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6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64화(163/300)
164화 K-히어로 (2)
적막이 가라앉은 복도. 두 사람의 발소리와 한 사람의 심장 소리가 은은하게 퍼졌다.
또각또각.
어느덧 강검마의 방문이 시야에 들어오고서야, 사키의 머리 위로 비상등이 커졌다.
‘일이 왜 이렇게 된 거지?’
정신을 수습하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걸려 버린 것이다.
어째서, 왜! 갑자기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는 말을 씨부렁거렸지?
최근 강검마 관련 너튜브를 하도 봐서 그런가? 걸핏하면 K가 새겨진 섬네일로 시도 때도 없이 도배돼서? 그거 때문에 갑자기 김치란 말이 튀어나온 거야?
더 웃긴 건 그 말을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했던 건 아니라는 거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나온 대사였다. 그래서 더 혼란했다.
거기다 조금 전, 이 기숙사동에 입장했을 때 여사감이 묘한 눈으로 쳐다봤었지.
사키는 뭐라 반문하려 했다. 그러나 사감이 먼저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이 셔터를 내렸다. 그 사감의 시선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니! 한국말은 끝까지 들으라고 했잖아! 왜! 맨날 상대가 말을 만들어 주는 건데!’
애초에 아카데미 교칙에 떡하니 〈연·애·금·지〉라 명시되어 있잖아?
그러면서 남녀가 자유로이 기숙사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도 웃겼다.
아무리 생도들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지만, 최소한의 규정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은 해도, 결국 나도…….’
하아- 미간을 누른 사키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여기까지 왔다.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난생처음으로 남자 방에 가는 거라 긴장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강검마는 눈치 0단이다. 간혹 ‘보상’에 눈 돌아갈 때 빼곤, 십 대 같지 않게 욕구에 무기질적이었다.
얘랑 무슨 일이 일어날 확률? 0에 수렴한다.
그 부분에선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는데…….
쭐레쭐레 뒤따르던 사키는 문득, 강검마의 등을 바라보았다.
‘강검마, 얘가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밥을 대접했을 것 같진 않고… 방으로 들일 일은 더더욱 없을 것 같은데.’
사키의 뇌리에 전류가 스쳤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에서 자신이 처음이 되는 것이다. 입가에 생긋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강검마의 걸음이 멈췄다. 퍼뜩 정신을 차린 사키도 우뚝 정지했다.
“다 왔어, 여기야.”
“아. 으으, 응.”
문고리를 돌리기 직전 강검마가 물었다.
“너희 기숙사동이랑 다르게 좀 많이 좁을 텐데. 지금이라도 그냥 밖에 나가서 사 먹을래?”
사키는 도리도리 완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그리고 우리 동이 쓸데없이 큰 거지. 생도 기숙사가 그렇게까지 큰 거 자체가 이상한 거지.”
“네가 괜찮다면야.”
끼이익―
마저 돌려지는 문고리. 사키는 가슴을 쓸어내려 진정시켰다.
방에 들어섬과 함께 사키는 반사적으로 내부를 휘둘러보았다. 말마따나 방은 결코 크다고 할 순 없었다.
어림잡아 5평 남짓? 그러나 정리 정돈이 워낙 잘되어 있어 체감 넓이는 그 이상이었다.
베게, 이불보, 교보재, 개론서 등 모든 물품이 날카롭게 각이 세워져 있는 모습.
남자 방은 양말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퀴퀴한 홀아비 내가 나는 그런 걸 상상했다.
‘어후- 얘 좀 봐. 청소 좀 하고 살아!’라고 가볍게 타박한 뒤, 청소도 좀 해 주고.
그럴 생각이었는데…….
사키는 속으로 탄성을 흘렸다. 이건 뭐, 자신의 방보다 훨씬 깔끔했다.
먼지 한 톨, 나는 냄새도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무색무취의 깨끗한 방이었다.
강검마가 청결의 최전선인 주방에서 일한 탓이었다. 하물며 국가를 위해 3년을 봉헌한 그 아닌가? 다년간 몸에 밴 버릇이 이번 생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는 사키에게 강검마가 침대를 턱짓했다.
“저기에 앉아 있어.”
“…침대에 앉아도 돼?”
“의자가 있긴 한데, 너무 딱딱해서 잘 안 앉아. 참고로 마침 어제 이불 빨래해서 뽀송뽀송해.”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닌데……. 아무튼 고마워…….”
살포시 침대에 앉은 사키는 살며시 주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트에서 같이 장 봐 온 식 재료들을 꺼내 꼼꼼히 살피는 강검마의 모습.
