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9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90화(189/300)
190화 진정한 마안
생존이란 인류가 태초부터 품어 온 원시적 본능이다.
비단 인간뿐 아니라 응당 생명체라면 살아남길 원하며, 못해도 종의 번영을 위해 씨를 뿌린다. 그러나 그 또한 생존의 연장선이다. 제 씨앗이 살아남아 자신을 기리기를 바라면서.
생존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그 순환이 계속되어 삶으로 빚어진다. 설령 타인을 할퀼지언정 나는 살아야겠다는 이기심이 생존에 있어선 가장 옳게 된 진화라고. 적어도 최설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최설아, 넌 왜 빌런이 됐냐?’
문득 주군이 그리 물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빌런이 마족 놈들보다 더 악질인 거 알지? 마족들이야 보통은 전쟁이 발발할까 봐 조심이라도 하는데, 빌런 연놈들은 사람 탈을 쓰고서 인간을 상해 입히잖아.’
‘근데 그건 빌런이 아닌 같은 인간도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저는 그렇게 많이 인간 등쳐 먹지 않아서 괜찮아…….’
스르릉.
‘죄송합니다!’
‘됐다, 지나간 일인데 지금 와서 따져 묻는 것도 쪼잔하고. 그래서, 빌런이 된 계기가 뭔데?’
‘사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그냥 남보다 오래 그리고 잘 살지 않을까 싶어서?’
‘그게 뭔 개소리야? 빌런이 되면 오래, 잘 산다는 게.’
‘강하면 누구한테 맞아 죽을 일은 없잖아요. 빌런은 마법을 다루고, 그러면 남들보단 월등히 강하고! 전 가호나 전투 관련해선 쥐똥만큼도 재능이 없어서 일찍이 포기했거든요, 헤헤.’
‘너는… 묘한 구석에 자기 객관화가 잘되어 있네. 그럼 질문을 바꿔 보자. 빌런이 되어서까지 오래 살고 싶은 이유가 있냐? 인간성마저 냅다 팔아넘기면서까지?’
강검마의 질문에 최설아는 붕어처럼 눈을 뻐끔거렸다. 그녀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오래오래 잘 살고 싶은데 이유가 있나요? 원래 태어난 순간부터 ‘죽기 싫다!’는 기본이잖아요.’
‘야, 그래도 선이라는 게 있는 거야. 남한테 해 끼치지 않으면서 잘살 생각을 해야지. 너는 그런 걸 뭣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사는 거잖아. 솔직히 나도 너한테 뭐라 훈계할 처지는 아니긴 하다만…….’
강검마의 뇌리에 스쳐 가는 얼굴들. 사시미의 희생양들이었다. 물론 자신은 최설아와는 다르긴 했다. 놈들은 하나같이 죽어도 무방한 사회의 악이었으니까.
‘하여간, 이젠 빌런도 아니니까 인간답게 좀 살아. 아니, 그리고 생각해 보니 너 호아킨 아카데미의 교관이잖아. 자기희생의 대명사인 영웅을 육성한다는 사람이 그 반대편에 있었네?’
‘에이~ 자기희생이 뭐예요, 요즘 같은 세상에. 우리 주군 너무 낭만파시다~’
‘너한텐 자기희생? 그딴 건 바라지도 않아. 그냥 제발 인간의 존엄만 갖추면서 살자. 너 이제 빌런 아니야,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고. 사람답게 살아.’
‘옙! 근데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 주군은 말을 참 잘하세요. 진짜 인생 2회차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가끔은 아저씨랑 말하는 착각이 일 정도…….’
스르릉.
‘죄송합니다.’
* * *
어슴푸레한 기억은 최설아의 몸과 같이 조각조각 나 흩어졌다. 지면에 닿기 직전에 머리끝까지 석화가 진행되었기에 고통은 없었다.
그녀의 실탄이 어둠을 뚫고 가르며 질주했다. 여전히 운석 비는 쏟아진다. 그러나 마탄은 의지를 가진 듯이 메테오를 빗겨 나갔다.
폭음을 관통하던 실탄은 마침내 과녁을, 왼쪽 마안의 망막을 두드렸다. 클린 히트. 적중이었다.
“끄아아아아아!”
바실리스크가 왼쪽 눈을 감싸며 비명을 내질렀다. S급 마수임에도 마력이 어린 탄환엔 데미지를 입는다.
오히려 용케도 눈 하나로 끝났다는 게 놈이 괴물이란 증거였다. 일반 마수였으면 그 자리에서 머리가 수류탄처럼 폭발했을 테니까.
“이 개같은 인간이! 한 입 거리 먹잇감이 감히 내게 상처를 입히다니!”
놈이 데굴데굴 구르며 발악했다. 노면 위의 용암과 잔해가 팝콘처럼 들썩거렸다. 그와 동시에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던 메테오도 끝났다.
