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87)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87화(186/300)
187화 최강의 뱀 (5)
타앙!
총구가 번쩍이며 어둠을 밝혔다가 점멸했다. 사진처럼 정적인 장면들이 연속. 공포 영화의 촬영 기법처럼 박진감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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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과 인화의 과정이 반복되는 가운데 강검마는 과감하게 질주했다. 저 멀리 한 쌍의 붉은 점을 향해서.
다만 폭발적인 속도에 비해 거리가 쉽사리 좁혀지진 않았다. 둥실둥실 떠 있는 종유석에 몸을 숨기면서 다가가야 하기 때문이다.
강검마는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생각했다. 슬슬 ‘석화의 마안’의 발동 범위로 들어선다. 놈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그리고 엄폐물에 은닉하면서 접근해야 했다.
한순간의 실수는 치명상을 초래한다. 자칫 눈이라도 마주쳤다간 뻣뻣하게 몸이 굳어 버릴 테니까.
지금부턴 스피드보단 순발력이 우선시된다.
‘지형지물부터 해서 신경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야.’
그럼에도 머리가 발 빠르게 움직여 준 덕에 발이 고민 없이 다음을 밟았다. 아슬아슬함 속에서 냉정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정신의 격’ 덕분이었다.
‘앞으로 100M 남짓.’
아직 바실리스크의 형상을 제대로 포착하진 못했다. 덩치가 컸다면 금방 드러났을 터인데, 그렇진 않은 모양. 실루엣으로 짐작하건대 대충 사람 크기의 몸집이었다.
그래, 차라리 그편이 낫다. 덩치가 또도가스처럼 컸다면 썰기 번거로울 테니.
강검마는 좀 더 잽싸게 발을 놀렸다. 직선과 곡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움직임.
혼의 눈이 경악으로 동그랗게 커졌다.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시간이 강검마에게만 다르게 적용되는 듯했다. 그가 다음 엄폐물로 이동할 때마다 칼날이 짧게 번뜩였다.
접근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에 굳이 그런 사소한 행동을 섞었다. 처음엔 왜 저러나 싶었다. 하지만 그가 바실리스크와 가까워질수록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공기 중에 흐르는 마력을 베며 다가가는 것이었다. 석화의 마안의 효과가 그녀들이 있는 곳까지 다다르지 못하게끔. 본인의 목숨이 촌각을 다툼에도 그는 파티원을 염두에 두고 움직인 것이다.
인간이 마력을 볼 수 있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마력을 실 끊듯 자른다고? 보고도 믿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가 선사했던 파격 중 가장 놀라운 기예였다.
강검마가 그저 강한 인간이었다면 감탄만 했을 터다. 그러나 그의 모든 행동은 근거와 배려를 동반했다.
‘당신은…….’
혼이 입술을 달싹이자 최설아가 버럭 고함쳤다.
“야, 귀쟁이! 한눈팔지 마!”
“…아!”
혼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마력을 한껏 끌어올려 더더욱 넓게 퍼뜨렸다. 명사수에 빙의한 최설아가 총질로 적재적소에 암석을 떨어뜨렸다.
형광 알갱이들이 탱탱볼처럼 튀기며 고드름에 스며들었다. 마력으로 종유석을 허공에 접착시킨 것.
그녀들은 최적의 루트를 설계했다. 강검마는 그녀들의 도움에 힘입어 이윽고 바실리스크와 스무 걸음까지 거리를 좁혔다.
화약 냄새와 총연이 계속해서 피어올랐다. 최설아의 손이 허리춤으로 내려갔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바실리스크와 주군, 둘의 간극은 텅 빈 공터다. 따라서 저곳에 추가로 고드름을 심어야 한다. 그래야 마안이 발동되기 직전에 주군이 몸을 숨길 수 있다. 바실리스크의 시야를 가릴 장애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긴박할 때 터지는 법…….
‘어?’
