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5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58화(157/300)
158화 검의 호수 (2)
구구구구구.
“이게 무슨 소리지?”
스크린으로 득표 추이를 보던 웨폰의 귀가 쫑긋 섰다.
처음엔 천둥이라 생각했는데 듣다 보니 아닌 듯했다.
…이건 자연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 인위적으로 부서지고, 파괴되는 소리였다.
연달아 선거장에 울리는 굉음. 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진동했다.
웨폰이 슬며시 시선을 올렸다. 샹들리에처럼 매달린 스크린이 위태롭게 흔들리더니.
지지직- 화면에서 노이즈가 일더니 픽- 퓨즈가 나가 버린다.
“어? 뭐야, 화면이 꺼졌는데?”
한참 투표에 여념이 없던 생도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하나둘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아직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지가 덜 됐다. 그저 본능이 일으킨 반응이었다.
“…뭐야? 왜 몸이 계속 떨리지?”
“나, 나도. 아까부터 자꾸 몸이 으슬으슬 떨려.”
생도들의 얼굴에 일순 불안함이 번졌다. 선거장이 원인 모를 혼란에 빠진 가운데.
조금씩 들리던 굉음이 선거장이 떠나가라 폭발했다. 바닥, 벽면, 천장이 마구 들썩였다.
스크린이 미친 듯이 흔들리더니 이내 실 끊긴 것처럼 추락한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스크린 아래 있던 생도들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망막에 드리우는 새카만 화면. 희생자들이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 얼굴이 잿빛으로 변한 여생도가 박살이 난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 사람이…….”
반파된 스크린 밑에서 새빨간 액체가 배어 나온다. 비릿한 냄새가 맴돌았다. 혈향이었다.
“사람이 죽었어!”
커다란 화면에 깔려 여러 명의 생도가 즉사했다.
그들의 몸은 완전히 깔렸지만 팔만 더듬이처럼 나와 있었다.
아카데미의 생도는 엄연히 영웅 후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십 대들이었다.
타인이 죽었다. 방금까지 같이 웃고 떠들던 친구가 벌레처럼 짓뭉개졌다.
그 장면만으로 생도들의 사고를 정지시키기엔 충분했다.
공포가 급속하게 전염되어 퍼졌다. 선거장이 한순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탈출이 시급한 상황. 그러나 무너진 질서 속에서 생도들은 서로를 떠밀 뿐이었다.
진열이 얽히며 어지럽게 꼬였다. 그런 와중에도 지진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웨폰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아포칼립스 영화에서나 보던 수라장이 눈앞에 연출된 상황.
하나, 웨폰을 불안케 하는 건 이 소란이 아니었다.
쭈뼛 곤두서는 털, 온몸을 저미는 저릿함, 그리고 정신을 오염시키는 사악한 기운.
생도들이 들짐승처럼 난폭해진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웨폰 자신만 하더라도 제정신을 붙잡기 힘들었으니까. 사고 회로가 야금야금 갉아 먹히는 듯했다.
그간 부장과 여러 일을 겪으면서 웨폰도 기감이 발달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마력. 머메이드나 카우킹의 마력을 몸소 겪었기에 안다.
더군다나 이 마력을 뿜어 대는 주체는 비교를 불허하는, 차원이 다른 존재임을 웨폰은 직감했다.
마족의 주축인 마인 머메이드, A급 마수였던 카우킹 미노타우로스.
그 둘을 벌레만도 못 한 존재로 만드는 존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유추는 어렵지 않았다. 그 정도의 존재는 이 세상에 극히 드물었으니까.
“우웁!”
상상만으로 헛구역질이 나오고, 신음이 새었다.
웨폰은 옷소매로 위액을 닦았다. 그리고 넋 나간 얼굴로 수라장을 지켜봤다.
생도들이 발악하듯 서로를 때리고 할퀴었다. 대문과 가까운 이들일수록 상태가 나빴다.
허옇게 눈자위를 드러낸 채 게거품을 물었다. 마력의 침잠에 정신이 완전히 날아간 것이다.
차라리 저들처럼 몸부림이라도 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인지가 남아 있는 웨폰은 이 공포를 고스란히 버텨야 했다.
