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7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71화(170/300)
171화 주모! 여기 한 사발 더! (3)
올 뮤트의 비서, 케인은 정신이 멍했다. 휘둥그레진 눈을 여러 차례 껌뻑였다.
너무 거대한 충격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거 꿈인가? 몽롱한 의문뿐이었다. 하지만 인중에 맺힌 식은땀이 현실을 반영했다.
그는 안력에 힘을 주고 연무장을 쳐다보았다. 사지가 분리된 채 나동그라진 올 뮤트. 강검마가 그런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대련을 기어이 매듭짓기 위해서. 이미 무력한 올 뮤트에게 다가간다.
그 모습에 굵은 땀방울이 볼을 타고 쭉 미끄러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엘리!”
그 소리에 반응하듯 강검마가 고개를 돌렸다. 차갑게 식은 눈이 꿰뚫듯 자신을 응시한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꽉 움켜쥔 듯한 느낌. 강검마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조용.
음소거된 그 한마디에 케인의 초점이 흐릿해졌다. 뭔가 꽉 막힌 듯 목 주변을 긁어 댔다.
“커걱…….”
짧은 신음을 끝으로 케인은 졸도했다. 정신이 완전히 날아가기 직전, 케인은 생각했다. 오우거를 심장 마비시켰다던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픽 쓰러진 케인을 본 마오 랑의 얼굴도 아연해졌다. 거만하게 꼬아졌던 다리가 절로 예의를 차렸다.
대련이 끝난 후, 마오 랑은 올 뮤트를 찾아가 배 잡고 깔깔 웃으며 조롱하려 했다. 그 하나를 위해 중국에서 부리나케 달려온 거니까.
그런데 그럴 마음이 쏙 들어갔다. 어지간해야지. 마오 랑은 강검마를 보았다. 입술이 김부각처럼 바싹 건조됐다.
‘이제는 진짜 괴물이 됐구나.’
강검마는 자신과 대련 당시보다 발전한 게 아니었다. 저건 진화였다. 그래프로 치면 90도로 꺾여 치솟는 직선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만약 내가 지금의 강검마와 싸웠다면…….’
등골에 어스름이 일었다. 동공이 쪼그라들었다. 그러더니 허파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속이 꿀렁거리고 목구멍이 간질간질했다.
딸꾹! 마오 랑은 입을 틀어막았다. 그 손이 벌벌 떨렸다. 강검마의 눈길이 이곳을 향한다면 케인 꼴을 면치 못하리라.
마오 랑은 더 이상 강검마를 같은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저건 검을 휘두르는 요괴였다.
마오 랑은 혀를 깨물어 딸꾹질을 참아 냈다. 자칫 혀가 잘려도 대수인가. 요괴의 희생양이 되는 것보단 나았다. 덜덜덜.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 이내 강검마가 올 뮤트와 가까워졌다. 그는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내려다보았다.
올 뮤트의 생명 반응은 끊길랑 말랑거렸다. 산 송장이 있다면 딱 이러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그냥 참혹했다. 미간이 절로 모였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차단의 가호]에 의해 잠시 맹인 검사가 된 탓이었다. 눈이 보였다면 이 정도로 오체분시하진 않았겠지. 사실 [차력의 가호]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과하게 처사한 감도 있었다.‘바로 끝내야겠다.’
강검마가 그리 결심하며 사시미를 추켜올렸다.
그때 올 뮤트가 뻐끔뻐끔 입술만 움직여 말했다. 잘린 성대에서 울컥울컥 피가 길게 치솟았다.
“사… 살려 주… 세요…….”
올 뮤트는 이것이 아공간 대련이란 걸 잊었다. 공포에 침잠되어 인지가 날아갔기 때문이다.
최강의 히어로일지라도 그녀 또한 사람이었다. 사망을 눈앞에 둔 인간은 머릿속이 꼬이기 마련이다.
올 뮤트의 말에 이마를 노리던 사시미가 멈칫했다. 강검마가 칼자루 밑동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제가 영어를 못해서 뭔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
“그래도 빨리 끝내 달라는 말 같으니까.”
올 뮤트의 동공에 지진이 났다. 급한 대로 손을 들어 저지하려 했다. 근데 팔이 없었다. 이 소드 데몬이 팔다리를 전부 앗아갔다.
