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5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59화(158/300)
159화 검의 호수 (3)
호아킨 아카데미의 교관 일동이 선거장을 향해 내달렸다. 그들은 교관 총 열 명으로 꾸려진 팀이었다.
통칭 비상 대책 팀. 아카데미 교관진 중에서도 전투에 특화된 정예만으로 꾸려진 팀이었다. 단 한 사람 김 교관, 즉 최설아만 제외하고.
그녀는 팀에서 아카데미 중앙실과의 연락 담당이었다.
철퍽, 철퍽.
질척한 노면에 발자국이 도장처럼 연달아 찍혔다.
대책 팀의 발끝 방향은 회장 선거가 진행 중인 별채 건물.
비바람마저 면면에 떠오른 다급함을 씻어 내진 못했다.
까드득.
앞만 보고 달리던 이원빈이 돌연 이를 갈았다.
‘아직 멀었나.’
10분쯤 전, 선거장에 큰 사고가 터졌단 연락을 받았다.
갑작스레 일은 지진에 생도 몇이 깔렸다는 소식. 더불어 선거장에 외부의 침입을 감지했다는 것이었다.
그에 팀의 리더 이원빈은 급하게 호출받은 후, 곧장 팀원들을 소집. 선거장으로 조속히 이동했다.
‘젠장, 어떤 미친 새끼들 짓이야.’
호아킨 아카데미의 보안은 철통이다. 허점을 찾기는 어렵고, 뚫기는 더욱이 어렵다.
그런데 그런 경계를 비집고 침입했다면 적임은 분명했다. 아니, 적이 아니더라도 처단해야 했다.
이곳은 영웅으로 성장 중인 생도들의 요람이다. 감히 무단으로 들어왔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어떤 놈들인지 낯가죽을 확인해 주마.’
이원빈은 치미는 부아를 삼켰다. 그리고 옆에 있던 최설아에게 물었다.
“김 교관, 지금 추가적인 연락은 없었어?”
“예, 선배.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해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날씨가 이 모양 이 꼴이라……. 선거장에 가까이 다다르든지, 아니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이런 씹, 왜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에 날씨가 이 지랄 난 건데!”
이원빈이 욕지거리를 씹어 뱉었다. 교관은 생도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자다.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생도들의 잘못을 꾸짖는 게 교관의 역할이다.
그러니 모범이 되어야 할 자신이 입을 가볍게 놀리면 안 될 일. 교단에 오르는 이로서의 신념이었다.
그렇기에 평소 이원빈은 절대 입에 욕을 담지 않았다.
친구끼리 있을 때조차도 농담으로도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았다. 직업 의식이 지나치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딴 체면치레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마까지 치솟는 불안감과 우려가 그 모든 걸 뇌리에서 지웠기에.
“학원장님한테는, 메디아 학원장님한테는 연락한 거지, 김 교관?”
“네. 출발 전에 미리 연락 넣어 놨고, 아카데미에 상주 중인 협회 측 인원들이랑 최대한 빨리 합류하신다고 전달받았습니다!”
“학원장님이 오신다니 그나마 다행이군. 그래도 다들 방심하지 마라! 첫째도, 둘째도, 생도들의 안전 확보가 목표임을 명심해라. 알겠나?!”
“예!”
이원빈의 외침에 교관 아홉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들에 비장함이 비쳤다.
그들은 박차를 가해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선거장 건물이 슬슬 시야에 들어온 순간. 이원빈은 몹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해자(垓子)처럼 선거장 주위를 둘러 메운 호수.
아무리 악천후여도 그렇지. 이런 게 하루아침에 생긴다고?
어이없기도 잠시, 이원빈은 고민에 빠졌다. 이래선 선거장 건물로 진입이 힘들었다.
헤엄쳐서라도 다가가고 싶었으나, 사납게 몰아치는 회오리 탓에 불가했다.
뿐만 아니라 낙뢰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 감전사할 가능성도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두뇌를 굴리던 가운데 이원빈은 맵싸한 기운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탁!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측면에서 났다.
짧은 찰나, 이원빈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빌런이 마법을 시전할 때 내는 소리였다.
“기습이다! 피ㅎ―!”
핏- 얕은 파공성이 빗소리에 섞여 들렸다.
“……?”
팀원 중 하나가 아연한 얼굴이 되었다. 바람이 머리통 안까지 통풍된 것처럼 시원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미간에 갖다 대었다. 콧등을 쓸던 검지가 이마에서 쏙 들어갔다.
저항감 없이, 너무도 순조롭게 손가락이 빨려 들어갔다. 이마에 생긴 동전 크기만 한 구멍 속으로.
