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7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72화(171/300)
172화 페르티낙스 경매장 (1)
“경매장 회원증 있는 사람이면 한 명을 대동할 수 있다고? 비밀 경매소인데 그게 가능해?”
[네, 이게 아무리 비밀 경매소라고 해도, 결국엔 신규 고객 유치를 꾸준히 해야 하잖아요.]“기존 회원이 신규 고객을 유입시켜 주는 중간책 역할도 한다는 거네.”
[예! 맞아요.]비밀 경매장이라 해도 꾸준히 고객 유치는 해야 한다. 수익을 계속 창출해야지. 암흑가 놈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돈이니까. 놈들에겐 주기적인 돈줄 수급은 필수다.
한데 또 대놓고 광고는 못 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그 유치 정책으로 ‘지인 소개’라는 방식을 택했을 터다.
[근데 정말 페르티낙스 비밀 경매장에 가실 건가요? 질 나쁜 애들 엄청 많이 오는데……. 거기가 손님을 가려 받지를 않거든요. 살인범이든 뭐든, 심지어 빌런 간부진도 종종 와요.]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럼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왜 가만히 놔두지?”
[제가 알기로 정부에서 암암리에 허가해 준 걸 거예요. 이를테면 카지노도 도박하는 곳인데 내버려 두잖아요! 비슷한 거죠. 상납금 바치면 윗선에서 쉬쉬해 주고. 애초에 거기에 고위직 사람들도 종종 찾거든요.]페르티낙스 비밀 경매장은 게임상으론 하나의 에피소드로만 등장했던 장소다.
그런데 세세한 설정이 덧살처럼 붙으니 벌레 소굴이 따로 없었다. 역겨웠다.
이곳도 지구와 마찬가지다. 마족이란 공공의 적이 버티는 마당에도 썩은 인간들이 산재한다.
이 세계가 현실이라는 걸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후- 샘솟는 화를 한숨과 섞어 토해 냈다. 일단 진정시키자. 이런 마음가짐이면 경매장에 입장하자마자 사시미를 꺼낼 것 같으니까.
‘忍, 忍, 忍, 忍, 忍…….’
나는 울긋불긋한 가슴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통화를 이었다.
“아까 물었던 거, 적금 얼마나 있어?”
[…저 진짜 호주머니 텅텅 비었어요. 전에 말씀드렸듯 아카데미 교관직 박봉에다가 생명 보험이니 세금이니 뜯어 가면 수중에 떨어지는 돈이…….]최설아가 변명했다. 나는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채근했다.
“페르티낙스 회원증 있을 정도면 돈 좀 있다는 소리일 거 아니야.”
[…그, 그, 그게.]전화상이지만 녀석의 새파래진 얼굴이 훤했다. 나는 흐름을 이어 몰아붙였다.
“그리고 돈 없다는 애가 별스타그램에 명품 자랑하냐? 너 얼마 전에도 로이뷔똥 가방 신상 샀더만. 그게 교관 월급으로 가당키나 해?”
[그건 비트코인으로…….]“아카데미 교관이 코인이나 겸직하면 배임죄인 거 몰라? 끝까지 거짓말하네. 너, 그거 전부 검은돈이잖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침묵은 곧 긍정의 의미다. 이윽고 저편에서 훌쩍훌쩍, 울먹울먹 습기 찬 음성이 흘러들었다.
인간성이 조금은 돌아온 것 같긴 해도, 이 상황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릴 최설아가 아니다. 이건 가식이다. 악어의 눈물이다.
‘아직도 빌런일 적 버릇을 못 버렸네.’
나는 혀를 찼다. 최설아의 음색에 습도가 높아졌다. 그녀가 노골적으로 즙을 짜기 시작했다.
이참에 정신 교육 좀 다시 하려다, 이내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협박만 했으니 조금은 달래 줄 시점이다.
어쨌건 이번 일도 최설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마냥 꾸지람만 하면 비협조적인 태도로 나올 수도 있다. 충성심 높은 강아지도 토라지곤 하니까.
참고로 나는 최설아를 애완견에 대입해 상대한다. 그러면 얼추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답이 나오거든.
나는 딱딱함과 부드러움 그 사이 어디의 톤으로 말했다.
“너, 전에 나한테 교관을 정년까지 쭉 하고 싶다 했잖아. 그러려면 때 탄 돈 전부 뱉어 내는 게 맞아. 생각해 봐, 너 그 돈 계속 안 들킬 자신 있어? 감사 나오거나 이러면 너 무조건 아카데미에서 해고다.”
[훌쩍, 그건 그렇네요.]“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먼지 훌훌 털어 내고 가는 거지. 그리고 내가 이런 말까지 하는 건 그런데, 내가 네 목숨도 살렸었잖아. 생명 보험이나 상조는 몇 개씩 드는 애가 나한테 그 정도 돈도 못 써? 생명의 은인한테?”
[…….]침 꼴깍이는 소리. 전파를 타고 흐르는 정적.
