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화(2/300)
2화 고수는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 (2)
호아킨 아카데미. 이 학교의 표면상의 모토는 영웅 육성이었다.
영웅이 왜 필요하냐고? 간단하다.
마왕이 있으니까.
아카데미의 설립자이자 시조의 영웅.
‘발로르 호아킨’의 유지를 잇는 영웅을 배출한다는 빛 좋은 구실이 있었지만, 사실상 고귀하신 적폐 세력 자제분들만을 위한 친목의 장이었다.
그럼에도 명성이 마냥 허황된 건 아닌 게, 교육 기관으로서의 위상 또한 세계 최고였기에 수많은 특진반 지망생이 학교의 문턱을 넘고 싶어 했다. 그만큼 경쟁률도 치열했고.
강검마가 아카데미 입학을 자력으로 뚫고 입학에 성공한 행적은 칭찬받아 마땅하다만. 왜 하필 평이하게 살고 싶은 내가 대상인 거지 싶다.
그래서 입학식은 쨌다. 지루한 훈시로 낭비할 시간일 테니, 효율적으로 앞으로 3년간 다녀야 할 학교나 둘러보기로 했다. 어차피 반 배정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여유로웠다.
“…멋있긴 하네.”
기본적으로 상류층들이 다니는 학교이기에 예상은 했지만, 규모가 터무니없었다.
우선, 부지가 학교라기보다는 조금 작은 도시 같았다.
면적을 채운 건물들도 눈을 즐겁게 한다. 빅토리아풍의 별관들이 멋스럽게 즐비해 있었고, 정원사분이 열심히 일하시는지 조경에 각이 살아 있었다.
무엇보다 고개를 한참 꺾어야 간신히 보이는 본관 건물의 정상은 바벨탑처럼 구름을 찌르고 있었다.
나는 나무 아래 응달이 진 벤치에 앉았다.
솜털같이 떠다니는 구름을 보니, 뻐근한 목덜미의 긴장을 풀어 줄 니코틴이 그리웠다.
학생 신분인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세계에는 담배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하긴, 주 무대가 아카데미인 게임에 십 대들이 너도나도 한 대씩 꼬나물고 뻐끔뻐끔 담배를 피워 대면 눈살이 찌푸려질 것 같긴 하다.
팔로 적당히 머리를 받치고 눕듯이 벤치에 등을 기댔다. 소슬한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봄 냄새.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에 코끝이 간지러웠다.
봄바람에 눈꺼풀이 무거워져 눈을 잠시 감았다.
생각해 보니 전생에는 십 대 시절 이렇다 할 추억이 없었다. 그럭저럭 살 만했던 우리 집은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서 망했다.
티브이나 만화에서 보던 전개에 당면했을 때, 나는 고작 열일곱의 나이에 서늘하게 벼려진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일식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거창한 비전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가게가 동네라 집에서 가깝다는 게 이유였다.
연필을 잡아야 할 나이에 칼을 쥐었다. 당시에는 또래 애들이 부러웠던 것 같기도 한데, 먹물 냄새보다는 생선 비린내가 체질이었다.
종래에는 전국 제일의 칼잡이라고도 불렸었지, 훗.
나는 슬며시 반쯤 눈을 떠 시간을 확인했다.
반 배정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잠깐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시간은 금세 지나 있었다.
이참에 햇살을 자장가 삼아 한숨 때리고 싶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학비를 군소리 없이 지원해 준 부모님의 얼굴이 뇌리에 스치자 저절로 몸이 일으켜졌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보따리 같은 가방을 매만졌다.
옷가지와 생필품이 든 캐리어는 오자마자 기숙사에 맡겼고.
이 가방 안에 든 건 5kg짜리 아령 몇 개와 급하게 사 온 회칼 묶음.
‘시험은 시험이니까. 손에 익혀 놓긴 해야지.’
생각해 보니, 이곳에 온 후로 칼은 고사하고 손에 물 한 번 묻혀 본 적 없었다.
칼 밥만 20년 가까이 먹었는데, 설마 1년 좀 쉬었다고 실력이 녹슬었으려나?
첫 스승님의 또 다른 입버릇이 머리에 스쳤다.
‘하루라도 칼을 놓으면 안 된다. 잘 때도 쥐고 자라. 알겠나.’
물론 쥐고 잔 적은 없다. 자다가 잘못해서 찔리면?
뭐, 말이 그렇다는 거겠지만.
안에 있는 묶음을 풀고 사시미 하나를 뽑아 들었다.
간만에 칼자루를 잡으니, 어쩐지 싱숭생숭했던 기분이 풀린다.
