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5화(15/300)
15화 아디토레 디 시칠리아 (4)
대련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15분.
절차가 복잡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다. 메디아는 꼭 아공간에서 해야겠냐 재차 묻긴 했지만, 결연한 내 태도를 보고는 선선히 아공간 대련을 허가해 줬다. 몸조심하라는 첨언을 덧붙이면서.
어차피 아공간 안은 현실의 영향권 밖이라 직접적인 외상은 없겠다만, 일종의 노파심이겠지. 참 어린애 같다가도 성숙한 면을 보여 주는 양면적인 매력이 있는 여자다.
아공간 대련의 룰은 간단하다. 반 배정 시험 때와 마찬가지로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
어차피 아공간 안은 아카데미의 가호를 입어 현실 개입의 영향권 밖인지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직접적인 외상은 없다.
살이 찢기고, 뼈가 튀어나와도 절대 죽지 않는다. 물론, 정신적인 내상은 본인의 몫이다. 가상이지만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원초적인 공포와 결부되기에.
‘뭐, 이기면 그만이니까.’
그냥 여유롭게 생각하기로 했다. 걱정부터 한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클로이가 무장도 빌려 줬다. 장미 무늬가 박힌 사시미 한 자루.
‘브랜드니까 다이쏘보다는 낫겠지.’
다른 손에는 여전히 다이쏘 사시미가 들려 있긴 했다.
생도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연무장 대기실인 이곳까지 들렸다. 싸움 구경이 아무리 재밌다지만, 반응이 이렇게까지 폭발적일 줄이야.
얼마 전까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지랄했던 것들이 무색할 정도다.
나는 맥 빠진 침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클로이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 때문에 내가 얽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한참을 옆에 서 끙끙거리는 클로이를 다독여 줄 겸 얼굴에 미소를 걸었다.
“클로이, 너 때문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래도.”
“정 미안하면 끝나고 저녁이나 맛있게 해 줘.”
클로이는 그늘진 얼굴로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연무장 대기실이 다시 정적에 가라앉으려 했기에 나는 아무런 말이나 내뱉었다.
“아까 보니 많이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오빠는 강해요.”
“클로이도 충분히 강하잖아.”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선홍빛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오빠는 아디토레 가문 역사상 독보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예요, 특히 암기를 다루는 데에는 가문 내에 상대가 없을 정도로. 이미 14살 때 어른들 사이에서 ‘밤 기술의 정점’이라 불렸어요. 물론, 검마 군도 충분히 강하지만, 아무래도 오빠는 실전 경험이 많은 암살자라…….”
“…밤 기술의 정점이라.”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만, 왠지 앳된 소녀가 그런 말을 하니까 묘하게 민망했다.
나는 상념도 털 겸 얼굴을 한번 쓸어내린 후, 시선을 돌려 사시미를 바라봤다.
늘 이런 식이었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국은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자조적으로 읊조렸다.
전생에 첫 스승님이 ‘너는 평생 칼을 쥘 팔자야.’라며 툭 던졌던 농이 생각났다. 그 인간도 내가 두 번째 삶에서마저 사시미를 들고 설칠 거라곤 예상 못 했겠지.
[지금부터 아공간 페어링을 진행하겠습니다. 해당 생도들은 연무장으로 나와 주십시오.]입학식 때와 같은 건조한 방송이 대련을 알렸다. 유례가 별로 없는, 생도 간의 아공간 내 전투라 그런지 괜히 기합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다녀올게.”
“…네.”
클로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힘없이 말끝을 흐렸다. 어째 싸우는 당사자는 나인데, 그녀가 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클로이.”
“네?”
기세 좋게 이름을 부르자, 클로이가 반사적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세상에 천재는 많아.”
“…….”
“하지만 결국 내가 이겨.”
* * *
연무장에 들어서서 주변을 살폈다. 그 많던 객석은 만석이었다. 얼추 네 자릿수에 가까운 인원에 혀가 내둘러졌다.
근데 좀 좆같게도, 고대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투기장 분위기라는 게 신경이 거슬렸다.
경기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금방이라도 엄지를 아래로 내리며 우- 하고 야유를 보낼 것 같았다.
‘어, 뭐야. 쟤네도 있네?’
그 와중에, 상단에 자리 잡은 성(星) 클래스 소속의 면면들이 눈에 띄었다. 창성가(家)의 레이첼, 절궁가의 사키 료조.
뜻밖에도 아벨 폰 니벨룽과 레온 반 라인하르트도 자리하고 있었다.
‘괜히 부담스럽네.’
나는 무장을 들고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가 녹스와 마주 섰다. 양손에 들린 첨예하게 날이 선 카타나 두 자루. 녀석은 내가 쥔 사시미를 흘끗 보고는 표정을 구겼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천출은 객기와 오만도 구분 못 하나 보군.”
녀석은 불쾌한 기색을 만면에 내비친 후, 질식할 만큼 짙은 살기를 장내에 흩뿌렸다.
‘미친 새끼.’
나는 목덜미를 긁으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원래 고수는 장비 탓 안 해.”
“그 건방진 혀부터 잘라 주마.”
녹스가 뿜어 대는 살기는 널찍한 연무장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일순 정지시킬 정도로 흉험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녹스를 처음 봤을 때부터 녀석은 격을 달리하는 강자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독이 바짝 오른 녹스를 마주하니, 사뭇 오싹한 기운이 등허리를 훑었다.
아디토레의 고유 가호 ‘까마귀의 가호’는 작중에서도 최상급 성능의 기척 차단 가호였다.
