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5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53화(152/300)
153화 회장 선거 (3)
끼이익.
팽팽한 긴장이 중회의실에 맴도는 가운데, 레온이 중회의실에 들어섰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말이 딱 어울리게끔.
그의 등장에 분위기가 한층 더 격화되었다. 조금 전까진 갈무리된 기세였다면, 지금은 몹시 노골적이었다.
특히나 키 큰 멀대가 유독 적대적이었다. 보는 눈만 없으면 바로 주먹이 나갈 것처럼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반면 레온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총들을 깡그리 무시했다. 그는 뚜벅뚜벅 다가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또 마주치게 됐구나. 검마 너랑 같은 후보라고 하니까 기분이 묘하긴 하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손을 맞잡았다. 무어라 대꾸할지 말을 고르지 못하다 이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은 싱긋 웃어 보이곤 나와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한참 동안 그는 가만히 시기 어린 시선을 받아 냈다.
‘선배씩이나 돼서 속 좁은 거 하고는.’
나는 혀를 차며 다시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미세하게나마 느껴졌던 마력의 흔적이 그새 사라졌다.
‘와중에 마력을 숨긴 건가.’
마력을 이토록 완벽히 숨기다니.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본디 기세는 뿜는 것보다 주워 담는 게 어려운 법. 마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역시 심상치 않으리라. 게다가 하필 생도 신분으로 위장한 빌런이 끼어 있다.
이래선 냅다 칼침부터 박아 넣을 수가 없다. 자칫 애먼 생도에게 칼질했다간 상황이 매우 꼬일 것이었다.
더구나 마력의 제어가 능수능란한 상대라면, 마력을 반대로 이용해 혼선을 주는 것 또한 가능할 테지. 명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신중을 기해야 했다.
나는 시선과 주머니를 더듬던 손을 거두었다. 그렇게 잠시 후, 성 과장과 하 주임이 단상에 올랐다.
“후후, 아, 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성 과장은 목청을 가다듬고서 마이크에 바투 가까이 섰다.
“일단 이 자리를 빌려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후보생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의례적인 멘트 후에 성 과장은 경연에 관해 설명했다. 경연을 치르는 이유나 취지로 서론을 말하길 수어 분.
이윽고, 성 과장이 본론을 꺼냈다.
“지금부턴 경연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영웅 협회가 여러 번 고민해 본 결과, 호아킨 아카데미의 학풍을 따르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성 과장은 영창수로 목을 축이곤 다음을 이었다.
“일대일 아공간 대련. 방식은 토너먼트입니다. 통상적인 토너먼트의 개념은 아니나 편의상 토너먼트라 칭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경기 내용은 외부에 일절 공개되지 않으니 추후의 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놈의 아카데미는 진짜 쌈박질만 가르치는 건가? 학생회장 후보를 가리는 자리에서마저 이러기야? 어이가 없었다.
”질문이 있다.“
멀대가 거만한 반말로 물었다. 성 과장의 눈썹이 잠깐 꿈틀거리나 싶더니 미소로 말을 받았다.
“네, 질문하십시오, 덴 레인지 생도님.”
“방식이 토너먼트라 말했는데, 우리는 총 7명. 홀수다. 그렇게 되면 한 명이 비게 되는데 협회는 이런 것도 놓칠 만큼 멍청한가 싶군.”
빈정거리는 말투에도 성 과장은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 빌어먹을 신분제가 문제였다.
나이가 이십 년 위라도 사회적 지위는 저 십 대보다 얕았다.
사실 지위뿐만 아니라 무력도 저 생도. 덴 레인지에 못 미쳤다.
덴은 현 부회장이자 3학년 중 최강 반열에 오른 실력자였다.
유수의 영웅 에이전시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왕왕 보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비록 2학년인 현 회장한테는 못 미친다는 게 오점이었지만. 이와는 별개로 덴 레인지가 비범한 생도임은 분명했다.
‘…인성과 실력이 반비례해서 문제지.’
다만, 이 또한 감안하고 아카데미에 파견 온 거다. 성 과장은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대답했다.
“예리하십니다. 우리 협회도 당연히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만약 한 명을 부전승으로 올리면 공정성을 해치는 것. 하여 저희 측에서 한 사람이 대련자로서 참가하게 될 겁니다. 단, 저희가 내세우는 대련자는 후보로 등록되지 않으며 그저 경연에만 참여한다는 점을 참고해 주세요.”
