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6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66화(165/300)
166화 의도치 않은 행운 (2)
안내하는 창성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협회 서울 지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 이유? 무릇 한국은 영웅계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 국가 아닌가. 땅이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영향력은 결코 약소하지 않지. 그리고 나도 한국에 정이 많아. 나 역시 호아킨의 생도 아니었나. 여튼, 규모에 맞게 서울 지부엔 과반에 가까운 아티팩트를 보관 중이야. 그중 하나가 자네가 찾는 모노리스고.”
강검마는 그런 그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덩치는 산만하면서 혀가 참으로 길다고. 어지간한 십 대 소녀들보다 말이 많았다.
메디아는 창성의 수다에 처음엔 진절머리를 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그냥 지껄이게 놔뒀다. 그래도 이게 나아진 편이었다.
“도착했군.”
이윽고 그들은 문 앞에 다다랐다. 높이와 너비로만 한 벽면을 차지할 만큼 거대한 문이었다. 재질은 티타늄을 가공해 만들어 무단 접근을 차단했다.
창성이 대동하던 요원 한 명에게 까딱 턱짓했다. 요원은 잽싸게 지문 인식 장치에 엄지를 넣었다.
치이익.
티타늄 철문이 양분되듯이 열렸다. 창성이 졸졸졸 따라오던 요원들에게 명했다.
“자네들은 밖에서 대기하게.”
터덜터덜 걸으면서 강검마는 내부를 둘러보았다. 유리관 안에 안치된 수많은 것들. 척 보아도 귀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분위기가 엄청 SF스럽네.’
화학 냄새가 뒤섞인 연기가 바닥에 자욱했다. 최소한의 보물들의 손상을 방지코자 살포하는 특별 가공된 산소라 창성이 설명했다.
잔뜩 으쓱대는 창성에게 강검마는 설렁설렁 끄덕였다. 만족스레 씩 하고 웃은 창성은 계속 안내했다.
5분을 이동하자, 웬 고인돌이 떡하니 있었다.
‘…저게 모노리스라고?’
돌치곤 크기가 매우 커 위용이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강검마는 당황한 심경을 숨기지 못했고, 눈치챈 창성이 덧붙였다.
“크하하, 예상대로의 반응이로군. 성 과장이 안 그러던가? 겉보기엔 그저 돌덩이라고.”
“들었습니다. 비유적인 표현일 줄 알았는데… 진짜 돌이라서 좀 당황스럽네요. 아티팩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검마의 말에 창성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말게, 아티팩트가 확실하니. 협회 연구진들이 수년간 꾸준히 조사했고, 아티팩트란 결론을 내렸지. 너무 실망하진 말게. 자 보게나, 여기 숯으로 그려진 그림들 보이나?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나.”
확실히 가까이서 보니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원시적인 생활상을 담은 그림들이었다.
“뿐만 아니야. 이걸 그린 이는 유일하게 생존한 고대인…….”
말을 하다 말고 창성이 슬그머니 메디아의 눈치를 살폈다. 차갑게 식은 녹안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메디아는 팔짱을 낀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창성이 크게 헛기침했다. 그는 돌연 강검마의 등을 탕탕 두드렸다.
“어쨌든 내 안내는 여기까지네. 나랑 메디아는 응접실로 올라가겠네. 필요한 게 있으면 저기 있는 인터폰으로 요원을 부르면 돼.”
강검마는 이런 흔쾌한 호의가 의아했다. 기분이 나쁘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럼에도 의아한 건 의아한 거다. 창성이 이토록 선의를 베푸는 까닭이 무엇일까.
메디아의 말마따나 협회로 오라고 살살 꼬드기려고? 강검마의 눈엔 마냥 그렇게 비치진 않았다.
속내를 읽으려 얼굴을 보아도 창성은 호탕하게 웃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창성은 모노리스에 접근한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 충분히 궁금해할 만한데도 말이다.
아무리 보상이라지만 뭔 짓을 할 줄 알고 귀물들이 즐비한 공간에 덩그러니 놓고 갈 수 있지? 홱 눈 돌아가서 슬쩍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두 사람이 사라지기 전, 강검마가 창성의 널찍한 등에 대고 물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건 어째서입니까? 보상이라도 그렇지, 저 혼자 여기 남으면 뭔 일을 할 줄 알고요.”
창성이 고개를 반만 돌렸다. 그의 입꼬리가 호걸처럼 높게 올라갔다.
“약자는 강자의 행동에 의문을 품는 게 아니야. 자네는 나보다 월등히 강하네. 그러니 나는 단지 내 신념을 따르는 것이고.”
“…….”
“그리 묻는 자네의 생각이 뭔지 알아. 자네를 어찌 믿고, 이 보물 창고에 남겨 두고 가는지 의아할 만해.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가? 자네가 구한 수천의 생명에 비하면 이깟 귀물들, 하등 쓸모없는 것들일세. 그러니 자네가 하려던 일을 하게. 늙은이들은 이제 빠질 테니, 크하하!”
