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8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84화(183/300)
184화 최강의 뱀 (2)
최설아의 어깨가 가늘게 떨려 왔다.
‘이거… 전부 다?’
사람 석상들이 사방 곳곳에 깔려 있다. 제스처나 표정이 방금까지 살아 있던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여전히 구슬픈 비명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석상들 사이를 가로지를수록 최설아의 낯빛이 푸르죽죽하게 죽었다. 그녀는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열, 스물, 서른, 쉰……. 백이 넘었을 무렵 최설아는 세는 걸 포기했다. 희생된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최설아가 다급하게 혼을 불렀다.
“귀쟁이! 이게 전부 다 네 남동생한테 당했다는 거지?”
혼이 고개를 반만 뒤로 돌렸다. 절반 드러난 그 표정에는 침통함이 짙게 머물렀다. 제 남동생이 손수 빚은 참상에 충격을 받은 건 그녀도 매한가지였으니까.
그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이들 전부 다, 바실리스크의 능력, ‘석화의 마안’에 당한 자들입니다.”
마족 중에서도 극히 드물게 개안한다는 마안. 보유자는 하나같이 ‘특질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실리스크는 일찍이 그 눈을 떴다. 제 누이 혼과 달리.
“그거야 여기 오기 전에 귀쟁이 너한테 이미 들어서 알고 있지! 아니, 근데 이건 뭐, 대량 학살 수준이잖아!”
엄청난 힘은 언제나 대가를 동반하기 마련. 마안은 사용에 드는 마력량이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웬만한 마족은 두세 번만 연속 사용해도 마력이 완전히 고갈. 죽음에 이른다.
마족도 마안을 ‘눈이 주인을 잡아먹었다.’라고 부를 정도. 개안자는 특별 취급을 받으나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은 못 됐다.
해서 개안자는 치명적인 약점을 동반하기에 필살기 개념으로 마안을 활용했다. 그런 리스크마저 없다면 마안은 무적기와 다름없으니까.
그런데 가령 그 어마어마한 마력 소모량을 감당할 수 있다면? 필살기를 평타인 양 써 재끼는 게 가능하단 것이었다.
혼이 석상들을 일일이 눈에 담았다. 그리고는 착잡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얌마, 귀쟁이! 몰랐다면 다야?! 기껏 해 봐야 마안 발동 횟수는 다섯 번 정도일 거라며! 석상들 상태 보면 한 번에 스무 명씩 굳은 것 같은데?”
흐릿한 혼의 어조에 최설아가 버럭 호통을 쳤다. 그녀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여기까지 온 것까진 그렇다 치자. 도망이라도 갔다간 차가운 칼날을 살로 품어야 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저 귀쟁이가 애달픈 표정이 될 때마다 묘하게 측은함이 들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왔다. 주군과 함께라면 적어도 목숨도 보장되니까.
한데 발걸음을 놀릴수록 불안감이 팽창했다. 주군과 함께니 목숨은 살겠지. 하지만 과연 사지 멀쩡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신체 부위 중 하나에 석화가 걸린다면?
이렇다 할 치료법은 당연히 없을 것이고, 전신으로 전이되기 전에 싹둑 잘라 내는 방법뿐일 터였다. 회칼이 번쩍하고서 돌이 되어 가는 팔다리와 작별시키겠지.
최설아의 윗니 아랫니가 캐스터네츠처럼 쉼 없이 부딪쳤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두 팔 두 다리로 살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불구보단 배에 칼빵 맞고 입원하는 게 나아 보이는데?’
그때 주군이 어깨에 손을 얹으셨다. 동시에 최설아의 몸이 감전된 사람처럼 찌르르 울렸다.
강검마는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
“헤헤.”
최설아는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고서 주억였다. 주제넘었습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간절한 눈빛을 주군께 초롱초롱 발산했다.
“어른이니까, 제발 말로 할 때 듣자?”
“끄덕끄덕!”
강검마는 그제야 손과 살기를 거두었다. 그 광경을 혼은 신기한 눈으로 지켜봤다.
혼은 눈썰미가 좋은 드래곤이다. 한국말을 금방 깨우친 것이 그 방증이었다. 따라서 인류 사회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어렴풋이 안다.
‘인간은 나이 문화에 충실해.’
