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8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88화(187/300)
188화 최강의 뱀 (6)
…그렇게 한참을 멈추지 않고 몰아치는 검격. 꼬리가 고정된 채 바실리스크는 맹렬한 공세를 받아 냈다. 강검마는 계속해서 위치를 바꿔 가며 칼을 휘둘렀다.
바실리스크의 움직임을 봉쇄한 것만으론 부족하다. 파상 공세의 목적은 녀석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니까.
자욱한 돌먼지 사이에서 붉은 점이 번뜩인다. 강검마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머릿속에서 위험하다는 경각이 울렸기 때문이다.
일대에 이변이 생긴 건 그와 동시였다. 흉흉한 광채가 전방위로 넓게 퍼져나갔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한기가 일순 주변을 집어삼켰다.
지이잉.
놈을 향해 날아가던 검기가 허공에서 석화되더니 곧 우수수 떨어졌다. 돌 깨지는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났다. 피해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났지만 한 끗 차이였다.
‘아니, 오러를 돌로 굳혀 버린다고?’
석화의 대상이 물리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혼에게 언질은 들었었다. 하지만 오러는 ‘기운’이다. 그런데 그걸 돌로 만든다니, 마안의 악랄함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강검마는 혀를 찼다.
‘멀리서 짤짤이 날려서 죽이는 건 무리다, 이건가.’
확실히 녀석을 절멸시키려면 직접 칼을 휘둘러야 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놈에게 돌진할 순 없는 노릇.
지금 막 마안의 성능을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자칫 놈과 찰나의 눈 맞춤이라도 했다간 돌 파편으로 전락할 터다. 하물며 놈은 쌍검을 다룬다. 석화의 마안과 날붙이의 조합은 사악하리만치 위협적이었다.
“애초에 뱀 새끼가 검을 어떻게 다루는 거야. 뭐, 그간 뱀에서 도마뱀으로 진화라도 했냐?”
강검마는 턱 끝에 모인 땀방울을 소매로 닦았다. 그리고 가늘게 눈을 뜨고 바실리스크를 주시했다. 그의 눈동자가 이글거리듯이 흔들렸다.
‘상성도 상성이지만, 이 미친 듯한 용암이 움직임을 계속 막는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강검마는 급하게 땀을 훔치고서 곧바로 몸을 날렸다. 기세가 넘어가면 정말 걷잡을 수 없었기에.
“주군…….”
그런 강검마를 지켜보는 최설아의 얼굴에 수심이 차올랐다. 주군은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긴장한 탓도 있겠거니와 무엇보다 용암 지대라 몹시 덥기 때문이리라. 멀리 있는 자신만 해도 머리가 달궈진 것처럼 어지러웠으니.
이런 후끈한 환경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주군은 오죽할까.
무릇 전투란 실력 여부로만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다. 환경, 운, 상성 같은 복합적인 요소들도 못지않게 중요했다. 그런데 이중에서 환경과 상성이 너무도 가혹했다.
빠드득.
그녀는 어금니를 사납게 갈았다. 연신 방아쇠를 당겨 대던 손가락도 멈추었다. 어차피 엄폐물은 이미 충분했다. 이 이상으로 천장에 마탄을 갈겨 봤자 크게 효과적이진 않을 것이었다. 그녀는 급히 잔탄을 확인했다.
‘남은 총알 개수가.’
3발. 어느새 100개를 거의 다 쓴 상황. 최설아는 납탄을 호두처럼 손바닥에서 조물거렸다. 그녀는 내적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마탄을 사용해서 사격한다면?’
바실리스크의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다. 더불어서 근접해서 쏘는 만큼 파괴력도 크게 오른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위험 부담이 컸다. 초월자 간의 싸움에 끼어들어 봤자 자신은 방해만 될 뿐.
‘놈의 사정거리 안에 들면 바로 즉사야.’
저곳은 죽음과 밀접한 현장이었다. 여기까지 아득바득 버티며 생존해 왔다. 빌런들도 삶에 대한 집착은 그녀 앞에서 한 수 접을 정도였다.
한데 이 선택은 제 발로 무덤으로 기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주군을 향한 충의? 관계의 시작부터 칼침을 맞았던 사이다. 더구나 ‘종마의 증표’까지 강탈당했다. 그녀로선 강검마에게 흉수를 드러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지만.’
최설아는 납탄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꽉 움켜쥐었다. 결심을 굳힌 눈으로 혼을 쳐다보았다. 사력을 다해 역장을 펼치고 있는 그녀의 모습. 최설아가 옅게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
“야, 혼.”
