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9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98화(197/300)
198화 갈등 (4)
나는 귀빈 대객실로 들어섰다. 동시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뜻하지 않던 선객 때문이었다.
“왔군!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어!”
“창성님?”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던 창성이 두 팔 벌려 나를 반겼다.
콱!
그때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창성의 발치 앞에 돌연 검날이 꽂혔다.
나는 검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이상 생도 강검마에게 접근하지 말게, 리차.”
이맛살을 와락 찌푸린 검제가 창성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노면에 박힌 검을 회수했다.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위협으로 끝내진 않을 걸세.”
검제가 사나운 목소리로 재차 경고했다. 그의 검이 창성의 목젖을 겨누었다.
“크하하, 경계하기는. 나는 그저 같은 사내대장부로서 반가워서 그랬을 뿐이야. 그리고…….”
산적처럼 이를 드러냈던 창성의 미소가 뒤틀렸다. 그는 풀었던 팔짱을 도로 끼면서 어깃장을 놓았다.
“내가 자네가 말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허리를 굽혀야 했던가? 나, 리차 드 뮈라를 그리 대할 수 있는 이는 협회장님뿐이라는 걸 명심하게.”
“…….”
“불만이 있다면 언제든 요구하게. 아, 당연히 말로는 받지 않겠네. 나는 사내의 요구는 언제나 주먹이나 날붙이로만 받으니 말이야.”
“내가 칠성에서 은퇴했다고 실력까지 없어진 게 아니란 거. 뮈라, 네놈이라면 잘 알 터인데도 그런 말이 나오는 건가.”
“잘 알지. 그래서 안심이야. 자네가 전력일 때 끝장을 봐야 내 직성이 풀릴 테니까. 팔푼이 니벨룽을 이겨 봤자 누구에게 자랑하겠나?”
검제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창성은 조금의 주눅 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까딱여 덤벼 보라는 듯이 도발했다. 그에 검제의 관자놀이에서 혈관이 굵게 맺혔다.
“오냐. 이참에 네 입가에 걸린 웃음을 길게 찢어 주마.”
“그래, 니벨룽. 그렇게 나와야지. 간만에 피가 끓는군!”
칠성 두 사람의 입씨름을 지켜보던 난 침음을 흘렸다.
‘사이가 안 좋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일촉즉발의 상황. 둘이 뿜어내는 기백만으로 테이블 다리가 후들거리고, 매달린 샹들리에가 진자처럼 좌우로 휘청일 정도다.
그 순간 혼자 떨어진 곳에 있던 메디아가 낮게 말했다.
“감히 학원장 앞에서, 그것도 아카데미 안에서 쌈박질할 생각? 둘이 같이 사이좋게 노망난 거야?”
“…….”
주변 사물들을 흔들어 대던 격류가 한순간에 뚝 그쳤다. 검제와 창성, 나는 반사적으로 메디아가 앉아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톡-톡-
그녀의 손톱이 테이블을 건드렸다. 인제 그만 닥치고 앉으라 중재 겸 지시.
“너희 아카데미에 다시 다니는 게 어때? 이참에 내가 정신 교육부터 다시 해 주게.”
메디아가 말했다. 검제는 연신 헛기침했다. 몹시도 멋쩍었지만, 남은 자존심은 주워섬기고자 항변했다.
“크흠! 메디아, 중요한 자리인데 그런 무시성 발언은 삼갔으면 좋겠군.”
“중요한 자리인 걸 아는 새끼가 칼부터 날려? 코지마가 잠시 자리를 비워서 망정이지, 걔한테 이 장면을 보였으면? 생각이나 해 봤어?”
“…….”
“너희 둘의 나이를 합하면 거의 150살이야. 근데, 어떻게 아직 십 대인 검마가 너희보다 의젓할 수가 있지? 쪽팔리지도 않냐?”
메디아의 일갈에 검제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노인의 자존심마저 찌그러진 그는 이내 몸을 돌려 제자리에 앉았다. 창성도 턱을 긁적거리더니 착석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쭈뼛거리다 빈자리에 앉았다. 그러고서 눈동자를 움직여 조용히 눈치를 살폈다. 대객실엔 엄숙한 공기가 감돌았다.
