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6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60화(159/300)
160화 검의 호수 (4)
웨폰이 땀으로 젖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부장…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강검마의 말마따나 일단 아카데미 측에 연락은 보내 놨다. 그리고 뒤숭숭한 선거장의 분위기를 필사적으로 잠재우려 노력했다.
물론 웨폰 혼자서 이 많은 인원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의외의 인물들이 소란을 누그러뜨리는 걸 도왔다.
“방금, 7번 녀석이 했던 말 기억 안 나는 거냐?! 영웅 후보라는 것들이 피어에 사로잡혀서 전투 불능이라니, 한심하구나!”
덴 레인지가 호통성쳤다. 김우진도 입을 보탰다.
“아카데미 측에서 10분 내로 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다들 한심한 모습은 자제해 주세요.”
두 사람도 지금 경쟁 심리를 불태울 때가 아니란 걸 알았다.
자신들은 자질적으로 강검마에게 한참 못 미친다.
자존심이 쉽게 허락하진 않는다. 다만 밖으로 나가기 전, 강검마가 보였던 리더쉽에 감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웨폰에게 조력하기로 두 사람은 마음을 일치시켰다.
게다가 아직 그들은 학생회에 소속된 자들 아닌가.
강검마처럼 용기를 북돋긴 힘들지만, 패닉에 빠진 생도들을 통솔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현 학생회장과 부회장 덕에 혼란이 빨리 가시고 있어.’
그럼에도 웨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대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깊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딱 이 정도였다. 회장 후보들과 함께 생도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부장과 같이 싸움에 임할 순 없다. 웨폰은 그 정돈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어중간한 적이라면 뒤에서 버프라도 걸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이면 자신은 방해가 된다.
그래도… 과연 여기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애초에 내가 부장의 옆에 있어도 되는 걸까.
부장은 늘 혼자서 상황을 타파해 왔잖아. 짐짝이 될 바엔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부장에게 도움이 되지 싶었다.
짧은 시간 동안 웨폰은 수없는 잡념에 잠겼다.
그때 누군가 있는 힘껏 그의 따귀를 갈겼다.
짝!
세찬 소리에 이목이 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키는 웨폰의 반대쪽 뺨도 때렸다.
짝!
그러곤 웨폰의 어깨를 덥석 붙잡으며 소리쳤다.
“야, 이 멍청아! 강검마가 널 믿고 여기를 맡겼는데 그딴 표정이나 지을 거야?!”
웨폰은 양 볼을 감싸 만졌다. 입술이 터졌다. 입안에서 피 맛이 돌았다. 궁사의 손이 이다지도 맵다.
“웨폰, 네가 느끼는 감정, 나도 지금 똑같이 느끼고 있거든? 검마가 너한테 부탁했잖아. 그만큼 신뢰받으면서 언제까지 얼빠져 있을 건데? 그리고 하라는 것만 딱 하고 절망하는 게 말이 돼? 대책을 모색해라. 그 말을 떠올려, 알겠어? 지금 네 태도는 검마의 신뢰를 배신하는 셈이라고!”
“…….”
웨폰은 빤히 사키를 바라보다 이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정신이 확 깨어났다. 알싸한 통증이 물리적으로 갈피를 잡아 주었다.
…그래도 말로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귀싸대기의 영향으로 뇌가 윙윙 울렸다.
얼마나 세게 때린 거야?
웨폰은 짧게 탄식할 뿐, 무어라 입을 열진 않았다. 부연했다가 한 대 더 맞으면 이빨 하나가 나갈 것이다.
사키가 낮은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거야. 웨폰, 너나 나나 검마한테 목숨을 수어 번 빚졌어. 그리고…….”
그녀는 울먹거리듯 중얼거렸다.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혼잣말이었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그냥 넋 놓고 놔둘 순 없으니까.”
“……?”
사키는 돌아올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쿵쿵 발을 구르며 단상에 올랐다. 굳센 심지가 두 발에 번갈아 실렸다.
