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8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83화(182/300)
183화 최강의 뱀 (1)
맥거핀(Macguffin). 이야기에 동기를 부여하지만, 따로 뒷배경이나 설명이 없는 장치를 부르는 단어다.
‘기적의 가호 M’에도 그런 맥거핀들이 존재한다.
아니, 정확히는 절반 이상이 맥거핀이라 할 수 있을 정도. 게임사 측의 편의주의로 맥거핀이 산재하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부정한 뱀, 바실리스크. 퀘스트의 보스로만 기능할 뿐, 뒷배경이 유독 베일에 싸였던 마수였다.
…뭐, S급 마수가 통상 그렇긴 하다.
리치 킹 드라우그의 잔혹한 내막도 여기 와서야 알았으니. 흉수 만티코어도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개중에서도 가장 떡밥이 많은 건 아마 바실리스크지 싶다.
그건 그 마수의 종족이 ‘뱀’인 탓이었다.
뱀은 기적의 가호 M에서 무조건 마족에게 속한다. 일전의 요르문간드도 마족, 드래곤 또한 큰 틀로 뱀의 상위군으로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바실리스크는 모순 그 자체였다. 이명 자체가 부정한 ‘뱀’이다. 그럼에도 마족이 아닌 마수로 분류된다.
이에 관해서 유저들 사이에 여러 말들이 오갔으나 마땅한 정론은 없었다. 끝내 나온 결론이 상술한 맥거핀이라는 것.
어찌 됐든 뱀이란 설정에 맞게 마족과 비견되는, 혹은 그 이상인 S급 마수였으니. 제작 도중에 무슨 착오가 있어 맥거핀이 된 설정이다, 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드래곤은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드래곤은 아니에요. 태어날 당시엔 ‘이무기’라 불리죠. 금욕과 수행을 몇백 년을 거듭하면 몸 안에 여의주가 생기게 되는데, 그때 비로소 드래곤으로 표변할 수 있게 돼요.”
나는 혼의 설명을 경청했다. 그러면서 속으론 탄식을 터뜨렸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요괴가 되었다는 설화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설화가 드래곤의 모티브가 됐을 줄이야.’
여하튼 혼의 설명을 짧게 요약하자면.
제아무리 이무기라지만 진화가 덜 된 놈은 ‘같은’ 마족 축에도 못 낀다는 것이었다.
혼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최설아도 알아듣게끔 마어(魔語)가 아닌 한국말로.
“사실 바실리스크는 이무기 시절부터 차기 드래곤 로드로 점지된 아이였어요. 타고난 마력 양이 일족 내에서 따라올 드래곤이 없었거든요.”
마족 중에서도 드래곤이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는 이유는 그 어마 무시한 마력 양 때문. 숨만 쉬어도 몸에 마력이 축적되는 종족 특질 때문이다.
한데 그런 드래곤 중에도 바실리스크는 으뜸이었다. 만약 그가 장성했다면 역사상 최강의 드래곤 로드가 되지 않았을까. 혼은 조심스레 의견을 내비쳤다.
“…제 남동생이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정말 뛰어난 자질이었죠.”
“엥? 그렇게까지 뛰어났는데 왜 드래곤으로 승천을 못 한 건데? 앞뒤 말이 안 맞잖아.”
비아냥조가 깃든 최설아의 질문에 혼은 야트막이 한숨 쉬었다. 대충 ‘조금 전 설명을 듣기나 한 건지’라는 표정이었다.
‘교관’ 최설아를 위해 혼은 선생님처럼 차근차근 핵심을 다시 짚어 주었다.
“드래곤으로 표변하는 데 있어 중요한 건 강함이 아니에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이무기는 소위 ‘뱀굴’이란 곳에 박혀 백 년 정도를 금욕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말이죠. 고기를 일체 입에 대지 않음으로써 야성을 깎아 내고, 두 향채로 몸에서 독소를 배출하면 몸 안에 정순한 마력이 구슬 형태로 뭉치는데, 그걸 여의주라고 불러요.”
“…….”
“드래곤이 되고 나서도 행동거지에 신중해야 해요. 부정한 짓을 했다간 여의주에 금이 가거든요. 이를테면 무차별적인 학살… 종족 하나를 멸족시킨다든지, 그런 것들이요.”