최설아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렸다. 어느새 휑해진 총알 주머니. 손에 잡히는 손가락만 한 납덩이의 수가 열 개가 채 안 됐다. 덩그러니 9발만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아.”
순간 벙찐 최설아는 탄식을 터뜨렸다.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좆됐다.
돌연 총성이 멎자 강검마는 일단 암석 뒤에 등을 기댔다. 그때 등 뒤에서 바실리스크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바위의 냉기가 등을 훑었다. 등골이 저릿저릿했다.
‘미치겠군.’
보이지 않음에도 강검마는 느낄 수 있었다. 마안을 발동시키면서 다가오고 있음을.
놈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바실리스크를 여기로 끌어들여도 문제였다. 혼이 엄폐물을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 버텨 봐야 1분 정도.’
독 안에 든 쥐처럼 고립됐다. 눈을 감고 기감에만 의존해서 싸우기엔 바실리스크의 저력을 모르는 상황. 후퇴하기엔 너무 멀리 오기도 했고, [무통의 가호]의 지속 시간도 생각해야 한다.
‘놈과 대적하기 위해선 더 많은 엄폐물이 있어야 한다.’
어차피 타개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강검마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혼과 최설아를 믿고 기다린다.’
그리 결심하면서 그는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 숨 막히는 침묵이 유독 길게 이어졌다.
“보라돌이 씨! 강검마 님이 바실리스크랑 격돌 직전이에요! 서둘러요!”
이번엔 혼이 최설아를 불렀다. 최설아는 횡설수설 말을 더듬었다.
“초, 초초, 총알이 아홉 발밖에 없어.”
“예?! 넉넉하게 챙겨 왔다면서요! 오기 전에 얼마나 챙겨왔는데요?!”
“그게…….”
혼이 황당한 표정으로 따졌다. 최설아는 우물쭈물하더니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100개.”
“아니, 분명 강검마 님이 여유분까지 챙겨 오라고 말하셨는데, 그것밖에? 그 쇠붙이, 납덩이 없으면 그냥 고철이잖아요! 더 챙겨 왔어야죠!”
최설아가 발끈했다. 그녀는 세상 억울했다.
“얌마, 귀쟁이! 너 이거 한 발당 얼마인 줄 알고 하는 소리야? 총기 규제 때문에 총알이 100만 원이야! 여기 온다고 1억을 태웠다고! 안 그래도 너 때문에 살림 빠듯한데!”
혼은 금전 감각이 부족했다. 1억? 그게 큰돈인가? 답답함에 최설아는 총알을 하나 들어 보였다.
“이거 하나당 아까 우리가 먹은 한우가 열 덩이. 1억이면 천 덩이. 이제 좀 이해했니?”
맞춤식 교육의 효과는 굉장했다. 저 납덩이의 가치가 혼의 머리에 팍 꽂혔다. 이른바 한우 환산법.
“그딴 쇳조각 하나가 그 환상의 고기를 10개나 대신할 수 있다고요? 왜죠? 인간들은 머리가 어디 맛이 간 건가요!?”
“휴, 드래곤은 모르는 인간의 사정이라는 게 있다. 너한테 총기 규제법이 어쩌고 말해 봤자 머리 아프고. 아씨, 이렇게 투덕거릴 시간 없는데…….”
최설아는 발만 동동 굴렸다. 아홉 발의 총알로는 암석 세 개가 한계였다. 반면 엄폐물은 못 해도 열 개 이상이 필요해 보였다.
최설아가 손톱을 물어뜯었다. 동공이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벤테타가 전멸했던 그 날밤이 뇌리에 스쳤다. 그러자 불현듯이 떠오르는 단어.
‘마탄.’
일반적인 탄알로 돌을 떨구기란 그 어떤 명사수라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러 번 종유석의 뿌리를 깎아 내듯 쐈다.
한데 마탄이라면? 한 발당 하나씩. 아니, 세 내 개를 동시에 낙석시킬 수 있다. 마법이 어린 탄환의 파괴력은 대포에 버금간다.
