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5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55화(154/300)
155화 회장 선거 (5)
첫 대련은 피바다였다. 내장이 흘러넘치고 사지가 갈기갈기 조각났다.
두 번째는 그나마 나은 피 분수였다. 레온의 검날이 사선으로 꺾이니 상대의 목이 매끈히 잘렸다.
물론 첫 번째보다 나았을 뿐이지, 아공간이 걷히기 전까진 솟구친 새빨간 분수 쇼를 구경해야 했다. 성 과장은 거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전투 요원은 아니나 유혈이 낭자하는 현장쯤은 질리도록 봐 왔다. 이젠 피를 보면서 선짓국밥을 싹싹 비울 수 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세 번째 대련이 막 끝난 지금. 성 과장은 기가 질려 버렸다.
차라리 아비규환의 현장이었으면 이토록 경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는 여태 셋 중에서 현장이 제일 깔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과장은 치미는 헛구역질을 꿀떡 삼켰다.
성 과장은 망연한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자줏빛 아공간 장막이 아직 개이기 전인 연무단. 모든 시선이 그 한 곳에 몰렸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신형과 너저분하게 허물어진 또 다른 육체. 강검마와 시온이었다.
성 과장이 어깨를 잘게 떨었다. 저 검은 머리는 혈전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했다.
무슨 꼼수가 있는진 몰라도 시온은 소리를 넘은 속도로 몰아쳤다. 인지의 사각을 노리며 칼을 내질렀다.
그러나 현재, 시온은 작살에 아가미가 뚫린 생선처럼 탁한 낯빛으로 식어 가고 있었다.
성 과장은 시선을 강검마에게로 옮겼다. 사시미에 묻은 핏물을 슥 닦아 내는 모습. 성 과장은 생각했다.
저 생도를 과연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호아킨 아카데미의 모토에 가장 걸맞은 인재긴 하다.
생명을 해치는 것에 무디며, 솜씨는 두말할 필요 없으니까.
다만 ‘영웅’이란 단어를 적용키엔, 울대가 꿀렁이는 기분이었다.
강검마는 너무나 기계적이었다. 오우거를 심장마비로 즉사시킨 것도 그렇고, 이번도 그랬다. 그의 칼질은 오로지 생명 반응만을 끊어 냈다.
‘저건 더 이상 기술의 영역이 아니다.’
성 과장은 손에 들린 서류철을 봤다. 여태 후보들의 히어로 포인트를 추산해 적어 놓았다.
『성명: 덴 레인지 ▶H.P.: 500 추정.』
『성명: 레온 반 라인하르트 ▶H.P.: 800 추정.』
『성명: 강검마 ▶H.P.: …….』
톡-톡- 펜촉이 종이에 뜨문뜨문 점을 찍었다. 머릿속은 바쁜 데 반해 펜대는 느릿하게 움직였다.
검제님 1,669점, 창성님 1,653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강검마의 추산치는.
‘최소 1,650 이상. 혹은.’
성 과장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
한편 강검마는 시온의 흐릿해진 동공을 들여다보았다. 생기가 가신 회백색. 혹시 몰라 머리통을 쿡 찔러 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강검마는 이번 대련에서 시온과 적당히 어울려 줄 공산이었다. 칼질 한 번에 시온은 픽- 반토막 확정- 그러면 그녀가 빌런인지 아닌지 확인이 불가능할 테니까.
그렇게 그녀의 밑창까지 탈탈 털어 ‘마지막 힘까지 발현시키는 걸 보고야 말겠다.’라는 계획이었는데…….
대련 시작종이 울리자마자 시온은 예상외의 속도를 뿜으며 달려들었다. 강검마는 직감했다. 저것이 그녀의 전력임을.
하지만 마력의 낌새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시온은 빌런이 아니다. 그럼, 더 봐줄 필요가 없다.
강검마는 시온의 신형을 슥 훑곤 금세 본체를 추려 냈다. 유독 하나가 살의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결국 이리저리 시야를 어지럽히다 뒤통수를 노리겠지. 식상한 수법이었다.
그간 숱한 악당들과 싸워 온 강검마로선 애들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상히 보내 주기엔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이 거슬렸다.
그래서 시온이 기습한 타이밍에 맞춰 역습했다. 올려 찌르기. 그에 시온은 머리통이 떡꼬치처럼 꿰인 채 즉사했다.