“질문~”
이번에는 가자미눈의 여생도가 척 손을 들었다. 그녀도 반말로 말했다.
“협회 측에서 대련자를 내세워서 공정성을 지키려는 의도는 좋은데~ 그쪽에서 우리와 견줄 수 있는 인재가 몇이나 될까 싶어서. 솔직히 말해서 협회 측 사람들, 다 실력은 고만고만하잖아.”
“하하,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시온 생도님. 생도 여러분이 실망하지 않을 대련자니까요. 하 주임, 앞으로.”
멀뚱히 뒤에 서 있던 하 주임이 앗, 소리를 내며 단상 앞에 섰다. 성 과장이 그녀를 소개했다.
“우리 기획 전략부의 유일한 전투 요원이자 스물여섯의 나이에 시니어급을 달성한 인재. 하나은 차석 주임입니다.“
”자, 자, 잘 부탁드립니다!“
“하 주임은 우리 협회 내에서 이름난 인재입니다. 물론 호아킨 출신은 아니나, 피나는 노력으로 뒤늦게나마 꽃을 피운…….”
“과, 과장님! 그건 너무 투머치라구요!”
이건 또 의외였다. 저 말갛게 생긴 사람이 시니어급 영웅이었다니. 스물여섯에 달성한 거면 실력은 충분하단 말이었다.
‘샤일이 스물에 시니어를 달성했다고 했었나……..’
하기야, 저 젊은 나이에 차석을 꿰찼으니까. 일견 엘리트 코스를 밟았어도 실력이 무조건 뒷받침돼야겠지.
나는 질문한 여생도 시온을 봤다. 그녀는 잔뜩 일그러진 눈매로 하 주임을 째려보고 있었다.
설마 시니어급 영웅이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 그 때문에 시온의 말문이 봉인당했다.
심통이 그녀의 볼때기에 차올랐다. 자신의 조롱이 먹히지 않은 것에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모습.
그러나 시온은 곧 새침한 콧소리를 내곤 팩 고개를 돌렸다. 성 과장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딱 봐도 학생회도 정상은 아닌 것 같고.’
잠시 묘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천장만 보던 선배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굳이 아공간에서 대련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냥 현실에서 싸워도 되지 싶은데. 원래 대련이라는 게 피 좀 나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내용도 비밀에 부쳐지는 거면 한두 명쯤 입원해도 상관없을 것 같고.“
“…….”
그 말에,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좀 아파 보이긴 해도, 가장 멀끔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는 말은 여간 미친 게 아니었다. 차라리 반말을 틱틱 뱉던 덴과 시온이 정상이란 착각이 일 정도로.
굳이 아공간에사 대련하는 이유? 당연히 생도들이 다치는 걸 우려한 처사 아닌가. 까닥 실수했다간, 팔다리가 잘리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난 녹스를 회 쳤으며, 마오 랑의 사지를 분리했다. 아공간이었기 망정이지 설혹 그 대련들이 현실이었다면… 상상의 영역에 맡기겠다.
한데 저 자식은 피 좀 흘리는 게 대수냐는 식이었다. 저 한마디에 쟤가 빌런으로 가장 유력하다 싶었다. 인간성이 마모되어 가는 나조차 저런 발상은 해 본 적이 없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성 과장이 수습에 나섰다. 그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려 가며 정론을 말했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재차 설명하는 것보다 어려운 게 있을까. 성 과장은 그 힘든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에 환자, 아니 현 회장인 김우진은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전혀 납득하지 못한 기색이었으나, 일단 알겠다는 의미였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성 과장은 십 분 새 십 년은 늙어 버린 듯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그는 여차여차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이해하신 듯하니 지금부턴 조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 * *
클래스에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료조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경연 내용은 뭐야?”
“아공간 대련으로 토너먼트를 한대. 그렇다고 결승까지 하는 일반적인 토너먼트가 아니라 둘씩 짝지어서 치르는 대련이래. 료조, 네 말대로 이대로면 후보가 너무 많으니까. 한 번 절반으로 팍 죽이고 가려나 봐.”
내 말에 료조가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녀는 절레절레 머리를 연신 흔들었다.
