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7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74화(173/300)
174화 페르티낙스 경매장 (3)
까마귀 가면을 중심으로 학익진을 펼치는 이들. 후드의 음영 속에서 핏빛 안광이 번들거렸다.
질서의 가문 아디토레. 그들이 페르티낙스 경매장을 급습했다.
하나, 페르티낙스 9세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근래 그림자 놈들이 거담시를 쑤시고 다닌다는 것을. 암흑가에서 소문은 빨리 퍼지는 법이다.
처음엔 아디토레에 뒷돈을 찌르려 사람을 보냈다. 그 사람은 몸 없이 머리만 달랑 돌아왔다. 대화 따윈 없다는 명백한 답신이었다.
꼴통 가문이라는 건 알았지만, 정말 칼 같은 거절이었다.
그리 나온다면 어쩌겠는가, 노선을 반대로 틀어야지. 불안으로 밤잠을 설칠 바엔 같은 폭력으로써 대응한다. 페르티낙스 9세는 용병을 고용키로 했다.
다만 한낱 어중이떠중이로는 아디토레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왕 돈 쓰는 김에 제대로 된 녀석들을 섭외해야 했다.
9세는 빌런 연합과 접촉했다. 그리고 연합은 흔쾌히 경매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연합 내에서도 한가락 하는 빌런들을 용병으로 내주었다.
그 순순한 승낙이 의외였다. 못해도 몇 번은 튕길 줄 알았다. 한데 단번에 성사됐다. 연합은 응당 거액을 요구했지만 9세는 군말 없이 지급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 빌런 연합도 아디토레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는 모양이었다. 원로 클라디로 인해 덜미가 붙잡혔기 때문이다.
아디토레는 끈질기게 연합을 추적하며 야금야금 세를 갉아먹었다.
거기에 배신자 최설아를 잡으러 갔던 벤테타도 전멸했다. 진위에 대해 알아낸 게 거의 없었다. 숭덩숭덩 토막이 났다 정도? 시체를 보건대 한 놈의 솜씨였다.
하여 연합의 기반이 흔들리는 이 시점, 페르티낙스 경매장과의 협력은 달콤한 제안이었다.
가뜩이나 앞과 뒤가 닦인 마당이다. 돈이라도 벌어 손실을 메꿔야 했다.
서로 이해가 일치한다. 악인들 간에는 그 하나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경매장에게는 연합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연합에게는 경매장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생겼다.
그리고 두 집단의 돈독함을 확인할 자리가 지금 마련됐다.
콰광!
수십에 달하는 빌런 용병들이 문을 박차고 경매장에 뛰어 들어왔다.
용병의 우두머리, 캔은 경매장을 빙 둘러보았다. 무전을 받았기에 자세한 상황 설명은 불필요했다.
“이런, 씨발. 저녁 잘 먹고 있는데 쳐들어오고 지랄이야.”
캭- 퉤.
캔이 가래침을 뱉고서 신발 밑창으로 문질렀다. 그는 가늘어진 눈으로 전방을 바라봤다.
경매장 한가운데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까마귀 가면. 저자가 아디토레의 당주 알’타이르겠지.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과연 최강의 어쌔신이라 불릴 만했다. 거리가 꽤 먼데도 뿜어내는 살기에 목구멍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이거, 조용히는 안 끝나겠군.’
캔은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면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다들 이 상황 대비해서 준비한 대로 움직여. 수적으로는 우리가 우세야. 그렇다고 방심하진 말고, 잔 바리들 위주로 족쳐라. 저 새끼들의 ‘까마귀의 가호’가 특히나 성가시니까.”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검지와 엄지를 딱 붙여 전투를 준비했다.
“9세 양반, 윗분들이랑 이야기된 거니까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할 거요. 다만 참여자들 목숨은 우리 알 바 아니니까, 개의치 않고 싸우겠소. 알겠나?”
캔의 말에 9세는 생각에 잠겼다. 혈전이 벌어진다면 참여자들도 무조건 휘말릴 것이다.
아마 대부분이 죽을 테지. 손님 중 한 명도 죽지 않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그렇다면…….
눈가를 꾹꾹 누르던 페르티낙스 9세가 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되도록 한 명도 살아 나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참여자든 그림자든.”
돌연 캔이 광소를 터뜨렸다.