그는 손끝에 닿는 말랑한 촉감을 느끼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이미 죽었음을. 그는 선 채로 비를 받아 내다 고꾸라졌다.
저벅, 저벅.
그림자들이 빗길을 뚫으며 다가온다. 수는 다섯. 하나같이 후드의 음영에 얼굴이 가려졌지만, 입가에 맺힌 웃음이 하얗게 도드라졌다.
개중 한 명이 후드를 벗었다. 얼굴에 길쭉한 검상이 새겨진 여인이었다. 그녀가 팔짱을 끼며 조소를 흘렸다.
“뭐야, 학원장이라도 올 줄 알고 기습했는데, 웬 벌레들만 있었네?”
“그러게. 이럴 줄 알았으면 기습하지 말고 그냥 전면전을 벌였어도 됐을 텐데. 시시하게.”
“그래도 아직 방심은 일러. ‘그분’의 강림이 안정화될 때까지 우리가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현자 메디아가 오면 일 복잡해지니까 여기서 후딱 전부 처리해. 안 그래도 현장에 사시미 그놈이 있어서 우리도 서둘러 가 봐야 하니까.”
여인이 동료들에게 턱짓을 보냈다. 그들도 후드를 벗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이원빈의 매끈한 이마에 혈관이 한가득 솟아났다. 그럼에도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떤 겁대가리 상실한 새끼들인가 싶었는데, 인간성을 팔아넘긴 빌런들일 줄이야. 그러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군.”
“와, 저 문어 새끼, 가오 존나 잡는데?”
그에 이원빈의 얼굴이 빨갛게 달궈졌다. 정수리에 떨어진 빗방울이 파스스 수증기가 되어 증발했다.
격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최설아가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들의 대화에 거슬리는 말들이 있었다.
「강림」과 「사시미」. 두 단어만으로 최설아는 상황을 얼추 짐작했다.
‘군단장 중 하나가 강림하고, 그걸 주군이 상대하시고 있는 거야.’
최설아가 재빨리 리볼버를 꺼냈다. 비가 스민 총신에 은은한 윤이 흘렀다.
주군과 함께(?)한 그날 밤, 리퍼를 갈무리해 얻은 수확이다.
최설아는 휘리릭- 실린더를 돌렸다. 제법 폼이 났다.
“원빈 선배! 저 새끼들 후딱 해치우고 현장으로 가야 해요!”
“아, 어. 그래, 김 교관.”
최설아의 다급한 투에 이원빈은 잠시 떨떠름했다.
일단 최설아가 전투에 나선다는 게 의외였다. 싸움은 무섭다며 발뺌하기 바쁜 그녀였으니까.
또한, 총이 어디서 났는지도 의아했다. 아카데미에서 총기 반입은 불법 아니었나?
하지만 이내 이원빈도 퍼뜩 무쇠 배트를 어깨에 들쳐 멨다.
기습으로 죽은 팀원과 일찍이 고별한 머리칼에 대한 추모를, 내 저놈들의 죽음으로 하리라.
“저 개새끼들한테 호아킨 아카데미가 어떤 곳인지 알려 줘라.”
리더의 지시가 떨어졌다. 호아킨의 교관들이 일제히 진흙을 박찼다.
* * *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충격파. 끝도 없이 이어지는 파상공세. 일대가 떠나가라 격동했다.
콰아앙! 콰앙! 콰아아아앙!
어림잡아 수천 개는 되어 보이는 물화살이 강검마를 추적했다.
「아쿠아 애로우」
지극히 기초적인 마법이다. 그러나 공격 하나하나의 파괴력이 터무니없었다. 어마 무시한 사출 속도 때문이었다.
체감상 음속의 스무 배는 될 법한 초속. 베스나가 마법을 시전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소리가 났다.
삐이이-
굉음에 강검마의 고막이 파열됐다. 뜨끈한 액체가 귓불을 적신다.
강검마는 흐르는 피를 닦지 않았다. 그저 발을 놀렸다. 역수를 쥔 사시미 두 자루를 좀 더 탁 틀어잡았다.
“피할 만하다.”
강검마의 몸은 뇌가 지시를 내리기 전에 행동을 취했다.
강검마가 대폭 속도를 높였다. 뜨겁다. 다리에 불이 붙은 것 같은 작열통이 올라왔다. 장딴지에서 벌건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었다.
그에 반해, 발바닥에 닿는 감촉은 폭신하다. 마치 구름을 밟는 듯 가벼웠다.
타다다닥!