다만, 목 주변에 아가미가 생긴 시온을 보고 있자니 속이 거북했다. 강검마는 시온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장내를 휘둘러 보는 그의 눈이 돌연 멈추었다. 눈길이 닿는 곳엔 현 회장과 부회장이 앉아 있었다.
‘저 두 사람 중 한 명인가.’
이참에 싹을 잘라 낼까. 강검마는 짧게 고민하다 이내 걸음을 옮겼다.
자주빛 장막이 개이고, 진했던 혈향도 바람에 녹아들었다.
* * *
“…하 주임.”
성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하나은의 어깨를 붙잡았다. 충격이 컸던 탓일까. 그의 눈동자엔 수심이 가득했다.
돌이켜 보니 아끼는 부하 직원을 전선으로 내모는 꼴이었다. 더구나 하 주임의 상대는 현 회장이었다. 나사 몇 개가 빠져 있기로 유명한 생도였다.
근심 가득한 상사의 표정에 하 주임이 애써 싱글벙글 미소 지었다.
“방금까지 저한테 보너스 운운하시던 분이 그런 표정 짓기 있어요? 그리고 과장님,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저 시니어급 영웅이잖아요.”
“잘 알지… 근데 하 주임, 네 전문 분야가 전투가 아니니까 그렇지.”
“에이, 그래도 기본은 하죠! 아공간 대련은 처음이라 좀 긴장되기는 하는데, 열심히 하고 오겠습니다! 응원해 주세요, 과장님!”
하 주임이 경례를 올렸다. 그에 성 과장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가 마주 경례했다.
“좋아, 하 주임. 오늘 저녁은 저번처럼 한우 회식이다. 열심히 하고 와.”
“넵!”
하 주임이 성큼성큼 당차게 걸어갔다. 그녀는 연무단에 섰다. 맞은편엔 김우진이 뻐근한 목을 좌우로 스트레칭했다.
김우진은 비실비실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가시 돋친 너클을 깍지에 끼워 넣었다. 그가 말했다.
“협회 측 직원분, 성함이 하 주임이라고 하셨죠? 아무래도 제가 ‘대련’에는 문외한이라 많이 부족할 거예요.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아?”
자자한 소문과 달리 너무나 공손한 말투였다. 하 주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형식적인 인사가 오고 가던 그때. 하 주임의 망막에 호선이 맺혔다. 김우진의 입가에 떠오른 비스듬한 미소였다.
[지금부터 기호 1번 김우진과 특별 번호 하나은의 경연을 시작하겠습니다.]…30분 후.
[마지막 경연이 끝났습니다.] [승자, 기호 1번 김우진. 축하드립니다.]* * *
경연은 끝났다. 승자, 즉 선별된 후보들은 따로 몇 가지 지침을 받을 뿐. 추가적인 무언가는 없었다.
“설명은 이것으로 마치지. 각자 클래스로 복귀하든지, 기숙사로 돌아가든지 오늘은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 모두 수고했다. 푹 쉬도록.”
선임 교관이 말을 매듭짓는 가운데 나는 김우진을 쳐다보았다. 노곤한 눈으로 입이 찢어져라 하품한다. 누가 보면 방금 자다 깬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태평한 모습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전, 마지막 경연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기에.
김우진과 하 주임의 대련은 30분간 이어졌다. 앞선 세 번의 평균 5분 남짓이었으니. 소요 시간이 유달리 길었다.
하지만 그 30분 동안, 김우진이 어떻게 맛이 간 놈인지 선명히 각인됐다.
그는 내 생각보다 강한 생도는 아니었다. 힘이나 속도도 평균을 웃도는 수준이고. 가호나 무장도 특색 있지 않았다.
그런데 김우진은 시니어급 영웅인 하나은에게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김우진의 전투 방식은 소위 개싸움이었다. 그는 상대방의 체력이 소진될 때까지 혓바닥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타격을 전부 허용했다. 탈골, 함몰, 온갖 부상을 웃으며 받아 냈다.
당시 연무단에 흩뿌려진 피 대부분이 김우진의 것이었을 정도로.
초반 유리하게 대련을 끌고 갔던 하 주임은 결국 소강 상태. 후반 10분에 다다라선 김우진의 구타를 면치 못했다.
‘저 인간은 싸움 그 자체를 즐기는 부류다.’
나는 김우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게임마다 그런 속성의 캐릭터가 있지 않은가. 전투에는 사족을 못 쓰는 미친놈.
예컨대 전투광. 그게 딱 김우진이었다. 그리고 그는 현 학생회장이기도 했다.
