었던 회칼인데, 언제 노트북 이 새끼한테? 아니, 애초에 모가지에 칼 꽂고 있으면서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노트북의 얼굴은 생기가 완전히 가신 게 산 사람이 아니었다.
부하였던 시체가 비틀비틀 사시미를 휘두른다니.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정신 나간 광경에 리퍼의 얼굴빛이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오른손은 최설아, 왼손은 부하에게 묶여 버린 리퍼. 골통이 멍해진 가운데, 강검마가 펄쩍 개구리 점프로 하강했다.
쐐애애애액!
공기가 찢기는 소리. 리퍼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그의 목전에서 강검마가 만년서리를 높게 들었다. 그리고 무심하게 수직으로 휘둘렀다.
서
걱!
칼날이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막힘없이 똑 떨어졌다.
총잡이의 표정이 멍해졌다. 번들거렸던 안광엔 공허가 드리웠다. Ø 모양으로 오므라든 입술이―
“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