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7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75화(174/300)
175화 페르티낙스 경매장 (4)
페르티낙스 경매장 소동의 막이 내렸다. 빌런들은 도살됐다. 지배인인 페르티낙스 9세는 그 간사한 머리를 잃었다.
무대 뒤편에 숨어 있던 잔당들도 암살자의 손에 끌려왔다. 그들은 누런 침을 흘리며 미친 듯이 손을 비볐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제, 제발… 살려 주세요……!”
아디토레는 그들에게 잘 벼려진 검날을 선사했다.
스겅!
아디토레의 일 처리는 지독하리만치 철두철미했다. 목을 과일 따듯 자르는 모습. 그들은 죽은 적의 수급을 빠짐없이 보따리에 챙겼다.
참여자들은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아디토레는 그들의 가면을 벗기며 꼼꼼히 신원 정보를 확인했다.
“흑흑. 하필 오늘 아디토레가 덮칠 줄이야, 젠장.”
“조용히 해라. 목 잘리기 싫으면.”
“…….”
녹스가 메마른 어조로 일갈했다. 참여자는 그저 굴욕과 비참함에 겨운 표정으로 작게 흐느꼈다.
개중엔 고위 관료부터 연예인까지 섞여 있었다. 내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장식될 이름들이다.
뭔 짓을 해도 유명해질 수 없었던 연예인도 내일만큼은 슈퍼스타가 될 것이다, 안 좋은 의미로.
페르티낙스 경매장 참여가 불법은 아니나, 밝혀져서 좋을 게 하등 없었다. 유명하고 지위가 높을수록 더더욱.
하물며 오늘은 마족이 상품으로 나오지 않았던가.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들에겐 범죄 방조죄가 쓰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법의 심판이 그들을 비껴갈지라도 사회적 사형 선고는 피할 수 없을 터다. 그럼에도 그들은 속으로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 앞편에서 목이 잘리길 기다리는 빌런보다야 나으니까.
“씨, 씨발……! 악랄한 암살자 새끼……!”
스겅!
페르티낙스 경매장의 역사가 끝이 났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불과 하룻밤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 * *
철컥.
나는 새끼 드래곤의 구속구를 전부 해제했다. 녹이 슨 쇠고랑에 묶여 있었는데, 일반적인 수갑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새끼라도 드래곤을 포박하겠는가.
추측건대 마력을 억제하는 성질을 띠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사시미를 갖다 대자 실처럼 뚝 끊겼다.
나는 드래곤을 찬찬히 훑었다.
명칭은 분명 드래곤이면서 외견은 사람과 똑 닮아 있었다, 귀가 엘프처럼 날카롭게 뻗어 있긴 했지만.
“그르릉…….”
드래곤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그르렁거렸다.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적개심이 가득한 야성이 깃든 눈빛이었다.
그래도 반항이 거셀 줄 알았는데, 잡아먹을 듯 사나운 기세는 아니었다.
비에 쫄딱 젖은 길고양이가 사람을 경계하는 수준이다. 인간에게 유괴당해 한동안 핍박받았을 테지. 그에 비하면 상당히 얌전한 반응이었다.
내가 그녀였다면 족쇄가 풀림과 함께 날뛰었을 거다. 자신을 이리 만든 인간에게 저주를 퍼부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마(魔)족인지, 원…….’
허탈함을 느끼길 잠시 나는 당주에게 다가가 말했다.
“당주님, 혹시 저와 저 드래곤만의 자리를 마련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한차례 눈을 껌뻑이던 당주는 이내 끄덕였다.
“이거 참, 오랜만에 선대 당주님과 함께하는 그리움을 막 느꼈는데,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구먼. 알겠네, 내 바로 물리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는 되레 이쪽에서 해야 하지 않겠나. 자칫 찝찝하게 끝날 뻔한 일을 자네 덕에 깔끔히 처리했으니까. 아무튼, 30분 정도 자리를 비워 주지. 그 후엔 조사를 이어 가야 해서 말이야. 미안하구먼.”
나는 엷게 웃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한 배려입니다, 당주님.”
