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7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73화(172/300)
173화 페르티낙스 경매장 (2)
최설아는 휴대폰에 진동 온 것처럼 몸을 발발 떨었다. 나는 그 옆얼굴을 노려보았다. 다람쥐 가면 너머 창백해진 안색이 느껴졌다.
쭈뼛쭈뼛 나아가는 최설아가 휙 하고 내 앞에 섰다. 그러더니 대뜸 절하듯 사죄했다.
“진짜 죄송합니다! 다른 게 생각이 안 나서 그만, 주제를 넘어 버렸어요.”
“화 안 났어, 조금 당황한 거지. 경매장 정책이 갑자기 바뀌었다는데 별수 있나.”
아닌 게 아니라, 최설아가 이리 지레 겁먹을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하다. 기지를 발휘해 어떻게든 입장은 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선을 더 넘는다면 그땐 나도 잘 모르겠다. 몸에 밴 버릇이 칼부터 나가는지라.
나는 한숨 쉬며 말했다.
“그리고 무슨 여태까지 숱하게 나쁜 짓 해 온 애가 거짓말 한번 했다고 몸을 떨어. 왕년에 빌런 가오가 있지.”
“…주, 주군!”
“안구에 가습기 달렸어? 그만 좀 질질 짜. 그리고 이것 좀 제발 놔라. 언제까지 부둥켜안고 있을 거야.”
“앗, 죄송합니다. 너무 편해서 그만.”
최설아가 슬그머니 팔짱을 풀더니 멋쩍게 웃었다.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쭐레쭐레 앞장섰다. 보이지 않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는 피식 웃었다. 개를 산책시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동굴처럼 캄캄한 통로를 지나, 이윽고 경매장 본 막에 들어섰다.
‘오…….’
넓게 펼쳐진 내관에 나는 작게 감탄했다. 심심해 보이던 외관과는 판이한, 그야말로 ‘부’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듯한 공간이었다.
사방이 금칠 된 내부를 휘둘러보았다. 대단히 화려했다.
그러나 장내를 가득 채운 작자들을 보고 있자니 눈썹이 찡그려졌다.
저마다 샴페인 잔을 들고서 서로에게 눈인사하는 모습.
전신을 화려한 명품으로 치장했지만, 저토록 더럽게 보일 수가 없었다. 저들이 나누는 대화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까치사막 님.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하하, 야생마 님께서 걱정을 다 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그건 그렇고, 무엇을 입찰하러 경매장에 들르셨는지요. 저는 오늘 새로운 애완동물 아니면 노예를…….
대화에서 썩은 내가 풀풀 풍겼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저 입을 묵념시켜 주고 싶었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이 경매장은 불법과 합법, 그 경계에 있는 장소다. 성미에 못 이겨 칼부림을 버렸다간 걷잡기 힘들어질 것이다.
마족과 마수야 주된 적이나, 저들은 어찌 됐든 같은 인간이다. 인두겁을 쓴 쓰레기 새끼들일지라도 함부로 해할 순 없었다.
살마(殺魔)는 하되, 살인은 최대한 지양한다.
내키는 대로 사람을 베어 댔다간 주변인들이 여럿 난처해질 테니까.
하물며 저런 자들을 처단하는 일가가 번듯이 있잖은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면 질서가 헝클어질 터.
‘기분이 엿같은 건 어쩔 수 없군.’
못마땅함으로 미간이 좁혀지는 사이, 앞서가던 최설아가 손짓했다.
“저기 가운데 열 괜찮으세요? 저기가 명당이거든요. 주군께서 원하시는 품목도 대번에 눈에 들어올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난 최설아를 따라 중간 열에 앉았다.
각 좌석마다 태블릿 PC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뭔가- 하고 살피고 있자 최설아가 설명해 줬다.
“원하는 품목이 나오면 그 태블릿에 입찰가를 적으면 돼요. 태블릿으로 하는 이유요? 사람이 이렇게 많잖아요! 보다 빠른 진행을 위한 게 아닐까요?”