일대가 불그스름하게 녹아나는 가운데 기묘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바실리스크가 뭐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는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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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럽다. 멀미가 난 듯 메스껍고, 골통 안이 웅웅 울린다. 메테오로 하도 들쑤셔 지축이 뒤죽박죽이라 그런가.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멀미 따윈 안 하는 그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 그렇구나. 이 고요함은 백색 소음이 외부의 것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강검마는 발을 떼었다. 놈에게로 가는 걸음이 아니다. 몇 걸음 앞에 있는 돌 파편들을 향해서였다.
저벅.
멈춰 섰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박살이 난 바위. 인위적인 곡선은 이것이 사람이었다는 흔적이다.
“…….”
최설아는 돌이 되어 죽었다. 모순적이게도 석상으로 변할 적에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품었다는 것이다. 강검마는 그녀의 죽음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자기희생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했잖아. 왜 마지막에 가서 그런 걸 하는 건데…….”
그 목소리에서 핀잔이 옅게 묻어 나왔다. 진심은 아니었다. 나름의 자조 섞인 혼잣말이었다. 무심코 하나 집어 볼까 하다가 멈칫했다. 무어라 씨불이는 소리가 흘러든 탓에.
“어리석은 □간 같으니●고! 미천하고 멍청하구나! 네 희생은 헛되었다. 봐라! 내 비록 왼쪽 마안은 잃었으나, 네 기운 덕에 드디어! 그 경지에 다다르는구나!”
바실리스크가 광대처럼 낄낄거리며 웃었다. 휑해진 왼쪽 눈구멍 너머로 뒤 풍경이 보인다. 그런데도 놈의 얼굴엔 희락이 잔뜩 차올랐다.
“보라돌이 씨!”
그러는 사이, 어느새 드래곤 표변을 해제한 혼이 강검마 옆에 착지했다. 그녀가 최설아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녀의 뽀얀 무릎을 돌 부스러기가 파고들었다.
“다, 당신은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안 돼요. 제발, 제발…….”
혼이 최설아를 꼭 안듯이 쓸어 담았다. 사람의 몸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틈이 많다. 갈퀴손으로 필사적으로 최설아를 담아 보려 했지만, 신체의 틈 사이로 빠졌다. 계속 주워 담으려 해도 그 이상으로 새 나왔다.
“아, 안 돼. 안 돼…….”
혼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몇 차례 시도했다. 이내 가녀린 두 팔이 축 늘어졌다. 그녀의 눈동자에 깊은 상실감이 번졌다.
실의에 빠진 제 누이의 모습을 보며 바실리스크가 삐쭉한 혀로 입술을 핥았다. 피부는 묵색 비늘들이 거의 벗겨지고 그 속살이 드러났다.
“이 인간은 마력과 인간성이 고루 채워져 몹시도 맛있구나. 덕분에 한 마리로 충분해졌어. 내 누이, 혼테일이여. 마족이 어찌 인간을 위해 울 수 있나? 네 눈물이 드래곤이 약체라는 방증이다.”
놈이 이죽거리며 혼을 조롱했다. 일대는 완전히 폐허였다. 분위기는 살얼음판과 불지옥을 넘나들었다.
뱀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진해졌다.
“이 순간, 나 바실리스크는 ‘부정한 뱀’이라는 오명을 허물과 함께 벗어던지겠다! 이로써 일족이 틀렸고, 내가 옳았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나는 결코 열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쩌적……!
이윽고 피막이 쩍 갈라지더니 인간의 신형이 허물을 찢으며 걸어 나왔다. 괴리가 있던 좀 전과는 달리 놈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질적인 생김새였다.
핏기가 머물지 않은 피부, 한 줄기의 광기가 흐르는 마안. 피부에선 검은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 갑옷처럼 그를 감쌌다. 검다 못해 빛을 잡아먹을 듯한 사악한 기운이다.
바실리스크는 손바닥을 들어 보더니, 얼굴을 어루만졌다. 몰캉한 피부의 감촉. 한순간 멍해진 놈의 입이 탄성을 흘렸다.
“아아, 드디어.”
바실리스크는 혼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안광이 더는 마수의 그것이 아니었다. 인간을 배불리 먹고 진화하여 새로운 이름을 달았다. 놈이 공표하듯 말했다.
“나는 세상을 악으로 물들일 자.”
최초의 고대인을 타락의 길로 유혹한 뱀. 그로 인해 인간은 원죄란 금단에 다다랐다.
“알두인이다.”
흑룡, 알두인은 가라앉은 눈으로 슥 둘러보았다. 석화의 마안이 투명하게 번들거렸다.
불과 수어 초 전까지 울컥울컥했던 속은 명경지수처럼 고요했다.
‘생존’이란 테두리 밖의 존재는 두려움, 슬픔, 기쁨, 혐오, 분노가 없다. 그 모든 것은 필멸자의 전유물이니. 초월자에겐 적용되지 않는 법이다.
인정에 대한 갈망도, 왼쪽 마안을 잃었다는 분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시 빨리 저들을 치운 후에 세상을 삼킨다는 일념뿐. 그리고 그는 그럴 만한 강함이 이 몸에 맴돌고 있음을 느꼈다.
기실 그의 강함은 군단장과 필적했으니까. 이에는 동의했다. 놈은 정말로 틀을 부순 것과 다름없었다.
