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8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85화(184/300)
185화 최강의 뱀 (3)
최설아의 귀가 쫑긋했다. 미끌거림과 부스럭이 성긴 듯한 소리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중간중간 색색거리는 갈라진 소리도 같이. 귓가에 닿는 두 정보만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뱀이 바닥을 훑는 소리였다.
자그마한 방울뱀 정도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잠시나마 품어 보는 희망일 뿐.
최설아의 얼굴에 경악이 차올랐다. ‘그것’이 꿈틀거릴 때마다 작은 지진이 일었다. 웬만한 크기가 아니면 땅이 흔들릴 리 없다.
그때 파르릇 코끝이 저렸다. 최설아는 퍼뜩 집게손가락으로 코를 집었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시선을 내렸다. 무릎까지 깔린 녹빛 안개가 뤼이비똥 구두의 가죽을 녹이고 있었다.
명품이 행주로 변하는 모습. 최설아의 표정이 아연하더니 곧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조금 전까지 머리를 물들였던 공포를 분노가 한순간에 밀어낸 것이다.
“이, 이… 뱀 새끼가!”
눈 뒤집힌 최설아가 리볼버를 꺼냈다. 검지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강검마가 손으로 그녀의 입을 감싸 틀어막았다.
“조용.”
“그, 그치만. 주군, 이거 사려고 제가 새벽바람 맞아 가며 웨이팅까지 했다고요! 한정판인 데다가 가격도 3천만 원 돈인데! 이게 완전 걸레가 됐는데 화가 안 나겠어요?!”
입막음에도 분한 기색으로 최설아가 발을 흔들어 보였다. 쥐가 파먹은 듯 숭숭 구멍이 난 구두. 그 안에서 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강검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혀를 차며 일축했다.
“네 목숨값이 3천만 원밖에 안 되면 튀어 나가든지.”
“…….”
“그리고 혼한테는 일주일에 백만 원 든다고 뭐라 하는 녀석이 구두엔 3천을 태워? 안 되겠다, 너 나가면 정신 교육 좀 다시 해야겠네.”
“주, 주군! 자비……!”
그 순간, 바닥을 유영하던 괴수가 이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갈색 구렁이였다. 몸집이 얼마나 큰지 머리가 천장에 닿았고, 둥글게 튼 똬리는 언덕을 방불케 했다.
딱 뱀과 마주친 쥐새끼 꼴이었다.
혀를 날름거리는 구렁이. 놈이 콧김을 뿜자 녹빛 연무가 길게 새어 나왔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깔이 뒤룩거리더니 세 사람을 훑었다. 최설아는 빼 들었던 리볼버를 슬며시 갈무리했다. 납탄으로 저 두꺼운 비늘을 두드려 봤자 생채기도 못 낼 게 분명했다.
다만 구렁이는 선뜻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인간을 관찰했다.
자신과 마주치고도 냅다 도망부터 치지 않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다만 놈이 작심하고 움직이면 거리는 금세 좁혀질 터였다.
최설아가 이를 딱딱 떨었다.
‘이, 이 타이밍에 도망쳐야 해.’
그녀는 눈동자를 도로록 옆으로 굴렀다. 새하얗게 질린 본인과 달리 주군께선 시큰둥한 기색이셨다. 언제나, 늘, 항상 그러하시듯.
벌벌 떠는 이쪽이 되레 민망해지는 심심한 반응이었다. 과연 저분은 언제 당황하실까?
‘그래도 언젠간 당황에 찬 주군의 표정을 봤으면…….’
변태 같은 가학성이 가슴 한편을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안 되지, 안 돼!’
최설아가 곧바로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날렸다.
빌런일 적 버릇을 못 고쳤다고 종종 혼나잖아. 이 속내를 들켰다간 독 냄새보다 무서운 향 냄새 확정이었다.
최설아는 퍼뜩 주군께 시선을 고정했다. 주군은 가늘어진 눈으로 적을 가늠하셨다. 눈썹에 반쯤 잠긴 동공은 권태에 찌들어 있었다.
이내 주군이 귀쟁이에게 말했다.
“쟤가 바실리스크는 아니지? 덩치만 크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 기껏해야 B+ 정도?”
주군께선 거대 구렁이를 고기 등급 매기듯 말씀하셨다. 움찔 놀랐던 귀쟁이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 보는 놈이긴 한데 아마 바실리스크의 수하일 거예요. 저 덩치에 독만 뿜는 걸 봤을 때, 접근을 막는 문지기에 불과할 겁니다. 다만 결코 호락호락한 녀석은 아니에요. 독기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짙어질 거고, 그땐 옷이 아니라 뼈까지 녹을 테니까요.”
“그럼 가까이 안 가고 저 구렁이를 죽이면 된다는 거지?”
강검마가 턱 주변을 긁적이며 대꾸했다. 그 심드렁한 말투에 혼이 황당한 기색이 됐다.
