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7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78화(177/300)
178화 괴담 (2)
가을치고 흐린 정오.
아벨은 삐딱하게 턱을 괸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에 이리 먹이 잔뜩 끼어 있으니 며칠 전의 대사건이 떠올랐다. 호아킨 참사, 아카데미의 비극이자 역설적으로 강검마가 영웅이 된 날이었다.
한창 멍을 때리던 아벨은 이내 책상에 축 늘어졌다. 그녀는 슬쩍 고개만 비틀어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순금빛 동공에 우중충한 회색 풍경이 담겼다. 그 색깔이 현재 심경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하아…….”
허공을 응시하던 아벨이 이내 한숨을 푹 흘렸다. 그녀는 우울감에 젖어 있었다. 이 역시도 호아킨 참사의 영향이었다.
그날을 전후로 아벨은 생각이 많아졌다. 강검마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다, 사키와 그가 사귄다는. 그날을 목격한 생도들 사이에선 이미 기정사실화된 이야기였다.
다만 강검마와 한 달 동안 한집살이를 해 본 아벨로선 의아했다.
자신과의 데이트에 아카데미 운동복을 입고 나온 강검마다. 그런 걔가 누구랑 연애한다고?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가슴은 계속 시큰거렸다. 둘의 사이에 대해 스스로도 확답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 사키는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아벨은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했다. 언데드 던전에서 강검마는 아빠를 구원해 줬다. 반면, 자신은 공포심에 발이 묶여 혈전을 관망했다.
그 점이 아벨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부채감에 겨워 밤잠을 못 이룬 지도 벌써 며칠이었다.
그때, 늘어진 아벨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느껴지는 기척만으로 누군지 알아차렸다. 레이첼.
“아벨~ 자~?”“…….”
어쩐지 오늘은 조용하더라니. 아벨은 두 눈을 꼭 감고 자는 척했다.
레이첼은 그런 아벨의 새하얀 가마를 지그시 보았다. 그러더니 힘 빠진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자면은 어쩔 수 없지……. 웨폰이 오늘 저녁에 강검마랑 어디 간다는 정보를 알아 온 참인데.”
순간 아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세히 말해 봐.”
* * *
예전부터 학교란 장소엔 괴담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책 읽는 조각상이 밤만 되면 움직인다든지, 남자 화장실 세 번째 칸에서 여인의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든지.
으레, 괴담은 늘 입을 타고 떠돌 뿐인 ‘카더라’ 형식이다.
초등학교 무렵까진 섬찟했을 법하다. 그러나 중학생에 이르러선 진지하게 믿는 학생이 확 줄어든다.
그러면 고등학생은? 오컬트에 관심이 깊은 극소수를 제외하곤 믿는 이가 드물었다.
그 나이쯤 되면 초현실에 무뎌지고, 현실에 집중할 시기다.
본디 나이를 먹을수록 귀신 같은 것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한다.
왜냐면, 그 무엇보다 무서운 존재는 인간이란 걸 깨달으니까.
괴담이란 명확한 증거도 실제 경험자도 없는, 그런 뻔한 낭설에 불과하다. 전에도, 지금도 나는 그리 여기고 있었다.
‘다만…….’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웨폰의 얼굴을 떠올렸다. 완전히 사색이 되어 창백했다.
아마 지금까지 봤던 모습 중 가장 겁에 질려 있었지 싶다. 사실 그뿐이었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웨폰이야 원체 겁이 많다. 허우대는 양아치면서 심성은 그 누구보다 가녀리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진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웨폰이 괴담에 휘말린 것 같다고 했을 때 보인, 료조와 클로이의 반응 때문이었다.
둘의 표정이 다소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그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이가 열일곱이다. 석 달 후면 열여덟이고.
그래, 귀신 있다고 치자. 마수란 괴물이 버젓이 판치는데 귀신이 없을 건 또 뭔가?
내가 가장 기가 찬 부분은 우리의 신분이었다. 우리는 무려 호아킨 아카데미의 생도다. 마족과 맞서야 하는 의무를 지닌 차기 영웅들이다.
한데 귀신을 무서워한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했다.
그리고 왜 오늘 저녁에 아론 별관에 가 보자고 결론이 났는지, 그 대화의 흐름을 나로선 좇기 힘들었다.