기껏 고생해 드래곤이 됐는데 한순간의 실수에 의해 전부 수포가 된단 소리. 드래곤이 살생을 꺼리는 이유가 설명된다.
“…하지만 바실리스크는 그렇게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욕 생활을 이겨 내지 못했다. 그거지?”
내 말에 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확해요. 제 남동생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만큼 오만한 성정이었거든요. 그런 애가 육식을 끊고 쑥과 마늘로 백 년을 버틴다는 건 무리였죠. 그러면서도 바실리스크는 드래곤이 되고 싶어 했어요, 그것도 가장 강한. 해서 다른 방식으로 드래곤으로 승천하고자 했죠.”
“다른 방법이 있었어?”
혼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있었다면 저희가 백 년을 허비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남동생은 안이 아닌, 바깥에서 정순한 기를 충당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정순해질 필요 없이, 정순한 기운을 가진 인간들을 섭취함으로써…….”
하던 말을 끊고 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있길 잠시, 그녀가 간신히 입을 뗐다.
“그리하여 제 남동생은 인계에 흘러든 거예요. 더 양질의 정기를 먹고자, 똬리를 틀고서 사람을 꾀어내고 있어요. 그러나 저희 일족은 그저 방관했어요……. 살생으로 인해… 자칫 자신들의 여의주가 오염될까 무서워서요. 그러나 가족인 저만큼은 내버려 둘 수 없었죠.”
마지막 말은 혼의 진심이었다. 또 여의주에 금이 가더라도 두고만 볼 수 없다는 그녀의 각오가 엿보였다.
어쩌면 검제도 드라우그를 같은 마음으로 보지 않았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얄궂은 가족사가 꼬여 있다.
다만 아벨의 아버지, 오리온 니벨룽은 드라우그가 되길 윈치 않았다. 그에 반해 바실리스크는 어떤가.
그릇된 방법으로 드래곤이 되겠다는 탐욕만이 가득한 괴물이다.
더구나 바실리스크는 S급 마수다. 협회가 놈은 인류에 있어 최악의 마수라고 낙인을 찍은 것이다.
“…….”
대화가 잠시 끊기고 침묵이 이어졌다. 의외로 침통한 고요를 깬 건 최설아였다.
“근데 그렇게 강한 마수인데, 너 같은 귀쟁이 혼자 토벌할 수 있는 거야? 안 될 것 같은데?”
팩폭을 당해서인지, 귀쟁이란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혼은 대꾸하지 않았다. 뭐가 됐든 생각이 많아 보였다.
최설아가 얌체처럼 얄미운 말투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큰 각오를 품고 왔으면서 인간들한테 납치나 당하고. 그래서는 절대 남동생을 토벌할 수 없을걸? S급 마수가 뉘 집 걔 이름도 아니고.”
“…….”
“나도 나름 아카데미 교관이라 듣는 귀가 있는데, 바실리스크가 얼마나 괴랄한 마수인진 알거든? 협회가 녀석을 잡으려고 대규모 부대를 편성할 정도로 강한 마수야.”
“그, 그치만!”
혼이 무어라 반문하기 전, 나를 돌아보는 최설아였다.
“주군, 얘 후딱 고향으로 보내 버리면 안 될까요? ”
나는 최설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 아방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이따금 딱밤 욕구가 차오른다. 그런데 지금은 봐주기로 했다.
그녀는 혼을 도와주자는 걸 빙빙 돌려 말한 것이니.
최설아가 이타심을 발휘했다. 빌런이었던 애가 말이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무기가 허물을 벗고 용으로 승천하는 양, 얘도 드디어 사람이 된 건가?
하지만 이어진 최설아의 말에 작게나마 피어오른 가상함이 싹 가셨다.
“몇 주만 더 같이 있다간 진짜로 제 통장에 구멍이 날 것 같거든요. 헤헤.”
“…하여간. 기대했던 내가 병신이다.”
뻐근해진 눈을 꾹꾹 눌렀다.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네 번째 편린과 마석를 단숨에 얻을 기회. 득실을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곧 감았던 눈을 떴다. 나는 혼을 지긋이 보고 있다가 말했다.
“같이 가자.”
뱀 잡으러.
* * *
사흘을 말미로 나와 혼, 최설아는 채비를 갖췄다.