“유통 기한이나 선도는 문제없는 것 같고.”
확인을 마친 강검마가 셔츠 옷자락을 한 뼘 걷어 올렸다. 탄탄한 팔뚝 근육을 드러내며 사시미를 잡았다.
그 장면을 사키는 넋 놓고 바라보았다.
분명 작고 소박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가슴 가득 채워 주는 만족감이 있다.
더럽게 넓기만 할 뿐, 갑갑하게 숨통을 조이는 본가와는 판이했다.
‘집…….’
일본에 돌아가지 않았던 방학 때, 집에선 한마디 연락조차 없었다.
당신의 딸이 집에 왔는지 안 왔는지조차 관심 밖이라는 거겠지.
차라리 아버지의 안중에 나 버린 지금이 속 편했다. 시작부터 잘못 꼬인 갈등의 고리였으니까.
사키가 열세 살이었을 무렵,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했던 말이 있었다.
– 이 세상은 최고가 아니면 역사에서 잊힌다. 나를 보아라, 일국의 수반임에도 검제 선배와 함께면 등한시되지 않느냐. 나는 그 수모를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구나. 적어도 내 자식만은 정상에 올랐으면 한다. 그렇다고 내가 못 이룬 바를 자식에게 강제할 생각은 없단다. 설혹 자질이 부족하다면, 적어도 칠성에는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거라. 그마저도 불가능하다면 짐은 너를 자식으로서 품어 주기 힘들겠구나. 이 아비에겐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말이다, 셋째야.
아버지는 줄곧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어렸을 적엔 그저 지엄한 탓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저의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사키 코지마는 당신에게 무가치한 자식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착잡한 표정을 짓는 사키를 강검마가 조용히 지켜봤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료조, 너 매운 거 못 먹으니까. 김치찌개 간은 축제 때보단 심심하게 해 줄게.”
료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홱 창 쪽으로 틀었다.
하늘이 어둡다. 그 한가운데에서 어슴푸레 빛나는 월광이 그녀의 뺨에 스몄다.
도마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정말로 듣기 좋았다.
료조는 이 소리가 1분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 * *
내 김치찌개는 료조가 숟가락으로 뚝배기 바닥을 긁게 만들었다.
매운맛을 죽이고, 설탕으로 단맛을 낸 게 입에 맞았던 모양이다.
그에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료조는 초면이었을 당시엔 양갱 이외엔 딴 건 입에도 안 댔다.
그런데 그런 애가 뚝배기를 싹싹 긁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소를 참기 힘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웃긴 건, 일본인에게 한식을 대접한다는 점이다.
전생엔 한국인 상대로 하는 일식 장사였는데, 그 정반대였으니.
감회가 몹시 새로웠다. 한식의 세계화에 일조한 기분이다. 약간 애국심이 차오른다고 해야 하나?
모든 일이 끝난 후, 진지하게 한식집을 차릴까 고민했다.
…….
나는 얼굴을 박박 문질렀다. 그래, 이런 고취감은 좋다. 딱 여기까진 옳게 된 애국심이다.
그러나 더 가면 국뽕이다. 거기서부턴 걷잡을 수 없다. 위기감이 들었다.
지구에선 한국의 위상이 어떨진 몰라도, 이 세계에서 이미 충분했다. 차고 넘쳤다.
전에 말했듯, 무려 세계 2위의 대국이자 호아킨 아카데미가 위치한 나라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 나를 세트로 끼워 넣는다.
한국인 + 호아킨의 생도 + □□□
조합의 파급력이 너무 셌다.
저 조합으로 짜깁기된 섬네일들과 연신 ‘주모~!’를 찾아대는 댓글 창. 치사량에 다다른 국뽕은 광기 그 자체였다.
‘돌겠네.’
이에 나는 저항도 못 하고 고통받고 있었다. 군단장들의 마법은 싹둑싹둑 잘만 잘랐다. 한데 영상들 앞에선 속절없이 당한다. 그것들도 마법처럼 썰어 버릴 수 있다면 좋겠건만.
‘…설마 벨 수 있으려나?’
무엇이든 베고 자를 수 있다면, 너튜브 영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피어를 싹둑 해서 오우거도 심장 마비 시켜 봤잖아. 시도해서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짝!
나는 제 뺨을 쳤다. 너튜브 영상을 사시미로 벤다고? 심란하니 별 말 같지도 않은 발상을 한다.
정신이 단단히 맛이 간 게 틀림없다. 이러다간 머지않아 나도 주모를 찾고 있을 것이다.
“왜 너 혼자 따귀를 치고 그래?”