티타늄에 튕겨 메아리치던 웃음은 그의 뒷모습이 그림자에 가려져서야 멎었다.
칠성 두 사람이 사라진 뒤, 강검마는 멀거니 그 방향을 봤다. 그리곤 다시 모노리스에 다가섰다. 그리고 돌에 새겨진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사냥하는 모습을 그려 둔 고대 벽화라…….”
강검마는 미간을 좁혔다. 그림을 관찰할수록 단순한 벽화가 아니었다.
사냥하는 인간과 당하는 것의 형상이 닮아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냥꾼의 등 뒤로 날개가 돋아 있었다, 피식자는 그렇지 않았고. 대단히 꺼림칙한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강검마는 조금 뜸 들이더니 손을 뻗었다. 감상과는 별개로 눈에 기대감이 깃들어 있었다.
이번에도 ‘검성의 숙원’ 때처럼 상태창이 떠오르려나? 그리 생각하며 손바닥이 차갑고 꺼끌꺼끌한 돌 표면에 닿은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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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돌발 퀘스트 발생.]신화시대 누군가의 기억을 열람합니다.
[※ 【???】의 두 번째 기억 편린 획득이 가능합니다. 획득 총수(1/7).] [※ 본 퀘스트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 클리어 가능합니다.] [※ 단, 몸을 움직일 시에 추가적인 보상은 획득이 불가합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수락까지 남은 시간 – 0:03]========
떠오른 상태창에 잠시 멍했다. 가만히 보기만 해도 클리어라고? 예의 그땐 스스로와 칼부림을 했는데, 그에 비하면 뜻밖의 행운이었다. 속된 말로 개꿀이었다.
끄어어어어어어어…….
하지만 바로 그다음, 사무치는 감정이 손끝을 타고 귓가에 스며들었다. 악에 받친 곡소리와도 같은 음성.
순간, 당황한 강검마의 머리가 반사적으로 흔들렸다. 한 맺힌 감정들이 등골을 바늘처럼 찔러 댔으니까.
……!
강검마는 화들짝 놀라 손을 뗄 뻔했다. 허나 생각의 속도보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게 먼저였다.
(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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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지부 응접실.
“일단 우리 아카데미 측에선 이렇게 정리해서 언론에 뿌리는 거로 하고… 한동안은 기자들 기삿감 걱정 없을 것 같은 게 아니꼬워 죽겠어.”
“대신 나머지는 영웅 협회에서 전부 처리하도록 하지. 그때까지만 수고해 주게.”
창성은 근엄한 표정으로 메디아의 말을 받았다.
서류 뭉치를 탁상 놓은 메디아가 짧게 실소했다.
“고릴라 너, 안 본 새 왜 이렇게 똑똑해졌냐? 생도 시절에 뒤에서 한두 자리 해 먹던 걔 맞아?”
“인간의 두뇌 역시 근육이다. 꾸준히 몸을 단련하다 보면 절로 지능도 올라가는 법!”
메디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받아쳐 주기엔 며칠 밤을 쫄딱 새워 체력이 달렸다.
“…말한 내가 잘못이지. 그건 그렇고, 아까 너… 내 선대들에 관해서 말할 뻔했지?”
“그,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네. 입조심한다는 게 그만. 앞으론 더 조심하도록 하지.”
“됐어. 언제까지고 비밀로 할 생각도 없었어. 어차피 주변 사람들은 웬만큼 다 아는 사실이잖아. 그래도 검마한텐 내 입으로 직접 말해 주고 싶었지.”
“…….”
“내가 천벌 받은 인류의 후손이란 거.”
* * *
후우웅.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벼가 황금빛 파도가 치는 것처럼 출렁거렸다.
무두질한 가죽을 걸친 사람들의 이삭 수확이 한창이었다.
그들은 만듦새가 어설픈 도구를 꼬나 쥔 채 벼를 베어 넘기고 있었다. 쇠로 만든 연장, 검이었다.
비록 현대의 관점에선 검과 낫 그 사이의 형태였지만 고대인들은 편히 검이라 불렀다.
검은 고대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작물의 수월한 추수를 도왔으며, 사냥의 질을 높였다. 그 덕에 생존이란 숙제가 해소됐다.
이 모든 게 검이 선사한 진보였다. 불과 몇 해 전까지 고대인들은 하늘을 향해 깍듯이 절하며 빌고 또 빌었다. 작은 단비라도 뿌려 주길 바라며 천상의 존재를 추앙했다. 그들의 삶은 기도에서 기도로 끝나는 굴레였다.
검은 그런 세속적인 족쇄에서 고대인을 해방했다. 본인의 손으로 직접 온건한 삶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하여 그들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떠날 날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 하늘에게 간청드리지 않아도 된다. 수동적인 삶의 태도가 능동적으로 변했다.
그렇게 천상의 존재들은 인류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혀 갔다.
그리고 그것이 종말의 단초임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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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자아이가 꽃송이를 엮었다. 오밀조밀 꼬아 왕관을 만들었다. 사냥을 나갔다 돌아올 제 아비를 위해 만든 화환이었다.
