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7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70화(169/300)
170화 주모! 여기 한 사발 더! (2)
한창 웨폰과 케인이 치열한 설전을 벌이던 중이었다. 돌연 전화를 받은 케인이 통화 뒤에 조심스레 물어 왔다.
“저… 검마 님, 올 뮤트 씨와 아공간 대련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내가 불쾌한 티를 내자, 케인이 서둘러 부연했다.
정작 이유는 자신도 모른다. 하지만 올 뮤트 씨께서 꼭 검마 님과 대련을 치르고 싶어 한다. 섭섭지 않게 보상도 드리겠다. 이 같은 말들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애초에 케인의 명함에 번듯이 ‘올 뮤트의 매니저’라 박혀 있었기에, 그녀의 동행은 눈치챘다.
그런데 난데없이 찾아와 낯간지럽고 휘황한 말을 늘어놓고서 이젠 돈 줄 테니까 올 뮤트와 싸워 달라고? 미친 건가?
그리고 내가 용병도 아니고, 돈 받고 싸워 달라면 투덕투덕해 줘야 해?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그래도 랜슬롯 컴퍼니답게 금액이 아득했다. 아공간 대련 한 번에 10억. 십 대에겐 어마어마한 거금이다. 거부하기 어려울 만큼.
하지만 금액적 제시를 떠나서 나는 애먼 사람한테 칼을 겨냥하기 싫다. 올 뮤트랑 아무런 접점 없는 생판 남이다. 그녀와 싸울 까닭이 전혀 없었다.
기자들만 땔감 생겼다고 좋아하겠지. 내게 모이는 불필요한 주목은 덤으로. 손익을 계산해 보면 명백한 손해다.
‘겁이나 줘서 돌려보내야겠네.’
살기 한 번 날려 주면 부들부들 떨면서 자리를 피할 터. 더 이상 귀찮은 일은 사양이니까.
“하자, 부장.”
옆에 있던 웨폰이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내가 봤을 때 차기 칠성 자리를 가르는 대련일 거야. 학원장님이랑 이야기하다가 좀 틀어진 것 같으니, 급하게 노선을 튼 거지.”
웨폰은 주변 인물 중 몇 안 되는 내가 검제의 후계라는 걸 아는 이다. 그래서인지 말에 보다 근거가 내재돼 있었다.
웨폰이 계속 말했다.
“부장이 납득하게끔 풀어 설명해 주자면, 이거 대련 거부하면 더 귀찮아질걸. 언론에선 널 힐난하는 기사들 일색일 테고.”
생각해 보니 그건 그렇다. 여론몰이에 능한 미국이 이런 떡밥을 숨길 리는 만무하니까. 어디 가서 떠벌떠벌 씨부렁거리겠지.
‘그럴 바에 대련 한 번으로 싹을 자르라 이건가.’
그래도 영 내키지 않았다. 인의 격이 상승한 이후부턴 가급적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
[EVENT! 돌발 이벤트 발생.]차력(次力)의 가호를 병용해 상대를 참교육하세요!
◆ 보상:
1) 【???】의 세 번째 기억 편린의 ‘소재지’를 알 수 있습니다.
2) 차력(次力)의 가호 숙련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조건:
1) 상대를 철저하게 이길수록 숙련도가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 승낙 여부가 자유인 이벤트입니다.] [※ 단, 거부할 시 세 번째 기억 편린의 습득이 다소 늦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뭐.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네.
* * *
이번 아공간 대련은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호아킨 참사로부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기다. 한데 이런 대사건이 또 터진다면 아카데미의 이미지가 영 좋지 않게 될 터. 그렇기에 관련자들만 연무장에 자리했다.
강검마는 올 뮤트를 바라보았다. 확 튀는 성조기가 새겨진 쫄쫄이 코스튬. 그 옷을 입고 이리저리 체조하며 몸을 푸는 모습. 내심 탄식했다.
‘저 옷 입고 안 쪽팔리나?’
처음에도 생각한 거지만 선 넘은 디자인이었다. 코스프레라면 모를까, 저건 기능성 슈트였으니 위화감이 두 배였다.
