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5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50화(149/300)
150화 나한테도 의리라는 게 있다 (3)
달밤의 혈전이 끝났다.
“…애고, 나 죽네.”
최설아가 앓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평소에 엄살을 입에 달고 사는 그녀였으나, 이번만큼은 진심이었다.
방금 리퍼의 손을 깨물고자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쥐어짜 냈다. 그 여파로 완전히 힘이 소강해 손가락조차 달싹이지 못했다.
최설아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온몸이 엉망진창이었다. 입술도 터지고, 오른쪽 눈덩이도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팔다리뼈도 뭐가 잘못됐는지 관절 방향이 묘했다.
그럼에도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환희가 치솟았다. 그야말로 죽었다 살아난 상황이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기쁨을 느끼겠는가.
최설아가 눈꺼풀을 슬며시 들었다.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참사가 펼쳐져 있었다.
생기 한 톨 없이 퍼석퍼석한 눈알을 드러낸 시체들. 다트 과녁판처럼 미간, 명치 단전 같은 급소에만 칼날이 꽂혀 있었다.
빌런들 사이에선 이런 말이 있었다. 벤테타에 찍힐 시, 선택지는 단 두 가지. 스스로 목숨을 끊든가, 고문당해 죽든가. 결국 두 선택지 전부 죽음으로 귀결됐다.
한데, 그들이 순식간에 음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갖가지 마법을 뒤섞어 공세를 퍼부었지만 전멸했다. 1분이 넘지 않은 찰나에, 단 한 명에 의해서.
최설아는 그나마 멀쩡한 왼눈으로 강검마를 바라보았다. 아스라한 달빛이 그의 등을 비추었다. 후광이 드리운 것처럼. 인두겁을 쓴 천사 혹은 악마의 모습이었다.
최설아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솔직히, 벤테타한테 목숨을 구걸하려 했었다. 정말 혹시라도 모든 걸 자백하면 살려 주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어 봤다.
그러나 최설아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삶에 대한 집착으로 벼려진 기감이 죽 닥치는 게 살길이라 알렸으니까. 그리고 그 판단이 죽음의 목전에서 자신을 구제했다.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히히- 자그맣게 웃던 중, 불현듯 최설아의 등골에 땀줄기가 쭉 흘렀다.
최설아는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력이 탁 풀린 채 사시미를 쥐고 있는 빌런. 파리 꼬인 생선처럼 눈이 흐리멍덩했다.
그에 최설아의 눈이 세 배가량 커지더니 기겁했다.
“꺅!”
최설아가 엉덩이 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이건 인간성을 팔아넘긴 빌런이고 나발이고, 본능이 거부했다.
시체가 움직인다니! 마법 중에서 저런 괴괴한 마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아니면 빌런 연합에서 비밀리에 연구한다던 흑마법? 그건가? 연합이 미친놈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
뭐가 됐든, 소름이 쫙 끼쳤다. 멀찍이 물러난 최설아는 웅크린 자세로 오들오들 떨었다.
그때 사시미의 핏물을 털어 낸 강검마가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최설아가 어버버 소리쳤다.
“거, 검마 님. 시체가 움직여요. 흑마법일지도 모르니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흑마법?”
“전에 어쩌다 들은 적이 있는데. 빌런 연합에서 원소 마법이 아닌, 독자적인 마법을 연구한다 들었거든요. 저거, 시체 움직이는 것도 그 일종일 수 있어요!”
최설아의 경고에 강검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라사메의 특수 능력을 흑마법이라 여기는 게 썩 달갑지 않았다.
‘근데 뭐, 쟤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암만 봐도 이건 흑마법인 사령술이었으니까. 맥락도 크게 다를 바 없긴 했다.
강검마는 대꾸 대신 노트북 빌런에게 다가갔다. 새파래진 안색과 회백막이 드리운 눈자위. O로 벌려진 입 주변엔 핏물이 검붉게 굳어 있었다.
확실히… 가까이서 보니 께름직하긴 했다. 내가 죽인 놈이 나를 위해 행동한다니.
다만 감상은 거기까지였다. 어차피 이놈도 빌런이었다. 죄악감 같은 걸 느껴 무엇하겠나.
애초에 윤리를 따지기엔 너무 멀리 오기도 했다. 지금껏 살인마저 서슴지 않아 왔다. 작금에 강검마의 신조는 지극히 단순했다.
악한 이는 생각한 다음 죽이고, 빌런은 주저 없이 죽인다. 매사에 책임감을 느끼다 보면 이 험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
앞으로 이 능력을 활용해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한다.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만 있다면 그깟 적의 시체를 부리는 게 대수인가.