료조가 슬슬 고무장갑을 벗으며 물었다. 밥은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본인이 한대서 맡겼다.
대꾸하기 전, 나는 슬쩍 싱크대 쪽을 흘깃했다. 아, 저거 설거지 다시 해야겠네.
하긴, 일본의 공주나 다름없는 애가 그릇을 닦아 봤을 리가. 그래도 접시 깨 먹는 클로이보단 나았다.
“벌레가 뺨에 붙은 것 같아서.”
“날이 이렇게 쌀쌀한데, 벌레가 아직 남아 있겠어? 그리고 벌레도 이런 깨끗한 방에는 안 와. 뭐 먹을 게 없어서.”
자연스럽게 료조는 내 옆에 앉았다. 침대보에 주름 자국이 새로 생겼다.
숨 죽은 듯한 침묵이 일은 잠시간, 그녀가 뜬금없는 질문을 해 왔다.
“검마, 너는 살면서 가장 원하는 게 뭐야?”
나는 눈을 돌려 료조를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선 감정이 몇 가지 맴돌았다.
허무, 슬픔, 불안함.
읽어 낸 감정들은 전부 부정적인 것뿐이었다. 왜 료조가 저런 미몽에 잠긴 표정을 짓는진 모른다.
하나는 확실히 알아차렸다. 이 질문은 그녀 자신에게 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 속뜻은 내게 청하는 상담이다.
‘원하는 거라…….’
돌이켜보니 나는 조바심에 급급해 훗날은 전혀 계획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나마 꿈꿨던 거야 1학기 초, ‘평이·무탈·안전’이었지.
물론 지금에 와선 전부 나가리 됐다. 이유야 자명했다. 내가 내 발로 걷어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즉에 정사가 꽈배기처럼 뒤틀렸는데, 안일하게 발뺌할 수도 없다.
어찌 되었건, 나도 서사의 줄기에 개입하게 됐다. 용사 레온을 뒤에서 돕는 조력자 느낌으로. 실제로 몇 번을 그래 왔다.
…그런데 그럼 마왕이 토벌되고 나서는?
지금의 난 인생을 딱 3년만 바라보고 달리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난 2차 인마대전이 종전된 이후에도 변함없이 이곳에 머무를 터다.
‘하면 그때부터의 난 무엇을 해야 하지?’
무심결에 던진 료조의 물음에서 상념이 길게 이어졌다.
“미안. 갑자기 너무 뜬금없었지. 그냥 검마 너는 매사에 욕심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따로 원하는 게 있는지 궁금했어.”
순간 일은 정적인 분위기에 료조가 손을 저었다. 나는 짧게 입을 열었다.
“가족.”
“……?”
“난 부모님이 안 계시거든. 근데 바란다고 생기진 않으니까. 그러니까 말 그대로 원할 뿐이지.”
진심이었다. 전 현생을 아울러 가정의 따스함을 느껴 보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나 내가 무엇보다 바라 마지않는 건 가족이었다.
료조는 두 눈이 껌벅거리더니 이내 크게 뜨였다. 그녀의 얼굴이 화악 붉게 물들었다.
많이 오글거렸나? 그리 생각하던 차, 흐릿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족… 만들면 되지…….”
“음?”
료조가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그녀는 도도도 문 쪽으로 도망쳤다.
“그, 그건! 3년 후에 성인 돼서 다시 이야기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료조는 하늘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그 방향을 쳐다보다 훌훌 침대를 털었다.
롤린~
그 순간, 핸드폰에 불이 들어왔다.
톡독 톡톡.
[나: 곤란한 상황이라면? 혹시 모노리스에 접근 못 한다거나 그런 겁니까?] [성 과장: 그게… 오후에 부협회장님이랑 통화하셨잖습니까.] [나: 그랬죠. 나중에 한국 오면 밥 한 끼 사고 싶다 그런 상투적인 말이었는데.] [성 과장: 네, 근데 검마 님이 떠나시고 부협회장님께서 따로 연락이 왔습니다. 논검(論劍)을 나누니 서둘러 진정한 사나이를 보고 싶다면서요.]논검을 한 적이 없는데? 창성, 그 양반한테는 밥 한번 하자는 게 말로 하는 칼싸움인가?
[나: 그건 그렇다 치고. 일정을 서두른다면 언제를 말하는 거죠?] [성 과장: 몇 시간 후에 도착 예정이십니다.]롤린~
[성 과장: 거기다 검마 님의 한국 협회 방문 가이드를 맡고 싶다는 첨언까지 남기셨습니다. 저는 한사코 말렸습니다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톡.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