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8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86화(185/300)
186화 최강의 뱀 (4)
쉬이이이이익.
가스처럼 살포된 독기가 뱀들을 집어삼켰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혼은 하마터면 한우를 놓칠 뻔했다.
‘…이, 이게 뭔?’
고기를 눈앞에 두고 한눈을 팔다니, 드래곤으로서 이보다 불경한 짓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걸 봤다면 비슷한 반응이지 않을까?
혼은 슬며시 고개를 치들었다. 즉사했던 구렁이 마수가 몸체를 꼿꼿이 세운 채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죽은 척? 아니었다. 느껴지는 마력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분명한 시체였다.
그리고 또 하나.
적이었던 구렁이는 왜 동족을 몰살시키고 있는가. 혼은 이 상황이 어느 하나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시선이 닿는 곳, 강검마가 구렁이 옆에 서 있다. 고기를 씹으며 태연한 얼굴로 현장을 관망했다. 그는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비명에도 낯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혼이 빠져나간 얼굴이 된 ‘혼’을 최설아가 툭툭 쳤다.
“주군이 쟤네 처리할 동안 얼른 먹어 둬. 아마 쟤네 전부 죽으면 바로 출발할 거 같으니까.”
“…강검마 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어떻게 이 상황에 차분할 수가 있죠? 놀라는 제가 이상한 드래곤인가요?”
“귀쟁이 이놈 보게. 방언 터지니까 말이 아주 술술 쏟아지네? 됐고, 고기 안 먹을 거면 나한테 넘겨.”
최설아가 탐욕스러운 손을 뻗었다. 혼은 그 마수로부터 냉큼 떨어지더니, 고기를 입에 욱여넣었다. 아! 와중에도 맛 하나는 기가 막혔다.
상등품의 한우이기 때문인가, 주방장의 솜씨 때문인가. 순간 정신이 혼미해질 것만 같다.
그렇게 혼의 눈빛이 몽롱해지나 싶더니 퍼뜩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질문을 빙자해서 고기를 빼앗으려는 그 술수! 그간 이런 맛 좋은 고기를 놔두고서 저한텐 매일 소시지를 먹였던 건가요?!”
최설아가 혀를 찼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제 한우를 마저 뜯었다.
“쳇.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반찬 투정은……. 이래서 옛말에 자식 키워 봤자 부질없다고 하는 건가.”
혼은 미약한 죄책감을 느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빵 쪼가리에도 감지덕지했었는데, 이 얼마나 배부른 소리인가. 그리고 이런저런 핀잔을 주긴 해도 보라돌이가 자신을 챙긴 건 사실이었다.
혼은 아랫입술을 짓씹더니 곧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제 질문이 먼저였으니 대답해 주세요. 저 힘은 무엇인지 그리고 왜 당신은 그렇게 침착한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주군은 본인이 죽이셨던 적을 한 번 살리실 수 있는 것 같더라고.”
“그, 그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그건 저희 드래곤 로드가 오셔도 불가능하다고요!”
“야, 귀쟁이. 너 아직도 우리 주군이 드래곤 로드랑 같은 선상 정도라고 생각하는 거야?”
“…….”
지극히 당연할 걸 묻냐는 식의 되받아침에 혼은 할 말을 잃었다. 최설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네 반응은 이해해. 나도 처음엔 그랬거든. 그래서 여쭤봤는데, 대답해 줄 마음이 없으신가 봐. 그럼 어떡해. 주군이 더 묻지 말라면 가만히 있어야지. 그러니까, 너나 나나 그냥 제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야, 주군 방해하지 말고.”
최설아가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손톱에도 그 황홀한 맛이 배어 있다.
주변에선 마수들이 쓸려 나가는데 태연히 손을 빨아 대는 모습. 그 철부지 같은 행동거지를 혼이 멀뚱히 지켜봤다.
최설아 그런 그녀를 보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내가 차분할 수 있는 이유? 그건 당연히…….”
최설아가 앞 방향을 턱짓하는 것으로 뒷말을 대신했다. 혼의 시선도 최설아를 따라 움직였다.
어느새 뼈까지 흐물흐물해진 마수들. 그 한복판에 정적인 표정으로 강검마가 서 있다.
“주군 곁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
최설아는 강검마의 등을 한참을 바라봤다. 무한한 신뢰가 서린 눈빛이었다.
“그러니까 차분한 거야. 뭐, 물론 주군께 자주 목숨을 위협받긴 하지만. 적어도 적한테 죽을 일은 없잖아. 귀쟁이, 너도 목숨이 위험하다! 싶으면 주군 뒤에 바싹 붙어라, 알겠냐?”
* * *
마수의 습격이 마무리됐다. 쭉 둘러보니 더 이상 튀어나올 적은 없어 보였기에 우리는 자리를 정리한 뒤, 걸음을 옮겼다.