상념을 마친 강검마는 무라사메를 회수했다. 그제야 노트북 빌런의 눈꺼풀이 탁한 눈알을 덮었다. 놈도 전우들과 손에 손잡고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졌을 테지.
최설아는 제 눈을 의심했다. 뭐지? 뭘 본 거지? 뭔데? ‘뭐’로 시작되는 의념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벅, 저벅.
최설아를 향해 강검마가 발끝을 꺾었다. 최설아는 소리 없이 입을 틀어막았다.
나름 잘 버텼던 몸에 탈력감이 엄습했다. 표현키 힘든 감각이 미친 듯이 전신을 건드렸다.
강검마가 최설아의 발 앞에 멈추어 섰다. 쇠사슬에 칭칭 감긴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대뜸 사시미를 뽑았다.
키이이잉-
쭈뼛 곤두서는 잔털들. 최설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다음 순간, 납덩이처럼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졌다. 그녀는 한쪽 눈을 빼꼼 떴다.
전신을 속박하던 철쇄가 깨끗이 잘렸다. 움직임에 자유가 생겼다.
‘어떻게 끊으신 거지?’
벤테타가 채운 것이기에 일견 평범한 쇠사슬이 아니었다. 속박 마법이 중첩된 것일 텐데. 강검마의 칼질에 손쉽게 절단났다.
혼란스런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강검마가 말했다.
“윗옷 벗어 봐.”
“……?”
최설아가 화들짝 헛숨을 삼켰다. 푸르스름 멍진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그녀는 눈동자만 올렸다.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는 강검마가 보였다. 그가 재촉하듯 말했다.
“두 번 말하기 귀찮다. 알아서 벗어.”
주군께선 진심이셨다.
“자, 자, 자 잠깐만요! 주, 주군이기에 싫진 않지만, 아, 아직 마, 마음의 준비가……! 아직 꼴도 이렇고.”
우물쭈물한 반응에 강검마의 입매가 비틀렸다. 그가 사시미 끝으로 최설아의 어깻죽지를 가리켰다.
“어깨 관절, 그거 대충 봐도 헐거워 보이는데. 그냥 내버려 두면 한쪽 팔로만 밥 먹어야 할 거다. 팔이 두 짝인 게 너무 많다 싶으면 그냥 그대로 두고. 쓸데없는 상상하는 거 보니까 딱히 치료해 줄 필요는 없어 보이네.”
“아아…….”
최설아가 짧게 탄식했다. 곧바로 그녀는 넙죽 고개를 조아렸다. 콘크리트에 닿은 이마에 냉기가 감돌았다. 그 자세로 그녀는 고해했다.
“불경한 상상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주군!”
“그 주군, 주군 거리는 거… 어떻게 안 되냐?”
21세기 지구에서 오래 살았던 강검마다. 주군이란 요상한 호칭은 영 거북했다.
“그럼 주인니―”
“걍 부르던 대로 불러. 각설하고, 후딱 하자. 남은 시간 얼마 없으니까.”
최설아가 조심스레 간청했다.
“…허락해 주신다면 잠깐만 더 이렇게 있어도 될까요?”
“…….”
강검마는 어이가 없었다. 냅다 절을 갈기더니 저대로 잠시 있겠다니. 설날에 세배하는 것도 아니고.
강검마는 그냥 이대로 떠날까 하다 이내 끄덕여 주었다. 고문의 여파로 살짝 맛이 갔겠거니 생각했다.
무엇보다 응급 처치를 미루면 최설아는 송장 +1이 될 것 같았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게 용할 정도니.
‘저봐, 엎드렸는데도 몸 비틀거리는 거.’
하나 최설아의 몸을 흔드는 건 아픔이 아니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이었다.
실로 몇 년 만에 느껴보는 기분. 어쩌면 빌런이 된 이후로 처음일지 모른다.
…그렇게 최설아는 한참 동안, 노면의 한기로 머리를 식혔다.
* * *
우두둑!
[재생(再生)의 가호가 발현됩니다.]“끼야-아아-악! 자, 자 잠깐 스톱! 너무 아파요! 저 죽을 것 같아요! 아니, 진짜 죽어요!”
“금방 끝나니까 가만히 있어. 저거 끊어진 사슬 재갈 삼아 물고 있든지. 혀 잘린 건 못 붙이니까, 입 좀 다물고.”
“아, 아, 지, 진짜 좀만 쉬었다가―!”
콰드득!
[전이(轉移)의 가호가 발현됩니다.]“―가아…….”
최설아의 동공이 뒤로 넘어갔다. 그녀는 벌러덩 눕더니 몸으로 바닥을 닦았다. 눈물 콧물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게, 생명에 지장은 없는 모양이다.