칠성 전원이 참석한 까닭, 왜 나를 불렀는지. 궁금한 점이 많았으나 틈을 노려 말을 꺼내기가 난처했다. 보아하니 내가 오기 전부터 분위기가 별로였던 모양.
‘왜 이렇게 다들 사이가 안 좋지?’
6군단장 바스몬 토벌 전에서 생존한 네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본 바로는 남보다 못한 사이 같다. 메디아야 원체 성격이 환하니 검제, 창성 둘에게 격의 없이 대했지만 정작 두 사람은 적개심을 표했다.
절궁이야 이야기 나온 시점부터 가까이하지 말라고 메디아가 언질을 줬으니, 적대 관계인 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거고.
생사를 함께한 전우끼리 이토록 으르렁대는 이유가 뭘까? 끈끈한 전우애나 충일한 유대감은 없을지언정 서로 원수가 된 연유가 있지 않을까?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세월이 흘러서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칠성 영웅들에겐 내가 모르는 비사가 있다. 그로 말미암아 이들 사이에 골이 깊게 파였을 테지.
벌컥.
때마침 대객실의 문이 열리고 칠성의 마지막 한 사람이 입장했다. 절궁이 환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서 말입니다.”
…이들 사이의 갈등의 핵심 혹은 시작은 저자일 것이다. 그 사실을 사키 코지마의 등장과 함께 알 수 있었다.
“…….”
“…….”
“…….”
세 사람 가운데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한으로 치달은 갈등 상태를 이보다 선명히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한, 없다. 무시보다 최악이 있을 리가. 차라리 죽일 듯 노려보는 게 나을 성싶다.
절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내 맞은편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에 검제와 메디아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지만 그뿐이었다.
절궁이 내게 명징하게 웃음 지었다.
“다들 자리하셨으니 바로 시작해도 되겠군요.”
“…뭐를 말이죠?”
저기 꽁해 있는 메디아한테서는 이곳의 위치만 전달받았다.
“아, 학원장님께 못 들으셨나 보군요.”
절궁의 시선이 그녀에게 잠깐 머물더니 도로 내게 넘어왔다.
“아마 학원장님께서 너무 바쁘셔서 그러셨나 봅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여유 있고 유했다. 다른 세 칠성과는 판이하게 말이다. 다만 말 중간중간 뼈가 심겨 있다.
“전달 못 들으셨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럼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절궁이 깍진 낀 손 위로 턱을 괴었다.
“지금부터 검마님은 칠성 승계 면접 심사를 치르시어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 * *
시작에 앞서 절궁이 심사의 이유를 설명했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땐 내심 긴장했다. 내 인적 사항, 그동안의 행보, 사생활을 낱낱이 해부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살펴보자.
일단 인적 사항부터. 가족, 친척, 형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동사무소 가서 등기를 떼어 본다면 그냥 백지가 뽑혀 나올 천애 고아가 강검마다.
그럼 내 행보는 어떤가? 걸리는 부분?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언더테이커 몰살, 벤테타 몰살.
악인이긴 했어도 어찌 되었건 마족이 아닌 인간을 몰살 엔딩 시켰다.
기자들이 사족을 달려면 얼마든지 달 수 있다. 나는 그에 관해서 해명해야 할 테고. 그 악순환의 연쇄가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다.
‘기자 새끼들한테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사생활은? 그나마 깨끗한 편이‘었’다. 과거형인 까닭은 혼의 존재 때문이다. 마족인 혼을 아카데미에 상주시킨 사람이 나니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나 동시에 결코 널리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 그야, 논란의 소지가 너무 다분하니까.
‘혼은 그냥 마족도 아니고 무려 드래곤. 파급력이 장난이 아니겠지.’
이렇듯 숨겨야 할 게 너무도 많다.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수상한 사람이 바로 나, 강검마다.
하나라도 덜미가 잡힌다면? 칠성 승계가 문제가 아니다. 그 여파는 이 세계의 나란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될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을 포함해서.
하지만 절궁의 말을 가만히 들어 본 결과. 이러한 걱정은 그저 내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심사는 별다른 게 아닌 검마님이 칠성에 적합한 인격을 소유하셨는지를 가늠해 보는 자리입니다.”
이를테면 인성 검사란 거다. 칠성은 영웅들의 영웅이다. 따라서 걸맞은 소명감과 인품이 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소방관을 뽑는 면접에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확인하는 것처럼.