원래는 동아리 부원들을 데려갈 심산이었다. 그러나 몇 분 고민해 보곤 고개를 저었다.
목적 자체가 바실리스크의 토벌이었다. 최설아의 말마따나 협회도 부대를 편성해 잡아야 하는 S급 마수다. 그런 여정에 아직 십 대인 부원들을 데려간다는 건 너무 무책임한 발상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기만코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만일을 방지하고 싶을 뿐. 리스크 감수는 최설아 하나로 충분했다.
약속한 날이 다가올수록 최설아는 안 가겠다고 다짜고짜 생떼를 부렸었다. 삶에 집착이 강한 녀석인 만큼 막상 가려고 보니 무서웠겠지.
그래서 녀석에게 선택지를 줬다. 가기 전에 죽든가, 가서 죽든가. 최설아는 후자를 택했다.
이래저래 다사다난했던 준비 과정을 끝내고, 마침내 닷새째가 된 오늘.
약속된 시간에 우리는 아카데미 워프 앞에서 만났다. 참고로 이번 여정은 워프로 이동한다. 최설아의 신분이 교관이라 가능했다.
워프 탑승에 앞서, 파티원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최설아는 밤잠을 설쳤는지 수척해 보였다. 예상한 바였기에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혼. 이번 여정의 시작이 된 그녀의 눈엔 단단한 결의가 비쳤다.
“출발하자.”
내가 먼저 워프로 걸음을 옮기고, 혼과 최설아가 내 뒤를 따라왔다.
발이 워프를 통과함과 동시에 가공할 만한 압력이 전신을 짓눌렀다.
수우우우욱.
저 멀리 흰 점으로 보이는 소실점이 몸을 쑥 빨아들이는 것 같은 흡입감. 그렇게 정신이 혼미해지려던 차에 몸이 바로 세워졌다.
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잠깐 넋 나간 표정이 되었다.
허허벌판 한가운데, 화산처럼 봉긋 솟은 지형. 코끝이 찡할 만큼 독한 유황 냄새. 일대엔 시뻘건 용암이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던 언데드 던전과 대비되는 후끈한 외관이었다.
‘왔구나.’
바실리스크가 인계에 똬리를 튼 장소, 부서진 섬에 도착한 것이다.
잠시 후, 뒤편에서 공간이 꿀렁이더니 혼과 최설아를 토해 냈다. 철퍼덕- 내팽개쳐진 두 사람은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섰다.
한 박자 늦게 그녀들도 황망히 던전을 바라보았다. 외관이 주는 위압감에 할 말을 잃은 듯한 모습들.
이내 정신을 차린 혼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서 익숙한 마력이 느껴져요.”
흡사 뱀이 아가리를 벌린 것처럼 생긴 통로가 보였다. 누가 봐도 던전의 입구였다.
“저기가…….”
착잡한 심경이 혼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참을 말없이 그 방향을 보던 그녀가 앞장섰다.
반액체 상태의 노면에 인장처럼 찍히는 발걸음. 나와 최설아도 묵묵히 따라 걸었다.
* * *
던전의 내부.
입장과 함께 정적인 분위기의 공동이 우리를 맞이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 가는 길도 뱀처럼 꼬불꼬불한 게, 길 잃기 십상인 지리였다.
그러나 우리는 차질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마력을 역추적하는 혼이 앞에서 안내를 도맡아 준 덕이었다.
‘최설아도 그렇고, 은근히 각자 할당된 역할을 잘 수행하네.’
그렇다면 내 역할은? 당연히 바실리스크 토벌이겠지.
다만 혼에게 전해 들은 바실리스크만의 ‘특질’이 거슬렸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와 상성이 좋지 않은 적이다.
‘상성만 따지고 봤을 때, 군단장들보다 더 까다로울 수도 있겠던데.’
혀를 차며 벅벅 머리를 긁던 순간이었다.
돌연 옆에서 걷던 최설아가 욕을 내뱉었다.
“미친…….”
나도 같은 곳을 바라봤다. 일대 전체를 총총하게 메우고 있는 석상들. 보기만 해도 섬뜩한 장면이었다.
왜냐면, 나와 최설아는 저 석상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까.
저 석상들은 전부, 바실리스크의 마안(魔眼)에 희생된 영웅들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