당주는 활짝 핀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구구절절 설명 없이 암살자들에게 지시했다. 지금 당장 경매장에 자리한 이들을 치우라고.
아디토레는 그 명령을 착실히 그리고 신속하게 수행했다. 그들은 구경꾼들을 소시지처럼 포승줄에 묶어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나는 최설아에게도 나가 있으라 말했다. 그녀는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소심하게 항의했다. 자신은 꼭 주군 곁을 지키고 싶다나 뭐라나. 눈빛으로 핀잔주자 바로 자리를 피했다.
…요란했던 경매장 내부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아- 하고 소리 내면 벽에 튕겨 메아리칠 정적이다.
그제야 다시 드래곤 앞에 멈추어 섰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나는 측은함에 눈매를 찌푸리고는 그 앞에 웅크려 앉았다.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미안하다.”
“……?”
드래곤이 고개를 갸웃했다. 말뜻을 이해 못 해서가 아니었다. 동냥하듯 익혔기에 인간의 말길이 트였다.
한데, 왜? 이 까마귀 가면을 쓴 인간은 어찌 내게 사죄하는가. 지금껏 마주해 온 인간들은 안하무인이었다. 사죄와는 영 거리가 먼 족속이지 않은가.
‘이 인간은 왜 이러는 거지?’
드래곤의 머릿속이 혼란한 가운데 강검마가 손을 뻗었다.
또 한 번 드래곤은 몸을 공처럼 움츠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이 철렁 가라앉았다.
역시 인간은 인간이었다. 여느 놈들과 마찬가지로 방심을 유도하고서 폭력을 행사하겠지.
그런데도 드래곤은 반항조차 못 하고 오들오들 떨었다. 학대의 기억이 피부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따스한 기운이 전신을 감싼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포근함일까.
나른함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가운데 드래곤이 한쪽 눈을 슬쩍 들었다.
순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크게 뜨였다. 까마귀 인간의 손이 닿은 제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인(人)의 격이 상승합니다.]강검마는 망막에 맺히는 상태창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재생의 가호]를 발현했다. 목적도 잊은 채 묵묵히 치료에 전념했다.
그 모습이 흡사 새 부리 가면을 쓰고 활동하던 옛적 의사처럼 보였다.
* * *
[【???】의 세 번째 편린, ‘날개가 찢긴 용’을 획득했습니다. 획득 총수(3/7).]―파앗!
== ==
『그녀는 창공을 비행하며 날개를 과시했다.
하나 그 상징은 그릇된 인간에 의해 추락했으나.
그녀의 수복을 돕는 자, 하늘의 지배자가 될지며.
그 날개를 빌려 별이 빛나는 곳에 맞닿을지니.
아아, 저희를 그곳으로 인도하소서.』
== ==
♪♬♩♫♪
[NEW! 히든 퀘스트 ‘날개를 되찾은 용’을 달성하여, 보상이 증여됩니다.] [▷ ‘소통(疏通)의 가호’를 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Tip: 소통의 가호를 이용하여 상대와 이야기를 나눠 보세요. 네 번째 편린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도?※ 추가로 그녀의 이름은 혼테일. 애칭인 ‘혼’으로 부르면 친밀감을 빠르게 쌓을 수 있을 겁니다. (>▽<) 혼 귀여워(……)]
* * *
아직 파릇파릇한 나이인데 벌써 목덜미가 뻐근하다. 상태창을 보고 있으면 가끔 혈압이 높게 치솟는 기분이다.
…이거, 추가 보상인 [소통의 가호]부터 해서 대놓고 드래곤과 대화를 나누라고 하네. 특히나 마지막 말도 참 할 말을 잃게 했다. 변태 같았다.
‘아니, 대뜸 드래곤한테 말 걸어 보라는 게 맞는 건가?’
그래, 그녀를 치료한 건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인간이 만든 족쇄에 피부가 상하고 몸을 안쓰럽게 떨고 있었다.
하여 그 어떠한 이유나 목적 없이 [재생의 가호]와 [전이의 가호]를 발현했다. 남을 치료해 본 경험이야 여태껏 여러 번 있었으니.
하지만 대화는 좀 다른 문제다. 일단 내가 말을 건다고 저쪽에서 대꾸라도 해 줄까? 요원해 보인다.