사실 구렁이를 버스처럼 타고 이동할 생각이었다. 낭만도 있거니와 잡몹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10분이 딱 지남과 함께 구렁이는 다시 사체로 변했다.
아쉬웠다. 구렁이한테 내 나름대로 이름도 지어 줬는데.
이름하여, 또도가스. 독가스를 살포하는 게 ‘그 녀석’을 연상케 했다.
‘수고했다, 또도가스.’
자그마한 미련을 남기고서 나는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였다. 당연히 출발 전, 소재를 갈무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늘과 싱싱한 독니 몇 쌍을 배낭에 넣었다.
저벅, 저벅.
또도가스의 노고 덕에 이동 경로가 말끔히 청소되었다. 앞을 막는 장애물 하나 없이 탄탄대로. 이대로면 머지않아 최종 보스가 있는 장소에 도착할 터다.
‘일단 입장 전에 정비를 하고 가야겠네.’
장비야 각자 챙겼기에 문제없었다. 중요한 건 정신 무장이었다. 특히 한껏 해이해진 최설아가 못내 거슬렸다. 까딱하면 던전 속 장식품으로 변할 테니까.
해서, 나는 옆에서 걷는 최설아를 불렀다. 마수와 마주친 뒤의 역할과 행동 지침을 일러두기 위해서.
“너, 여기서 돌 장식이 되고 싶진 않지?”
최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색 머리가 산발이 될 만큼 맹렬하게.
“그럼 내 말 잘 들어. 던전에 입장한 다음 너는…….”
* * *
…그렇게 걷길 3시간, 마침내 입구로 보이는 대문에 다다랐다.
대문은 깨진 유리창처럼 금이 가 있었는데, 그 틈에서 용암이 들끓었다. 언뜻 붉은 뱀이 문을 휘감은 모양새.
“아.”
그제야 최설아는 실감했다. 이 너머에 S급 마수인 바실리스크가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겠지. 등골에 소름이 일었다.
막상 돌이켜보니 자신이 여기에 왜 왔지? 귀쟁이의 심란한 마음은 인정. 근데 자신이 동행해야 할 이유는? 몇 주간 보모 노릇을 했는데 이젠 도박판에 목숨까지 올려놨다.
호기롭게 주군 옆이 안전하다 말했지만, 실전에서 변수는 얼마든지 일어난다. 더군다나 주군이 막중한 임무를 맡기셨다.
부담감에 어깨가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스스로가 대견했다. 드디어 주군께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할 수 있다, 최설아. 할 수 있어!’
최설아는 제 양 뺨을 짝짝 때렸다. 그러고는 귀쟁이 쪽을 쳐다보았다.
혼은 대문을 빤히 주시하고 있었다. 용암의 주홍빛이 그 얼굴에 스몄으나 창백함을 전부 가릴 순 없었다.
귀쟁이는 애새끼 같으면서도 저리 가라앉은 눈이 되곤 했다. 그나마 고기를 먹을 때 눈이 반짝였다.
‘어린놈이 세상 다 산 표정을 짓기는…….’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인지 가슴 안쪽이 가려웠다. 상당히 낯설면서도 익숙한 오묘한 느낌이었다.
최설아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생각을 관뒀다.
그때 강검마가 그녀와 혼을 호출했다.
“입장하고 나면 바로 전투 시작이야. 혼, 너는 최대한 드래곤으로 돌아가는 건 자중해. 네 말 들어 보니까, 인간형을 탈피하면 역풍을 세게 맞는 것 같더라.”
“그래도…….”
“절대 하지 말라는 건 아니야. 위급 시엔 별수 있어? 드래곤 형이 돼서 싸워야지. 하지만 그건 마지막 수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아껴 둬.”
잠깐 고뇌하던 혼이 표정을 굳혔다.
“네. 알겠습니다.”
“가족인 만큼 바실리스크는 너한테 신경을 기울일 거야. 최설아나 나는 웬 인간이냐면서 안중에도 없을 확률이 높지. 우리는 그 타이밍을 파고들 거고. 최설아, 너는 아까 부탁한 대로만 움직여.”
“옙!”
최설아는 괜히 대답에 힘을 주었다. 웬일로 주군이 옅게 웃어 주셨다. 그녀의 광대가 승천했다.
사전 브리핑을 마치고 강검마가 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입장을 차단하는 것처럼 굳게 닫힌 문. 강검마가 조소를 지으며 마스터키를 꺼냈다.
스 \ 겅
강검마의 어깨가 희뿌예지더니 빛살처럼 사선이 그어졌다. 대문이 허물어진 건 한 박자 늦은 순간이었다.
쿠구궁!
