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6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63화(162/300)
163화 K-히어로 (1)
TV, 신문, 너튜브는 그날 일로 온통 도배가 됐다.
『[속보] 학원장 메디아, 호아킨 참사 유가족 찾아 용서를 빌어.』
『[속보] 영웅 협회의 부협회장, 유가족 추모를 위해… 한국 방문 일정을 잡아.』
『[책임론] 호아킨 아카데미와 영웅 협회. 국민은 묻는다. 과연 책임 소지는 어디에?』
초창기는 카더라식의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왜냐면 호아킨 아카데미와 협회 측에선 아직 진위 파악 중이라는 말을 할 뿐, 발언을 아꼈으니까.
호아킨 아카데미와 영웅 협회, 두 세력이 이리 한 까닭은 진실을 숨기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두 세력은 상황 정리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공표할 심산이었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 생도들의 멘탈 관리 차원에서 공표를 후순위로 미뤘다.
같은 현장에서 친구 몇이 죽고, 난생처음 보는 거대 괴물에, 3군단장 베스나의 강림.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싶은 일들을 생생히 목격했다. 한날, 한시에, 다 같이.
공포와 충격에 노출된 인간에겐 그것을 잠재울 시간이 필요하다. 멘탈이 덜 여문 십 대들에겐 더더욱.
그래도 명색에 호아킨 아카데미의 생도들이라 추스른 거지,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PTSD로 뇌가 망가져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됐을 것이다.
그리하여 호아킨 아카데미는 사건에 대해 최대한 함구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생도 전원의 동의를 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솔직히 생도들의 협조가 의외였다. 그 콧대 높은 귀족 자제님들이 순순히 입을 꾹 다물다니.
사회성 제로인 걔네가? 이번 일로 다들 철 좀 든 건가.
‘역시 사람은 고생해야 머리가 굳는 건가.’
그럼에도 인터넷상에선 서서히 내막이 드러나고 있었다.
하긴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작금에 그만한 사건을 완전히 가리기란 불가능했다.
기자들이 취재 정신을 발휘해 발바닥에 땀 차게 움직였다. 동분서주하며 끌어모은 정보를 취합했다.
…기자들은 자신이 도달한 진실을 흩뿌렸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열도가 놀라고 대륙이 경악한… 호아킨 참사의 영웅 사시미 검성.』
『사시미 폭풍, 강검마. 그는 진정 신(神)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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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던져 버렸다.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쌌다.
“제발…….”
부끄러움과 창피는 왜 내 몫일까. 이 세계에 떨어진 이래 처음으로 울고 싶었다.
* * *
호아킨 아카데미의 부속 병원.
【313호】
내가 병실 호수를 살피던 가운데 문 너머에서 무슨 소리가 흘러나왔다.
– 시켜줘, 그럼.
– …뭘요?
– 은잡초, 명예 소방관.
드라마인 것 같은데…….
대사만 들어도 손가락이 오징어처럼 구부러든다.
이 아저씨 나랑 취향이 좀 안 맞네. 별수 있나, 존중해 줘야지.
흠흠.
나는 일부러 크게 헛기침한 뒤, 노크했다.
“아, 예……! 들어오세요!”
급하게 티브이가 꺼지는 소리.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성 과장이 나를 반겼다.
슬쩍 이불 밑으로 숨기는 리모컨은 못 본 척해 주었다.
“거, 검마 님! 어쩐 일로!”
“…….”
성 과장의 얼굴이 너무 핼쑥해 앙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가 침대에서 비척비척 일어나려 하길래 손사래를 쳤다.
“지나가다 병문안 왔습니다. 그리고 제발 가만히 있으세요. 수술 자국 터집니다. 제가 입원 많이 해 봐서 알아요.”
“어이구, 그런 말씀 마십쇼. 생명의 은인이 몸소 찾아오셨는데, 가만히 있을 수야 없죠.”
요단강을 두어 번 왕복했을 양반이 저런다. 나는 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는 사람 때문에 초상나면 누가 책임진답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 아니면 주치의 부르고 도망갈 겁니다.”
어른 상대로 건방진 건 아는데, 저러다 정말 골로 갈 것 같았다.
요 며칠 큰 수술을 받은 성 과장이다. 솔직히 가망이 없어 보이던 그를 의료진 십수 명이 달라붙어 간신히 살려 냈다.
의사들도 정말 죽은 사람을 부활시켰다며 자찬할 정도였다.
아직 여러 번의 수술이 남았다는데. 다행히 죽을 고비는 넘겼단다.
나는 성 과장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의 얼굴에 묻어나는 상실감은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일 터.
아끼던 부하 직원이 내부의 적이었으니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그렇다고 성 과장이 부채감을 떠안을 이유는 없다. 그는 선한 사람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아아, 예.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성 과장이 뗐던 등을 다시 침상에 기대었다. 나는 사 온 과일 통조림을 협탁에 놓고서 그 옆에 앉았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보시다시피 자잘한 부상 외엔 건강합니다!”
성 과장이 너스레를 담아 웃었다.
“팔, 다리가 사라지셨는데, 자잘한 부상이라니요. 농담이 좀 그렇네요.”