각도를 이리저리 틀어 살펴봤다. 검지와 중지를 세워 자루도 한번 쓸어 보고, 검집을 반쯤 벗겨 날을 귀에 견착시켜 손톱을 부딪쳐 쇳소리도 내 보았다.
팅- 하는 청아한 소리에 졸음이 싹 달아난다. 가성비를 따져 봤을 때 마감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고, 나무 재질의 검집도 꽤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할인 판매를 해서 산 것치고는 만족스러웠다. 뼈 같이 딱딱한 것에 걸린다면 날은 금방 나가겠지만, 가격 대비 이 정도면 훌륭했다.
왠지 뿌듯한 기분에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내친김에 잎사귀라도 베어 볼 겸 검집을 벗겨 시퍼런 날을 꺼냈다.
그러자 파앗- 하는 소리와 뜨는 메시지들.
[무장(武裝)이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검신(劍神)의 가호가 발현됩니다.]“뭐야, 갑자기 깜빡이도 없이?”
[육신(肉身)의 격이 너무 낮습니다.] [무장(武裝)의 격이 너무 낮습니다.] [억제력을 사용해 사용자에 맞게 동기화를 시작합니다.]지이잉―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마지막 메시지를 뒤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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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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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미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귓가에 맴돌았다.
곧이어 달궈진 쇳덩이로 뇌를 지지는 듯한 작열감에 몸서리가 쳐진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지각(知覺)이라는 일련의 행위가 무한히 반복되고 반사되어 반전된다. 순식간에 인간의 허용치를 아득히 뛰어넘는 정보량이 머리에 구겨 넣듯 주입되는 느낌.
단백질이 타는 냄새가 코끝을 맴돌고, 뇌를 헤집는 열감이 이마 아래까지 전이된다.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에 외마디의 비명조차 차단당했다.
이러다 진짜 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추라도 달린 것처럼 점차 무게를 더하는 눈꺼풀에 힘을 주어 떴다.
‘!?’
안구에 물감이 스며든 듯 푸르스름한 시야. 깨진 거울처럼 파편으로 쪼개진 풍경에 사슬처럼 붉은색 실금이 가 있는 세계. 조각난 공간의 파편들이 두둥실 허공에서 떠다녔다.
느껴 본 적 없는 압도적인 탈력감에 잡았던 칼을 놓쳤다. 그러자 조각나 있던 세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순에 조립되어 원상 복구되었다.
수초 정도가 지나 가빠지던 숨이 멎고, 말라 가던 혈류가 정상 궤도에 안착했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아직도 누군가가 머리를 찢어 놓은 것만 같다. 덜덜 떨리는 팔다리의 관절이 이상한 방향으로 튀었다.
“…씨발, 뭐야.”
고통이란 개념을 넘어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격통. 기존에 있던 ‘무통의 가호’의 후통은 가벼운 근육통 정도였는데.
‘검신(劍神)의 가호’는 나름대로 특질이 있긴 한 거 같긴 했지만.
만약 가호를 발현할 때마다, 이런다면 도저히 사용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잠시 칼을 쥐어 본 게 이 정도인데 시간이 더 길었다면, 기절 정도로는 끝나지 않으리라.
거창한 이름의 가호길래 특전인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꽝보다 못한 것 아닌가?
애초에 무슨 능력인지도 좀처럼 감이 안 잡혔다. 그냥 잘게 쪼개진 세계가 망막에 투영되는 게 무슨 검신의 가호란 거야?
파리한 안색으로 떨리는 몸을 추스르고 있을 때쯤.
‘후- 후-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잡음이 낀 음성이 고막을 두드렸다.
‘지금부터 정확히 10분 후, 본관 앞에 있는 연무장에서 반 배정 시험을 시행하오니. 모든 생도는 집합해 주시길 바랍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20분이 지나 있었다. 몸부림의 흔적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물품들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딱 하나, 포장지가 뜯긴 칼을 주울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꽤 길게 이어졌다.
그래도 혹시, 혹시나 처음에만 그런 게 아닐까?
나는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씨이-바아알!”
기우가 아니었다.
* * *
원형으로 공동을 감싸 안은 연무장은 흡사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시켰다. 세계 최고의 영웅 육성 기관의 공식적인 첫 행사인 반 배정 시험을 구경하기 위한 인파들로 관중석은 인산인해.
그중에서도 상단을 메운 이들은 고귀한 혈통들을 위한 귀빈석이었다.
포동포동 살이 오른 중년 사내가 쭈뼛거리며 한 백발의 남자에게 말을 건다.
“허, 허. 검제 님께서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검제(劍帝) 지크프리트 폰 니벨룽.