웨폰이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 냈다. 뻑뻑해지는 정신을 일깨웠다. 이 부정적인 상념들 또한 마력의 영향이니.
‘정신 차려야 해.’
웨폰이 홱 고개를 돌려 강검마를 봤다. 그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봐 왔던 중, 강검마의 표정이 가장 어두웠다. 정확히는 썩어 있었다.
매사에 강검마의 눈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드물었다.
한데 현재, 강검마의 눈엔 온갖 것들이 비쳐 보였다.
그에 웨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부장이 저러면 상황은 악화일로. X됐다는 거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웨폰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잘 버텼던 정신이 삽시간에 거뭇하게 오염되어 갈 즈음.
강검마가 욕지거리를 씹어 뱉었다.
“지랄.”
딱 이 한마디. 한 줄 평으로, 이토록 잘 어울리는 낱말이 있을까.
꽉 쥔 주먹에 용오름이 일었다. 손바닥에 진땀이 차올랐다.
‘이 정도는 영락없이 군단장급 수준의 마력이다.’
이 사달이 난 이유? 전혀 모르겠다.
전조라 해 봤자 며칠간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는 정도였다.
비바람이 좀 심하긴 했는데, 그게 재앙의 시발점일지 어찌 알겠나. 씨발.
이런 상황에 원인을 따져 보는 게 무슨 소용인가. 현시점에서 반추하는 어리석은 시간 낭비다.
자연재해에 인과를 따질 텐가? 불행한 변고. 재앙은 늘 불시에 찾아온다. 5군단장 아고르의 강림도 그랬다.
상황이 절망적이긴 했다. 아발론 섬 때와 비교해도 최악이었다.
“…….”
강검마가 선거장을 넓게 보았다.
끄어어어어어어어얽-
패닉 상태의 생도들이 벽을 긁거나, 속을 게워 낸다. 외부의 적이 발산하는 피어 때문이었다.
저 가녀린 몸과 정신으론 이 마력을 감당할 수 없을 테지.
상위 클래스, 선배들 너 나 할 것 없이 발라당 나동그라졌다.
레온, 김우진, 덴 레인지 같은 후보들도 강검마를 제외하곤 싹 다 호흡만 추스르고 있었다.
‘일단 사태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다.’
실내부터 가라앉혀야 했다. 그래야 밖에 나가서 적과 대치할 것 아닌가.
설혹 이대로 생도들이 빠져나가면 시체는 고사하고, 뼈도 못 추린다.
밖에 도사리는 건 못해도 군단장급 마족이다.
‘일단 분위기부터 진정시켜야 한다.’
강검마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호흡을 다스렸다. 정신의 격으로 머리와 가슴을 식혔다.
강검마는 냉정과 침착을 되뇌었다. 그렇게 가다듬은 내면을 발끝에 응축시켰다.
그가 눈을 부릅떴다.
[전이(轉移)의 가호가 발현됩니다.]쾅―!
강검마가 오른발로 노면을 거세게 내리찍었다. 동시에 가호를 사방에 흩뿌렸다.
솨아아아.
강검마의 발밑에서 새하얀 빛이 베일처럼 퍼져 나왔다.
빛은 선거장 바닥 전체를 빈틈없이 내달렸다. 부드러운 기운이 생도들을 감쌌다.
광인처럼 벽을 긁던 남생도들이 손동작을 멈추었다. 서로 드잡이질해 대던 여생도들도 아귀힘을 풀었다.
[검신의 가호]의 정신의 격을 [전이의 가호]로 생도들에게 전이.눈이 까뒤집힌 생도들의 이성을 강제로 끌어 올린다. 이른바 감각의 공유였다.
광기의 늪에 빠져 있던 생도들이 정신을 되찾았다. 넋 나갔던 눈빛들에 총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혼란이 수그러들고 있었다.
강검마는 단상 중앙에 올랐다. 멍한 시선들이 모인 가운데 그가 입을 열었다. 정돈된 나직한 목소리로.
“다들 정신 차려라.”
성량이 크진 않았다. 하나, 그 목소리만은 또렷이 전해졌다.