최설아는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녀가 눈에 부릅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옙, 알겠습니다. 저도 안 좋은 과거 청산하는 셈 치고 그간 모아 놨던 10억 주군에게 헌납하겠습니다.]“더 있는 거 안다.”
“…….”
[이이, 이십삼억!]“입찰은 경매장 가서 하고, 바른대로 말해. 혀 잘리기 싫으면.”
키리링- 사시미를 한 뼘 벗겨 칼날 소리를 냈다.
[삼십억…….]최설아 얘, 겁나 부자였네? 왕년에 뭔 짓거리를 하면서 산 거야? 그래도 뭐가 됐든, 이 정도면 총알은 넉넉했다.
전화 한 통에 「회원증」과 「입찰금」을 전부 마련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세계에 하나뿐인 다이아몬드가 세 번째 편린인 게 아니고서야 삼십억 하고 오백만 원이면 충분할 것이다.
운이 좋군.
[…저기, 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오.]“뭔데.”
최설아가 조심스레 물어 왔다. 나는 달뜬 표정으로 흔쾌히 말을 받았다.
삼십억의 각오를 보인 최설아다. 질문쯤은 얼마든지 답해 줄 수 있다.
[혹시 주군께선 인생 2회차이신가요? 이게 아무리 생각해도 십 대가 아니신 것 같아서…….]딸깍.
바로 전화를 끊었다. 살짝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래서 눈치 빠른 애는.”
* * *
페르티낙스 경매장으로 출발하기 전날인 금요일. 오랜만에 여행 동아리 회의 시간을 가졌다.
장소는 스타복스, 메뉴는 늘 그렇듯 제일 저렴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웨폰이 신이 난 기색으로 제 무용담을 재잘거렸다.
“부장이 마트에서 곤란해하고 있을 때, 내가 딱 등장해서 말이야. ‘잠깐만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모든 건 저를 통해서 말씀하셔야 합니다만?’ 이랬다는 거 아니겠어?”
료조는 양갱 돌체 라떼를 호호 불며 상큼하게 그 말을 씹었다.
“야, 사키! 내 말 듣고 있어?”
“아니? 전혀 안 듣고 있는데? 그리고 웨폰, 너 그렇게 올 뮤트의 팬이었으면서 검마한테 무참히 졌다는 게 그리 기뻐?”
“…….”
료조의 되받아침에 웨폰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축 늘어진 그가 하나 선배에게 호응의 눈빛을 보냈다. 선배가 영혼 없는 미소로 화답했다.
“와! 역시 웨폰! 오! 완전 마트를 뒤집어 놓으셨다. 진짜! 최고의 조력자!”
“그럴 거면 차라리 위로하지 마, 선배!”
“미안. 너무 티 났나?”
하나 선배가 앙증맞게 혀를 빼물었다. 울상이 된 웨폰은 쓸쓸히 커피로 입술을 축였다. 맛이 유별나게 썼다.
료조가 머그잔을 한 차례 홀짝이곤 슬며시 나를 힐끗했다.
그녀가 소리 나지 않게 의자를 끌었다. 그러곤 조그맣게 속삭였다.
“전에 김치찌개 사 준 거 갚을 겸 한국 초밥 사 줄까 하는데, 내일 시간 돼?”
“미안. 선약이 있어서.”
나는 어색하게 눈썹 어림을 긁적였다. 료조의 양 볼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호아킨 참사 이후로는 너무 바빠서 번호표 뽑고 만나야겠어, 아주.”
빵빵해진 얼굴로 툴툴거리던 료조는 이내 폭 한숨을 흘렸다. 부어올랐던 볼도 홀쭉해졌다.
“하긴 생각해 보니까 너 전에 학원장님이랑 협회도 들렀었지. 이 일 저 일 주말마다 불려 가서 너도 피곤하겠다. 내일도 보나 마나 그런 자리겠지, 뭐.”
“아… 비슷한 거긴 해. 여튼 고마워. 걱정해 주는 건 너밖에 없다.”
료조의 보조개가 연분홍빛의 색조를 머금었다.
“흠흠. 뭔 일인진 몰라도 조심히 다녀와.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원격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있을 테니까!”
* * *
하루가 지났다. 나는 최설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경매장이 있다는 도시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거담’이라고, 지구에는 없는 도시였다. 모티브는 영락없이 박쥐 인간 만화에 나오는 그 장소였다.
…네비를 따라 도로를 달리길 몇 시간. 어둠밖에 없던 음습한 가도에 반딧불이처럼 호롱불들이 일렁였다.
잠시 후, 길 가던 이들의 걸음을 묶어 버리는 환락가가 드러났다. 향락과 유흥이 한데 밀집한 골목은 오색찬란한 네온을 뽐냈다. 내 감상은 이랬다.
‘엿같네.’
척 보아도 부패에 저며진 귀족들이 대로를 배회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면이나 후드로 얼굴을 숨겼다. 하나 그 너머에 진동하는 썩은 내는 가려지지 않았다.
타락한 공기가 피부를 뚫고 침투하는 것 같다. 기감이 너무 발달하다 보니 이런 추악한 광경에도 속이 메스꺼워진다.