정신머리만 보면 딱 빌런인데, 어떻게 그 자리를 꿰찬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뭐 하는 새끼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정사에선 레온이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2학년 때 김우진은 이미 졸업했으니까, 간혹 전 회장 정도로만 언급되는 게 전부였다.
‘좀 신경 쓰이네.’
거슬렸다.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이 기분. 날카롭게 벼려진 직감이 보내는 경고. 불길한 전조였다.
사실, 내겐 굳이 빌런을 잡아낼 의무는 없었다. 그것을 위해 협회가 아카데미에 터를 잡았으니까.
발 벗고 나서는 게 스스로가 봐도 우스웠다. 언제부터 그리 정의감 넘쳤다고. 차 없으면 무단 횡단도 서슴지 않는 나잖아. 협회 직원들은 봉급이라도 받지, 나는 무상이었다.
그러나 상황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빌런들 따위가 아니었다. 그 너머의 존재였다.
마경 게헤나에서 혀를 할짝대며 인계의 침범을 노리는 자들. 4군단장 퍼머쉬, 3군단장 베스나, 2군단장 쿠아른.
그들은 5군단장 아고르가 죽은 이후로 수상할 정도로 잠잠했다.
그냥 이대로 스리슬쩍 넘어간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마족은 끈끈한 유대감은 없을지언정, 복수를 잊지 않는 족속이다.
1차 인마 대전에서의 치욕을 700년 넘게 품는 자들인데, 동족의 죽음을 어영부영 넘길 리가 있겠는가.
지금쯤 그들은 설욕을 위해 계속해서 인계 강림을 시도 중일 터.
그렇기에 잡초처럼 자라나는 빌런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군단장의 강림을 돕는 게 빌런의 역할이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레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플레이 무렵을 회상했다.
돌이켜보니 빌런은 그저 분기별로 짤막하게 등장할 뿐 레온의 주적은 빌런이 아닌 마수, 마족이었다.
심지어 그마저도 아디토레나 다른 조력자가 때마침 등장해 해결했다. 레온이 빌런을 베는 일은 극히 적었다. 아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1학기 중간고사, 무인도 생존 훈련, 기말고사. 모든 음모와 암약은 빌런들이 벌이고 다녔는데 말이다.
“…하.”
돌연, 잇새로 실소가 새었다. 불가지의 누군가가 나를 이 세계에 떨어진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제기랄.’
나는 경연장을 빠져나왔다. 하늘에 먹구름이 빼곡히 드리웠다.
축축한 비 냄새가 콧속을 휘감았다. 스산한 기운에 피부가 아려 왔다. 벼락 폭풍이 몰아칠 날씨였다.
빤히 묵색 하늘을 올려다보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넓게 심상의 영역을 전개했다.
이건 일종의 변덕이다. 여러 잡념을 정리하는 덴 명상만 한 게 없으니.
스스스-
눈을 감아서인지, 캄캄한 현실의 투영인지 심상의 영역 속 하늘도 어두웠다.
‘그래도 심상의 영역에 꽤 익숙해졌네.’
의념을 집중했다. 물리적 개입을 도려냈다. 피부에 닿는 자극을 하나씩 지워 냈다.
그러자, 내면에서 형상화되는 사시미 한 자루의 윤곽. 그것은 나의 의지만으로 자유로이 심상의 영역을 거닐었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이군.’
칠흑의 배경에서 칼날이 새하얀 빛을 흘리는 가운데, 나는 허공을 휘젓는 사시미에 좀 더 의지를 담았다. 이미지를 구체화했다.
이내 나비처럼 허공을 비행하던 검극이 새카만 하늘을 겨누었다. 그에 맞춰 나는 내면의 칼자루를 붙잡고 내리그었다.
서걱―!
절삭음이 귓전에 희미하게 흘러들었다. 어스름했던 공기가 개이고, 따스한 미온이 맴돌았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동시에 눈동자가 동그랗게 수축했다.
좌우로 벌어진 하늘. 그 틈을 태양이 비집고 나온다. 상황 이해가 덜된 나는 그저 내리쬐는 햇빛을 받아 냈다.
산들바람이 목덜미를 훑었다. 낙엽 쪼가리가 코끝에 내려앉았다. 시선이 가운데로 모여 초점이 잡혔다.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길바닥에 깔린 낙엽 전부가 인위적으로 잘려 있었다.
“…….”
무협지에서나 등장하는 경지. 검술의 극한에 다다른 절세고수만 다룬다는 검술.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심검(心劍).
“이기어검(以氣馭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