외과 수술 집도를 끝낸 뒤, 나는 손을 쥐었다 폈다. 뭔가 이질적이었다. 최설아의 회복력이 훨씬 더뎌졌다. 이젠 성장기 청소년보다 좀 나은 정도?
마력 공급자인 5군단장이 부재라곤 해도 이상했다. 눈에도 총기가 깃든 게 비단 인간과 비슷해 보였다.
‘…군단장한테 팔아넘겼던 인간성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하는 건가?’
잠시의 소란이 지나가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넌 어쩌다가 여기로 끌려 온 거냐?”
“아, 그건…….”
몸을 추스른 최설아가 일련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야기가 길었는데, 대충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었다. 뒷말 대부분이 푸념이기도 했고.
이야기의 골자는, 저 싸늘한 주검들이 빌런 연합이 보낸 히트맨 부대라는 것. 목적은 배신자인 최설아의 처단이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열기가 가시기 시작하는 시체들이 산재한 정경. 한순간 일은 불쾌함에 혀를 찼다.
‘어쩐지 좀 친다 했더니 벤테타였나.’
이들에 대해선 얼추 안다. 빌런 연합의 보복 전담반. 게임에서도 레온과 한 번 마찰을 빚는 집단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기억에 없다. 그냥 나쁜 놈들이 못된 짓 했겠지.
‘좀 골치 아프게 됐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빌런을 빌/런으로 만든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벤테타라면 상황이 좀 달랐다. 좀 더 정확히는 그 너머가 문제였다.
빌런 연합. 정산 중반쯤, 레온이 2학년 됐을 무렵에 등장하는 적대 세력이었다. 쉽게 말해 ‘기적의 가호 M’의 중간 보스에 해당한다.
레온이 그들과 본격적으로 대치하기 시작한 기점이… 레온이 레이 션을 벤 이후였다.
언더테이커의 수장. 정사에선 그 여자가 빌런 연합과의 대립의 도화선이었다.
참고로 기적의 가호 M에는 스토리 중간마다 분기점이 있었는데. 무슨 선택지를 고르냐에 따라서 서사의 방향이 바뀌었다.
단, 절대로 바뀌지 않는 체크 포인트가 몇 가지 있었다. 보통 엔딩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건들이었다.
이를테면, 빌런이 된 레이 션 토벌도 그에 속한다. 그녀의 죽음을 촉매로 빌런 연합이 준동하기 시작한다. 그 서막이 벤테타의 등장이었고.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레이 션을 벤 게 나다. 5군단장 아고르의 그릇으로 쓰였다는 변곡이 있었지만. 그녀가 레이 션인 건 분명했다.
‘설마 아발론 섬의 일 때문에 정사가 앞당겨진 건가……?’
상념이 이어질수록 내 표정은 짐짓 무거워졌다. 최설아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슬쩍 말을 꺼냈다.
“주, 주군. 혹시 저 때문에 빌런 연합에 찍힐 거라는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어차피 다 까발려진 거, 이참에 아카데미에서 좀 떠나 있죠. 뭐…….”
나는 최설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입은 헤실헤실 웃고 있었으나, 눈망울은 그렇지 못했다. 동공이 불안으로 떨리고 있었다.
“최설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핼쑥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녀석이 냉큼 대답했다.
“예, 예! 주군!”
나는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그녀가 총잡이의 손을 깨물었던 장면이 떠올랐기에.
온몸이 묶인 와중에도 덥석 물던 게, 집 지키는 개를 연상케 했다.
그냥 쥐 죽은 듯 누워 있어도 됐을 법한데, 최설아는 굳이 내게 협조했다.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모른다.
삶에 애착을 넘어 집착하는 그녀가 그런 행동을 했다니. 아직도 의아했다.
저의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 그렇기에 내칠 수 없는 것이다. 우군은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둬야 하는 법이니.
그리고 빌런 연합과의 대립은 무조건 맞이하게 되는 예언에 가깝다. 그때 최설아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한참의 침묵. 긴장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는 최설아에게 입을 열었다.
“그냥 지금처럼 아카데미에 있어.”
“…그렇지만 제가 남으면.”
파르라니 떨리는 목소리엔 만감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빌런 연합에서 너를 표적으로 정했으면, 어딜 가든 죽는다는 건 네가 가장 잘 알 거 아니야. 그리고 아까 보니까, 내 번호를 추적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테고.”
“…….”
“솔직히 생각해 봐. 호아킨 아카데미보다 더 안전한 데가 있냐? 그리고 그렇게 삶에 집착하는 애가 언제 그렇게 내 생각을 해 줬다고?”
“저는 진심이라고요!”
“됐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를 주군이라 떠받드는 그녀에게.
“너는 내 옆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