혼은 처음에 반응하지 못했다. 최설아가 한 번 더 말했다.
“혼, 귀는 그렇게 길쭉하면서 귀먹었어? 왜 사람 말을 씹어, 이 드래곤아!”
“…예?”
그제야 혼이 최설아를 돌아봤다. 두 눈은 경악으로 커져 있었다. 혼은 입술을 달싹였다.
“마, 마력에 저며져서 머리가 맛이 간 건가요? 그 안하무인이었던 보라돌이 씨가 제 이름을 부를 리가 없는데…….”
“얌마! 지금껏 나를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최설아는 역정을 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보랏빛 안광이 새 나왔다.
짐짓 달라진 분위기에 마른침이 혼의 목구멍을 꼴딱 넘어갔다. 최설아가 낮게 입을 열었다.
“내가 봤을 땐 여기서 총이랑 마법을 깔짝여 봤자야. 기껏해야 엄폐물 만드는 건데…….”
최설아는 저 앞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바실리스크가 쌍검을 휘둘러 주변 종유석을 잘게 쪼개고 있었다.
“보니까 네 남동생, 우리 예상과 달리 검을 쓰잖아. 근데 뱀이 검을 어떻게 쓰는 거야……? 여튼, 그럼 우리도 예상 밖의 행동을 해야지.”
“…….”
혼도 강검마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강검마가 바실리스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공방의 균형이 조금씩 비등비등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실리스크가 어떻게 검을 휘두르는지 혼 역시 의아했다. 돌먼지에 휩싸여 신형이 보이진 않았지만, 왠지 두 발로 서 있는 것만 같은…….
드래곤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인간의 모습에 의태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로 인해 등골에만 일었던 소름이 전신으로 퍼졌다.
‘그럴 리가 없잖아.’
설마 바실리스크는 정말로 인육을 먹음으로써 드래곤이 된 건가? 일족 전체가 불가능하다 여겼지만 만사형통 불변의 진리란 없으니까.
극히 드물게 도저히 믿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700년 전, 인류의 승리와 같은.
그러니 만에 하나를 위해서라도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찰나의 고민을 마친 혼은 최설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의견에 찬성해요. 다만, 마안의 사정 범위 안에 들 시, 저희 둘의 목숨은 그냥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어…….”
최설아는 말꼬리를 흐렸다. 막상 두 귀로 들으니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곧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응. 어차피 여기서 도망쳐 봐야 주군한테 죽을 테니까. 칼 맞을 바엔 돌 되는 게 낫지.”
최설아가 콧잔등을 문질렀다. 검지에 식은땀이 한 움큼 배었다.
“아까는 반대로 말했잖… 됐습니다.”
태연한 척하는 그녀를 보며 혼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선 것은.
‘오랜만이군, 누이여.’
“……!”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듯 맴도는 목소리. 혼은 반사적으로 전방으로 시선을 던졌다. 희뿌연 먼지 구렁이에서 루비처럼 번들거리는 빛 한 쌍. 석화의 마안이었다.
범위 밖임에도 혼은 몸이 졸아붙는 걸 느꼈다. 수세에 내몰리고 있음에도 남동생의 안광은 살기등등했다. 흡사 기습의 때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이었다.
‘나를 방해하지 마라, 누이여.’
“크윽.”
혼은 치미는 두통에 비틀거리며 관자놀이를 감쌌다. 사념 어린 음성뿐임에도 정신이 혼미했다.
바실리스크가 다음을 이었다.
‘내 손으로 혈육을 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그저 같이 온 인간 두 마리를 놓고 간다면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 주마. 이 두 놈의 육골을 먹는다면 나는 오랜 염원을 이룰 수 있어.’
거만하기 짝이 없는 말투였다. 혼이 마음의 소리로 사납게 일갈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바실? 모든 이무기에겐 드래곤이 될 기회가 부여돼. 그걸 거부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너라고.
‘하, 웃기는군. 혼테일, 너는 단순히 내가 드래곤이 되고자 이러는 줄 아나 보군. 그깟 하찮은 종 따윈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 상위의 경지.’
-뭐……?
‘나는 알두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혼은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흑룡(黑龍) 알두인. 이명이 무색하게 그것은 용이 아니었다.
혼이 황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최강의 뱀.”