저벅.
알두인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둘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검은 오물이 바닥을 뭉그러뜨렸다. 주변 전체가 놈의 발걸음을 따라 늪지대처럼 끈적한 진창으로 변했다.
“인간이여, 내 누이가 네게 많은 폐를 끼친 것 같더군.”
무기질적이면서도 웃음기가 섞인 듯한 괴이한 목소리였다. 하나 그 안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탐욕이 차 있었다.
“그러니 누이의 죄를 내가 몸소 벌하겠다, 죽음으로써. 걱정하지 말거라. 누이를 보낸 후, 너도 보내 줄 터이니.”
“…….”
“다만 나를 우롱한 죄가 있으니 죽음을 구걸할 때까지 네 고통을 음미해 주…….”
말이 끝나기 전에 혼이 몸을 일으켰다. 핏기가 가셔 새파래진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간담이 서늘하다 못해 차가웠다.
탈력감이 엄습했다. 마력을 쥐어짜 내다시피 해 마법을 시전한 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은 채 죽음을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다. 혼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때 그녀의 어깨에 불현듯 무게감이 느껴졌다. 강검마의 손이었다.
“혼, 전에 네가 나한테 ‘돌아왔구나’라고 말했었지?”
“……?”
그가 말했다. 시선은 알두인에게 고정한 채로. 다만 말의 의미와 나올 타이밍이 뭔가 안 맞았다.
당연했다. 이건 내게만 보이니까.
―파앗!
[【???】 의 세 번째 편린, ‘우로보로스의 환생, 혼테일’을 획득했습니다.] [딱 1번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그 여파로 인과율이 어그러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 모든 책임은 시전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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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검마는 적에게서 시선을 거두더니 혼에게로 옮겼다. 묘한 표정으로 그가 말을 이었다.
“이 힘의 보유자가 환생했다면 완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네.”
강검마가 낙담해 있던 혼을 눈웃음으로 독려했다. 멍하니 올려다보고만 있던 혼의 눈동자가 이내 화등잔만 하게 부풀었다. 검은 동공 안에 떠오른 황금 고리가 수레바퀴처럼 회전하고 있기에.
“그, 그 눈은!”
그 순간 광휘의 고리가 계속해서 가속하더니 이내 강렬한 섬광을 뿜어냈다. 그녀의 머릿속도 그 빛처럼 백탁으로 표백됐다.
쿠구구구구궁.
강한 지진이라도 인 듯한 굉음. 실제로 땅이 흔들리진 않았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믿기 힘든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이변은 혼의 발아래에서 먼저 일어났다. 문득 발에 뭔가 채이는 걸 느낀 그녀가 시선을 내렸다. 어떻게든 주우려고 했던 최설아의 흔적들이 공중에 둥실 치닫더니, 퍼즐처럼 입체적으로 조립되어 간다.
알두인은 기겁했다. 그는 곧바로 주변을 넓게 둘러보았다. 벽면, 바닥, 이곳저곳에 처박힌 운석이 용솟음쳤다. 불덩이는 생겨난 자리로 되돌아가더니 점에 빨려들듯이 소실됐다. 감정을 씻어 낸 초월자임에도 이 기현상은 믿기 힘든 것이었다.
이미 일어난 결과가 유보되며, 과정는 해체되어 다시금 되감아진다.
“…아, 아니 무슨!”
이상 징후는 또 있었다. 바실리스크는 분명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공포와 두려움.
어째서? 초월자가 됨으로써 그런 건 전부 헐벗었을 터인데. 바실리스크는 찢어져라 커진 눈으로 제 몸을 훑었고,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흩어졌던 비닐도 피부에 다닥다닥 들러붙었다. 탈피했던 허물이 붕대처럼 전신을 둘둘 감아대기 시작한다.
바실리스크는 직감했다, 자신의 거대한 힘과 권능이 실시간으로 강탈당하고 있음을.
퍼뜩 휘청이는 상체를 곧추세운 바실리스크가 아연실색하며 소리쳤다.
“이, 이!”
“¡ㅣㅇ ,ㅣㅇ”
“어?”
“¿ㅏㅇ”
뱀의 얼굴이 완전히 새하얗게 질렸다. 강검마는 놈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서슬 퍼런 음성이 뱀의 뇌리에서 순환하듯 메아리쳤다.
“네 시간은 지금 네가 머무른 시간에서 영원히 순환할 거다.”
“……!”
“¡……”
“뭐, 이렇게 말해도 이해 못 하겠지. 쉽게 말해서 넌 영원한 죽음의 굴레 갇힌 거다. 더 이해하기 쉽게는 네가 죽었다는 ‘결과’가 정해진 상태란 거지.”
강검마는 태연히 말하며 칼집을 털었다. 공간 전체가 어지럽게 출렁임에도 칼날의 광휘는 선명하다.
“근데 이렇게 널 곧바로 저승으로 보내기엔 내가 아쉬워서.”
강검마가 사시미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똑바로 쥐었다. 평온했던 눈빛이 새카만 불씨로 화했다.
“죽여 달라고 빌 때까지 죽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