만약 백지 수표에 넘어가 날름 계약서에 사인했다면? 태극기가 그려진 코스튬? 이명도 김치 워리어 같은 걸로 되는 거 아니야? 상상만 해도 오금이 떨렸다.
강검마는 한숨 쉬며 사시미를 뽑았다. 마침 어제 뷜란트가 강화를 마친 무라사메를 탁송했다.
스르릉-
새하얀 칼날에 얼굴이 고스란히 반사됐다. 거울 삼아 보고 있으니 정신이 숫제 맑아졌다. 애장이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등 떠밀려 하는 대련이지만, 성능 시험 겸으론 나쁘지 않았다. 강검마는 칼날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올 뮤트를 봤다. 정확히는 그녀가 착용 중인 무장을 보았다.
양 손목에 낀 팔찌 한 쌍. 쌍생아의 고리, S급 무장 중에서도 특상에 해당하는 무장이었다.
올 뮤트의 가호 [차단의 가호]와 더없이 잘 어울리기도 했다. 사용자와 무장의 상성이 완벽한 예로 꼽힐 정도였다.
빤히 주시하자 올 뮤트가 이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녀가 콧잔등을 문지르며 말했다.
“대련에 앞서 갑작스러운 요청에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거절하셨다 들었지만,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 금액을 요구하셔도 됩니다.”
몹시 공손한 말투에 강검마가 떨떠름해졌다. 뭔가 살기등등한 얼굴을 예상했는데 도리어 미안한 기색이었으니. 강검마도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하긴 했는데 대가성으로 대련하고 싶지 않네요. 그리고 그쪽도 그쪽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테니까. 피차 최선을 다해 보죠.”
그제야 올 뮤트가 옅게 웃었다. 그리고는 표정을 갈무리, 차갑게 정색했다.
“…그렇다면 정말 인정 사정 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올 뮤트가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눈빛에 예기가 깃들었다.
[지금부터 아공간 장막을 전개합니다.] [영웅의 가호가 함께하기를.]후우웅.
인위적인 기류가 두 사람의 거리를 휘감았다. 올 뮤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리고 즉시 가호를 발현했다.
스스스.
올 뮤트의 눈에 일순 동공이 사라지고 눈자위만 덩그러니 남았다. 눈 주변에 핏줄이 거미줄처럼 맺혔다.
차단의 가호. 자신의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중 하나의 감각을 빼앗는 가호다.
언뜻 가호가 아닌 저주와 같은 능력이다. 하지만 하나의 감각을 포기할 시, 다른 네 가지의 감각을 증폭시킨다.
스스로를 차단하면 차단할수록 강해진다. 칸 엘리자베스가 올 뮤트(All mute)라 불리는 이유였다.
칸은 이번 대련에서 ‘시각’을 포기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극한까지 확장된 청각이 주변을 넓게 탐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손뼉 치는 것처럼 팔찌를 부딪쳤다. 댕댕 종소리가 파문을 일더니 강검마를 빠르게 휘감았다.
“…허, 백안(白眼)에다가 쌍생아의 고리까지? 엘리 완전히 작심했나 보네.”
대련을 지켜보던 메디아가 헛웃음 했다. 옆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마오 랑이 말을 받았다.
“그러게요. 쌍생아의 고리, 자신이 차단한 감각을 상대도 포기하게끔 만드는 동귀어진 무장. 근데 칸, 쟤는 기감 자체가 정상인이 아니라 시각 포기가 단점이 아니죠. 오히려 버프라 할 수 있을 만큼. 반면 상대는…….”
“인간은 생화의 90퍼센트 이상을 시각에 의존하는데, 갑자기 그걸 뺏긴다? 사실상 전투 불능이라 봐야 하지.”
하던 말을 끊고서 메디아는 강검마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우두커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눈에 백탁이 드리운 게 그 또한 시각이 차단당한 모양이었다.
마오 랑이 꼬아진 다리를 풀며 물었다.
“학원장님, 쟤 분위기가 평상시랑 많이 다르지 않아요? 원래도 퍽퍽한 인상이었는데 저렇게 서 있으니까 꼭.”
강검마의 얼굴엔 미동이 없었다. 한순간에 시각이 박탈당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자약했다.
