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67)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67화(166/300)
167화 의도치 않은 행운 (3)
강검마는 반쯤 뽑던 사시미를 도로 검집에 찔러 넣었다. 그는 천사들의 수를 헤아리려다 고개를 저었다. 너무 많았다, 사시미 두 자루로는 어림도 없을 만큼. 강검마가 욕을 지껄였다.
“또식이 백 마리 치킨이냐? 비둘기 놈들이 뭐 이리 빌어먹게 많아.”
사실 비둘기라 깎아내리긴 했지만, 놈들이 강적임은 분명했다. 그 사실조차도 부정할 정도로 평정심을 잃진 않았다.
‘저 새끼들이 다루는 힘. 정체가 뭐야?’
놈들은 마인처럼 마법을 다루지 않았다. 대신 하얀 기운을 붕대처럼 팔에 휘감았다.
게임 설정에 이런 존재들이 있던가? 잠깐 의념에 잠긴 강검마는 이내 생각을 관두었다.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지.’
비둘기 새끼들이 무슨 힘을 다루건 그게 알 바인가. 이놈들이 신랄하게 대학살을 벌이는 걸 목격한 마당이다.
천사? 염병. 서울 광장에 우르르 뭉쳐 다니는 비둘기가 이놈들에게 비하면 천사였다. 강검마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추가 보상 획득은 나가리 됐다. 그래도 본 목적인 두 번째 편린은 얻을 테니, 그걸 작은 위안으로 삼아야지.
‘아쉽긴 한데.’
정도를 벗어난 학살극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허상임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강검마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인류사의 편린을 제삼자로서 관망했다. 그렇기에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단지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몰살시키는 저들에게, 그리고 그 상위의 존재들에게. 강검마는 숫제 분노를 느꼈다.
“…….”
문득,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웬 작은 꼬맹이가 혼이 빠져나가 자신을 쳐다본다. 녹음처럼 반짝이는 민트빛 머리칼과 홍채의 여자아이. 강검마는 그녀에게 옅게 미소 지었다.
“꼬마야.”
“에, 에?”
다행히 퀘스트라고 한국어 패치는 된 모양이다. 강검마는 여아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정좌했다. 시선을 부러 낮추고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름이 뭐야?”
“메스더요…….”
강검마가 한 번 더 싱긋 웃었다.
“잘 들어, 메스더. 지금부터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알았지?”
검은 머리 아저씨의 미소에 그녀의 눈에서 가셨던 생기가 돌아왔다.
“저리로 튀어.”
그리 말하면서 강검마는 언덕 위 돌무더기를 향해 눈짓했다. 꼬맹이의 다리가 짧아 멀리는 못 도망갈 터. 그나마 지붕이라도 있는 저 돌덩이들이 그녀의 방공호가 되어 줄 것이다.
입술을 달싹이던 메스더가 이내 말없이 끄덕였다. 직감적으로 이 아저씨의 말을 따르는 게 맞다 생각했다.
‘아, 맞다.’
메스더는 떠나기 직전, 바닥에 떨어졌던 화환을 주웠다. 피가 튀어 볼품없었다. 원래 아빠에게 주려 했다. 하지만 날개 달린 괴물들에 의해 주인을 잃은 선물이었다.
메스더는 오밀조밀한 손으로 그것을 꼼지락거렸다. 그녀는 잠깐 주저하다 눈앞에 아저씨의 머리 위에 왕관을 얹었다.
“이거 드릴게요.”
“어…….”
강검마는 당황했다. 그러나 바로 반색했다. 그가 웃었다.
“고마워, 잘 쓸게.”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메스더의 말에 강검마가 차분히 호응했다. 여유가 있어선 아니었다. 단지 적들이 아직 움직일 기미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비둘기들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이.
“난 강검마.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니야. …엄밀히 따지면 맞긴 한데, 생물학적으로는 아직 십 대다.”
“몇 살이나 먹었는데요?”
“그만 묻고, 빨리 도망가.”
“어차피 저 빼고 다 죽었는걸요. 저 여기서 죽어도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대답해 줄 때까지 안 움직일 거예요.”
애가 너무 어려서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됐구나. 강검마가 한숨 쉬며 대꾸했다.