“이론상 그렇지만, 저렇게 큰 마수를 원거리에서 쓰러뜨릴 방법은……!”
“중간 보스에게 막히면 안 되지. 그리고 놈이 안 오면 오게 만들면 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검마가 발걸음을 떼었다. 그는 터벅터벅 구렁이를 향해 몇 걸음 다가가 [소통의 가호]를 발현, 그 입이 열렸다.
―비켜.
……?
쭉 찢긴 녹색 홍채가 좀 더 세로로 모였다. 뱀 눈깔이 신호등처럼 깜빡였다. 강검마가 다시 말했다.
―비키기 싫으면 뒈지시든지.
구렁이가 속을 긁는 도발에 반응했다. 녹빛 눈알이 빨갛게 돌변한 것. 광폭화였다.
“쌔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놈의 피어가 공동을 한가득 채웠다. 쩍 벌어진 아가리가 한 입 거리를 향해 돌진한 찰나, 강검마가 무라사메를 깔짝였다. 그 장면에 최설아가 달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서, 설마. 주군의 그것을 볼 수 있는 겁니까?!”
광폭화 오우거를 즉사시켰던, 주군의 비기.
“데쓰 사시미!”
심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칼날이 희게 번뜩였다.
서걱.
세로로 조여졌던 홍채가 탁 트임과 동시에 구렁이의 몸체가 지면을 강타했다.
콰과과광!
구렁이는 정전기 오른 것처럼 꿈틀거리며 비늘로 바닥을 쭉 닦았다. 휘말린 석상 탓에 부스러기가 사방팔방으로 튀겨 댔다. 혼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크읔. 갑자기 뭔 바람이…….”
혼은 팔을 들어 흩날리는 돌조각을 막았다. 돌먼지를 머금은 바람이 망막을 뒤덮어 눈이 아렸다. 그럼에도 안력에 힘을 줘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었다.
“히익!”
혼이 기겁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생기가 사라진 눈과 넋 나간 시선이 맞닿았다. 회백색으로 반투명해진 동공. 혼은 그 속에 담긴 저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구렁이는 아가리엔 Y자로 갈라진 혓바닥만 흘러 있었다. 피 한 방울 뿌려 보지 못하고 즉사한 것이다.
골이 띵했다. 왜? 어떻게? 의문 부호가 마구잡이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인지와 감각만으로 상황을 해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문득 보라돌이가 했던 말이 맴돌았다.
‘귀쟁이, 너 회칼로 마수를 심장 마비 시키는 사람 본 적 있어?’
끼기긱. 혼이 석화에 걸린 듯 빳빳한 고개를 앞을 향해 돌렸다. 빛을 풍겼던 칼날이 검집 안으로 사르르 들어갔다. 강검마가 작게 숨을 내뱉었다. 용암 지대임에도 뽀얀 입김이 피었다.
강검마가 뒤돌았다. 혼의 눈엔 패대기쳐진 구렁이보다 저 인간이 훨씬 커 보였다. 경이로운 존재감. 피부를 콕콕 쑤시는 살기도 한몫했다.
독 안개가 흐트러지는 가운데 그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
“밥도 먹어야 하니까.”
혼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시간 가까이를 계속 걸었다.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어차피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기도 했고. 그렇게 세 사람은 구렁이 바로 옆에서 불을 피웠다.
* * *
타닥, 타닥.
불티가 적당히 올랐다. 강검마는 준비해 온 한우 세 덩이를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췄다. 최설아 카드로 산 소고기였다.
그는 조미한 고기들을 나뭇가지에 꽂고 불 위에서 올렸다. 금세 기름이 자글거리며 고소한 냄새를 솔솔 흘렸다.
강행군을 예상했기에 한 끼는 던전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S급 마수를 상대하는 일정이지만, 그렇다고 끼니를 거를 수는 없는 노릇. 속이 든든해야 더 잘 싸울 테니까.
그간 별의별 놈들을 상대했다. 웬만한 강자론 자극도 안 될뿐더러, 지레 초조해할 필요가 없단 걸 깨달은 그였다.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더 도움이 됐다.
그러나 자신만 침착해선 안 될 일이었다. 파티원도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조력해야 했다.
바실리스크는 S급 마수다. 말만 들어도 까다롭기 그지없는 석화의 마안을 지녔다. 최설아는 모르겠지만, 드래곤인 혼이 함께해야 토벌을 장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돈 좀 써서 투플 한우를 사 왔다. 사기와 기력을 충전시킬 심산으로.
빤-히.
양옆에서 뚫어져라 한우를 응시하는 두 사람. 걱정은 기우인 듯하다. 특히 고기를 보는 혼의 눈은 진심이었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모습. 냄새조차 놓치려 하지 않았다.
