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8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80화(179/300)
180화 괴담 (4)
허여멀겋게 분칠한 귀신이 코앞에서 까꿍 한다. 제아무리 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게거품 물고 까무러칠 상황. 강검마 역시 화들짝 놀랐다.
‘정신의 격’이 빠르게 가슴을 진정시키긴 하지만, 부동심까지는 아니었다.
이런 예상보다 더 큰 충격을 완전히 지워 주진 못했다. 대놓고 겁을 주면 얼을 타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냉정이 금방 찾아들었다.
이제껏 상대해 온 적들이 너무 내로라하는 강자들이었다.
그때마다 등허리가 식는 전율을 느꼈기에, 이 정도는 잠시면 충분했다.
“갑자기 사람 놀라게 하고 X랄이야.”
강검마가 사납게 이를 갈았다. 그리고 무라사메를 녀석의 왼뺨에 쑤셔 넣었다.
볼살을 파고든 칼날이 반대편에서 삐죽 돋아났다.
원래는 팔을 휘둘러 목을 베어 낼 공산이었다. 하지만 공간이 너무 비좁았다.
끼야아아악!
분홍 구두 귀신이 비명을 터뜨렸다. 구둣발이 화려하게 화장실 타일을 두드렸다. 귀곡성과 스텝이 맞물린 소음이 널리 흩어졌다. 복도에서 활개 치는 중인 귀신들의 이목이 쏠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바깥에서 발소리가 쿵쿵 울렸다. 못해도 수십 마리. 다들 똥 마려운 사람처럼 발걸음에 다급함이 실려 있었다.
강검마가 입안에서 욕설을 씹었다.
‘젠장, 화장실은 세 칸인데 오는 놈은 수십이냐.’
칼로 귀신의 얼굴을 난자하는 가운데 강검마는 재빨리 계획을 정정했다.
주둔지였던 남자 화장실에서 탈출한 뒤에 작전을 다시 세운다.
‘일단 이 남자 화장실에 무단침입한 아줌마 귀신부터.’
훔쳐보기. 귀신이라도 이놈은 범죄를 저질렀다. 그에 상응하는 단죄를 받아야 했다. 변태는 특히나.
강검마가 칼자루를 힘껏 아래로 잡아당겼다. 쾌검이 부드럽게 턱뼈를 끊어 냈다.
허전해진 하관에서 백태가 낀 보랏빛 혀가 대롱대롱 흔들렸다.
쾅!
강검마가 발로 문을 걷어찼다. 문짝과 함께 나가떨어진 귀신이 소변기에 구겨지듯 처박혔다. 반파된 소변기에서 물줄기가 높게 치솟았다.
분홍 구두 귀신은 턱이 사라져 꺽꺽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그녀는 후회했다. 이토록 터프가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내 강검마가 변기 칸에서 나왔다. 어깨를 붙잡고서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 소변기 앞에 서서 시선을 내렸다.
“화장실이 급하면 옆 칸에 가든지 해야지. 사람이 있는 칸을 훔쳐봐? 그리고 애초에 여자가 남자 화장실에 온 것부터가 잘못됐지.”
강검마가 권태가 잔뜩 낀 목소리로 훈계했다. 귀신이 발악하듯 손톱을 내질렀다.
“끄에에엙!”
강검마는 고갯짓으로 공격을 피한 다음 무라사메를 휘둘렀다.
서걱!
머리를 잃은 몸체가 주르륵 소변기를 타고 미끄러졌다.
“그리고 저승 가선 노크부터 하는 습관 좀 들여라, 새끼야.”
그때, 눈앞에 웬 문구가 떠올랐다.
[NEW! 명왕의 권능 특수 조건 ‘(鬼) 속성 개체를 (50) 마리 이상 토벌’을 달성하여 신규 능력이 해방되었습니다.]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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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의 권능〉
◈ 신규 능력
: 본 무장으로 벤 귀(鬼) 속성 개체는 수 제한 없이 부릴 수 있습니다.
: 효과는 영구적으로 지속되지 않으며 시간은 10분으로 한정됩니다.
: 현재 거느릴 수 있는 개체 수, 총 (32)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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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뭐야?”
나는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구두 귀신이 문틈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었을 때보다 더 놀라지 않았나 싶다.