“이거 내가 9세 님을 너무 봉으로 봤군. 그렇지. 여기서 한 놈이라도 살아 나간다면 페르티낙스 경매장이 연합과 손잡는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퍼질 테니까 말이야. 전부 죽인 다음에 ‘아디토레’에 덤터기를 씌운다 이거군.”
“돌려 말하지 않으면… 예, 그런 셈이죠.”
“역시 암흑가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이답군. 그래, 일을 처리할 거면 탈 안 나게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맞는 거야. 원래는 추가 수당을 받을까 했지만, 자세가 마음에 들어. 참여자들 처리는 내 서비스로 해 드리리다.”
캔이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9세가 씩 마주 웃었다. 둘 사이에서 악의가 거뭇하게 피어오른다.
이윽고 캔이 희열에 찬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소리치려는 찰나.
스겅- 쿵.
캔의 관자놀이가 스테이지 나무 바닥을 때렸다. 중력이 측면에서 작용했다. 마치 소파에 옆으로 누운 것처럼.
…이게 무슨 일이지?
의아함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시야에 맺힌 장면.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피 분수를 뿜어내고 있었다. 캔은 저 몸이 제 것이란 걸 깨달았다.
캔은 서서히 이완되는 눈동자를 굴렸다. 한 소녀가 검날에 묻은 피를 털며 내려다보았다. 그 동공이 몹시 공허해 동태눈처럼 보였다.
그제야 목덜미가 후끈했다. 통증이 뒤늦게 몰려온 것이다.
캔은 속으로 신음했다. 다만 그 소리는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암살자 소녀가 이채가 가신 탁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이번 일만 끝내면… 아카데미로 돌아갈 수 있어.”
클로이가 검자루를 역수로 감싸 쥐었다. 그녀는 있는 힘껏 검날을 머리에 박아 넣었다.
푹. 호박 찌르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캔의 시야가 암전됐다.
* * *
클로이를 시작으로 암살자들은 검 자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까마귀의 가호]를 일제히 발현했다.
일렁- 아디토레 전원 공간에 녹아든 것처럼 사라졌다. 그다음 순간, 암살자의 검이 인지의 사각에서 적을 습격했다.
양상은 일방적이었다. 아디토레가 적을 파죽지세로 밀어붙였다. 죽음의 소리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암살자의 검날이 빌런의 손을 집요하게 노렸다. 그 손가락이 수수깡처럼 후드득 잘려 나갔다.
비명을 지르기도 전, 다른 검이 반대 방향으로 날아와 살가죽을 뚫었다.
암살자는 둘이 한 몸인 것처럼 잡동작 없이 빌런을 난도질했다. 그들은 포장지 뜯듯 적의 피부를 벗겼다.
빌런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내용물을 한 움큼 쏟아 냈다. 암살자는 기어이 그 목을 쳐 참수했다.
지켜보는 눈들엔 가축을 도살하는 장면처럼 비쳤다. 전투라고 부를 만한 게 아니었다.
다소 과격할지라도 필요한 절차였다. 빌런의 생명력은 인간보다 훨씬 끈질기다.
그러니 한 놈의 생명 반응을 확실히 끓은 뒤, 표적을 옮겨야 했다.
숙청의 밤 이후, 아디토레는 철저하게 빌런 상대법을 분석·연구했다. 그리고 실전에 적용. 피해를 최소화함과 동시에 연합의 전력을 크게 줄이는 성과를 냈다.
‘오…….’
난 감탄을 연발했다. 손 하나 까닥이지 않고 빌런들이 빌/런으로 탈바꿈한다.
항상 최전선에서 날뛰던 나로선 편하다 못해 심심했다. 그만큼 아디토레 일가의 전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특히 클로이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방학 동안 무슨 훈련을 받았는지 몰라도 무력이 월장했다. 그녀의 검에 빌런은 속절없이 몸이 분리됐다.
‘클로이가 아카데미에 복귀하면 더 조심해야겠네.’
…그렇게 잠시 뒤, 적이 궤멸했다. 저항의 흔적만 경매장 바닥에 불그스름한 얼룩으로 남겨졌다.
“마, 마마 말도, 아아, 안 돼……!”
페르티낙스 9세의 안색이 시체처럼 죽었다. 두 무릎이 털썩 스테이지 바닥을 강타했다. 그는 광대 가면을 벗어 던지고서 속을 게워 냈다.