그리고 암살자인 만큼 분명 숨기는 수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녹스의 양손에 들린 적빛 날의 카타나는 S급 무장인 ‘홍륜도’가 분명했다.
잠시 녹스를 가늠하듯 바라보고 있던 와중.
[지금부터 아공간 장막을 전개합니다.] [영웅의 가호가 함께하기를.]보랏빛 아공간의 장막이 전개되고.
나는 칼을 뽑았다.
[검신(劍神)의 가호가 발현됩니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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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련이 시작되고, 몇 초가량 서로를 가늠하듯 바라보는 둘.
녹스가 표정 변화 없이 목만 살짝 꺾고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를 내며 내달렸다. 방금까지 눈에 보이던 잔상이 길게 붉은 선을 그리며 좁혀지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야, 저거?”
“보였어?”
“미친, 쟤가 진짜 범 클래스라고?”
녹스의 움직임에 구경하고 있던 생도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림자 가문인 아디토레의 진상에 대해 모르는 생도들이 태반이었기에, 생도들의 대부분은 하급반 간의 대련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 녹스의 속보를 눈으로 좇을 수 있는 생도는 성 클래스 중에도 손에 꼽을 정도. 대부분은 뭐가 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연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릿한 사람 형태의 그림자가 붉은 괘선을 그리며 강검마의 뒤를 노렸다. 등 뒤로 은근한 살기를 감지한 강검마는 재빠르게 위로 튀어 올랐다.
훅, 하고 공기가 썰리는 소리가 났다. 곧바로 붉은빛이 강검마를 쫓았다.
까드득
연속적으로 들리는 쇠붙이 간의 탁음.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스파크처럼 검격의 불똥이 튀었다.
두 인영이 믿기지 않는 속도로 서로를 향해 칼질해 댔다. 집중해서 보고 있었는데 둘은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곧바로 쇠가 터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객석의 귓전을 때렸다.
깡―! 깡―!
그렇게 살벌한 충격파가 울리는 몇 번의 공방이 이어졌다.
그다음 순간, 녹스와 강검마는 8~10M 정도의 거리를 벌렸다.
녹스는 당황했다. 클로이의 말마따나, 분명 보통 놈은 아니었다.
확실하게 절멸시킬 요량으로 중간에 ‘까마귀의 가호’까지 운용해 기척을 지웠건만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이 반응한다.
‘저 새끼…….’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너무 속도에만 연연했던 탓이리라.
처음에는 피죽으로 만들어 줄 생각이었지만, 녀석의 실력을 보니 쉽게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일격에 목을 베어 주마.’
녹스는 양손에 쥔 홍륜도에 손가락을 갖다 대 피를 매겼다.
붉은 검이 가일층 빨개졌다. S급 무장이자 아디토레의 비보인 ‘홍륜도’. 피를 매길수록 벼려지는 절삭력은 쇠조차 두부처럼 썰어 버린다.
딱딱하고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녹스는 비소를 흘리며 칼몸을 단단히 쥐었다. 칼이 주는 감각은 무엇이든 베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 반해 강검마의 무장은 부엌칼이었다. 다만, 분명히 싸구려 칼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손에 들린 칼날이 흉흉한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서늘한 기운에 녹스는 시선을 살짝 올려 강검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음영 진 차가운 눈동자가 녹스에게 고정되어 있다.
녀석은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상체를 숙였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 불안정한 자세. 총구를 겨누듯 서늘한 칼끝이 자신을 향해 치켜 세워져 있다.
강검마의 얼굴에 녹스는 흠칫 몸을 굳혔다. 피가 얼어붙는 기분. 태어나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 녹스를 휘감았다.
꾸구국⎯
사시미를 틀어쥔 강검마의 팔뚝에 혈관이 맺혔다.
호흡이 옅게 잦았다. 옅은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탕⎯!
강검마는 응축된 공기를 발판 삼아 몸을 총처럼 쏘아 냈다.
흙바닥에 벼락 한 줄기가 그려졌다.
“““어?”””
쾅, 하고 공간이 압축되어 터지는 우레 음이 뒤늦게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녹스는 왼쪽 어깨가 후끈한 걸 느꼈다.
카타나가 들린 팔 하나가 툭 하고 바닥을 굴렀다. 팔 한쪽이 나가떨어지자 붉은빛 동공이 동그랗게 수축됐다.
포착 정도는 가능했던 방금까지의 움직임과 달리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관중석을 메운 생도들의 몸에 일제히 닭살이 돋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비명이 목젖에서 멈췄다.
타다닥
멈추지 않는 발소리. 녹스는 발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틀었다. 하지만 잔상만 쫓을 뿐,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 씨발!”
순식간에 사시미를 든 그림자들이 시야를 깎아 먹듯 일순 녹스를 에워쌌다.
곧바로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벽력같은 일 섬이 한 점을 향해 모여든다. 보는 이 중 누군가의 입이 벌어졌다.
무언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시선으로 쫓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도저히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구경하고 있던 모든 생도는 말을 잃었다. 더 이상 감탄성도, 침음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연거푸 그려지는 검로가 흙먼지를 일으켰다. 흙먼지가 짙어질수록 비릿한 혈향이 생도들의 코끝에 감돌았다.
무정하게 쇄도하는 칼질에 몇몇은 신음을 흘리며 관자놀이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서걱―
생명이 깎이는 절명 음의 연속.
서걱―
쏟아진 피가 고여 웅덩이가 졌다.
서걱―
비명 섞인 외침이 연무장에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