‘하지만…….’
최설아는 낙담했다. 그녀는 더 이상 마법을 쓸 수 없는 몸이었다. 인간이 마력을 다루기 위해선 강인한 마족을 숙주로 삼아야…….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번쩍 뜨인 망막에 길쭉한 귀 한 쌍이 맺혔다. 마족 생태계 피라미드의 최정상, 마족계의 이단아, 군단장들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하나뿐인 종족. 온갖 수식어가 머릿속에 나열됐다.
최설아가 헐레벌떡 소리를 질렀다.
“귀쟁이! 지금 당장 나랑 계약해!”
“예? 갑자기요?”
뜬금없는 뚱딴지같은 소리에 혼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설명할 시간 없어. 드래곤이면 계약하는 법 정돈 알 거 아니야!”
주군과 바실리스크의 충돌이 곧이었다. 위기가 임박한 상황이니만큼 설명은 재꼈다.
“계약하는 법 정돈 알죠……. 다만 아실진 몰라도 계약엔 무조건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계약자인 마족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대가를.”
“다 알고 있어. 그런 자잘한 설명은 치우고 얼른!”
소싯적 빌런이었던 최설아다. 계약에 관해선 그녀도 해박했다.
“빨랑 손잡아 봐. 후딱 계약하고 주군 도와야 하니까.”
잠시 주저하던 혼이 그 손을 맞잡았다. 푸르스름한 빛줄기가 맞잡은 두 손에 넝쿨처럼 뒤엉겼다.
최설아의 팔뚝에 미약한 통증이 일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 최설아는 귀쟁… 아니, 혼테일 님과 계약을 맺고자 하오니. 힘을 빌리는 대가로 저의 집 1년 숙박권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화르륵…….
넝쿨 빛에서 불티가 튀는가 싶더니 폭삭 바스러졌다. 대가가 턱도 없다는 응답이었다.
“어, 이게 왜 되려다 말지?”
상응 여부는 계약의 갑인 귀쟁이도 모른다. 을인 쪽이 지속해서 제안하고 그 교차점을 찾아야 했다.
“…1년 숙박권으로 부족하다니. 욕심 많은 얍삽한 귀쟁이 같으니라고. 나한테 뭘 더 원하는 거야! 뭐, 인간성이라도 다시 팔라고?”
“당신 인간성 필요 없거든요?! 지금 보니까 인간성도 별로 안 남은 것 같은데. 여하튼, 다른 대가를 말해 봐요.”
“아이, 씨…….”
최설아가 심란한 기색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그녀는 입술이 떨어지기도 전에 눈부터 질끈 감았다.
“…1년 숙박권. 또한! 하루 한 끼마다 투쁠 한우를 대령할 것을 맹세합니다!”
화르륵!
푸른 빛이 작열하더니 이윽고 입자가 되어 화한다.
계약이 성사됐다.
* * *
‘어쩔 수 없군.’
한 시간 같은 30초가 흐른 뒤에 든 생각이다. 등을 기대고 있는 종유석은 이제 곧 바스라 진다. 차라리 그 전에 튀어 나가 선수를 친다.
눈을 감고 싸워야겠지만 감수해야 했다. 나는 멀찌감치 있는 혼과 최설아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악수하듯 서로 손을 꼭 잡는 모습.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여기 와서 화해라도 하는 건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진작에 사이좋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시답잖은 상념을 마치면서 사시를 역수로 고쳐 잡았다.
눈을 감았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마력이 바늘처럼 피부를 찌른다. 그 방대한 양은 체감상 쓰나미와 같았다.
석화의 마안에만 신경을 기울일 게 아니었다. 그냥 놈 자체가 뿜는 마력 자체가 괴랄했다.
저벅.