“원래 영웅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이런 부상이야 예삿일이겠습니까. 사실… 그런 것들 피하고자 연봉은 덜해도 사무직을 택한 거긴 하지만…….”
열심히 떠들던 성 과장이 말끝을 흐렸다. 이내 그는 반색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협회 측에서 이런 일을 대비해, 아티팩트 중 하나를 이용해 만든 의수를 제공합니다.”
성 과장이 돌연 무릎을 치며 말했다.
“아! 혹시 바라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검마 님. 이건 협회 차원에서 드리는 말입니다. 이번 호아킨 참사에서 저를 포함해 생도분들을 구해 내신 영웅 아닙니까.”
“솔직히 운이 좋았습니다.”
“하하, 그걸 운이라 말씀하시다니요. 아직도 그 장면이 선명합니다. 갑자기 회칼이 떠오르더니 쉭쉭- 적을 회 치셔서 저희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검마님은 보상을 요구하실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성 과장의 말대로다. 당시의 난 수천 개의 사시미를 공중에 띄워 적들을 도륙 냈다.
그러면서 ‘이기어검’이라는 간드러진 대사까지 뱉었었다.
당시를 돌이켜 보니 절로 얼굴이 달아오른다.
오글거리는 드라마를 보는 이 아저씨와 내가 다를 게 있나?
차라리 이 양반처럼 취향이면 존중받기라도 하지, 나는 적을 앞에 둔 상황에서 가오를 잡았다.
문득 차오르는 낯 뜨거운 감정에 얼굴을 쓸었다.
‘진짜 왜 그랬지?’
하다 하다 이젠 정신의 격이 행동마저 지배한다. 인간성의 마모보다 이쪽이 더 위험할 줄이야…….
…여튼, 그 이후론 나는 이기어검을 재차 발현하지 못했다. 몇 번 시도 해 봤는데 안 됐다.
심상의 영역에서 검의 이미지만 그려질 뿐이었고, 현실의 사시미는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특정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모양인데, 조건의 단서는 어렵지 않게 추측했다.
[검신의 가호 ‘심(心)’이 발현됩니다.]그 어귀가 나타나야만 이기어검을 부릴 수 있는 거겠지.
어떻게 해야 다시 발현될지는 모른다. 그래도 그건 앞으로 알아가면 되니까. 차차 고민해 보기로 했다.
나는 다시 성 과장을 봤다.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인다.
“…하 주임, 그 친구가 이번 일을 획책하지 않았습니까. 그에 관해서 우리 협회는 깊이 통감합니다. 그러니 저희로선 검마님께 누차 감사할 따름이죠. 협회의 실책을 몸소 도려내 주셨으니까요.”
“그렇군요.”
“진실은 꼭 공표할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검마 님께 마땅한 보상을 드리기로 이야기가 됐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도 무상은 있으면 안 되는 법이죠. 합당한 보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틀렸다. 나는 내 나름대로 수확이 있었다.
요르문간드의 독니. 마족인 녀석의 이빨은 상급 중에서도 특상의 강화 소재다.
다만 획득처가 마경 게헤나인지라, 기적의 가호 M에서 여간 얻기 까다로운 소재였다.
근데 악운 좋게도 난 놈과 맞닥뜨렸고, 토벌 후 쓱싹 갈무리했다.
지금도 무라사메와 독니를 뷜란트에게 맡기고 온 참이다.
마침 오는 길에 병원이 있어 겸사겸사 들른 거고. 즉, 난 챙길 건 챙겼다. 무보수가 아니었다.
참고로 요르문간드의 사체는 얼마 후 먼지처럼 산화했다. 불완전한 소환이었던 데다 환경이 급변한 탓이었다. 몸이 못 버텼겠지. 비늘도 챙기려 했는데 시간이 모자랐다. 아쉬웠다.
‘보수라…….’
나는 짧게 고민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바라던 바를 요구한다.
“사실 제가 원하는 건 줄곧 하나였습니다. 아티팩트 ‘모노리스’에 접근하는 것.”
성 과장은 당황한 눈빛이 됐다. 그가 되물었다.
“하지만 그건 검마 님께서 이룬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학생회장이 되시면 자연스럽게 협회 출입증도 발급되니까요.”
“그게 싫다는 겁니다. 제가 원하는 건 학생회장은 빼고, 협회 출입증‘만’이거든요.”
껍질은 버리고 알맹이는 먹고 싶다는 말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학생회장이 하기 싫다는 거였다.
“가능합니까?”
그제야 말뜻을 이해했는지 성 과장이 침을 삼켰다. 잠시 후, 바싹 마른 입술이 열렸다.
“가능합니다. 가능하고말고요.”
“반응이 영 시원찮아서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놀란 건 다름이 아니라 요구 사항이 너무 소박해서입니다. 윗선에선 물질적 요구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이야기가 나왔는데… 검마 님, 정말 여러모로 상상이시군요. 초탈하다 해야 할까요.”
이해 못 할 반응은 아니었다.
나라고 욕심이 없겠는가. 실리를 버리고 염치를 챙기는 성격도 아니다.