나는 벽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6시 언저리, 부원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까지 삼십 분. 서두르지 않으면 조금 촉박한 시간이었다.
“이 나이 먹고 담력 훈련이라니.”
쓴웃음을 흘리고서 침대에서 벗어났다. 솔직히 아직도 그런 반응의 이유는 이해가 안 됐다.
설령 귀신을 봤다고 해도, 그냥 발 닦고 자면 되는 거 아닌가?
다만 웨폰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어이 그 장소로 가서 귀(鬼)를 떼어야 한다고 강론했다. 이 세계에선 꼭 그래야 한단다.
‘…태생이 다른 사람인 나로선 알 턱이 없지만.’
그러면서 나도 부원들에게 같이 별관에 가겠다 말했다. 다들 좋아했다. 특히나 파랗게 죽었던 웨폰의 안색이 환히 밝아졌다.
얼마 전 선거에서 고생해 준 웨폰이다. 상응하는 보수는 못 줬으니까. 심령 스팟에 같이 가 주는 것 정도야.
나갈 준비를 마친 난 책상 앞에 섰다.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사시미들.
“던전 가는 것도 아니고 귀신의 집 가는 건데, 필요하려나…….”
고민은 짧았다. 나는 몇 자루를 챙긴 다음, 방을 나섰다.
“강검마! 여기야, 여기!”
아론 별관에 다다르자 웨폰이 나를 맞이했다. 료조와 클로이도 이미 와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봤다. 18시 15분.
‘나름 서둘렀는데 쟤들은 이미 도착했네.’
부원들이 기다리는 별관 입구에 가까워졌다. 그러자 몹시 낡은 석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비유 따위가 아니라 정말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이었다, 용케도 작년까지 사용했다 싶을 만큼.
아카데미 설립인 700년 전부터 써왔던 건물이라고 했으니, 그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난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기서 귀신이 안 나오면 그게 더 반전이겠는데?”
가을이라 해가 떨어지는 시간대도 일러 푸른빛 그늘이 건물을 뒤덮는다. 저녁 공기라 해도 시릴 정도로 싸늘했다.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흉가였다.
‘근데 웨폰, 쟤는 겁도 많은 애가 연습실로 이런 곳을 썼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길 잠시, 난 부원들과 합류했다.
모인 우리는 일단 각자 소지품을 점검했다. 무전기와 헤드라이트. 전부 휴대폰 하나로 퉁 칠 수 있는데 다들 굳이 챙겨 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무서워서 울먹울먹하더니……. 분위기는 제대로 내고 싶은 모양이다.
“준비는 끝난 거 같으니까 이제 들어갈래?”
웨폰이 맑은 얼굴로 말했다. 나와 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문 열리는 소음조차 불길한 흉가. 우리는 그런 장소에 발을 내디뎠다.
* * *
…15분 후, 아론 별관의 입구에 하나둘 사람이 모였다. 사키, 웨폰, 그리고 클로이였다.
분침이 정확히 30분을 가리켰다. 손목시계를 보던 사키의 얼굴에 물음표가 둥실 떠올랐다.
“시간 됐는데, 검마 얘는 왜 안 와?”
“그러게. 부장이 시간 약속 어긴 적이 있었나? 보통 먼저 오면 왔지, 늦진 않았던 거 같은데.”
“기다려 봐, 전화해 볼게.”
뚜뚜― 삐―!
[지금 고객님께서 통화권 이탈 지역에 계셔, 연결이 불가하오니 (……)]웨폰이 사키를 쳐다봤다.
“부장, 어디래?”
“…통화권 밖이라 전화가 안 걸려.”
“통화권 밖이라고? 그럼 어디지? 애초에 호아킨 아카데미는 인프라가 전부 최신 설비라서 전화가 안 터지는 곳이 없잖아. 와이파이도 빵빵하고.”
“…….”
사키는 말없이 별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낡긴 했으나 수백 년의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클로이의 말마따나 내부만 좀 손 보면 이용에 지장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형용할 수 없는 괴괴함에 사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의 발소리였다.
사키가 홱 그곳을 향해 시선을 쏘아 냈다. 다음 순간, 그녀가 아연한 얼굴이 되었다.
“아벨이랑 레이첼……?”
사키가 다가오는 두 사람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곁에 있던 웨폰이 멋쩍은 기색으로 설명했다.