“응… 현실에서 심상의 영역을 쓰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야.”
메디아가 침음을 흘리며 답했다.
반면 강검마는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전에 검의 신이 나왔던 꿈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하.”
잇새로 짧은 웃음이 삐져나왔다. 모든 자극이 차단됐다.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도 가늠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릿속엔 한 치의 불안함도 없었다. 오히려 통풍된 듯 상쾌했다.
강검마는 눈을 감았다. 뜨지 않은 채 분산된 감각을 가다듬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비로소 감지되는 것들. 외부의 개입이 얕아지니 내부에서 새로운 자극을 제시한다.
촉각, 뺨을 훑는 실바람마저 바늘처럼 따끔따끔했다. 후각, 모래사장에 얼굴을 파묻은 것처럼 흙내가 짙었다. 미각, 입안에서 세포 조직의 맛이 맴돌았다. 마지막으로 청각…….
콰과광! 지면이 짓뭉개지는 장면이 귀에 꽂혔다. 올 뮤트가 땅을 박차는 소리가 선명한 장면으로 뒤바뀌었다.
강검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 소리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서 들려온 것이다.
차력(次力)의 가호. 찰나의 순간이나마 시간 선을 넘나드는 능력. 모노리스를 통해 얻은 가호다웠다.
[차력(次力)의 가호 숙련도 – 8%]강검마는 자세를 취했다. 가호로 엿본 미래를 대비해 근육은 최적의 움직임을 준비했다. 실로 기묘했다. 답안지를 보며 채점하는 것 같았다. 선택지 없이 판단할 수 있었다.
콰과광!
다시 한번 울리는 파공성. 현실과 미래가 한 점에서 맞물렸다.
강검마가 역수로 잡은 사시미를 아래에서 위로 올렸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칼날이 선이 아닌 면으로 사선을 하나 그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공격을 예측했다고 해도 성급하다 싶었다. 저건 그냥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칼질하는 꼴이었다.
그러나.
발이 이제 막 떨어진 올 뮤트가 휘청거렸다. 그녀는 다릿심으로 어렵사리 중간에서 급정지했다. 곧바로 왼쪽 옆구리를 더듬었다. 휑했다. 왼팔이 무언가에 잡아먹힌 듯 사라졌다.
올 뮤트의 눈동자가 크게 열렸다.
‘어, 어떻게……?’
왼 주먹으로 강검마의 관자놀이를 노릴 공산이었다. 그런데 가까이 닿기도 전에 의도를 품었던 왼팔이 잘려 나갔다. 이 기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머릿속도 눈앞처럼 새하얗게 표백됐다.
[차력(次力)의 가호 숙련도 – 12%]그때 뚜벅뚜벅 걸음 소리가 이것이 현실임을 꼬집었다.
올 뮤트는 뒷걸음치려 했다. 강검마가 가볍게 사시미를 휘둘렀다. 그러자 발이 땅에 묶인 듯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잠시 후, 상체가 기울었다. 그제야 올 뮤트는 알아챘다. 조금 전, 칼질에 두 발목이 베인 것이다.
[……15%]비명을 지르려 했다. 은빛 실선이 곡선으로 그어지더니 목청에 힘이 풀렸다. 목소리 대신 울대에서 핏물이 뒤늦게 터져 나왔다.
[……17%]당사자인 본인이 채 의도를 품기도 전에 사지가 하나둘 썰린다. 사고의 자유마저 박탈당했다.
강검마는 생각을 읽어 내는 게 아니었다. 그런 가호였다면 수긍했을 터다.
올 뮤트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존재를 보았다. 그 위압감에 뇌 운동이 멈췄다. 시력을 잃었음에도 형상이 뚜렷했다.
강검마의 강함은 인지하고 있었다. 마오 랑과의 일전을 봤지 않았는가.
그때는 과정과 결과가 역전된 검술이었다. 하나, 지금은 어떤가. 의도를 품기도 전에 칼을 휘두른다. 마치 미래라도 내다보는 것처럼.
올 뮤트의 속눈썹이 떨렸다. 곤두선 감각들이 현장 정보를 뇌에 전달했다.
검의 악마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