마족은 힘의 논리만 따르지, 나이가 많다고 우대하지 않았다. 그 까닭은 기나긴 수명 때문이었다. 너도나도 천 년 가까이 사는 마당에 몇 년 더 살았다는 게 무슨 대수인가?
그에 반해 인간은 연장자에게 깍듯이 대한다. 인계에 흘러들었을 당시, 혼은 그 점이 인상 깊었다. 동시에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인간은 수명이 짧으니까 오래 산 사람을 공경하는 걸 거야.’
그러할진대…….
저 두 사람의 관계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분명 강검마가 열 살 어림에도 보라돌이를 하대한다. 뿐인가, 말에 토라도 달면 바로 살기를 흩뿌린다. 그럼 보라돌이는 바로 합죽이가 됐다.
강자만이 발언권을 가지고 약자는 그저 끄덕끄덕. 그 모습은 흡사 마족의 생태계를 연상케 했다. 호칭도 어딘가 이상했다. 보라돌이는 강검마를 주군, 주군이라 불렀다.
그러면서도 보라돌이는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깐족거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란 말을 이행하듯이. 그리고 다시 저렇게 묵념.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반복했다.
‘저 정도면 즐기고 있는 거 아닐까?’
피식. 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저 둘의 케미 덕분에 석상처럼 차갑고 딱딱하던 공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더불어 내심 고소함을 느꼈다.
고기 좀 먹었다고 맨날 타박하더니!
* * *
나는 돌연 혼에게 질문했다.
“석화의 마안은 눈을 마주친 대상을 돌로 만드는 능력이라고 했지? 그럼 눈을 감고 싸우면 된다는 거 아니야?”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석화의 대상은 생명체만이 아니거든요. 지면, 용암, 심지어 바람 같은 것들도 굳힐 수 있어요. 아마 눈을 감고 싸우시면 남동생은 지형지물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나올 거예요. 이동을 방해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아.”
짧게 탄식했다. 석화의 마안, 개사기 능력이었다.
[검신의 가호]의 속성도 마안과 마찬가지로 눈과 관련된 능력이었다. 대상에 그인 붉은 선을 따라 칼을 휘둘러야 제 성능이 나오니.그래서 올 뮤트와의 대련 경험을 토대로 싸우려 했는데. 지형지물을 조작한단다. 난전이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다.
‘근데 혼, 얘는 그런 남동생을 어떻게 상대하려고 한 거지?’
그리 생각하는 가운데 혼이 걸으면서 전투 계획을 세웠다.
“그래도 능력을 바로바로 사용할 순 없을 거예요. 아무리 마력이 넘쳐 나도 분명히 부하가 걸릴 겁니다. 그때 제가 드래곤으로 표변해 마법을 사출, 여러분은 뒤에서 지원 사격을 해 주시면 돼요.”
“드래곤으로 변한다고? 그건 제약을 해방하는 거잖아.”
“네, 맞아요. 아마 마력 대부분을 소진하게 되겠지만 방법이 그것밖엔 없어요. 같은 드래곤이 아니면 상대가 안 될 정도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건, 바실리스크는 마안 의존도가 높아 다른 마법은 다루지 못해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여러분은 뒤에서…….”
“푸핫!”
난데없이 최설아가 폭소했다. 혼의 정수리 위에서 머리 한 올이 느낌표처럼 삐쭉 섰다. 그러더니 곧 그녀의 눈썹이 곱게 휘었다.
“…뭐가 웃기시죠?”
“아니, 그냥. 주군한테 서포터 역할을 해 달라고 한 사람은 처음이라서. 그게 너무 웃겨서 그만.”
최설아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혼은 동그래진 눈을 끔뻑거릴 뿐.
“귀쟁이, 너 회칼로 마수를 심장 마비 시키는 사람 본 적 있어?”
“……?”
“석화의 마안이든 뭐든 간에 우리 주군은 회칼로 전부 슥-삭 할 수 있으시다고! 그쵸?!”
홱 나를 돌아보는 최설아. 나는 칭찬해 달라는 그 눈빛을 외면했다. 그러자 시무룩 풀이 죽어 무어라 칭얼거렸다.
칭찬… 칭찬… 칭찬…….
“…….”