피켓 들고 가격을 외치는 걸 상상한 나로선,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난 전생에 경매 경험이 있긴 하다. 다만 이런 퇴폐적인 분위기는 아니고, 부산스러운 경매였다.
전생에 왕왕 새벽 수산 시장에서 생물 입찰을 했었지. 피켓은 고사하고 수신호와 목청으로만 치렀었다.
태블릿을 이리저리 대강 살펴보고서 최설아에게 맡겼다. 아직 입찰 품목도 모른다. 아마 때가 되면 상태창이 알려 주겠지.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한데, 괜히 기분 내고 싶지도 않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좌석이 어느새 만석에 가까워졌다. 전 세계의 부정부패를 죄다 모아 놓은 것 같았다.
나 또한 그런 곳에 있다고 생각하니 표정이 절로 구겨졌다.
‘빨리 원하는 것만 입찰하고 자리를 떠야지. 이러다간 진짜 사시미부터 꺼내겠네.’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귀도 닫았다. 잠자코 시작을 기다리는 가운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상하리만치 낯설지 않은.
슬며시 눈을 떴다. 시선을 돌리니 한 사내가 다가왔다. 워낙 사람이 많았음에도, 사내의 존재감은 도드라졌다.
그가 쓰고 있는 가면 탓이었다. 내 것과 흡사한 까만 새 부리 가면이었다.
“혹시 옆에 자리가 없으면 앉아도 될는지요?”
이내 바로 곁까지 다가온 그가 내게 물었다. 음성이 부리 안에서 탁하게 울렸다.
나는 부리를 끄덕였다. 사내가 정중히 부리를 숙이곤 옆자리에 앉았다. 까마귀끼리 인사한다면 이런 모양새이려나.
‘뭔가 익숙한데…….’
묘한 기분을 느끼며 옆의 까마귀를 곁눈질하는 사이, 진행자로 보이는 남자가 스테이지에 올랐다.
그는 금실로 짜인 찬란한 정장에 광대 가면이란 우스꽝스러운 착의였다.
광대가 마이크 앞에 섰다. 그는 두 팔을 넓게 벌리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 페르티낙스 경매장을 찾아 주신 귀빈 여러분! 일단 저는 오늘 진행을 맡게 된 페르티낙스 9세입…….”
화려한 복장과는 상반되게 말투는 몹시 경박했다.
제 딴에는 농담이라고 하는 말들도 하나같이 천박했다. 바깥에서 떠벌렸다면 철창 신세를 면치 못할 희롱조였다.
한데 자리한 좌중은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이 지랄맞게 생생한 현장감에 닭살이 오를 지경이다.
“많이 기다리셨을 테니, 잔말은 이쯤 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첫 번째 상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광대가 무대 뒤를 향해 까딱 턱짓했다. 다음 순간,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쇠고랑에 목과 발이 묶여 등장하는 암사자. 가죽에 흉터가 어찌나 많은지 맨살이 거의 안 보였다. 얼마나 많은 학대를 받았는진 자못 알 만했다.
그런데 반응이 가관이었다. 참여자들이 광대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상품이 너무 평범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광대가 능청스레 웃으며 말했다.
“자자, 진정들 하세요, 귀빈 여러분.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 상품은 생긴 건 사자이지만, 실제로는 D급 카이머 캣이라는 고양이 마수입니다!”
그제야 질타 섞인 외침이 잦아들었다. 광대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이어 진행했다.
“뿐만 아닙니다. 철저하게 훈련된 마수로서 인간의 말을 아주 잘 듣는답니다. 더구나 저희의 주적인 마수이니만큼 도의적으로도 문제없죠. 입찰가는 5천만 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서론이 끝나기 무섭게 스크린의 숫자가 치솟았다. 초반엔 뒷자리만 조금씩 움직이던 입찰가는 얼마 안 가, 앞자리에 변동이 생겼다.
사방에서 태블릿을 두드리는 손톱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기필코 갖고 말겠다는 탐욕이 가득하다.
가면 속 인간의 눈빛에 광기가 비쳤다. 흐리멍덩한 마수의 동공엔 점수판이 맺혔다.