명왕의 권능. 벤테타와의 일전에서 사용한 이후론 써 본 적이 없었다.
거느릴 수 있는 개체가 하나뿐이라 실용성이 별로였다.
그런데 귀 속성 한정으론 그 금기가 해제됐다는 소리.
가뜩이나 이쪽은 늘 물량 공세에 취약했다.
내가 개인전이나 전초전을 선호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신규 능력이라면 물량전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화장실에 숨기 직전, 복도 벽에 건물 약도가 붙어 있었다. 혹시 몰라 곁눈질해 뒀다.
해서 이 건물의 구조를 대강이나마 뇌에 담았다.
돌이켜보니 이 건물엔 분명한 특이점이 존재했다.
교실별로 아파트처럼 101, 102, 103……. 이렇듯 호수가 적혀 있었다.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보통 미술실, 목공실, 음악실이라 되어 있는데 말이지.’
그러나 내 시선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4층이 죽을 사(死) 자로 대체된 것. 더불어서 404호의 위치에 한자 ‘死靈死’라 되어 있었다.
그때는 뭔가 싶었는데, 상태창과 소통 후 가닥이 잡혔다. 404호, 그곳에 이 던전의 ‘중추’가 있음을.
막간을 이용해 생각했다. 현 위치는 2층. 그럼에도 적이 쏟아져 나오는 마당이다.
위층인 3층과 4층은? 벌 떼처럼 바글거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에 어떻게 대비할지 고민이었는데 때마침 [명왕의 권능]의 특수 조건이 해금된 상황.
‘운이 좋군.’
파밍만 넉넉히 하면 이쪽은 속 편히 구경하면 된다.
제한 시간 10분을 초과하면 몇 마리 해치워 수를 채우고.
K-모바일 게임의 정수 ‘자동 사냥’을 현실에서!
나는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쳤던 신체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자동 사냥이란 낱말이 주는 울림 때문이었다.
그만큼 더 귀신 연놈들을 썰어야겠지만 모은 수만 벌써 서른 마리였다.
분발하면 세 자리도 금방이었다. 아군은 많을수록 좋았다.
“여기 있다!”
때마침 귀신 패거리가 쓰나미처럼 화장실에 밀어닥쳤다.
놈들이 안광을 희번덕이며 강검마를 노려보았다.
그 수는 눈 대강으로 쉰 남짓. 어지러이 뭉쳐진 전열은 실타래를 연상케 했다.
반면 강검마는 우두커니 홀로 서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귀신 무리를 마주 보았다. 그 입가에 의미심장한 냉소가 번졌다.
“전부 없애면 얼추 백 마리 채우겠네.”
강검마가 망설임 없이 귀신들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흥건해진 화장실 타일에 발자국이 연달아 찍혔다. 찰방찰방. 사뿐한 물소리를 동반했다.
신이 나서 달려오는 모습에 귀신들의 동공이 수축했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온다고? 다만 놈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파밍을 눈앞에 둔 한국인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 * *
귀곡성이 흉가에 가득 울려 퍼졌다.
끼아아아아아아앍……!
파밍에 눈 돌아간 인간이 귀신들을 도륙 냈다. 인간과 귀신의 역할이 역전된 광경이었다.
무심한 칼질에 귀신들이 픽픽 쓰러졌다.
강검마는 칼에 묻은 피를 털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복도를 꽉 메운 사체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썩 만족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현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2층에서 사냥을 마친 강검마가 그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포만감을 느끼기엔 아직이었다. 무라사메와 만년서리도 이에 동의하듯 서슬 퍼렇게 울었다.
그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3층으로 이동했다.
* * *
2층과 달리 3층은 몹시 고요했다.
그저 복도 한가운데에 우물이 덩그러니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흡사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한 것 같았다.
강검마는 못내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사냥감이 부족해 올라왔건만, 위층은 가뭄이었다.
흉년에 느끼는 농부의 심경이 딱 이럴까.
그때였다.
끼기긱.
우물 위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핏기가 가신 피부 위로 핏줄이 거미줄처럼 맺혀 있다.
손의 주인이 슬금슬금 우물 밖으로 기어 나왔다. 전형적인 처녀 귀신이었다.
그녀가 머리를 앞으로 쏟아 내린 채 비척비척 다가왔다.