다급함과 공포가 한데 뒤얽혔다. 올 뮤트가 버둥버둥 몸부림쳤다. 강검마가 그녀를 나지막이 타일렀다.
“괜찮습니다. 한 방에 끝나면 안 아파요.”
강검마가 치과 의사처럼 말했다. 하지만 올 뮤트에겐 그 모습이 다르게 비쳤다. 아가미에 칼을 찌르려는 일식 요리사처럼 보였다. 그에 올 뮤트가 습관적인 비명을 내질렀다.
“FUCK!”
아, 맞다. 이 욕은 만국 공통어였다. 이를테면, 한국의 ‘씨발’처럼.
“욕?”
리액션은 즉시였다. 강검마의 오만상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인은 결례를 참지 않는다. 허공에서 멈췄던 사시미가 움직였다.
올 뮤트의 눈가에 반짝이는 액체가 맺혔다. 회개의 눈물이 흐르는 순간, 칼날이 머리통을 두드렸다.
뻨!
올 뮤트의 오감이 전체 차단됐다. 욕설을 입에 담은 대가는 죽음이었다.
* * *
“정신이 좀 들어?”
그 소리에 올 뮤트의 두 눈이 뜨였다. 그녀는 옆을 힐끗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오 랑.”
“그래도 내 얼굴 기억할 정신은 있구나? 대련 끝난 이후에 완전 눈이 까뒤집혀서 진짜 죽은 건 줄 알았거든.”
마오 랑은 킥킥 웃으며 병상에 걸터앉았다. 그녀가 잔망스레 발을 까딱이며 물었다.
“그래서, 강검마랑 대련해 본 소감은 좀 어때?”
올 뮤트는 즉답하지 못했다. 아직 완전히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참 동안 이불보를 쥐었다 펴고서야 말했다.
“괴물이더군. 강검마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서 있는지조차 짐작되지 않을 정도야. 마주하기 전까지는 가능성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했지만, 아니었어. 나는 녀석의 진심을 끌어내지도 못했다.”
“…….”
“무력만 그랬으면 어떻게 극복해 볼 생각이었어. 근데 심계도 밑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솔직히 그냥 압도적인 차이라서 패배 요인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담담하게 자조하는 올 뮤트를 마오 랑이 지그시 응시했다.
패배를 모르고 자라 왔던 칸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열등감에 휩싸이게 했던 그녀가 오늘 참패했다. 적어도 얘만큼은 자신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줄 알았건만.
마오 랑은 속으로 작게 침음했다. 그러다 애써 득의양양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치? 축제 때 내가 괜히 당한 게 아니라니까? 그 일 이후로 영웅 사회에서 온갖 무시를 받던 걸 생각하면, 어휴. 어쨌든 너는 상대해 봤으니까 알 거 아니야. 강검마가 괴물이었던 거지, 내가 약한 게 아니었어. 인정해, 안 해?”
“인정한다.”
칸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담백한 반응에 되레 마오 랑의 얼굴이 뚱해졌다.
칸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난 애초부터 널 약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
“……?”
마오 랑의 눈빛에 물음표가 번졌다. 칸은 뭐가 이상하냐는 듯 말했다.
“넌 생도 시절에 나를 이어 차석이었잖아. 호아킨 아카데미에서 두 번째. 그 의미가 결코 작진 않아. 아마 네가 훈련을 꾸준히 했다면 나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었을 거다.”
마오 랑은 그 주장을 들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한바탕 비웃으려고 왔는데 도리어 칭찬받고 있었다.
마오 랑이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잡념을 털어 낸 그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칠성은 이제 완전히 포기한 거야?”
“응. 이렇게까지 졌는데 여기서 더 고집부릴 순 없지.”
“웬일이래, 국뽕걸이. 미합중국을 대표하여 뭐, 그러면서 또 도전할 줄 알았는데.”
“만약 상대의 성미가 포악했더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 소드 데… 아니, 강검마는 호아킨 참사의 영웅이야. 그런 자에게 고집부리는 건 맞지 않는 일이지.”
