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7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79화(178/300)
179화 괴담 (3)
“일단 우리 먼저 들어갈까? 부장 성격상 도착하면 알아서 들어오든지 할 거 같은데.”
강검마를 기다리길 20분. 웨폰의 제안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거 챙겨 왔는데 필요 있으려나?”
아론 별관의 문을 열기 직전, 아벨이 챙겨 온 손전등을 흔들어 보였다.
웨폰이 고개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딱히 필요 없어. 이 건물, 이렇게 낡았어도 자동 센서가 있어서 불이 들어오거든. 그리고 혹여 안 들어오면 스마트폰 빛으로 충분한 수준이고.”
“아… 그럼 괜히 챙겨 왔네.”
아벨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레이첼이 홱 헤드라이트를 낚아채더니 손 위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런 거 하나 있어도 나쁘진 않을 거 같은데? 분위기도 좀 살고 말이야, 냐하!”
“…내가 볼 땐, 그거 레이첼 너한테 가장 쓸모없어 보인다. 머리가 노랗게 반짝거려서.”
별관에 입장한 그들은 웨폰을 따라 이동했다. 그는 선두를 맡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네 여인의 따가운 눈총에 하는 수 없이 맨 앞에 섰다.
한순간에 서늘하게 식은 눈빛들을 받아 낸다면 누구라도 그랬으리라.
앞에서부터 웨폰, 사키, 클로이, 아벨, 레이첼 순의 행렬이었다.
그들이 계단을 오르는 가운데 웨폰 바로 뒤에서 걷던 사키가 입을 열었다.
“웨폰, 네가 귀신을 봤다는 곳이 어디라고?”
“3층에 복도 중간에 있는 피아노실. 내가 연습하는 방음 부스가 복도 맨 끝에 있거든. 그래서 오다 가면서 안 볼 수가 없는 구조야.”
“복도 중간이라……. 그건 그렇고 지금에야 묻는 건데, 네가 봤다는 애들 진짜 귀신이 맞는 거야? 너처럼 그냥 여기 시설이 좋아서 쓰는 애들일 수도 있잖아.”
사키의 말에 행렬의 세 번째, 클로이가 대답했다.
“아마 일반적인 생도는 아닐 거예요. 오늘 오기 전에 녹스한테 물어봤는데 이쪽 별관은 안전사고 때문에 생도들의 입장이 제한된 곳이래요. 깔끔해 보여도 건물 자체가 몇백 년은 된 거라서 그렇다네요.”
뒤에서 두 번째에서 걷던 아벨이 덧붙였다.
“하긴… 우리도 교관님들께 안 들키려고 저녁에 몰래 들어온 거니까. 웨폰 말대로 열몇 명이 꾸준히 들락거렸으면 아카데미 측에서 모를 리가 없지.”
그때, 아벨의 뒤편에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흘렀다. 아벨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레이첼의 장난이다. 그녀는 입장 전부터 신이 나 있었으니까.
‘안 봐도 비디오야.’
기껏해야 손전등을 거꾸로 하고서 혀를 길게 내빼고 놀라게 하려는 심산이겠지.
장면이 아벨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반응해 줘서 괜히 귀찮아질 바엔 무시가 답이었다.
아벨은 앞 사람, 클로이의 등만 보며 걸었다.
냐흐으으으으…….
장난은 몇 분이 지나도 계속됐다. 보통 레이첼은 한 번 무시하면 ‘재미없어, 흥.’ 하면서 더 종용하지 않았다.
냄비 근성, 레이첼은 텐션이 높아지는 속도만큼이나 포기도 빨랐다.
그런데 지금은 꽤 끈덕지다. 레이첼도 이젠 깨달은 건가, 빠르게 포기해서는 자신을 뒤돌게 할 수 없다는 걸.
‘그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요새 잠을 못 자 신경이 날카로운 마당이다. 이참에 따끔하게 한마디 해 줘야지.
호흡을 가다듬은 아벨이 휙 뒤돌았다. 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
열의 맨 마지막에 있어야 할 레이첼이 사라졌다.
중간에 어디로 갔나? 아니, 그럴 리가.
조금 전까지 뒤에서 분명히 기척이 느껴졌다.
검사의 기본 소양엔 기척 감지가 필수였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미리 읽어 내거나 기습을 대비할 수 있으니까.
하루도 빠짐없이 단련해 왔다. 아벨은 기감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잠시 착오가 있었다고 해도, 그만큼 뚜렷한 인기척을 놓칠 리는 요원했다.
그렇다면 레이첼은 어디에? 아벨은 다급히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얘들아, 레이첼이 사라졌……!”
아벨이 내뱉으려던 말을 도로 목구멍 아래로 삼켰다.
눈앞의 상황이 믿기지 않은 나머지, 멍해졌다.
“네, 네가 왜 거기에?”
클로이를 대신해 세 번째를 차지한 인물. 양 갈래머리로 땋아 내린 금발이 망막에 담겼다.