시선이 모인 가운데 사키가 입을 열었다.
“기분들이 좀 어때?”
느닷없는 한마디에 생도들은 의아한 기색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키의 눈매가 사납게 휘어졌다.
“너희들 말이야, 맨날 검마를 특진생이니 뭐니 무시했잖아. 평민이니 귀족이니 하면서. 그런데도 검마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어.”
선거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나둘 고개를 떨구었다.
“호아킨 아카데미의 생도들이니까 너희들도 알 거 아니야, 외부의 적이 보통은 아니란 것을. 그런데 검마 걔는 죽음을 불사하고 밖으로 나갔다고.”
사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물기를 머금은 눈시울은 옅은 붉은색이었다.
분했다. 애가 탔다. 어쩌면 자조적인 말 혹은 화풀이일지도 모른다.
저들에게 이렇게 주장하는 자신 역시, 강검마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까.
웨폰의 마음도 백번 이해한다. 그녀도 유약한 스스로가 죽도록 싫고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발만 동동 구를 순 없다.
“왜? 멸시와 조롱을 쏟아 내던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서. 홀로 나갔다고!”
감정이 북받친 사키는 급기야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마지막 울분을 토해 냈다.
“너희가 양심이 있다면, 밖에서 너희를 대신해 싸우는 애를 위해서 기도라도 해. 제발…….”
사키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바들바들 손이 떨렸다.
그녀를 시작으로 생도들이 합장하기 시작했다. 코앞까지 모인 손들엔 저마다의 의지가 담겼다.
강검마에 대한 응원, 살고 싶다는 열망, 겁을 지우려는 방편.
그렇게 그들은 눈을 감고 기도했다. 딱히 정해진 대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간청했다. 그것이 세상을 밝힐 빛일지, 세상을 거멓게 물들일 어둠일지도 모른 채.
방향을 잃은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를 찾을 뿐이었다.
* * *
마왕군 3군단장 베스나의 음색이 파르라니 떨렸다.
“너, 너는…….”
가만히 서 있는 강검마. 흑발이었던 머리카락은 이제 완전히 탈색되어 백발이었다.
“설마 네놈, 각성한 것이냐!”
종종 한계를 넘어선 인간은 외모에 변화가 일어나곤 했다. 흔히들 각성이라고 부른다지.
1차 인마대전에서 몇 번 목격한 적이 알고 있다.
빌어먹을 시조의 영웅의 일곱 제자 중에도 더러 있었다.
검성 아론 니벨룽, 신궁 성나연, 금랑 프리기아 미다스, 야차 호조 모리야스.
각성자들은 가호를 하사하는 어떠한 존재에게 빌어 힘의 한계를 확장했다. 당연히 대가도 뒤따랐다.
자신의 수명. 칠걸이 단명한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목숨을 불살라 마족에게 항거했다. 인류의 존속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내던졌다.
그 각오 덕에 마족과 인간. 그 두 세력의 천칭은 인류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그들은 압도적인 신위로 마족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끝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치욕스러운 과거였다. 당시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베스나는 몸서리를 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인류에서 각성자가 출몰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마족은 틀어막힌 인계의 문을 두드렸고, 강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
강검마는 선 채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동 없이, 우두커니.
단지 그뿐임에도, 가슴이 불안으로 덜컹거렸다. 난생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700년 전, 그 어떠한 영웅이 이와 같은 감각을 선사한 적 있던가. 전율적인 존재감이었다.
정확히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베스나로선 강하니 마니 가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모름지기 한 차원 낮은 존재는 그 위 너머를 내다볼 수 없는 법.
같은 땅을 밟고 있다고 보는 세계가 같은 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베스나의 생각은 거기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그 힘에 내 자매가 당했던 건가.”
부름에 응하듯, 하늘에 머물렀던 강검마의 시선이 내려왔다.