“열일곱.”
“엥, 저보다 세 살 어리네요?!”
“…뭐?”
두려움에 질렸던 메스다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생기가 돌았다.
“강검마…….”
메스더는 이름을 곱씹어 본 뒤에 곧장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더 이상의 대화는 아저씨(?)께 방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메스더는 장로님, 이웃, 부모님이 사라진 현장을 차례차례 등졌다. 원죄를 간신히 비껴 간 고대인은 그녀 하나였다.
‘절대 이 모든 걸 잊지 않을 거야.’
메스더는 달렸다. 발이 까져 피가 나도 멈추지 않았다.
‘내가 기억해야 훗날 사람들이 이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테니까.’
질끈 감긴 눈썹을 비집고 무언가 삐져나온다. 그제야 참았던 울음이 엉엉 터져 나왔다.
천사들이 서로를 보았다. 사념을 공유하고 있기에 입이 아니어도 소통할 수 있었다.
천사장 우리옐이 대표해 입을 열었다.
「네놈은 무엇이냐?」
“…….”
강검마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검날을 한 뼘 뽑아 빤히 보았다. 잘 갈린 쇠붙이가 처연히 울고 있었다.
그때였다.
[히든 – Crown of flower를 촉매로 세계 선의 역사가 다시 쓰입니다.] [장소 – Code. Ancient의 촉매로 격의 일시적 상승이 가능합니다.] [프로그램이 억제력을 사용해 현 장소 Code. Ancient의 재조정 및 동기화를 진행합니다.]지이잉―
천사장 우리엘이 채근했다.
「질문이 잘못되었구나, 다시 묻겠다.」
“…….”
「네놈에게 그 힘을 준 자는 누구더냐? 사악하기 짝에 없는 그 힘을 부여한 불결한 자의 이름을 고하라. 존재만으로 하늘의 별을 모독하는 그 힘을 준 자를 말이다.」
“…….”
「답할 생각이 없다면, 그 뇌를 꺼내서라도 알아야겠다.」
“구구구, 겁나 보채네.”
피비린내 나는 침묵이 유리처럼 깨졌다.
“누가 줬냐고? 나도 몰라, 씨발. 알면 내가 아티팩트 찾아다니면서 이 고생을 하겠냐?”
「……!」
“그래, 뭐 하는 사람인지 그건 알려 줄게. 얼마 전까진 생선 잡던 사람이거든? 근데 지금은 업종 변경했다.”
사방에 널브러져 있던 인간의 도구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가 나가 톱처럼 된 검, 과연 검이라 해도 될까 싶은 투박한 모양새. 하지만 그 수만큼은 천사들과 비교해도 부족함 없었다.
강검마가 말했다.
“치킨집 사장이다, 조류 새끼들아.”
[검신(劍神)의 가호(假呼)가 해제됩니다.]콰과과광!
천둥소리와 동시에 검들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허공을 훑었다.
산개한 검날들이 천사의 생살에 짓쳐 들었다. 사지가 분리됐다. 기름통 속 튀김옷처럼 황금빛 선혈이 허공에서 튀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끊이지 않는 비명, 풀풀 풍기는 냄새가 광야를 가득 메웠다.
천사들은 도망치려 애썼다. 그렇다고 맞이해야 할 쇠붙이를 피할 수 없었다. 칼끝은 곧 천사들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렇게 1분간, 인간의 도구가 천상의 존재를 으스러뜨렸다.
투둑투둑 날개 잃은 시체들이 가랑비처럼 추락하고 있었다.
미지의 존재가 홀로 천사 무리를 압도하는 기현상.
이 장면이 먼 후대까지 구전된다면, 이리 불릴 것이다.
신벌이라고.
* * *
[【???】의 두 번째 편린, ‘살아남은 아이’를 획득했습니다. 획득 총수(2/7).]―파앗!
== ==
『대지가 피로 적셔진 천벌 속에서 한 아이가 살아남았다.
저주받은 아이. 별들에 간택받지 못한 인간. 그녀를 부르는 숱한 오명들.
하나 그녀의 명맥은 인류사에 지대한 공헌을 끼치며, 실제로도 그러하고 있다.
훗날, 아이는 심판의 날을 거대한 돌에 그림으로 담아 냈다.
