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5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51화(150/300)
151화 회장 선거 (1)
며칠 뒤, 아카데미의 뒤뜰.
“…부장, 네가 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아니, 애당초 1학년이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건 학칙상 불가능하지 않아?”
웨폰이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물어 왔다. 료조가 내 눈치를 한번 본 뒤에 대신 답해 주었다.
“그때 오우거 토벌 시험 치르기 전에 중년 교관이 말했던 특별 보상, 그게 회장 선거 출마권이었어.”
순간 흠칫 놀랐다. 이거 하 주임과 했던 비밀 협약의 위배가 아닌가?
…근데 생각해 보니 피차 알게 될 사실이긴 하다. 회장 선거가 시작되면 나나 레온이 회장 후보라는 것도 공연해질 테고.
이토록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는 게, 동아리 부원들끼리 끈끈하다는 방증이니까.
물론 이 자리에 하나 선배가 없는 탓도 있었다. 료조는 현재까지도 선배를 경계하고 의심했다.
둘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이 잠잠해졌다 싶었는데, 며칠 전부터 다시 점화되었다.
무엇이 계기였는지 료조에게 묻진 않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믿는 수밖에. 그만큼 나는 료조의 판단과 기감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생각에 잠긴 동안, 료조와 웨폰의 이야기가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솔직히 우리 부장이 회장에 출마하는 거 적극 찬성이야. 생각해 봐, 부장이 했던 일들을 생도들은 아무도 모르잖아.”
“…뭐, 사정이 얼기설기 꼬여 있다만. 틀린 말은 아니지.”
료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어떻게 꼬여 있든지 노고에는 그에 걸맞은 지위나 보상이 주어져야 해. 근데 부장은 딱히 그러지 못했잖아. 오히려 머저리 같은 새끼들이 출신 성분 갖고 멸시나 해 댔지.”
“…….”
료조가 침묵했다. 그 제스처의 뜻 역시 긍정이었다. 오늘따라 웨폰이 하는 말에 틀린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이건 좋은 기회야. 뭔 바람이 불었는지 부장이 능동적인데, 우리라도 도와줘야지. 안 그래, 사키?”
웨폰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료조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내 한숨을 푹 흘렸다.
“그래그래. 웨폰, 네 말이 맞다. 그리고 하나 말해 주자면. 나는 검마, 얘가 출마하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협조할 생각이었어.”
“…….”
가늘게 좁힌 눈매로 웨폰이 사키를 쳐다봤다. 그에 뭔가 찔린다는 얼굴로 그녀는 돌연 발끈했다.
“뭐, 왜, 뭔데 그렇게 봐!”
“아니, 그냥. 진짜 내가 알던 사키가 맞나 해서. 진짜 몇 달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바뀌나 싶어서. 양갱이만 입에 달고 살면서, 축 늘어져 있었는데 말이야… 어, 어?”
웨폰을 조용히 노려보는 사키. 순식간에 변한 눈빛에 웨폰은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눈빛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했을 무렵과 같았다.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처맞던 그날과.
‘…조용히 있으면 반은 간다는데. 웨폰, 너는 참 네 입으로 수명 단축하는 재주가 있어.’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다 입을 열었다. 하나 바로잡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일단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둘 건, 나는 명예 같은 거 때문에 선거에 출마하는 건 아니야. 정확히는 ‘학생회장’이라는 직책보다 그 권한인 협회 출입증이 필요해. 그것만 충족되면 회장이든 뭐든 나한텐 중요치 않아.”
사키도 이건 예상 못 했는지 양갱을 놓쳤다. 내 발언에 다소 충격을 받는 듯한 모양이다.
다만 여기까지 와서 부원들에게 저의를 숨길 순 없었다. 내 서포트를 자처하는 애들한테 그건 너무도 큰 결례가 아닌가. 정직하게 목적을 밝힌 다음, 대답을 받아 내는 게 맞았다.
무엇보다 난 학생회장 같은 번거로운 자리는 질색이다. 안 그래도 학업 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따라서 쓸데없는 정무에 치이거나 하는 시간 낭비는 결코 사양이다. 마지못해 맡아 줄 생각도 일절 없었다. 얻을 것만 딱 얻고, 튀는 게 내 계획이다.
두 시선이 내게 모인 가운데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마하는 건 아니야. 어찌 되었건, 협회 출입증을 취득하려면 일단 선거에서 승리해야지. 그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그게 우리 방식이잖아, 안 그래?”
단지 목적만 조정됐을 뿐,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가 말주변이 좋아서는 아니었고, 그간 쌓아 왔던 신임 덕이 컸다.
“…어쨌든, 이번 선거에서 이기긴 해야 한다는 건데. 생각해 보니까 좀 많이 빡세긴 하다.”