강검마가 내달렸다. 열화상이 유성처럼 길게 꼬리를 내뺐다. 그는 땅이 아닌 물 위를 거닐었다. 발밑으론 하얀 물결이 파도가 뒤늦게 철썩였다.
팔다리를 잃은 성 과장이 어벙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눈으로 쫓을 수가 없다.’
서슴없이 나아간 강검마를 못 붙잡았다는 여한이 남은 성 과장이었다.
불세출의 천재로 불리는 생도여도 상대는 그 이상의 강적임을 직감했기에.
다 죽어 가는 몸이니 자신을 희생시키고 아카데미에 지원을 요청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생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는데…….
‘검마 님의 진짜 실력은 계산 범위 이상이었어.’
그냥 말이 안 됐다. 쉴 새 없이 쏘아지는 물화살과 사방을 휩쓰는 파도. 그를 향해 뱀처럼 달려드는 물채찍.
그 모든 걸 피하고 있었다. 오로지 그 순수한 스피드, 인간을 초월한 것 같은 속도로 말이다.
이젠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아마 지금 성 과장의 눈에 담긴 강검마는 몇 초 전의 움직임일 것이다.
“…이것이 정녕 인간이란 말인가.”
베스나도 감탄성을 흘렸다. 깊이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아직 본신에 적응을 못 했다지만, 자신의 마법을 따돌린다.
아고르의 죽음은 마경에 파격을 선사했다. 군단장급 마족이 인간에게 죽는다? 벌레한테 쏘여 죽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기에 베스나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6군단장 바스몬이 죽었을 땐 그러려니 했다. 입만 살고 형편없는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아고르는 바스몬과 다른 진정한 강자였다. 그리고 베스나의 혈족이었다.
그렇기에 베스나가 인계에 침범한 목적은 복수였다. 자매를 죽인 인간을 몸소 없애 버리리라.
그리고 두 번째 목적은 확인. 자신을 포함한 모든 군단장이 탐내는 그릇, 그것의 자질을 친히 확인코자 했다.
그래서 당장에 필요한 몸뚱이를 빌렸다. 달콤한 말로 꾀고,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증폭시켰다.
말 몇 마디에 이 몸은 넙죽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름은 모른다. 어차피 이깟 쓰레기는 일회성 육신이다.
한데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베스나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강검마의 움직임은 1군단장 라이칸 님을 떠올리게 했다.
‘저 탐스러운 육체만 있다면 홀로 인계를 지배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 나아가 마경 게헤나의 지배권을 2군단장에게서 찬탈할 수도 있을 테지.
베스나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려다 비틀렸다. 이 대치는 그녀에게도 마냥 여유롭진 못했다.
파파파팍!
강검마는 호수를 나선형으로 빙빙 돌았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베스나와 거리를 좁혔다.
베스나의 눈에 경악이 차올랐다. 상정보다 강검마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이 이상의 속도를 낸다는 게 가당키나 한 건가.
이젠 점점 베스나의 시야에서도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안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놓친다.
베스나가 마력을 한도까지 끌어올렸다. 새파란 줄기들이 손가락에서 튀겨 유동하더니 역장이 호수 전체로 펼쳐졌다.
촤아아아아악!
호수에 부글부글 수포가 끓더니. 수면 위로 수백 개의 물 송곳들이 가시 발판처럼 삐쭉 돋아나왔다.
강검마는 짧게 웃었다.
‘접근을 막는 건가.’
역시는 역시라고, 군단장답게 베스나는 빈틈을 찾기 힘들었다.
하물며 이쪽은 1분이 안 되는 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니까. 조바심이 절로 따랐다.
강검마는 숨을 끊어 쉬었다.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 상대가 광범위한 마법을 흩뿌린다는 건 접근을 차단키 위함. 저쪽이 근접전에 약하다는 걸 인정한 꼴이었다.
그렇다고 이 송곳밭을 가로지를 순 없다. 한 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물화살, 물채찍, 물보라에 쓸려 익사할 테니까.
강검마는 문득 아발론 섬에서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와 동일한 힘을 불러낼 수만 있다면.
저 생선을 회 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것은 상황과 환경이 기가 막히게 맞물려 허락된 힘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폭풍우를 가르기란 불가능하다. 설령, 그것이 비범한 자라 해도.
…바로 그때였다. 여인의 노랫소리가 귀에 감돌았다.
《수천의 생명이 당신께 비나이다.》
《부디 그들을 가엾이 여기옵고.》
강검마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타들어 갔다. 들리는 소리는 백색이었다. 눈에선 동공이 사라졌다.
《적에게 진정한 마(魔)를 보이소서.》
이윽고 그의 머릿속은 공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