나는 침음했다. 저 마수보다 더한 검붉은 악의가 곳곳에서 피어오른다. 공기가 끈적했다.
그렇게 경매장의 분위기는 계속해서 무르익어 갔다.
광대 진행자는 공기가 과열됐다 싶으면 재치 있게 조율했다. 특유의 그 가벼운 입담이 한몫했다.
참여자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정반대로 내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샘솟는 살기가 삐져나올 것 같았다.
“괜찮나, 젊은이.”
그때 옆에 앉아 있던 까마귀 사내가 나를 불렀다. 나는 그를 돌아봤다. 이 말투를 나는 들어 본 적 있다.
사내가 나를 마주 보았다. 부리와 부리가 맞닿을 것처럼 서로를 겨눴다. 그가 은은한 미소를 흘렸다.
“오랜만이구먼.”
“당주님……. 맞으십니까?”
“눈치채는 게 느리군. 나는 보자마자 바로 알아봤는데 말이야. 이런 흉한 곳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구먼.”
아디토레의 당주, 알’타이르가 껄껄 웃었다.
“그래서, 자네는 어쩐 일로 이곳에 왔나?”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꼭 필요한 게 있어서 왔습니다. 여기서밖에 구할 수 없다고 해서요. 당주님이야말로 어쩐 일이십니까? 이런 곳에 오는 취미가 있으셨나요.”
“나야 일 때문에 근래 매일 오네. 나라고 이런 곳이 마음 편친 않아. 도리어 그 반대지. 내 일이 여기에 있는 놈들을 청소하는 것 아닌가.”
“그렇군요.”
어깨를 으쓱인 알타이르는 문득 경매장을 넓게 둘러보았다. 그는 시선을 스테이지에 두었다. 경매가 슬슬 종막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나직이 말했다.
“그거 아나? 동물 중에서 동물을 사고파는 건 인간밖에 없어. 내 이 나이까지 살면서 인간 이상으로 추악한 동물은 본 적이 없지.”
“…….”
“달리 생각하면 그 점이 우리 가문이 암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곤 하지……. 아, 미안하네. 너무 재미없는 이야기를 했군.”
알타이르는 부리를 어색하게 긁적였다. 그가 화두를 틀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가 입찰하려는 건 뭔가?”
“아…….”
그때였다.
“주목해 주십쇼, 귀빈 여러분! 오늘 저희 페르티낙스 경매장의 회심의 상품을 소개해 드릴 시간이 왔습니다!”
진행자가 아랫배에 힘을 주어 소리를 높였다. 몇몇 참여자들은 이것만 기다렸다는 듯 입꼬리가 승천했다.
“이번 상품은 바로……!”
광대는 인위적으로 뜸을 들였다. 말의 여백으로 김장감을 한껏 끌어 올린다.
전형적인 무대식 연출이었다. 진부한 만큼 언제나 먹히는 방식이기도 했다.
스테이지를 비추는 조명들이 일순 소등됐다. 그다음, 한꺼번에 경매장에 불이 들어왔다.
객석의 시선들이 일제히 단상에 모였다. 그들의 입가에 가학적인 미소가 걸린 건 동시였다.
투명한 피부의 소녀가 끌려 나왔다. 몸이 구속구로 완전히 결박당한 채.
다만 장담컨대, 인간은 결코 아니었다. 저리 날카로운 귀를 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아마 저희 경매장 역사상 전무후무한 상품. 인간형 새끼 드래곤입니다!”
우와와와와와와와!
경매장이 한순간에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반면,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의 세 번째 편린을 발견했습니다.]* * *
“이놈들이 완전히 선을 넘었구먼.”
알’타이르가 끌끌 혀를 차며 고개 저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 드래곤을 생포해 경매에 내놓을 줄이야. 얼마 전 받았던 익명의 제보가 사실이었다.
드래곤은 최상위에 속하는 마족이다. 정상적으론 영웅 몇이 달라붙어도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한데 그보다 몇 곱절은 더 벅찬 생포는 더 말해 입 아프다.