“방금까지 몸소 겪어서 알겠지만, 이건 단순한 지진이 아니다. 밖에 있는 적이 발산하는 피어다. 여기 있는 대다수를 공황에 몰아넣을 정도니, 아마도 어마어마한 놈일 거다.”
강검마가 계속해서 말했다.
“놈이 왜, 이곳을 급습했는진 모른다. 마력으로 짐작건대, 괴물 중에서도 특상에 있는 괴물이겠지. 너희가 게거품을 물면서 공황에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
“―너희는 호아킨 아카데미의 생도들이야. 세상을 마(魔)로부터 지켜 내야 하는 책무를 가진 차기 영웅들이라고.”
“…….”
“수업 시간에 다들 졸았어? 귀에 피딱지 앉을 정도로 들었을 거 아니야. 영웅이란 무장을 하고, 숭고한 싸움에 대비하는 자들이라고.”
“…….”
“근데 숭고하진 못할지언정, 지레 발작부터 하면 사람들은 누굴 믿어야 하지? 우리를 추앙하는 대중을 바보로 만들 셈이냐?”
“…….”
침묵이 깊게 가라앉았다. 강검마는 옆에 있던 웨폰과 눈을 마주치곤 말했다.
“웨폰, 머리 좋은 너니까 설명 안 해도 대충 상황 짐작했지? 아카데미 측에 연락 넣고, 얘네들 여기서 꼼짝 못 하게 막아. 뭔 짓을 해서라도.”
그 말에 웨폰의 낯빛이 새파래졌다.
“부장……. 설마 너, 이번에도…….”
강검마는 웨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가 쓰게 웃었다.
“어차피 이대로 있어 봐야 몰살이야. 무슨 일인진 몰라도 지금 잠깐 잠잠한 거지, 적이 여기로 들이닥치는 건 시간문제다. 그 전에 내가 시간이라도 벌어 볼게.”
“…….”
“웨폰, 내 걱정할 시간에 대책을 모색해. 그게 네 역할이잖아.”
강검마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툭툭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서 폴짝 뛰어 단상에서 내려왔다.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강검마가 뚜벅뚜벅 출구로 향했다.
멍하니 있던 생도들이 주춤주춤 길을 터 주었다.
강검마는 좌우로 갈라진 인해의 틈을 걸었다. 속으로 혀를 차면서.
‘젠장.’
내색은 안 했으나 그 역시나 몹시 착잡했다.
단두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형수가 된 기분이었다.
상대는 못해도 군단장급. 강함이야 두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5군단장 아고르도 어떻게 토벌했는지 모르겠다.
당시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칼을 휘둘렀을 뿐이니까. 검제도 함께였고, 말이다.
한데 아고르보다 강할 거라 추정되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과 60초 동안 격전을 벌여야 한다.
이 세계에 내쳐지고 외줄을 타는 나날이었지만, 오늘은 정말 가시밭길이었다.
강검마는 타들어 가는 입술을 축였다. 뒷덜미를 벅벅 긁었다. 손톱에 피부가 파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애써 여유를 보여야 했다. 생도들이 정신을 차린 지 수분도 안 지났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이 어린놈들은 재차 수렁에 빠질 것이다.
가오를 부렸으면 끝까지 끌고 간다. 설령 천재지변과 싸워야 할 상황일지라도.
저벅, 저벅.
그렇게 대문에 다다른 강검마가 고개를 반만 돌렸다.
“허튼짓하지 말고, 얌전히들 있어라.”
강검마가 떠났다. 생도들은 그가 떠난 자리를 하릴없이 바라봤다.
* * *
선거장 밖으로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풍경이 말이 아니었다.
사면이 물바다였다. 흙이 안 보일 지경. 별채 건물만 덩그러니 섬처럼 남았다.
수면 위로는 소용돌이가 공간을 왜곡했다.
나는 눈을 살짝 들었다. 하늘이 잿빛이었다. 벼락이 대기를 찢어발기고, 사납게 폭음을 뱉어 낸다.
새된 기척 하나가 느껴졌다. 옆을 보니 낯익은 사람이 누워 있었다.
“성 과장님.”
“거, 검마님…….”