그릇된 심판을 남기기 위해. 그날의 은원을 다시 보길 염원도 같이 새겼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진검(眞劍)이 탄생하는 발판, 문자의 시작이었다.』
== ==
[돌발 퀘스트: 고대인의 기억 달성!]삐빅!
[※다만 추가 보상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 […….] […….]♪♬♩♫♪
[NEW! 히든 퀘스트 ‘유일한 생존자’를 달성하여, 진(眞) 보상이 증여됩니다.] [▷ ‘차력(車力)의 가호’를 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수고하셨습니다.]* * *
창성이 서류 뭉치를 세워 탁탁 책상을 쳤다.
“이야기가 얼추 매듭이 지어졌군. 수고 많았네, 메디아.”
“이 정도야 평소 아카데미 업무량 크게 다를 바 없어서 괜찮아. …잠을 오래 못 자서 피곤하긴 한데, 한시름 덜었으니까 가서 좀 자야지.”
메디아는 눈 주변을 마사지했다. 그녀를 보는 창성의 표정은 어째 씁쓸했다.
“이 나이 먹어서까지 고생이 많군. 젊어선 마족들한테 죽을 걸 걱정했는데, 요새 들어선 병마가 더 두려워. 아, 물론 자네는 나와 달리 훨씬 더 살 테지만, 크하하! 인간으로 따지면 아직 스무 살 정도 아닌가?”
“별종 취급하지 말아 줄래? 남들보다 오래 살 뿐, 나도 평범한 인간이거든?”
“수백 년을 더 사는 게 평범하다고 할 수 있나…….”
메디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창성이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그건 그렇고, 자네의 선조가 어떻게 천벌에서 살아남았는지 말해 줄 수 있나? 강검마를 모노리스까지 안내하니 문득 궁금해져서 말이야.”
“아빠한테 한 번쯤은 들었을 거 아니야. 네 직속 상관인데 그 정돈 말해 줬을 것 같은데?”
“협회장님과는 사담을 안 나눈 지 꽤 됐네.”
“왜? 너 우리 아빠 잘만 따랐잖아.”
“현재 칩거 중이시다. 한 3년 됐군.”
“또? 삼백 살 넘게 드시더니 드디어 치매가 온 건가?”
“어언 50년이 흘렀으니 슬슬 새 신분을 파실 때가 된 것이지. 포이즌 일족의 전통이지 않은가. 그리고 협회장님도 고대인 나이로 치면 이제 갓 중년이시다.”
“그래도 그렇지, 딸한테 언질 정돈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허구한 날 말도 없이 툭하면 사라져들. 언니도 학원장 자리 떠넘기고 실종된 지가 한참인데, 이젠 아빠까지? 어휴, 이놈의 집구석.”
메디아의 한숨이 낮게 깔렸다. 그녀가 다시금 입을 뗐다.
“어쨌든 포이즌의 시조에 관해선 나도 정확히는 몰라. 워낙 뜨문뜨문 전승돼서. 그나마 한 가지 변치 않고 구전되는 건, 갑자기 나타난 인간이 나타나 천벌을 중지시켰다는 거 정도?”
“어느 인간이라……. 천벌을 가로막을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게 쉬이 상상이 안 가는군.”
“기록에 따라서 달라지긴 하는데, 그냥 재앙을 인간화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해. 신화나 전설이 보통 그렇잖아. 갑자기 뭐가 나타나서 박살 내고, 갑자기 누가 구해 주고. 그러면서 으레 신격화하고. 같은 맥락이겠지.”
“신화든 전설이든 간에, 그래도 그 덕에 고대인의 명맥이 유지되는군그래.”
메디아가 남 일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전승이 사실이라면 천운을 타고나신 거지, 내 선조께선.”
삐비빅-
내선 전화가 울렸다. 메디아에게 양해를 구한 창성이 수화기를 들었다.
“날세, 무슨 일이지?”
[검마님께서 용무가 끝나신 것 같습니다.]창성은 수화기를 잡은 채 고개를 돌렸다. 나른한 눈과 마주쳤다. 메디아가 고개를 까딱였다.
창성이 다시 수화기에 입을 가까이 댔다.
“바로 내려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