“이 정도면 아빠도 좋아해 주시겠지?!”
깜짝 선물 준비를 마친 여아는 주변을 넓게 둘러보았다. 추수가 한창이었다. 어른들은 저마다의 도구로 자른 이삭을 줍고 있었다.
“히히. 오늘도 쌀밥에 고기반찬~”
보고 있자니 벌써 배부른 기분이었다. 여아의 입에서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쿠우웅
그때 마른하늘에 천둥이 한 차례 울렸다. 여아는 불현듯 눈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한껏 커졌다.
“웅?”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사람이 서 있었다. 어떻게 공중에 둥실둥실 떠 있지? 거기에 그녀는 또 다른 점을 눈치챘다. 깃털을 흘리며 고고히 허공을 밟고 있는 모습.
저 높이 있는 사람의 등엔 날개가 달려 있었다. 순백의 깃털로 이루어진 한 쌍이었다. 문득 할머니한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자기 나이일 무렵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찾던 존재가 있었고, 그들의 대리인이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다는데…….
“천사님!”
번뜩 생각이 나 손뼉을 쳤다.
설마 그 천사님을 보게 될 줄이야! 비현실적인 광경이 그녀는 마냥 신기했다. 사리를 분별하기엔 너무도 어린 탓이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부릅떠 천사님의 모습을 담아 두기로 결심했다.
“우아, 진짜 예쁘다.”
여자아이는 저도 모르게 감탄성을 터뜨렸다. 보면 볼수록 넋을 놓게 만드는 아름다운 자태였다.
그런데, 순간.
스스스스슥.
하나였던 천사님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섯, 여섯, 일곱. 여아는 그 수가 손가락 개수를 넘긴 시점에서 세는 걸 포기했다. 그저 무한하게 증식되어 가는 점들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급기야 천사님들로 인해 드리운 그림자가 광야 전체를 뒤덮었다. 하늘이 빼곡히 채워져서야 이내 어른들이 머리를 젖혔다.
“저, 저건……!”
마을의 장로님이 소리쳤다. 그는 푸르죽죽한 얼굴로 질겁했다. 공포가 그가 쥔 지팡이에 스며든다.
왜 저러시지? 여아가 고개를 갸웃하던 차, 머리 안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치솟는 두통에 그녀는 머리를 감쌌다.
「안타깝도다.」
소리가 잘게 조각나 들렸다. 별들의 대행자. 그들의 음성은 하나이자 전체였다.
「결국 이번 세대도 실패로써 끝이 나고, 마(魔)에 침잠되고 마는구나.」
뿌우우우우우
뿔피리가 울려 퍼졌다. 천사들이 자세를 낮게 취했다.
「별들이시여.」
셀 수 없이 많은 날개가 약속했다는 듯이 펄럭였다.
「저희가 천벌을 대행하겠나이다.」
상앗빛 깃털들이 빛을 끌더니 곧장 흐트러졌다. 그들은 눈에 담지 못할 속도로 비행하며 지상을 휩쓸었다. 이삭으로 누렇던 대지가 검붉게 물드는 건 한순간이었다.
여아는 아연한 얼굴로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벼를 수확하던 여인들의 머리가 볍씨처럼 가볍게 떨어져 나갔다. 사냥을 나갔던 사내들은 옆구리가 찢겨 내장을 쏟아 냈다. 천사들은 날개가 인간의 피로 젖어 무겁게 날았다.
이 광경을 보는 자신 역시나 같은 운명을 맞이할 터였다.
“…….”
시뻘건 날개가 그녀 앞에 드리웠다. 여아는 움켜쥐었던 꽃 왕관을 놓쳤다. 날개 달린 괴물이 입을 연다.
「어리구나. 하지만 안심하거라. 네 다음 세대부터 더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별들께서 약속하셨다.」
천사가 내장과 피가 뒤엉긴 손을 치들었다.
「그러니 편히 눈을 감아라, 어린 실패작이여.」
여아는 울지 않았다. 눈동자만이 도자기처럼 무기질적으로 번들거렸다.
쯧-
바로 그때 뒤편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이 자연히 그곳으로 옮겨졌다.
“이걸 어떻게 가만히 있으라는 거야. 허상이라도 어린애 건드는 걸 참으라고?”
검은 머리와 매우 낯선 차림을 한 사람. 그는 새하얀 지옥 한복판에서 유일하게 검었다. 그가 작달막한 칼날을 길게 뽑아냈다.
“그리고 이딴 놈들이 천사? 지랄, 잘 쳐줘 봐야 비둘기 새끼들이 신의 대리인 행세하는 거 아니야.”
키리링, 쇳소리가 났다. 그 순간 천사 모두 눈썹을 꿈틀거렸다. 모든 시선이 강검마에게 모여들었다.
키이잉, 노여움에 찬 검날이 더 크게 울었다. 강검마는 눈을 감았다 떴다.
검이란 쇠로 일궈진 삶의 의지요, 개척 정신이 담긴 인간의 도구이자.
[검신(劍神)의 가호가 발현됩니다.]적을 죽이기 위한 무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