“레, 레이첼 너 너, 너 언제 내 앞으로 간 거야?”
“미안. 아벨, 네가 너무 느릿하게 가는 거 같아서 클로이한테 자리 좀 바꿔 달라고 했어. 그렇지, 클로이?”
돌연 뒤편에서 클로이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네, 맞아요. 레이첼 씨가 앞으로 가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바꿔 드렸어요. 그러니까 어서 가요.”
클로이가 손가락으로 콕콕 아벨의 등을 찌르며 부추겼다. 생각할 말미를 주지 않으려는 듯이.
“맞아, 어서 가자, 어서.”
“응, 가야지. 어서어서.”
앞에서 두 사람, 웨폰과 사키도 한마디씩 보탰다.
모두가 아벨을 이상한 사람으로 모는 분위기를 조장했다.
아벨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서 일축했다.
“너희들 뭐야.”
한순간에 냉각된 공기. 레이첼이 등 돌린 채로 목을 삐딱하게 기울였다.
“멍청한 아벨.”
레이첼의 목소리. 그녀가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날엔 생도들 사이에 숨어서 나서지도 못했으면서, 지금은 왜 갑자기 용기 있게 행동해? 만약 그때도 지금처럼 행동했다면 사키한테 선수를 뺏길 일도 없었을 텐데.”
“…….”
“강검마는 아벨 너와 더 긴밀한 사이였어. 생각해 봐. 같은 집에서 한 달을 동고동락했잖아. 근데 지금 네 꼴을 봐. 괜한 자존심만 부려서 랑 클래스에 찾아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
“속으론 다른 여자애들보다 그래도 자신이 낫다고 은근슬쩍 생각하고 있지 않아?”
“…….”
“아아, 병신같고 불쌍한 우리 아벨. 겉으론 이타심 넘치는 사람처럼 보이려 노력하는 위선자 아벨. 외모 따윈 치레에 불과하다면서 샤일한테 기초 화장품을 묻는 아벨. 겁쟁이 아벨. 거머리 아벨. 아벨… 아벨-”
“푸하하.”
아벨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계속 씨부렁거리던 입들이 일순 다물어졌다.
“얘들의 탈을 쓴 너희들 말이야. 내 머리를 헤집으려고 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요목조목 짚어 주니까 오히려 개운할 지경이야.”
스르릉.
허리춤으로 내려간 아벨의 손이 이윽고 검을 뽑았다.
그녀는 가슴 앞에 검을 똑바르게 세웠다. 검날에 비친 본인의 모습이 보였다.
이들이 자신에 퍼붓던 온갖 멸시와 조롱. 적나라하다 못해 완전히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맺혀 있었다.
아벨이 입을 열었다.
“나, 항상 강검마한테 도움만 받고, 정작 걔가 위기에 처했을 땐 선뜻 나서지 못했던 겁쟁이 맞아.”
“…….”
“근데 너희들이 실수한 게 있어. 우리 니벨룽가(家)는 언제나 부족함을 겸허히 받아들이거든. 그리고 즉시 개선하고. 근데 일일이 내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네.”
아벨은 추켜세운 검날을 코끝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위선자, 겁쟁이, 자격지심.
저 모든 걸 인정한다. 동시에 반성한다.
그 순환이 곧 성장일지니.
아벨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현 장소는 2층 복도의 한가운데. 어느새 그 넷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시뻘건 피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거무죽죽한 눈자위 중앙에서 충혈된 동공이 위험하게 번들거렸다. 귀신 무리는 친구들의 인두겁을 빌린 채였다.
아벨은 등골이 차게 식는 걸 느꼈다. 쭈뼛 솜털이 곤두섰다.
저 살벌한 비주얼로 기선 제압이라니. 반칙이었다.
놈들이 무기를 양손에 쥐었다. 공포 영화에 형식적으로 등장하는 흉기, 식칼이었다.
‘놈들의 무기도 칼.’
귀신이 아니라 같은 칼잡이다. 그렇게 발상을 뒤집으니 두려움이 달아나는 것 같았다.
더구나 꾸준하게 회칼만을 무장으로 써 오는 애가 있잖은가.
그에 비하면 저들의 식칼은 사과나 제대로 깎을 수나 있을까 싶었다.
아벨은 픽 실소했다. 강검마를 생각하면 가슴속의 응어리가 씻긴다.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귀신들이 복도를 달리며 저주 섞인 외침을 내질렀다. 관절이라도 빠졌는지 식칼을 휘두르는 팔이 흐느적거렸다.
‘귀살(鬼殺)을 해야 한다.’
놈들을 응시하며 아벨은 차분히 생각했다. 그 눈빛이 깊게 가라앉는다.
‘강검마였다면…….’
아벨은 뽑았던 검을 도로 납도했다. 그녀는 검 자루를 꽉 잡은 채 발검 자세를 낮게 취했다.
등에 바위를 얹은 것처럼 무겁고도, 깊게 수그렸다.
오른 무릎을 굽히고, 왼발은 뒤로 쭉 뺐다. 불안정한 무게 중심.