노면이 들썩이는 묵중한 진동, 불똥이 뒤섞인 톳 밥이 정신 사납게 휘날렸다.
강검마가 서부 총잡이처럼 사시미를 빙글빙글 손바닥 위에서 굴렸다.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던 칼날이 검집으로 쏙 들어갔다. 동시에 흩뿌린 빛을 회수했다.
“…….”
혼은 더는 놀라지 않았다. 저 회칼로 거대 구렁이를 심장마비로 즉사시켰고, 그렇게 죽인 마수를 살려 냈다.
문을 횡으로 양단 내지 못할 건 또 뭐람. 하도 충격이 계속되다 보니 되레 무감각해진 혼이었다. 후두부가 살짝 얼얼하긴 했다.
한데 이건 머리가 현장을 이해하는 과정일 것이다. 어쩌면 어디서부터 놀라야 할지 머리가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일 수도.
그래도 이 미약한 두통 덕분에 불안함이 씻겼다.
“어우, 씨바. 먼지는.”
강검마가 손을 휘휘 저어 먼지를 날렸다. 그제야 내부가 시야에 맺히기 시작한다.
일단 그는 천장부터 확인했다. 고드름 암석이 옹기종기 매달려 있었다.
‘다행이다.’
강검마는 짧게 안도했다. 여기서 막히면 세웠던 계획은 전부 허사였으니까.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본격적인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강검마는 눈을 부릅뜨고서 정면을 쳐다봤다. 칠흑에 잠긴 공간은 일대의 빛을 빨아먹고 있었다.
그 순간, 어둠이 깔린 장막에서 흉흉한 눈빛이 번뜩였다. 뱀 눈이 붉은 구슬처럼 번들거린 것.
안광 외의 형체는 암흑에 녹아 있었다. 그러나 검붉은 기백만으로 저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부정한 뱀, 바실리스크.
놈은 석류알 같은 눈깔을 뒤룩거리며 이쪽을 훑고 있었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접근해 온다.
새삼 강검마는 저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뱀굴에 쥐가 제 발로 찾아왔다고 여기는 것 같았기에.
‘아직 놈은 혼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군.’
‘석화의 마안’의 사정거리는 200미터. 그리고 그 간격 차가 저 녀석을 토벌할 열쇠였다.
터벅. 강검마가 먼저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를 이어 혼과 최설아가 차례차례 뒤를 따랐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조급하지 않고 신중하게……는 지랄.
“최설아!”
“옛 썰!”
강검마의 쩌렁쩌렁 외침에 최설아가 잽싸게 리볼버를 뽑았다. 천장을 겨눈 총구가 불을 뿜었다.
타당!
가볍게 터져 나오는 총성이 천장을 두드렸다. 납탄이 고드름의 뿌리 부분을 연필심 깎듯 갉아먹었다. 대롱대롱 매달린 암석이 이내 지면으로 낙하한다.
방아쇠를 당기며 최설아는 아까 전, 주군이 했던 지시를 떠올렸다.
‘어쩌면 이번 토벌 전에서 네 역할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제가 해야 할 게……?’
주군은 검지를 올려 천장을 가리켰다.
‘위에 종유석들 보이지. 총으로 쏴서 떨어뜨려 줘. 그럼 혼이 마법으로 그것들을 잠시나마 허공에 고정해 줄 테니까.’
주군이 우직한 눈으로 다음을 이었다.
‘어차피 눈 감고선 바실리스크한테 접근 못 해. 그럴 바엔 이쪽에서 놈한테 안대를 씌우고 다가가야지.’
‘설마!’
‘맞아. 이 동굴의 고드름들이 석화의 마안으로부터 나를 가려 주는 안대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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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을 뚫고 암석 비가 우르르 쏟아졌다.
뾰족한 고드름 끝이 지면에 닿기 직전, 혼이 주먹을 쥐었다 피듯 마력을 흩뿌렸다.
우우우우웅.
드넓게 펼쳐진 역장이 소나기를 공중에 고정했다. 다만 그 지속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혼이 홱 옆을 돌아봤다. 그녀가 핏대 오른 목청으로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강검마가 지면을 박차 도약했다. 그 폭발적인 속도는 총알을 웃돌았다. 벼락처럼 튀어 나간 그는 고드름 사이사이로 판석을 밟았다.
티리링.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최설아는 총알을 채워 넣고 기민하게 종유석을 조준했다.
주군이 놈에게 접근할 동안 가림막이 되어 줄 테니. 성심을 다해 갈긴다.
“뒤는 저희한테 맡기시고 전진만 하세요, 주군!”
타당. 타당. 타다당!
다시금 몰아치는 총성을 느끼며 강검마는 손목을 까딱여 칼집을 벗겼다.
[검신(劍神)의 가호가 발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