“참고로 검마님의 승계에 지장이 갈 만한 면접은 아닙니다. 이미 날짜까지 며칠 후로 잡혀 있는 마당에 이번 면접으로 승계식 자체가 없던 일이 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절궁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번 심사는 의례적인 면접이다. 그러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런데 나 하나 면접 심사 본다고 이렇게 다 참석할 이유가 있나?
호아킨 아카데미 축제 당시에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면접 심사 한번 하겠다고 칠성 전원이 모였다. 알기론 올스타 멤버가 모이는 일은 반세기 만에 처음이었다.
그래도 여하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저리 친절한 미소를 걸고 말하는데.
“딸아이에게 듣던 대로 검마님은 시원시원한 성미시군요. 좋습니다.”
여부가 떨어지자 절궁이 싱긋 한번 웃곤 면접을 시작했다.
“근래 마족의 동향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게, 인류의 손에 군단장 셋이 죽었으니 말입니다. 아마 머지않아 남은 군단장들이 그것을 명분 삼아 공격한다면. 검마님께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먼저 뒈진 군단장들이 있는 곳과 같은 데로 보내 줘야죠.”
인류의 전망.
“칠성 영웅으로 등극하시면 품위 유지비로 한 달에 수백억에 달하는 금액을 지원받습니다. 전 세계 국민의 세금이죠. 검마님께선 그 지원금을 어떻게 사용하실 계획입니까?”
“적금할 겁니다. 이자 높은 거로.”
권리와 책무.
“칠성에 등극하시면 잡음이 나올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귀족들은 당연히 성화를 낼 테고, 시니어급 이상의 영웅들도 불만을 표하겠죠.”
“나이 때문이겠군요. 제가 새파랗게 어리니까 고까울 만도 하겠죠.”
“사람은 머리를 이해해도 가슴이 따르지 못할 때가 있는 법이죠. 아마 검마님을 업신여기거나 질타의 대상으로 삼을 겁니다.”
“그런 지방 방송은 빠르게 잠재워야죠.”
스르릉-
“사시미 앞에선 모두가 조용해질 겁니다.”
칠성이 된 이후 보여야 하는 모범.
절궁의 말마따나 질의 내용들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평범했다.
“이건 질문이라기보단 제 개인적인 제안으로 봐주시면 됩니다.”
면접이 한 시간 남짓 이어질 때쯤 절궁이 마무리를 짓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이 일순 차갑게 빛났다.
“아까도 말했듯이 검마님이 칠성에 등극하시면 필시 적이 생길 겁니다. 정상에 오르다 보면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적이 생기기 마련이죠. 제아무리 칠성의 권위라도 혼자서 그들 전부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이 세상엔 무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게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안하건대…….”
절궁의 낯빛이 일변했다. 마치 이 질문이 본론인 것처럼, 그의 맑은 미소가 처음으로 흐트러졌다.
“원하신다면 제가 그 열등한 세력을 전부 쓸어버리겠습니다. 감히 당신께 반항도 하지 못하게 말이죠. 일본의 총리대신이자 절궁, 사키 코지마의 이름으로.”
“네 이놈!”
돌연 검제가 버럭 노호성을 내질렀다. 그는 곧장 진득한 살기를 내뿜으며 을러댔다.
“코지마, 네 개인적인 욕심에 강검마를 끌어들일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거라.”
“선배님은 이미 은퇴하신 몸입니다. 그러니 상관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국제적인 문제로 불거지기 싫으시다면 말이죠.”
“내가 그런 걸 신경 쓸 사람으로 보였나? 자네가 불온한 의도로 강검마에게 접근했을 때도 참아 넘겼네. 하지만 노골적인 의도를 보인다면 나도 더는 참지 않아.”
절궁은 무심하기만 한 눈으로 그런 검제를 슥 훑었다. 그는 한참을 말없이 그러고 있다가 이윽고 한숨을 쉬었다.
“지크프리트 선배님도 이젠 많이 늙으셨군요.”
“……?!”
“그리 조용하시던 분이 말을 이리 강하게 하시는 보니 나온 말입니다. 예전에 당신은 제게 넘을 수 없는 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음 순간, 절궁의 눈가에 강렬한 무언가가 일렁였다. 광기와 열망에 사이한 무언가가.
“약해 보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