“진짜 이놈의 아카데미는 결국 선택한다는 방식이 폭력이야……? 근데 후보 인원이 홀수인데 토너먼트가 성사되나?”
“조금 전에도, 현 부회장이 너랑 같은 질문을 했어. 한 명이 빈다고. 그래서 협회 측에서 따로 대련자 한 명을 내세웠더라, 시니어급 영웅으로.”
“시니어급?! 그거 너무 밸런스 붕괴 아니야? 애초에 협회 쪽에 그만한 인제가 있을 리가.”
“하 주임. 그 사람이 협회 측 대표자래. 스물여섯에 시니어급을 달성한 인재라나.”
“…….”
료조가 침묵했다. 표정을 읽어 보건대, 얼추 ‘그 말랑카우처럼 생긴 여자가 시니어급이라고?’라 말하는 것 같다.
잠깐 혼란한 기색이던 료조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거기까진 알겠어. 근데 가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검마, 네 상대. 그것도 막 정하고 온 참이지?”
바로 핵심을 짚어 낼 줄이야. 속으로 짧게 감탄했다. 역시 료조의 눈썰미는 예리하다.
나는 대답 대신 공책에 한 이름을 적었다. 입 밖으로 꺼냈다간 누군가에게 들릴 수 있으니까.
그다음 순간, 공책 위로 향했던 료조의 눈매가 이지러졌다.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학생회 총무부장 시온이라.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안 좋다고 해야 할지…….”
“이 사람 누군지 알아?”
“대충은. 학생회 총무부장에다가 집안도 나름 좋은 편이라 얼굴은 익어. 뭐, 성가시긴 한데 고작 그런 거 때문은 아니지. 시온 이 선배, 엄청 집요하기로 유명해. 평소엔 헤실헤실하지만, 흉금이 구리기로 소문났거든.“
료조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무재는 그냥저냥이야. 결코 강하다고 할 수는 없지. 근데 그 얕은 무재를 덮을 만큼 집요한 성격이야. 무려 학생회 총무부장을 꿰찰 정도니까……. 어쩌면 검마 너한텐 이런 부류가 더 성가실 거야.”
료조가 이름 적힌 종이를 와락 구겼다. 얼굴에 졌던 그늘이 일순 가시더니 그녀는 픽 실소했다.
“그래도 뭐, 알아서 잘하겠지. 검마 네 걱정하는 것만큼 가성비 안 좋은 것도 없으니까.”
* * *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러, 경연 당일의 아침이 밝았다.
늘 그렇듯 사시미를 품에 쑤셔 넣었다. 쇠가 가슴에 닿자 박동처럼 사납게 공명했다. 쇠 울림을 잠시 느낀 뒤에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경연장은 아카데미 외곽에 위치한 별채였다. 내부의 모습은 연무장의 축소판이었다.
쉽게 비유해, 연무장이 실외 운동장이라면 이번 경연장은 체육관이었다.
별채는 발길이 끊긴 지 오래돼 보이나, 관리가 잘되어 깨끗했다.
제자리에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이었다. 슥- 신형이 망막의 왼편에 떠올랐다.
“안녕?”
시온이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까딱였다.
“예,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헐~ 완전 딱딱해! 그리고 나야말로 잘 부탁하지~ 무려 사시미 검성이잖아! 일전처럼 나도 막 한 번에 쓱싹 해 버리는 거 아니야? 그건 좀 봐줬으면 좋겠는데~“
심중을 가늠키 힘든 목소리였다. 칭찬 같으면서도 다분히 놀리는 어조였다.
그리고 저 미동 없는 표정. 뭔가 텅 비어 있는 공허가 눈에 맴돌았다.
“어머, 뭐야. 왜 그렇게 빤히 보고 그래! 부끄럽게!”
시온이 거리를 두며 물러났다. 나는 그녀를 응시하다 낮게 말했다.
“한 번에 끝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설마 봐주겠단 소리? 그럼, 좀 실망인데.”
시온은 앙증스레 고개를 갸웃했다. 감정 변화 없는 표정과 맞물려 위화감을 자아냈다. 언뜻 익숙한 이 감각에 나는 옅게 웃었다.
”선배님이 실력 전부를 드러내면, 그때는 또 모르죠. 마침 이번 대련에서 확인할 것도 생겼습니다.“
시온, 당신이 빌런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