“근데 그러면 백악관이나 랜슬롯 컴퍼니에서 가만히 너 엄청 쪼아 댈 텐데? 아무리 사시미 검성이라도 생도 하나 못 이겼다면서 이것저것 따져 물을 가능성이 농후해.”
마오 랑의 목소리에 우려가 가득했다. 올 뮤트는 다소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생도 시절엔 사납게 벼르기만 하더니 성인으로 만나선 나름 친구처럼 조언한다.
‘강검마에게 패배’란 공감대가 형성된 탓이겠지. 묘한 기분이었다. 자신을 무참히 난도질한 소드 데몬한테 작은 감사마저 느껴졌다.
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선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사람들 다 강검마 앞에 세워 놔 봐. 아마 케인처럼 눈만 마주쳐도 쓰러질걸?”
“푸핫, 왜 너답지 않게 농담이냐? 진지충이 이렇게 말하니까 위화감 장난 아니네.”
“이게 미국식 스탠딩 코미디야. 나중에 미국 놀러 와. 음식도 시설도 장난 없다.”
“흥, 너야말로 중국 오면 음식에 까무러칠걸?”
그렇게 한창 이야기꽃이 핀 병실 밖. 노크하려던 강검마는 그 상태로 잠시 서 있었다.
“동창회인데 방해하긴 좀 그런가.”
그는 과일 바구니만 문 앞에 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 * *
[【???】의 세 번째 편린의 소재지: 페르티낙스 비밀 경매장.] [Tip: 경매를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세 번째 편린이 무엇에 깃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나는 침대에 누운 채 상태창을 보다 닫아 버렸다.
“…하필 있어도 그런 곳에 있냐.”
페르티낙스 비밀 경매장. 유저였던 나이기에 내막을 대강 알고 있었다.
암조직들이 삼삼오오 모여 만든 거대 매매장. 규모도 크고, 판매하는 품목도 없는 것 빼고 다 있다고 하는데.
‘비밀’이라는 음습한 단어가 붙어 있듯,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을 팔지 않았다. 경매 품목은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혐오스러운 것들뿐이었다.
빌런 연합 간부들도 신분을 숨기고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니. 얼마나 파렴치한 곳인진 거듭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나는 범죄라면 치를 떤다. 그런 놈들의 소굴로 제 발로 가는 건, 영 껄끄러운 짓이었다.
하지만 비위 상하는 거야 눈 한번 딱 감고 참석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페르티낙스 비밀 경매장은 회원제로 운영된다. 한마디로 회원증이 있어야 입장할 수 있다. 물론 선량한 소시민이자 십 대인 나는 그딴 거 없다.
‘빌어먹을, 이제 막 협회 출입증을 구했는데 이젠 경매장 회원증까지 얻어야 해?’
하물며 소재지가 경매장이란 말은 무엇을 입찰해야 한다는 소리일 텐데. 나한테 그만한 거액이 있을 리가. 이럴 줄 알았으면 아공간 대련비로 10억을 냉큼 받는 건데, 젠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두 가지다.
첫째는 회원증을 어떻게든 마련하는 것. 두 번째는 입찰할 금액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름 모를 후원자가 보내 준 생활비를 한푼 두푼 모아 두긴 했다는 거다.
물론 경매에 참여하는 놈들의 지갑에 비하면 한없이 가볍다만.
범죄자 새끼들의 때 묻은 돈보다야 이 코 묻은 돈 5백이 더 값지다.
천장을 바라보며 대책을 강구했다. 일단 회원증부터. 발급받는 방법을 모르니 주위에 있을 만한 사람을 떠올려야 했다.
“…근데 아카데미 생도인 내 주변에 그런 암흑가에 연루된 사람이 있나.”
그리 중얼거리는 가운데 불현듯 전류가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있다, 딱 한 사람. 나는 퍼뜩 일어나 전화를 걸었다.
뚜뚜― 딸칵.
전화기 너머에서 흘러드는 우당탕 소리. 급하게 전화를 받은 모양이다.
[어어. 여보세요, 늦은 밤에 어쩐 일이세요?!]“최설아, 너 페르티낙스 비밀 경매장 회원증 있냐?”
나는 말에 잠시 뜸을 들인 뒤, 추가 주문했다.
“적금도 있으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