저벅? 하마터면 감았던 눈이 뜨일 뻔했다. 바실리스크는 뱀이다. 왜 걷는 소리가 저벅이지? 지금껏 뱀 마수들은 미끌미끌한 소리를 냈었다. 그런데 이건 영락없는 이족보행의 발걸음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그때 차가운 기운이 관자놀이로 날아드는 게 느껴졌다. 검을 다루기에 알 수 있다. 이 기습은 날붙이의 기운이었다.
허리가 직각이 될 정도로 자세를 낮췄다. 날카로운 궤적이 등 위로 지나가면서 엄폐물을 반으로 갈랐다.
쉬잇!
일검으로 끝이 아니었다. 낮은 궤도에서 검날이 다시 날아왔다.
발목에 힘을 실어 노면을 옆으로 밀듯이 박찼다. 그 관성은 공중제비로 이어졌다. 몸이 전기 통닭구이처럼 나선을 그리며 돌았다.
서―걱!
지면과 수평이 된 내 상·하단에서 검날이 지나간 건 동시였다. 서늘한 느낌이 위아래로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씨발.”
잠깐 생긴 빈틈을 뚫고 재빨리 다른 엄폐물로 이동했다. 검날도 득달같이 나를 추적했다. 나는 몸을 틀거나 사시미를 휘저어 공격을 빗겼다.
‘뱀이 검을 써?’
혼한테 그딴 말은 듣지 못했다. 애당초 뱀 새끼한텐 손이 없다. 상상력을 발휘해 봐도 입에 물고 휘두르는 게 고작일 텐데. 쌍검은 웬 말인가?
와중에 악재가 겹쳤다. 여기저기서 암석이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숨바꼭질의 종식을 알리는 소리였다. 몸을 숨길 바위를 한순간에 잃은 것이다.
‘이젠 정말 눈을 뜨면 안 돼.’
나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완파된 바위를 징검다리처럼 훌쩍훌쩍 넘어 다니며 공격을 피했다. 바실리스크는 쌍검으로 내가 밟았던 암석들을 다지듯 으깼다.
쾅! 쾅! 쾅!
맞붙으려 해도 석화의 마안 탓에 눈을 감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가 이렇게 마냥 도망만 다닐 수도 없었다.
두 선택지가 팽팽하게 부딪쳤다. 이 판단이 전세를 결정할 테니까.
‘정했다.’
도망은 체질이 아니었다. 맹인 검사로 놈을 회 친다. 위험 부담을 떠안더라도 회피의 관성을 여기서 끊어야 했다. 그때였다.
투웅!
둔탁한 폭음이 일대를 흔들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 연거푸 울려 퍼지는 거대한 총성. 나는 힐끗 소리의 근원지를 봤다.
최설아의 팔이 크게 들썩였다. 총알이 포탄처럼 천장을 향해 날아갔다. 반동이 어찌나 억센지 당길 때마다 리볼버가 그녀 머리 뒤로 넘어갔다.
두두두두두두.
천둥소리처럼 쩌렁쩌렁한 연발탄에 이내 고드름이 우박처럼 곤두박질쳤다. 공간을 한가득 메운 낙석을 혼이 마력을 방사해 공중에 묶었다.
“주군!”
“검마 님!”
최설아와 혼이 함께 소리쳤다. 끈끈한 유대를 증명하듯 두 사람 사이에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내가 날뛸 수 있게 그녀들이 만들어 준 필드. 영문은 몰라도 두 사람한테 속으로 감사를 전하며.
휘릭.
곧장 몸을 시계 방향으로 틀었다. 밀집된 바위 틈에 보이는 뱀의 꼬리를 향해 사시미 열 개를 투척했다.
압정처럼 사시미가 꼬리를 고정했다. 도마뱀이 아닌 이상 꼬리를 탈부착하진 못할 터. 이제 궁지에 내몰린 건 뱀이었다.
“딱 대.”
두 팔을 교차해 휘둘렀다. 오러가 서린 X자 검기가 바실리스크에게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