스스스.
백탁이 낀 눈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지극히 정적이었다.
“그 눈은 무엇이냐, 미물 주제에! 나를 내 자매에 동일선상에 둔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베스나는 다급한 기색으로 마법을 영창했다. 그녀가 부릴 수 있는 최강의 기예를.
「아쿠아 퍼니쉬먼트」
물의 징벌이라고도 불리는, 수의 극의에 달한 마법.
쿠구구구구궁!
마력이 사방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그다음 순간, 정밀하게 물로 구축된 십수만 개의 물의 창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베스나의 마력으로 압축된 창살은 하나하나가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다.
여기까지 온 이상, 강검마를 죽여야 한다. 그릇을 잃더라도 전혀 아쉬워할 때가 아니었다.
“내 너를 일찍이 없애, 허황한 희망의 싹을 자르리라.”
베스나가 손을 들어 올렸다. 창끝이 일제히 강검마가 서 있는 자리로 모였다.
탁!
손가락을 튀김과 동시에 새장처럼 강검마를 가둔 창날이 쇄도했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팡!
강검마를 향해 쏟아지는 십수만 개의 창살들. 충격파에 호수가 높게 솟구치고 물안개가 퍼졌다. 폭발음만으로 별채 건물의 벽면이 파편을 튀기며 허물어졌다.
전방위에서 공격이 쏟아지는 가운데 강검마의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은 없었다.
단지 그는 사시미 두 자루를 추켜들었다. 피하지 않는다. 십수만의 공격을 전부 맞받아친다.
행동과 결정의 발로는 무의식이었다. 강검마는 달콤한 도취감에 완전히 몸을 맡긴 상태였다. 이미 그의 의식과 인지가 날아갔기 때문이다.
오른손에 쥔 무라사메를 휘둘렀다. 수백 개의 창살 세례를 비켜 튕겼다. 느껴지는 손맛이 저릿했다. 하지만 주저 없이 왼손의 만년서리도 마주 휘둘렀다. 이번에도 마법이 한 다스씩 베여 소멸했다.
한 방이 강검마의 허벅지에 명중했다. 살덩이가 한 움큼 뜯겨 나갔다. 철철 흘러넘치는 핏물이 호수에 스며들었다. 생명의 정기가 몸에서 빠져나간다.
강검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곧바로 [재생의 가호]를 발현했다. 살점이 빠른 속도로 엉겨 붙으며 아물었다. 그는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계속 팔을 움직였다.
치유하는 행위조차 그에겐 여념이었다. 그는 지금 생생한 꿈이라도 꾸듯이 몽롱한 기분이었다. 그것도 결코 깨고 싶지 않은 황홀한 꿈이었다.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베고 자를 수 있다니. 쾌감이 전신을 구석구석 휘감는데, 고작 상처 따위에 할애할 시간은 없었다. 그는 휘청거리면서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베스나가 마법을 마구 영창하며 흩뿌렸다. 창의 숫자가 계속 증식했다. 하나, 칼날이 흔들리면 가시들이 매끄럽게 쪼개졌다.
증식과 억제가 한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시간이란 테두리를 벗어난 싸움이었다. 공간도 형태가 왜곡되어 울퉁불퉁해 보였다.
칼날과 마법이 부딪쳐 충격파가 연이어졌다. 일대가 부서져라 울리는 굉음. 지축이 마구 흔들리던 때에.
마침내 건물의 벽면이 와르르 무너져 선거장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기도 중이던 생도들이 고개를 들었다. 다음 순간, 그들은 마법과 검의 힘겨루기를 눈에 담겼다.
? ? ?
그런데 똑바로 바라보려 해도 동공이 다른 방향으로 굴렀다. 그들에겐 너무 높은 차원의 충돌이었기에.
압도적인 공포 앞에선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닫고, 뇌는 이해를 거부한다.
“검마야!”
사키가 큰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팔을 뻗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선거장을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