드래곤들도 입에 담기를 꺼리는 부정한 존재. 하나 그 강함은 초대 드래곤 로드와 감히 비견된다지.
‘나는 애당초 드래곤이 될 생각은 일말조차 없었다. 마족 중 최고 서열이면서도 그저 관망만 하며, 시간만 축내는 게 뭐가 좋다고 되겠나? 그리고 혼테일, 너라면 느꼈겠지. 단순히 내 말을 받아 내는 것만으로도 무려 드래곤인 네가 비틀거릴 정도니까. 이 모든 게 인간의 영체를 포식함으로써 거머쥔 성과다.’
바실리스크가 탁하게 웃었다. 바람이 부자연스럽게 불었다. 그에 사시미를 흩뿌리던 강검마도 살짝 허리를 뒤로 뺐다.
스산한 기운은 응축되더니 확 퍼지면서 먼지 구렁이를 일거에 밀어냈다.
콰과광!
눈 깜짝할 사이에 돌풍이 절반이 넘는 종유석을 완파했다.
그다음 순간, 이윽고 바실리스크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강검마가 가장 먼저 당혹했다. 그는 눈을 몇 차례나 끔뻑거렸다.
“저거 뱀 맞아?”
전신을 뒤덮은 검은 비늘, 쭉 흘러나온 혓바닥과 가시가 돋아난 꼬리. 탈피 중인 듯 몸 군데군데 허물이 벗긴 흔적이 보였다.
놈은 두 다리로 기립한 채 손에 흑도 두 자루를 쥐고 있었다. 뱀의 특징은 전부 갖췄지만, 생김새는 한없이 인간과 가까웠다.
“…씨발.”
최설아가 아연한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불탔던 전의가 바람 앞 촛불처럼 연소했다. 보는 것만으로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징그러운 외형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기세가 포악스러웠다. 접근만 해도 뼈가 빨릴 것 같다. 최설아는 무의식적으로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때 옆에서 또 다른 거대한 기운이 일렁였다.
“귀, 귀쟁이?”
최설아의 부름에도 혼은 고개를 떨군 채였다. 혼이 입술을 꽉 짓씹었다. 그늘이 얼굴에 짙게 드리웠다.
‘바실리스크.’
혼은 옛적 남동생과의 기억을 떠올렸다. 성미가 좋은 아이라곤 말 못 해도 이 정돈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그는 제 강함에 취해 생명을 경시했고, 그게 타락의 시작점이었다.
일족의 장로들은 남동생을 부정한 뱀으로 낙인찍어 처단을 단행코자 했다. 악의 씨앗은 일찍부터 뽑아내야 한다면서.
우연히 그 사실을 엿들은 혼은 바실리스크를 마경으로 쫓아냈다. 척박한 환경일지언정 죽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
그러나 그녀의 의도와 달리 남동생은 인계에 흘러들어 마수가 되었다.
‘이 모든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때 자신의 사사로운 정이 아닌 일족의 뜻을 따랐다면. 무고한 희생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책임을 져야 해.’
더욱이 남동생은 알두인이 되고자 한다. 그 하나로 충분하다. 더는 앞뒤 잴 것 없었다.
“내가…….”
혼이 눈을 치들어 바실리스크를 응시했다. 그늘이 갠 눈가에 누런 안광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선포하듯 말했다.
“…너를 기필코 막을 거야.”
검은 안개가 혼을 중심으로 뭉쳐 들더니 거대한 형상으로 빚어졌다. 어깻죽지에 돋아난 날개, 길쭉하게 치솟은 뿔, 그리고…….
크아아아아아아앙!
장내가 들썩이는 포효성. 간신히 균형을 잡은 최설아가 머리를 젖혀 올려다보았다. 동그랗게 벌어진 입에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드래곤.”
혼테인이 최설아에게 말했다. 그녀가 평소와는 다른, 납덩이처럼 무거운 어조로.
“가자, 계약자여. 내가 네 날개가 되겠다.”
벙쪄 있던 최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등에 올라탐과 동시에 몸이 붕 떴다.
최설아는 자세를 낮춰 어떻게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빼꼼 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드래곤은 순식간에 지면에서 멀어져 천장과 가까이 비행했다.
공중은 뱀이 넘볼 수 없는 드래곤의 영역이다. 한낱 뱀인 바실리스크는 이 높이까지는 흉수를 뻗지 못한다.
혼테일이 날개를 퍼덕였다. 날갯짓이 질풍을 일으켜 열기와 어둠을 모조리 몰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