“아, 그게. 내가 불렀어. 아무래도 네 명이면 너무 적잖아. 귀신 나오는 장소인데. 적어도 여섯은 돼야 든든하지!”
그리 말하는 웨폰을, 사키는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내 두 사람이 별관 입구에 당도했다. 아벨이 미어캣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키가 그런 아벨을 차갑게 흘기더니 한마디 내뱉었다.
“강검마 여기 없어.”
“아…….”
한순간 아벨의 눈빛에 실망감이 스쳤다. 그러다 곧바로 도리도리 머리를 흔들었다.
“나, 나 그냥 레이첼 따라온 거야.”
아벨이 주장했다. 사키는 그 변명에 짧은 코웃음으로 화답했다.
레이첼이 카랑카랑한 웃음을 터뜨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둘이 언제 이렇게 사이가 좋아졌대? 같은 성 클래스였을 때만 하더라도 서로 불편해했잖아! 역시 사람은 떨어져 있어야 하나 봐, 냐하!”
* * *
별관 내부는 어둡다 못해 칠흑처럼 깜깜했다. 바깥은 해가 아직 뉘엿뉘엿함에도 한 치 앞을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부원들이 손전등을 챙겨 와서 망정이지. 핸드폰 화면 속 작은 조명으론 턱도 없었을 것이다.
끼익, 끼익.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삭은 나무 바닥이 비명을 질러 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음 덕에 내가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어두운데 쟤들은 잘 가네.’
나는 앞장선 부원들을 슬슬 뒤따랐다. 물끄러미 그들의 등을 바라보았다.
부원들은 그저 헤드라이트 빛에만 의존한 채 말없이 걸음만 옮겼다.
…그런데 어떻게 얘네들은 척척 앞으로 나아가는 걸까.
웨폰이야 그렇다 쳐도, 사키와 클로이 또한 지리를 꿰고 있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검신의 가호]와 [전이의 가호]로 기감을 곤두세웠어도 방향을 가늠키 힘들었다. 밀실에 갇힌 것처럼 텁텁한 밀폐감 때문이었다.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입장한 직후부터 대화가 단절됐다. 잔뜩 긴장해서라 해도 너무 조용했다.
나는 선두에서 인솔 중인 웨폰에게 물었다.
“웨폰, 목적지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해?”
그가 헤드라이트로 전방의 계단을 비추었다.
“저기 보이는 계단을 올라간 다음, 몇 걸음만 더 가면 돼.”
웨폰은 뒤 돌지 않은 채 대답했다. 고저 없는 건조한 말투로. 호들갑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 정말? 생각보다 금방이네. 얼른 끝내고 돌아가고 싶다.”
“그러게요. 여기 너무 무서워서 빨리 떠나야겠어요.”
내 눈매가 살짝 휘자 사키와 클로이가 말을 덧붙였다. 그녀들 역시 내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끼긱.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와 함께 부원들의 걸음도 정지했다.
그제야 웨폰이 물어 왔다.
“왜, 검마야. 무슨 일 있어?”
“하.”
나는 헛웃음 지었다. 이걸 왜 진작에 눈치 못 챘을까.
“웨폰, 너 아까부터 나를 검마라고 부르는데. 요새 네가 나를 그렇게 부른 적이 있냐? 맨날 부장이라고 부르지.”
“…….”
“너뿐만 아니라 료조랑 클로이, 너희 전부. 정체가 뭐냐?”
복도에 끔찍하리만치 어두운 적막이 맴돌았다. 그들이 손에 쥔 손전등이 끔뻑끔뻑 간헐적으로 빛을 발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나 속이는 건 존나 싫어하거든?”
“…….”
키리링.
사시미를 꺼냈다. 암흑 속에서 검울림이 끌려 나왔다.
“썰리기 싫으면 지금 당장 이쪽으로 고개 돌려.”
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뒤틀었다. 투드득-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 몸은 정면에 고정한 채 180도 꺾인 머리만 나를 향했다.
피범벅인 된 얼굴들. 입꼬리가 귀밑까지 흉하게 찢어져 있었다.
놈들이 좀 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윗니 아랫니를 핏물이 찐득하게 연결했다.
그 기이한 장면은 영혼의 밑바닥을 뒤흔드는 듯했다. 놈들이 일그러진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연다.
“““나 예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