순식간에 빚어진 이 참상을 맨정신으로 버티기 버거웠다.
광대가 제 토사물을 구경하는 가운데, 강검마가 성큼성큼 다가갔다.
검은 후드의 암살자들이 그를 두령 모시듯이 호위했다. 흡사 까마귀 무리의 두령 같았다.
강검마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바닥을 짚은 채 달달 떠는 놈의 정수리를 노려보았다.
“당주님, 이자에게 알아내고 싶으신 게 있으시나이까. 하명만 하시지요. 당신의 그림자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실토하게끔 만들겠나이다.”
그때 알’타이르가 강검마에게 공손히 말을 전했다. 강검마의 당주 연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검마는 조금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하며 너희의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 어차피 이런 자에게 알아낼 것도 없으니 바로 참수해라.”
“자, 자자, 잠깐만요! 아디토레의 당주님이시여!”
광대가 절박한 기색으로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그 상태로 제 토사물에 이마를 절구처럼 찧기 시작했다.
“도, 돈이라면 원하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아니, 부족하시면 이 페르티낙스 경매장을 통째로 넘겨드리겠습니다. 물론 회원들의 개인 정보도 전부 포함해서요. 그러니까 제발……!”
“회원들의 개인 정보, 나한테 다 있는데?”
“……?”
9세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까마귀 가면이 스마트폰 화면을 내보였다. 그 안엔 정말 페르티낙스 회원들의 정보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아, 아아, 아니.”
9세는 용병들이 궤멸했을 때 보다 더 공황에 휩싸였다. 이중삼중으로 보안 벽을 친 정보가 어떻게 저자의 수중에 있는 것인가.
이건 몰랐는지 알’타이르도 진정으로 놀랐다. 저건 아디토레의 정보력으로도 한참을 시도해도 얻을 수 없던 정보였다.
강검마는 9세를 응시하다 조용히 일어났다. 그는 몸을 돌려 저편으로 시선을 던졌다.
긴장한 얼굴로 단상을 보는 가면 무리. 부패하고 타락한 이들이 꺼풀을 쓰고서 눈치를 살핀다.
한 놈도 죽이지 않았구나. 하긴, 경매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저들을 죽이기엔 명분이 부족하지.
나는 픽 웃었다. 아디토레가 질서의 가문임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러나 난 아디토레와는 다르다. 저 쓰레기 새끼들을 죽이진 못할지라도 저 낯가죽들을 까발리는 건 할 수 있다.
혈전이 한창일 때 료조에게 경매장 네트워크 해킹을 부탁했다. 순간 원격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료조는 보안이 쓸데없이 두껍다며 툴툴댔다. 그러면서 금세 정보를 모조리 탈취해 내게 전송했다.
‘료조의 해킹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는단 말이지.’
나는 스마트폰을 알’타이르에게 넘기며 지시했다.
“여기에 있는 자들의 신원이다. 오늘의 경매 내용까지 해서 언론에 공표하도록.”
“아, 예예.”
알’타이르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광대 앞에 섰다. 바닥에 깔린 그를 굽어보며 입을 열었다.
“페르티낙스 9세, 네가 마수·마족만 매매하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너희는 비밀리에 같은 사람도 사고팔고 있지.”
“……!”
내 말에 9세는 그것까지 도대체 어찌 알고 있냐는 얼굴이 되었다.
내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기적의 가호 M’의 경매장 에피소드가 그 내막을 파헤치는 거였으니.
9세는 혼이 빠져나간 눈으로 중얼거렸다.
“대, 대체 뒷조사를 얼마나 했길래……. 그것까지.”
이로써 이놈의 악행이 전부 들춰졌다. 여기까지 했으면 참작의 여지 없이 즉결 처형할 수 있었다. 속 시원하게.
“이자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알’타이르가 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검날이 가감 없이 그 목을 때렸다. 툭. 광대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 단상에서 떨어졌다.
알’타이르는 혀를 차며 검날의 피를 털었다. 실컷 고문하고 보내야 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자제했다. 대신 이놈의 수족을 전부 척살하면 타산이 얼추 맞겠지.
당주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난리 판국에 강검마는 새끼 드래곤의 포박을 풀어 주고 있었다.
“죄 많은 생명을 처리한 다음, 죄 없는 생명을 구한다…….”
당주는 전율했다. 실로 수십 년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