그마저도 무시하고 나는 다시 혼에게 말을 걸었다.
마안에 관해서 궁금한 점이 많았다. 앞으로 대적할 마족 중엔 분명 개안자들이 즐비할 테니까.
이참에 그에 대한 지식을 쌓아 두면 훗날 분명 유용할 것이다.
“혼, 네 말을 들어 보면 석화의 마안이 마안 중에서 최강 같은데. 맞아?”
“현시점에선 남동생의 마안이 최강이긴 하지만, 역사상 최강의 마안은 따로 있어요.”
석화의 마안만 해도 대상을 돌로 만드는 걸 넘어 지형지물을 굴절시킨다. 그런데 그보다 강한 마안이 있었다고? 솔직히 상상이 안 갔다.
“고리의 마안. 미래와 과거, 영원과 무한, 구조와 해석을 ‘딱 한 번’ 뒤틀 수 있는 전설적인 마안이라 전해져요.”
탄생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있던 것이 파괴되어야 새로운 것이 그 공백을 메꾼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건 무한한 순환의 구조를 띤다.
그리고 그 순환의 고리를 건드리지 않은 채 결과만을 바꾸는 힘, 그게 고리의 마안이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능력이었다.
모든 것을 돌로 굳힌다는 석화의 마안처럼 직관적이지 못한 탓일까. 설명만 들어선 왜 역사상 최강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히 충격적인 능력이었다.
쉽게 말해, 1+1=2라는 명제를 1+1=3으로 새롭게 정립하는 것도 가능하단 거였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섭리를 거스르는 역천의 마안. 설명하는 혼조차 그건 일개 마안이 아닌, 신안(神眼)에 가까운 것이라 부연했다.
과연 보유자는 누구였을까? 혼에게 묻자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개안자는 초대 드래곤 로드이신, 우로보로스 님이세요. 하지만 그분께선 그 힘을 700년 전에 한 인간에게 양도하신 뒤, 붕어하셨어요.”
“마안은 마족만 사용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원료가 마력이잖아.”
“방금 말씀드렸듯 ‘고리의 마안’은 성질이 조금 달라요. 신안에 버금가는 힘인 만큼 대가가 마력이 아닌, 자신의 목숨. 그러니 마력이 일절 없는 인간도 사용 자체엔 문제가 없죠. 물론 저희 드래곤 로드도 양도만 하셨을 뿐인데 붕어하셨으니, 그를 상회하는 인간이어야 하겠죠.”
“드래곤 로드보다 뛰어난 인간? 그런 인간이 있었어?”
“…네. 역사상 딱 한 명 있었어요. 우로보로스 님마저 경외를 표한 유일한 인간.”
내 질문 공세에 혼이 떨떠름한 기색이 되었다.
“그 누구나 아는 이름입니다. 마족 인류 할 거 없이요.”
그 누구나 아는 이름. 순간 등골이 차게 식었다.
혼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발로르 호아킨.”
“……!”
“우로보로스 님께서 왜 시조의 영웅에게 양도했는진 아직도 말들이 많아요. 역사상 다시 없을 귀물을 인간에게 줬으니 그럴 만하죠. 다만 위대하신 드래곤 로드께선 한 점의 후회도 없으셨다 합니다. 오히려 붕어하시던 당시 이 말을 남기셨다고 해요.”
기적의 가호 M에는 수많은 떡밥이 존재한다. 게임사의 의도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유저 사이에서 아름아름 퍼졌던 떡밥들.
가장 대표적인 걸 꼽아 보라면. 마왕의 실체, 그리고 발로르 호아킨의 능력. 이렇게 두 가지였다.
전자는 엔딩 즈음에 다다라선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반면 후자는? 영영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게임의 가장 거대한 맥거핀을 아는 유일무이한 유저가 된 듯하다.
‘시조의 영웅의 능력이 마안이었다고?’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혼이 초대 드래곤 로드의 별사를 내게 전했다. 경건한 목소리로.
“발로르 호아킨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멸망을 막고자 했대요. 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러기 위해선 꼭 고리의 마안이 필요했…….”
혼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독한 기운이 전방에서 뻗어 왔다.
스스스스스.
뭔가 미끄럽게 바닥을 쓰는 소리. 전원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