팽팽했던 긴장감은 고기 기름과 같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독 안개를 대신해 훈연이 공동을 메울 무렵, 최설아가 눈치를 보고서 물었다.
“저……. 주군. 좀 뒤늦은 걱정이긴 한데, 이렇게 냄새 잔뜩 풍겼다가 마수들이 냄새라도 맡으면 어떡해요? 주군께선 다 생각이 있으신 거겠죠?”
강검마가 고기를 굴리며 대꾸했다.
“어. 그러니까 고기를 보든지 불안해하든지 하나만 해라. 옆에 있는 혼도 불안하게 시리.”
“아아, 옙. 죄송함다, 헤헤. 그건 그렇고 이거 한우 얼마인가요? 마블링이 꽃 같은 게 한두 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 덩이당 10만 원.”
“오! 돈 좀 쓰셨네요?! 크으, 역시 배포가 크신 게 주군다우십니다! 쵝오 쵝오!”
최설아가 엄지를 쌍으로 들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런 그녀를 강검마가 힐끗 곁눈으로 바라봤다.
‘얘, 아직 제 돈으로 산 건 줄 모르지?’
혼을 시켜 지갑을 슬쩍한 뒤 샀으니까. 강검마의 본관은 서리 강 씨였다.
아직 진실을 모르는 최설아는 멋쩍게 관자놀이를 긁고서 다시 장작불을 봤다.
잠시 후, 강검마가 먹음직 익은 한우를 한 덩이씩 배식했다.
“먹어라.”
포크와 나이프는 사치였다. 손으로 붙잡고 먹어야 했다. 그 점이 운치를 더해 입맛을 돋웠다.
“잘 먹겠습니다, 주군!”
“맛있게 먹겠습니다.”
혼과 최설아가 고기를 앙 물었다. 턱뼈가 찌릿한 느낌. 그녀들은 몇 초를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또르르. 두 사람의 뺨을 타고 감격의 눈물이 고기 표면에 떨어졌다. 이건 고기, 아니 감동을 재현한 맛이었다.
소금과 후추 외에 어떠한 조미료도 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충격적인 맛은 뭐란 말인가.
식욕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알맞은 짭짤함. 익은 정도도 완벽해 이빨이 아니라 잇몸만으로 씹힐 듯했다.
혼과 최설아는 약속했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녀들은 고기를 문 채로 주억였다.
‘미쳤다. 그치, 귀쟁아?’
‘제 드래곤 인생,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을지도 모르겠어요, 보라돌이 씨.’
눈빛으로 많은 대화가 오갔다. 이윽고 그녀들은 서로 질세라 와구와구 고기를 뜯었다. 최설아가 탱탱한 볼때기로 입을 우물거렸다.
“주군, 미쳤어요. 진심! 아니, 소금이랑 후추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이 맛이 나지? 고깃집 하실 생각 없으세요? 돈을 그냥 갈퀴로 쓸어 담을 것 같은데?! 와, 진짜 대박. 왜 집에선 이런 맛이 안 나지?”
“배고플 땐 흙 퍼먹어도 맛있다. 그리고 장작불이랑 가스 불이랑 같냐?”
말은 그리해도 강검마는 엷게 웃었다. 주변은 어두웠다. 그 한복판에서 사람과 불의 온기가 공기를 데웠다.
그러나 어둠 사이의 빛 한 줄기에는 날파리도 꼬이기 마련이다.
스스스. 스스스. 스스스.
그림자들이 곡선의 궤적을 그리며 어둠을 가른다. 정신없이 움직이던 턱이 정지했다. 웃음꽃이 멎었다.
최설아가 고개를 살짝 틀었다. 도도독. 닭살이 전신에 올랐다. 대충 봐도 몇백 마리는 넘는 뱀들이 전방위로 포위한 상황.
놈들은 구렁이만큼 크진 않았지만, 인간보단 두 배가량 컸다.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최설아의 입술이 파르르 달싹였다.
“주, 주, 주군!”
“호들갑 떨지 마.”
강검마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무심한 눈으로 슥 둘러보곤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구렁이의 사체를 향해서. 불안 한 점 없는 눈빛은 고요했다.
“뱀 새끼들이 한우 냄새는 알아서. 던전에 있는 애들 전부 집결했네.”
강검마는 고기를 씹고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을 바라 마지않았다.
이내 그 오른손이 구렁이의 비늘에 닿았다. 강검마가 무겁게 말했다. 안광이 검게 흘러나왔다.
“일어나라.”
탁했던 구렁이의 안구에 광채가 스쳤다. 그 태산만 한 덩치를 천천히 일으켰다. 강검마가 살점을 뜯으며 말했다.
“밥 먹는 데 방해된다. 전부 죽여.”
주인이 지시하기 무섭게 구렁이가 콧김을 푹푹 뿜었다. 독기를 머금은 바람이 대번 수백의 뱀들을 지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