시조의 영웅 ‘발로르 호아킨’의 수제자였던 ‘아론 니벨룽’의 후손이자, 현(現) 니벨룽가의 당주. 하늘이 점지한 총아이자, 작금에는 인간 중 최강이라 불리는 사내.
“…….”
형형하게 빛나는 금안이 곁눈질로 살이 오른 사내를 한번 훑자, 사내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하, 하. 그러면 편안한 시간 보내십시오.”
사내는 뱃살을 출렁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제자리를 향했다.
“…하.”
지크프리트의 입안에서 한숨이 맴돌았다. 하나뿐인 손녀딸의 입학식이라 왔건만, 선민사상에 찌들어 있는 좌중들의 틈바구니는 그의 속을 메스껍게 했다. 선조들의 영광을 욕보이며 옹송그린 모습에 흰 눈썹이 곱게 휘었다.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맨몸에 목욕 가운 같은 어두운 로브를 걸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녹발에, 민트빛 녹안을 지닌 미녀. 깊게 파인 가슴골은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어머, 지크. 오랜만이네?”
“하, 메디아 너인가.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리고 학원장씩이나 돼서 그 옷차림은 또 뭐지? 일흔이란 나이는 허투루 먹었나 보군.”
검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끌끌 혀를 차자 메디아는 매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그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죽기 전까지 젊고 아름답게 있고 싶은 게 여자의 마음 아니겠어? 지크도 말만 해. 내 가호로 십 년 정도는 젊게 만들어 줄 수 있어.”
“겉껍질은 내게 중요치 않다. 인간은 자고로 심성이 중요한 법.”
“어휴, 꼰대 새끼.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너는 어쩜 그리 똑같니?”
“반세기나 지났어도 너는 여전히 철이 덜 들었구나.”
“흥, 됐어. 검정 물 다 빠진 노인네랑 무슨 말을 하겠어.”
“…내일모레면 칠순인 네가 할 말인가.”
그녀는 화답으로 코웃음을 한번 치고 지크프리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건 그렇고. 지크, 너도 많이 변했구나.”
“뭐가 말인가?”
“너, 원래 이런 곳 절대 안 왔잖아. 예전부터 융통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었고. 저런 애들이랑 말 섞기 싫다나 뭐라나.”
메디아가 먼발치에서 노닥거리는 배불뚝이 사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검제는 그저 침묵으로 답할 뿐.
“손녀가 어지간히 이쁘긴 한가 봐. 이참에 나도 결혼이나 할까 봐. 도란도란 가정도 좀 꾸리고, 애도 낳고 말이야.”
“네가?”
“어머머, 얘 좀 봐. 내가 왜? 어디 외모가 꿀려, 몸매가 꿀려? 게다가 명문 호아킨 아카데미의 학원장이라는 입지! 나만 한 여자가 어딨다고, 흥.”
검정 로브를 살짝 걷어 하얗고 미끈한 살결을 과시한다.
“…함께 생사를 나눈 전우로서 하는 말인데.”
검제는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노산은 몸에 안 좋다.”
“이 개새끼가! 뒤질래!?”
메디아가 얼굴을 붉히며 멱살을 잡자 검제는 메마른 비웃음을 흘린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다툼이 몇 분가량 계속되고, 힘에 부친 메디아가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번 해 반 배정 시험은 어떤 식이지?”
“뭐야, 그것도 모르고 온 거야?”
검제의 질문에 메디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검제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내가 저딴 뒷돈 찌른 쓰레기들과 같을 것 같았나? 평등한 교육의 장, 시험 당일까지 내용을 모르는 게 당연하지.”
“하- 꼴통 새끼. 그래 뭐, 네 말이 맞긴 해. 당연한 관례처럼 영웅 집안 사이에서는 소문이 퍼지긴 하는데, 내 대에서 바로잡긴 해야지.”
메디아의 손톱이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올해는 배틀로얄 방식이야. 10명씩 한 조로 나눈 다음, 오래 살아남는 순으로 성적이 매겨지는.”
“…….”
“너 설마… 배틀로얄이 뭔지 모르는 거야?”
잠시 이어지는 침묵. 메디아가 조소를 흘리며 다리를 꼬았다.
“안다.”
“그럼 뭔데? 말해 봐. 모르면 한동안 틀딱이라 불릴 줄 알아.”
뇌까림에 검제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중간중간 뱉는 헛기침은 덤으로.
“배틀(Battle) 그리고 로얄(Royal). 그러니까,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왕 게임이란 것이지.”
“…병신.”
두 거인(巨人) 사이에 설전이 오가는 와중에.
[지금부터 시험이 진행될 예정이오니 생도들은 무장을 챙겨 주시기 바랍니다.]시험 시작을 고하는 알림음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