웨폰이 벅벅 머리를 긁었다. 복잡한 심중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표현됐다.
그가 난감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초 치는 거 같아서 이런 말 하기는 뭐한데. 하필 올해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선배들이 하나같이 쟁쟁하다는 소문이거든.”
“누구누구 나오는데?”
“일단 내가 알기로 현(現) 학생회장은 재출마할 거야. 그리고 확실친 않은데, 현 부회장도 회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있고. 아마 두 사람이 1, 2번이겠지. 나머지인 3, 4, 5번 전부가 3학년이라는 소문이 돌아…….”
웨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표정을 갈무리하고서 부연했다.
“사실 여기서 4, 5번은 허수야. 견제해야 하는 후보들은 3번, 2번과 1번. 특히나 1번으로 출마할 현 학생회장이 선거에서 가장 큰 적수일 거야.”
“아, 그 인간, 또라이로 유명한 선배잖아. 별명이 광전사였나? 한번 눈 돌아가면 교관 몇 사람이 달라붙어도 못 말린다며?”
사키는 검지를 관자놀이 옆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잠깐 내게 머물렀다. 그러더니 야트막이 중얼거렸다.
“…근데 우리 쪽도 만만치 않긴 하네.”
* * *
같은 시각. 엄숙한 공기의 회의실에 생도 일곱이 타원형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거나, 팔짱을 끼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저마다 자세는 다양했으나 표정에는 하나같이 거만함이 담겨 있었다.
“뭐야, 오늘도 회장은 안 왔나? 이번 학생회 마지막 정기 회의인데?!”
키가 큰 남 생도가 혀를 차며 뇌까렸다. 그의 불만 서린 눈은 원탁의 상석에 고정되었다.
호아킨 아카데미 학생회장의 자리. 어스름한 학생회실에서 유일하게 창을 등질 수 있는 의자. 그의 오래된 염원이었다.
한데 그런 자리가 1년 내리 비어 있었다. 정확히는 임자는 확실히 있으나 당사자가 당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앉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인 회장의 자리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었다.
그 점이 장신의 남생도, 현 부회장 덴 레인지가 빠득 이를 가는 까닭이었다.
‘저 신성한 자리는 네놈이 아닌 내 것이었어야 한다.’
덴의 눈에 탐욕이 차올랐다. 저 자리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여생도가 원탁에 턱을 괸 채 얕게 웃었다.
“부회장, 의자 좀 그만 쳐다봐~ 그러다 구멍 뚫리겠다. 그런다고 저 자리가 네 게 되니?”
덴의 시선이 퍼뜩 그녀에게 넘어갔다. 덴이 그녀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여생도의 이름은 시온. 학생회 총무부장이었다.
“시온, 너야말로 그리 말하면서 기호 3번으로 등록해!?”
“어머, 저 자리 벌써 네가 맡아 놨지? 왜 성질을 부리고 그래? 그리고 나도 엄연히 자격을 달성하고 후보 등록한 거야. 덴, 네가 이렇게 과민 반응하는 거 보니, 많이 불안한가 보다?”
덴의 관자놀이가 붉게 물들었다. 마음 같아선, 저 잔망스러운 턱주가리에 펀치 한 방 꽂아 넣고 싶었다.
하지만 덴은 주먹을 꽈득 쥐는 것에 그쳤다. 선거철이 코앞이었다.
저런 사사로운 도발에 일일이 반응하면 전혀 득 될 것이 없었다. 예민한 시기인 만큼 몸가짐을 조심히 해야 했다.
도발이 먹히지 않자 시온은 짧게 입맛을 다셨다. 주먹부터 나가는 저 인간이 이걸 참는다니. 회장 자리를 향한 욕망이 상상 이상인 듯하다.
‘하긴, 부회장만 저런 건 아니지.’
적과의 동침.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이 테이블에 앉은 일곱 중 자신을 포함해 다섯이 이번에 출마 예정이었으니.
시온은 다시 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까지 감고서 화를 삭이는 모습. 시온이 사근사근 말을 건넸다.
“부회장, 미안. 내가 좀 말이 심했지? 그냥 네가 너무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서 좀 놀려 본 거야~ 그러니까 표정 좀 풀고.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왕 될 거면 난 현 학생회장보다 덴, 네가 되는 게 낫다고 봐.”
“…….”
덴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슬그머니 치솟은 한쪽 입꼬리. 시온은 속으로 픽 웃었다. 단순한 녀석.
“그도 그럴 게, 학생회에서 유일한 2학년이면서 정기 회의에는 코빼기도 안 비치잖아. 심지어 오늘은 선거 직전 마지막 학생회 회의인데 말이야.”