최설아는 적당한 장소에 주차했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그녀가 후드가 달린 가면을 건넸다. 새 부리가 달린 가면이었다.
“여기서부턴 가면을 쓰셔야 해요. 사실 필수는 아니긴 한데 아무래도 주군께선 유명인이시기도 하고, 인상도 워낙 눈에 띄시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가면과 후드를 뒤집어썼다. 거울로 보니 까마귀가 따로 없었다.
그 모습에 최설아는 쿡쿡 들릴 듯 말 듯 웃더니 본인도 가면을 착용했다. 리본 달린 다람쥐 가면이었다.
준비를 마친 우리는 경매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느 특색 없는 건물에 다다랐다. 사방팔방에 보석들이 장식되어 있는 걸 상상했는데 점잖음마저 느껴지는 외관이었다.
처음엔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다만 주르륵 줄을 선 가면 무리를 보니 제대로 온 듯했다. 우리도 그 대기 줄에 합류했다.
나는 문득 최설아에게 물었다.
“다른 건물들은 다 화려하면서 정작 중요한 경매장은 왜 이렇게 생겼냐? 너무 낡아 보이는데.”
“여기가 원래 200년 전 암흑가의 황제였던 페르티낙스의 생가여서 그래요. 자신이 죽으면 생가를 어둠의 경매장으로 써 달라 했다더라구요.”
별 이상한 인간을 다 보겠네. 암흑가의 황제가 아니라 흑염룡에 잠식당한 중2병인 거 아니야?
기다리는 동안 최설아는 암흑가에 관해 설명했다. 영양가 있는 내용은 아니었기에 적당히 턱짓해 주었다.
앞에 선 머릿수가 눈에 띄고 줄어들고 마침내 차례가 왔다.
경매장의 입구, 토끼 가면을 쓴 사내가 우리를 반겼다. 그가 가슴에 한 손을 얹고 고개 숙여 말했다.
“환영합니다, 페르티낙스 경매장에 오신 걸. 실례지만 회원증부터 확인해도 될까요?”
최설아가 회원증 카드를 내밀었다. 그 손짓이 쓸데없이 기품 있었다. 토끼는 회원증을 면밀히 살핀 뒤에 재차 꾸벅 숙였다.
“확인되셨습니다. 다람쥐 공듀님.”
다람쥐 공듀? 반사적으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에 맞춰 최설아가 홱 고개를 틀었다. 그녀는 무안한 듯 휘파람을 불었다.
미묘한 분위기에 토끼가 고개를 기웃했다.
“여기 있는 신사분은 다람쥐 공듀님과 어떤 사이이신지…….”
“동행인의 프라이버시를 묻지 않는다. 요새 페르티낙스 경매장은 직원 관리도 안 하나 보지?”
최설아가 날카롭게 그 말을 잘라냈다. 싸늘한 말투에 토끼가 손을 내저으며 항변했다.
“그럴 리가요. 다름이 아니오라, 근래 그림자 녀석들이 들쑤시고 다닌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아서요. 그래서 경매장 정책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동행인의 신분은 묻지 않되, 적어도 회원님과는 밀접한 사이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못해도 가까운 친척 권장은 가족 관계여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시, 회원님의 신원 기록을 확인할 테니까요.”
쉽게 말해 동행인은 새로운 고객 유치란 본 목적이 아닌 보증인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거다.
사내가 토끼 가면을 긁적이며 말했다.
“근데 회원증 조회 결과, 다람쥐 공듀님 인적 사항에 다른 가족분 확인이 안 돼서 말입니다. 조회를 계속해 봐도… 형제자매분도 안 계시는군요.”
상황이 난감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최설아가 훗 농염하게 웃었다. 그녀가 내 오른팔을 감싸듯 품었다.
순간 그녀의 피부에 닿은 내 팔에 두드러기가 오소소 일었다. 본능이 거부했다.
최설아는 내게 좀 더 밀착하면서 태연히 말했다.
“이 사람 내 남편이야. 오늘 혼인 신고 넣고 나들이 겸 여기 온 거고. 다람쥐 공듀, 까마귀 도령. 그림 예쁘게 나오지 않아?”
“……?”
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최설아를 쏘아봤다. 팔짱 낀 최설아의 두 팔이 오들오들 떨렸다. 그녀는 이왕 선 넘은 김에 기세를 몰았다.
“아니면 여기서 가면 벗고 찐한 장면이라도 보여야겠어? 그거 좋네. 대신 구경꾼으로 경매장 지배인도 불러와. 좋은 건 다 같이 봐야지. 안 그래?”
효과는 대단했다. 사내가 비뚜름히 기울던 가면을 다급히 원위치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이거 참 제가 오늘 여러 번 무례를 범하는군요. 입장하시죠. 다람쥐 공듀님, 까마귀 도령님.”
우리는 오붓하게 팔짱을 낀 채 경매장에 진입했다.
다람쥐 공듀와 까마귀 도령이라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름을 달고서…….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