성 과장이 간신히 대답했다. 그의 상태를 확인한 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팔, 다리가 하나씩 없어진 채였다.
피도 많이 흘려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했다. 죽음의 색이 만연했다.
성 과장이 파랗게 죽은 입술을 움직였다.
“쿨럭, 여, 여긴 위험합니다. 어서 도망가셔야 합니다.”
난 그 앞에 쪼그려 앉고서 물었다.
“이거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
성 과장은 하나 남은 손으로 저 멀리를 가리켰다.
허공에 둥실 떠올라 있는 인영. 환자복을 입은 여인이었다.
자세히 보려 눈매를 게슴츠레 좁혔다. 그리고 저자가 누구인지 특정했다.
“하 주임님?”
육체가 하 주임이라고? 이건 또 의외였다. 머릿속에 없던 경우의 수였다.
반추할 새는 없었다. 나는 그녀를 빤히 관찰했다.
하나은은 강림이 진행 중인지 눈빛이 혼탁했다. 하지만 얼추 보건대, 강림은 곧이었다.
우두커니 서서 보고 있자 성 과장이 부연했다.
“무,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하 주임이 저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크흑.”
성 과장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설명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쟤가 저럴 애가 아니란 말입니다. 필시 마가 끼었을 겁니다. 제, 제발 저 친구 좀 구해 주십시오……!”
그가 울먹거리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절박함이 바지를 타고 느껴졌다.
본인을 이리 만든 당사자일 텐데, 성 과장은 부하 직원부터 챙긴다. 그리고 이 사람은 죽어간다.
나는 침통함을 느꼈으나 결국 고개를 저었다.
“하 주임님은 지금 군단장한테 빙의된 상태입니다. 구제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과장님이야말로 상태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무통(無痛)의 가호가 발현됩니다.] [재생(再生)의 가호가 발현됩니다.] [전이(轉移)의 가호가 발현됩니다.]“이, 이건……!”
“치료가 아닙니다. 이미 몸이 너무 엉망입니다. 그래도 통증은 줄여 줬을 겁니다.”
가호 세 개를 동시 발현했다. 개중에서 무통의 가호는 4초만 소모했다.
비록 성 과장은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만, 마지막 가는 길,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선한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내 마지막 예우였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소름 끼치는 이명이 들렸다. 자연이 절규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스르르.
부유하던 하나은이 수면 위로 살포시 착지했다.
굳게 닫혔던 하나은의 두 눈이 뜨였다. 안광에서 새파란 귀화가 피었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은 잠수한 것처럼 너울거렸다.
‘환장하겠네.’
그녀는 더 이상 하나은, 아니 인간이 아니었다.
“반갑구나.”
그것의 잇새가 벌어졌다. 목소리가 물결처럼 귀에 흘러들었다.
“내 이름은 베스나. 아고르의 자매이자 마왕 군의 3석을 맡은 자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미물이여.”
“젠장, 하필 4군단장을 건너뛰고 3군단장이라니…….”
베스나의 눈썹이 가늘게 휘었다.
“뭐라 지껄이는 거지?”
“됐다. 그건 그렇고, 너희 마족들도 아카데미에서 따로 배우냐? 말투가 무슨 미물이니 뭐니.”
사실, 나도 뭔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가오에 뇌가 잡아먹히기라도 한 모양이다.
키리링.
무라사메와 만년서리를 꺼냈다. 칼날이 반쯤 뽑혀 나왔다. 자기소개는 이걸로 충분할 것이다.
사시미를 본 베스나의 눈동자가 어그러졌다.
“네놈이었구나! 칼 쓰는 벌레 새끼가! 내 자매를 죽인 놈이!”
베스나가 노성을 내질렀다.
나는 칼자루를 폈다 잡았다. 그리고 똑바로 녀석을 직시했다.
“5군단장 아고르도 너처럼 그럴싸하게 입을 털어 댔지.”
[정신(精神)의 격이 상승합니다.] [말과 행동에 위압감이 가중됩니다.] [검신(劍神)의 가호가 발현됩니다.]한 번의 심호흡. 나는 말을 뱉었다.
“처맞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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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