“…그 점은 나도 마음에 안 든다. 그러나 현 회장의 치세가 호아킨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찬란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덴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이건가? 하여간.
시온은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유능한 건 인정. 근데 현 회장한테 괴물, 괴물 거리던 것도 작년까지지. 올해 봐 봐. 황금 세대라고 진짜배기 괴물들이 입학했잖아. 레온이라는 잘생긴 애랑, 또 검은 머리. 그 그, 이름이 뭐였더라…….”
그때였다.
“강검마.”
시온이 말하던 도중 모두가 움찔했다. 몹시도 오랜만에 들어 보는 목소리가 훅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시온이 고개를 삐그덕 대문 쪽으로 비틀었다. 한 남생도가 어느샌가 활짝 열려 있는 입구에 기댄 채 서 있었다. 그리고 병약함이 느껴지는 퀭한 눈을 마주쳐 왔다.
“회장……?”
시온이 멈칫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회장은 빤히 그녀를 응시하다 곧 시선을 거두었다.
“선배님들, 오랜만입니다.”
회장은 느릿한 걸음으로 회의실에 입장했다. 그러고는 상석에 털썩 기대앉았다. 그가 무심한 표정으로 대뜸 본론을 말했다.
“다들 제 자리를 뺏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 말씀드릴게요. 오늘 협회를 통해 전달받은 건데, 이번 회장 선거는 2, 3학년만 출마하는 게 아닙니다.”
“……!”
면면에 당혹감이 차오르는 가운데 회장만 홀로 태연했다.
“방금, 시온 선배가 언급하신 차기 용사 뭐시기랑, 사시미 검성 강검마. 두 명이 출마하니 알아두세요. 그럼 저는 전달 끝났으니까 이만 퇴장합니다, 수고들 해요.”
그 마지막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원탁이 발칵 뒤집혔다.
* * *
…저녁. 호아킨 아카데미가 위치한 도시, 원주의 어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안면에 검상이 아로새겨진 여인이 나이프로 고기를 그었다. 고기에서 배어 나오는 핏물이 그녀의 입술을 축였다.
여인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음~ 역시 한우라 그런지, 고기 맛이 다르네~ 아카데미 주변이라 주방장 조리 솜씨도 일품이고.”
여인과 마주 앉은 사내가 산적처럼 고기를 뜯었다. 영 못마땅하다는 듯 사내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런 젠장, 이 자갈만 한 고기가 5만 원이라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확 여기를 엎고 말지.”
사내는 스테이크 한 덩이를 포크로 콕 찍어 피자처럼 돌렸다.
그에 여인이 한심하다는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
“제발 품위 좀 지키지? 같이 있는 사람 쪽팔리게 하지 말고.”
“너나 나나 빌런 주제에 뭔 빌어먹을 품위여. 우리는 이런 날붙이로 냅다 사람 찌르는 게 전문이지 이딴 고기 조각 써는 게 전문이 아니라고.”
“멍청한 새끼, 그따위로 처신해서, ‘디데이(D-day)’는 잘 준비했을까 싶네.”
이번에는 사내 쪽에서 코웃음 쳤다. 득의양양하게 제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내가 생긴 건 이렇게 생겼어도 연합에선 알아주는 지략파라고. 벤테타 새끼들 전멸한 거 확인도 할 겸, 마침 그 디데이 물밑 준비까지 마치고 온 참이다.”
여인의 입술로 향하던 포크가 정지했다. 허공에서 멈춘 고기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하얀 식탁보를 물들였다.
여인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사내를 흘겨봤다. 굵직한 자상이 불거지더니 뱀처럼 꿈틀거렸다.
“너 이 새끼, 또 무슨 병신 같은 짓거리 하는 거 아니지?”
“크하! 바로 살기부터 뿜는 거 봐. 너도 인간 행세 잔뜩 하지만, 결국은 우리 과라니까.”
“내용에 따라서 네가 고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대가리 쓰면서 입 놀려.”
사내가 소리 내어 웃었다.
“아카데미 학생회에 우리 측 첩자 한 명 있는 거 알지? 그 녀석한테 들었는데, 무슨 일인지 이번 회장 선거에 그릇 후보가 두 명 다 나온다더라.”
“…….”
“이거 우연치고 너무 아다리가 잘 맞지 않아? 우리 연합에서 준비한 디데이랑 회장 선거 날이랑도 딱 겹치고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날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거지. 혹시라도 한 마리 놓친다 해도, 남은 한 마리로 충분하잖아.”
사내가 도톰한 고기 두 덩이를 한꺼번에 입에 꾸겨 넣었다. 으적으적 꿈틀거리는 그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