“내내, 내 이름은 마, 마마, 말숙이…….”
그녀는 말라비틀어진 목소리로 시키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했다.
“너어, 차아암. 자아, 잘생겼다아. 내, 내애 남편이 되어 줘어.”
“염병.”
처녀 귀신이 쩍- 입을 찢어져라 벌렸다. 입안이 공허하리만치 새카맣다. 온갖 구멍에선 먹물이 줄줄 흘렀다.
“호호, 혼자는 너, 너무 외로워어어어어어!”
처녀 귀신이 인생의 반려를 찾은 사람처럼 양팔 벌려 반겼다. 강검마는 그런 그녀를 시큰둥한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얼추 중간 보스쯤은 돼 보이네.”
살짝 실망한 차에 횡재했다. 말투가 좀 얼빵해 보여도 풍기는 마력이 범상치 않았다. 가늠컨대 B급 마수는 될 법했다.
2층에선 양이었다면 3층은 질이었다.
처녀 귀신으로 질적 강화를 한다면, 보다 튼실한 군대로 거듭날 것이다.
강검마가 낮게 웃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 파밍의 성과를 확인할 시간이었다.
쿠구구궁.
노면이 진동했다. 우물에서 갓 나온 처녀 귀신이 휘청거렸다. 그녀는 재빨리 중심을 잡고 강검마를 쳐다봤다.
“너, 너어, 뭔 짓을 한 거야아아.”
강검마가 대꾸했다.
“외롭다고 했나.”
“……?”
“그 말, 아마 후회할 텐데.”
다음 순간, 처녀 귀신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전율감을 느꼈다. 눈 밑이 떨릴 정도로 거대한 압박감이 그녀의 숨통을 옭아맸다.
끄어어어어어얽…….
얼기설기 뒤얽힌 신음성이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수가 족히 백은 됨직한 악귀들이었다. 그들이 강검마의 등 뒤에서 뭉쳐졌다.
손짓 한 번. 그에 귀신 무리는 저 인간의 추종자를 자처하듯이 전열을 구성했다. 그 모든 움직임은 강검마의 통제하에서 이뤄졌다.
처녀 귀신이 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때가 이미 늦었다. 강검마가 들었던 손을 까딱여 신호했다.
“외로우시단다. 혼자가 아니게 해 드려라.”
“자, 자자, 잠깐……!”
귀신들이 좁아터진 복도에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처녀 귀신, 말숙은 허둥지둥 빠져나왔던 우물로 도로 투신했다.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은 수없이 많았지만, 일단 도망쳐야 했다. 중요한 건 생존이었다.
‘처녀인 상태로 다시 죽을 순 없어!’
하지만 귀신들이 우물 속으로 요란스레 빨려 들어갔다.
자신의 아지트에 흘러 들어오는 외부인 집단을 말숙은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결국 휘말렸다.
우물 깊숙한 곳에서 절규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금세 멎었다.
말숙은 오랜 염원을 이루지 못한 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제야 강검마는 저벅저벅 걸어갔다. 복도 반대편에 있는 계단을 향해서였다.
임무를 완수한 악귀들도 우물에서 기어 나와 그의 뒤를 밟았다. 그들 중엔 말숙도 있었다.
저벅, 저벅.
길게 늘어선 행렬. 필두로 선 인간을 수백에 달하는 귀신이 호위했다.
보폭과 걸음걸이도 하나 된 듯 그에게 맞추었다. 뜨문뜨문 도깨비불이 암흑 속에서 가시는 길을 밝혔다.
백귀야행(百鬼夜行). 망령들이 구천을 활보한다.
그 선봉장은 망자의 왕을 위시하는 인간, 강검마였다.
이 지긋지긋한 악몽을 매듭짓기 위해서, 유독 기나긴 밤을 끊어 내기 위해서. 복마전에 구금된 귀신들을 이끌면서 나아갔다.
그가 걸으면서 불현듯 뇌리를 스친 말을 읊조렸다. 불사의 마석 획득 당시 떠올랐던 어구였다.
“망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하면 그들은 명계의 문을 열고서 부름에 응하리라.”
끄어어어어어얽!
귀신들이 으스스한 함성을 터뜨렸다.
명왕의 행차를 아뢰는 밤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