바람 한 점 불면 쓰러질 것 같은 자세였다. 하나 그 위태로움이 폭발적인 도약의 핵심이니.
아벨은 한때 시기했던 이의 검술을 위장했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스무 발자국 정도의 거리. 귀신들이 뒤틀린 궤도로 식칼을 뻗었다. 말 그대로 귀기 어린 공세였다.
“하아.”
아벨이 이빨을 다문 채 더운 숨을 뱉어 냈다. 길게 삐져나오는 입김. 치이익- 기차가 증기를 뿜는 소리가 났다.
아벨이 눈을 부릅떴다. 그 즉시, 그 발이 복도의 판석을 터뜨렸다. 은빛 실선이 복도를 쌍쌍바처럼 길게 가로질렀다.
스겅!
복도의 소실점엔 아벨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탁. 검의 코등이가 검집과 부딪친 순간, 귀신들이 깍두기처럼 조각나 허물어졌다.
* * *
귀신 연놈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냈다, 어림잡아 수십 명을 영멸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새끼들, 세가 줄기는커녕 점점 불어났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폭소를 터뜨리면서.
냐하하하하하하하!
처음엔 사키, 웨폰, 클로이 이렇게 셋이었다. 그리고 난 일 검에 녀석들을 해치웠다.
그러나 난 엄청난 실수를 범했다. 바로 ‘해치웠나?’란 소리를 내뱉어 버린 것.
이에 실망하지 않게, 귀신들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피아노실, 미술실, 천장.
하여튼 귀신이 나올 만한 곳에선 전부 나타났다.
등장 신도 해괴망측했다.
입에 식칼을 물거나, 네 발로 천장을 기거나, 정수리로 바닥을 콩콩 찧거나. 귀신 종합 선물 세트였다.
각개로 따져 보면 놈들의 무력은 그저 그랬다. C급 마수 정도. 다만 떼거리로 몰려오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소모전으로 흘러가면 불리한 건 이쪽이었다. 공교롭게도 난 60초만 [검신의 가호]를 발현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일단 작전을 짤 겸, 남자 화장실 세 번째 칸에 숨어들었다. 작전상 후퇴지가 변변찮다. 다른 곳들은 귀신들로 만석인 탓이었다.
나는 변기통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저 새끼들 전부를 해치… 아니, 상대할 순 없는 노릇이고.’
나는 이 귀신 소굴이 던전과 그 성질이 엇비슷하다 결론 내렸다.
몇 놈 베어 보니 감이 잡혔다. 복도에서 활개 치며 꺌꺌 소리 내는 저놈들은 귀신보단 마수에 가까웠다. 써는 맛이 그랬다.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어떤 유리를 썼는지 흠집만 날 뿐이었다.
한 번 진입하면 공략전까지 중간 이탈이 불가능하다. 이 역시 여타 던전들과 특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어째서 아카데미 내에 던전이 있는지는 차치했다.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만일 이곳이 던전과 그 성질을 공유한다면, 필시 공략법이 있을 터다.
문제는 그걸 모른다는 거다, 플레이 시절엔 이딴 ‘전설의 고향’ 같은 이벤트가 없었기 때문에.
‘공략법만 알면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보통 이럴 땐, 나 대신 사키나 웨폰과 머리를 맞대어 대책을 궁리했다.
새삼 그들의 중요성을 되새기던 차, 뇌리에 느낌표가 번뜩였다.
나는 곧바로 상태창을 띄움과 동시에 [소통의 가호]를 발현했다. 그리고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 야, 힌트 좀 줘 봐.
[…….]버퍼링 걸린 것처럼 묵묵부답. 역시 무리였나.
위급 시엔 정보를 쏠쏠히 받았기에 쓸모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중요할 땐 쓸모가 없네…….’
파앗―!
‘……?’
* * *
[Tip: ‘호러 메이즌’의 중추(core)를 찾아 파괴하십시오. 그러면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 […….] [못 믿겠음 말고. ㅅㄱ]* * *
“중추라.”
확실히 공략법이 귀신을 깡그리 쓸어버리는 건 아닌 모양이다.
좀 더 나아가 코어의 위치까지 알려 주면 좋으련만, 연신 불러도 더 이상 반응이 없었다.
‘삐졌네.’
그래도 덕분에 가닥을 잡았다. 일단 이곳에서 중추의 위치를 고민한 다음 움직인다.
다만…….
어째 밖이 조용해졌다.
공포 영화를 자주 본 건 아니나, 이 고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화장실, 갑작스레 찾아온 적막. 이토록 완벽히 조성된 세트장이 있을까.
무엇보다 나는 변기통에 수그려 앉은 상태다. 그렇기에 문틈으로 가지런히 서 있는 분홍 구두가 보인다. 뾰족한 구두 끝이 정확히 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큰 키의 괴인이 문 위로 쑥 머리를 들이민 모습. 그녀의 입가에 히죽 흉측한 호선이 걸렸다.
“까꿍?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