나는 난감함을 느끼며 드래곤. 그러니까… 혼테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신기한 눈으로 제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눈빛에서 타오르던 적개심도 다소 누그러진 모습.
‘새끼라서 그런가, 엄청 순하네.’
그래도 다짜고짜 말을 걸기는 주저된다. 그녀를 치료해 줬다 하나 나 역시 인간이다. 알게 모르게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더구나 생각 정리가 아직 덜 됐다. 편린을 하나씩 얻어 갈수록 과연 마족이 주적인지 의문이 들었다.
두 번째 편린에서 고대인을 학살한 것들은 천사였고.
세 번째에 이른 지금은 인간이 영락없는 악당 포지션이니까.
이쯤 되니 생각의 흐름이 자연스레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의 기억은 내 주적은 마족이 아니란 걸 강조하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베스나를 상대할 무렵에 ‘진정한 마(魔)를 보이소서.’란 말도 들렸었지.’
조금씩 【???】의 사념이 윤곽으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확실한 단서를 주면 좋겠지만, 그럴 맘은 없어 보이니 지금처럼 알아가면 될 테지.
나는 상념을 마치고 혼테일을 빤히 응시했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도 휙 나를 돌아봤다.
“흐잉.”
그녀가 깜찍한 소리를 내며 엉덩이로 뒷걸음질 쳤다. 암만 봐도 겉보기는 내 연령대의 여자애인데……. 행동 양상은 확실히 어린애였다. 메스더와는 정반대 타입의.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입을 연 건 오히려 저쪽이었다. 그녀가 꾸벅 고개 숙였다. 어색하게나마 인간의 방식으로 예를 차렸다.
“거마압습니다아.”
나는 [소통의 가호]를 발현한 뒤, 대답했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
“에……?!”
외계인이라도 본 사람처럼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나는 머쓱하게 그 옆에 앉았다.
―이름이 뭐야?
팁 글 때문에 이름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다시금 물었다. 오늘 처음 본 사인데 이름까지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혼테일이요…….”
―그럼, 편하게 혼이라고 불러도 될까? 발음이 좀 어려워서.
혼이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심에 찔렸다. 상대의 경계를 허무는 방법을 알고 대하고 있다. 비겁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침음하는 가운데 혼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쪽은 어떻게 마어(魔語)를 구사해요? 느껴지는 마력이 전혀 없는 걸 보면 인간인 것 같은데…….”
―인간 맞아. 마어는 그… 어쩌다 익히게 됐고.
“…아.”
혼은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다. 내가 가면을 쓰고 있어서 혹시나 했던 건가. 같은 마족일까 하고.
“어쨌든, 치료해 줘서 고마워요. 인간 중에 이렇게까지 해 준 사람은 처음이라서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쪽이 나쁜 의도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는 건 아니까. 드래곤은 태어날 때부터 말의 진실 여부를 알 수 있거든요.”
―…….
새끼 드래곤이란 게 무색하게 혼은 말이 몹시 유창했다. 그러다 문득 메스더가 떠올랐다.
고대인만 해도 현 인류와 나이 개념이 달랐다. 하면, 드래곤과 인간 사이의 상식적 괴리는 이루 말할 수 없겠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 찰나의 대화에서 혼은 내가 악인이 아님임을 확신한 것 같다.
나는 지그시 혼을 바라보다 이내 가면을 벗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얘한테 이름과 얼굴, 어느 하나 밝힌 게 없었다.
그렇게 내 얼굴이 드러남과 동시에 혼의 입술이 떨렸다. 침묵이 흘렀다. 잠시 아무런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
“아… 아…….”
갑작스럽게 그녀가 내 뺨을 어루만졌다. 맺힌 눈물이 가느다란 속눈썹을 적신다.
“돌아왔구나.”
돌발 행동에 나는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돌아왔다고? 무슨 말이지? 백지장 도화지 같던 머릿속이 수많은 의문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벌컥―
경매장의 문이 열렸다. 나는 눈동자만 굴려 그 방향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몸이 굳어 버렸다.
“…검마 군?”
아, 뭔가 잘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