하면 어떻게 데려온 것인가. 방법은 딱 하나였다. 인지가 미처 생기기도 전, 새끼일 때 유괴하는 것.
과연 징그러우리만치 반인륜적인 흉수였다. 그러나 아디토레의 당주로서 옛적부터 봐 왔다. 이런 추악한 인간들은 허다하다.
당주는 황망한 눈으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멈출 줄 모르는 기세로 입찰가가 껑충껑충 뛰었다. 인간의 악의가 숫자로 매겨져 차곡차곡 쌓여 간다.
‘이제 곧 나서야겠군.’
정부와 한 다리 걸친 경매장이지만, 이건 눈감아 주기 힘들었다. 자칫 마족과 큰 마찰로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질서를 위해 단초를 잘라 낸다. 암살자의 업이었다.
경매장에 잠입한 암사자들에게 신호를 주려던 차, 당주는 슬쩍 옆을 돌아봤다.
“…….”
강검마가 미동 없이 단상을 바라본다. 어느 감정도 품지 않은 듯 고요하게.
단지, 그뿐임에도 당주는 바위처럼 굳었다. 강검마가 느끼고 있을 감정을 읽어 냈기에.
임계를 넘어선 분노. 혹자는 강검마를 악인이라 깎아내린다. 그러나 실상을 똑똑이 본 당주는 단언할 수 있었다.
강검마는 선인이다. 간혹 눈이 돌아가 사시미부터 휘두르지만, 그조차도 그릇된 결과를 초래하진 않는다. 과정이 과격해도 의도는 늘 올곧았다.
하여 강검마가 경매장을 방문한 이유를 떠나, 그 목적이 불순하진 않으리라. 당주는 확신했다.
그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강검마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주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 기분 나 또한 느끼고 있네. 하지만 머리를 좀 식히게나. 장차 칠성에 앉을 사내가 이런 일에 관여되면 곤란할 걸세.”
“…….”
강검마는 잠시 침묵했다. 당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했다.
내적 갈등을 심하게 겪는 중이었다. 아무리 편린의 획득을 위해서라지만, 한 생명을 매매하는 건 신념에 어긋난다.
지금껏 입찰가를 적지 않고 가만히 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당주에게 가담한 뒤, 드래곤에게 접근하는 게 나으리라.
강검마의 손이 자연히 품을 더듬으려 하자, 당주가 웃으며 말렸다.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쓰면 안 되는 법이지.”
“하지만.”
“이런 일을 하라고 우리 가문이 있는 거 아니겠나? 정 가만히 있기 그러면, 자네는 연기만 해 주면 돼.”
“연기요……?”
당주는 말없이 손가락을 튕겨 신호했다.
그에 응하듯,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림자가 스멀스멀 유동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
이변을 눈치챈, 진행자가 흠칫 놀라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경악이 참여자들에게도 전염병처럼 옮겨졌다. 그 적발과 적안이 어떤 자들인지 모르는 이가 드물었으니.
“아, 아아, 아디토레!”
광대 진행자가 다급하게 무전기를 꺼냈다. 즉각적인 대처였다. 그림자 놈들이 올 것을 대비해 용병을 고용했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빠진 페르티낙스 경매장.
알’타이르가 돌연 내게 고개를 조아리며 묻는다.
“당주님,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런 의미였나.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나와 당주는 비슷한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영락없이 한통속으로 보이겠지.
이렇게 된 거, 내 존재를 덮는 겸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아디토레가 지겠다. 그리고 이에 장단을 맞춰 달란 제스처다. 나를 당주로 내세운 건 그저 당주의 변덕인 듯하지만.
“이 부패한 자들을 어찌하면 되겠나이까.”
알’타이르가 다시 물어왔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이 연극에 맞춰 주는 수밖에.
나는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서 그 위에 손을 깍지 끼었다. 숙청의 밤 때 어깨너머로 봤던 당주의 무게감을 연기했다.
“아디토레여.”
“예, 당주님.”
나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했다.
“부패를 척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