그러나 이걸로 만족한다. 이번 일로 많은 것을 뺏긴 사람이 눈앞에 있다.
팔다리와 부하 직원을 잃은 성 과장. 그런 이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협회에서 제시하는 보상일지라도.
그리고 나중에 가서 협회에 필요한 게 또 있을지도 모른다. 탐욕은 절충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게 옳다.
성 과장이 하나 남은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정리하자면, 검마 님은 회장 후보 자격을 포기하는 대신에 협회 출입증만을 원하신다?”
“예. 만약 득표율이 제가 가장 높았다면, 제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넘겨주십쇼.”
결심을 마친 성 과장이 고개를 주억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더 해 드리고 싶은데 본인이 거부하시니, 원. 살짝 민망해지려 합니다.”
그가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과장님이야말로 몸조리 잘하세요. 덧나요, 그러다. 아무튼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이야기가 성사됐다. 슬슬 병실을 나가려 한 순간.
Almost paradise~♪ 아침보다 더 눈부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벨소리. 성 과장의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저 아저씨, 드라마에 진심이구나.
성 과장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도 애써 못 들은 척해 주며 나가려던 차, 그가 급히 나를 불러세웠다.
“검마 님! 잠시만 기다리십쇼!”
나는 뒤돌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저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잠깐 전화 좀 바꿔 주시랍니다.”
“네? 누가요?”
성 과장은 말없이 핸드폰만 들이밀었다. 나는 떨떠름하게 전화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벽력같은 음성이 귀에 꽂혔다.
[이거 조카한테 이야기만 많이 들었지. 육성으로 듣는 건 처음이군! 며칠 후에 한국 갈 일이 생겼으니 얼굴도 직접 보게 되겠지만 말이야, 크하하!]“누구십니까.”
[내, 영웅 협회에서 부협회장을 맡고 있소. 이름은 리차, 성은 뮈라라 하지.]“……?”
[발음이 어려우면 편히 창성이라 부르게.]* * *
…동일한 장소, 같은 시각.
사키는 병원 3층 복도를 서성였다. 제자리를 빙글빙글 배회하던 그녀는 이내 창틀에 기대었다.
“하아.”
등에 닿는 유리창의 한기를 느끼며 사키는 머리를 젖혔다. 그녀는 천장을 지그시 응시했다.
“나 진짜, 왜 이러는 거야.”
그날, 호아킨 참사에서 사키도 부상을 입었었다. 여기저기 찢기고 피를 양껏 쏟아 냈다.
하지만 사키는 성 과장과 달리 멀쩡한 편이었다.
현장에 있던 웨폰과 강검마가 같이 치료의 가호를 발현했다. 그 덕에 잔흔만 남았다. 그마저도 이젠 눈에 안 띄었고.
그래도 정기적으로 검진은 받아야 했다. 마법을 온몸으로 받아 냈기에 추이를 봐야 한다나. 때문에 오늘 병원을 들렀는데…….
시선을 내린 사키가 뚫어져라 313호 병실 문을 바라봤다. 그때 문이 드르륵- 밀리고 강검마가 나왔다.
“어, 료조. 너 여기 왜 있냐?”
료조는 아무런 대꾸 없이 눈만 요리조리 굴렸다. 뭐라 할 변명이 마땅치 않았다.
어쩌다 너 들어가는 거 보고 기다렸어~ 이렇게 능청을 떨까?
…그딴 식으로 스토커처럼 말할 바엔 혀를 깨물지.
료조의 동공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했다. 그에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강검마가 눈을 번뜩였다.
“아, 너 검진 받는 날이구나.”
료조는 날름 말을 받아먹었다.
“으, 으으, 응. 맞아.”
“잘 치료하고 있네. 안심이다.”
싱긋- 미소에 료조는 뭔가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그, 그건 그렇고. 검마, 너는 병원에 무슨 일이야?”
“성 과장님 병문안하러 왔어. 그것 때문에 뜻하지 않게 귀찮은 일에 휘말리긴 했는데…….”
료조는 갸웃하다 곧 도리도리했다.
기다림에 더해 프라이버시까지 궁금해하다니. 안 좋았다. 스스로가 위험했다.
빌빌 꼬아지는 다리. 료조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차마 얼굴을 들기 힘들었다.
찬찬히 료조를 보던 강검마가 선뜻 입을 열었다.
“시간 괜찮으면 나랑 마트나 가자.”
그 제안에 료조는 눈을 빼꼼 들어 올렸다. 강검마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양갱 사 주기로 했잖아.”
“…아.”
“난 단 거 안 먹어서 어떤 게 맛있는 건지 몰라. 그리고 기호 식품은 본인이 직접 고르는 게 가장 좋잖아.”
료조는 강검마를 빤히 쳐다봤다. 까먹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검마 얘, 기억력이 세심하구나……. 료조는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양갱 말고 딴 거 안 될까……?”
“양갱이 아니라고? 그럼, 어떤 거?”
어색한 침묵이 맴도는 병원 복도. 석양이 두 사람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료조가 자그맣게 답했다.
“검마… 네가 해 주는 김치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