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0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00화(199/300)
200화 승계식 (2)
[아, 사라졌다고 해서 납치당했거나 그런 건 아니니 안심하시길.]자신을 료조의 가족이라 소개한 인공지능, 빅스빅이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검마 님도 아시다시피 이런 야밤엔 아카데미의 출입이 시스템으로 통제되어 있습니다. 물론, 바로 저 빅스빅이라면 그런 보안쯤이야 배 긁으면서 해제할 수 있지만 말이죠.]“…….”
짧게 말하겠다던 빅스빅은 제 자랑만 실컷 늘어놓았다. 자신이 얼마나 특출난 인공지능인지, 또 본인을 창조한 료조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설파했다. 듣고 있자니 왠지 료조! 광신도! 같았다.
빅스빅은 자신이 인공지능임을 증명코자 몇 가지 기예를 보였다. 별건 아니었고, 프로 바둑 기사와 치른 바둑 대국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전송했다. 말이 증명이지, 이 역시 자기 자랑이었다.
자기애가 강한 인공지능이라…….
하여간에 이 세계에 와서 정상인을 못 봤다. 그리고 인공지능을 사람으로 인지하는 나도 정상은 아니었고.
그래도 빅스빅이 떠는 재롱 덕에 얘가 인공지능이란 것 자체는 믿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료조’란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부터 녀석이 하는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문제는 얘가 쉴 새 없이 자랑질만 해서 그렇지.
“시급하다고 하지 않았었나?”
[죄송합니다. 사설이 너무 길었네요.]빅스빅이 즉각 반응했다.
[아, 그리고 하실 말은 입으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카메라로 검마 님의 표정으로 실시간으로 파악, 해석 중이니까요.]“그렇단 건…….”
이거 내 스마트폰을 해킹했다는 거잖아. 내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빅스빅은 아차 싶다는 듯이 서둘러 몇 마디 더 덧붙였다.
[지, 지금은 긴급한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 빅스빅. 도덕관이 확실히 탑재된 인공지능이니까요. 더없이 인간 친화적으로 설계되었습니다.]녀석의 말을 끊었다.
“사족은 됐고, 그래서 료조가 사라진 거랑 나한테 연락한 거랑 무슨 상관이지? 네 말을 들어 보면 딱히 위험한 상황도 아닌 것 같은데. 네 주인이 밤 나들이 갔다고 연락이 한 건 아닐 거 아니야.”
빅스빅이 줄줄이 뱉어 대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던 이유. 문득 든 몇 가지 의혹 때문이었다.
만약 료조가 실종 비슷한 게 됐다고 치자. 하면 얘가 이렇게 떠들고만 있을까? 듣자니 저 혼자 아카데미 보안 정돈 간단히 뚫을 수 있다고 잔뜩 어필했다.
정말 시급한 상황이라면 나한테 연락할 게 아니라, 제 실력으로 료조를 찾아냈을 거다. CCTV 전부를 해킹해서라도 말이지. 굳이 나를 찾을 리가.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직감이었다. 오늘 료조의 아버지. 그러니까 절궁 사키 코지마를 대면하고 온 참이다.
한데 타이밍 좋게 그녀가 사라지고, 인공지능이 내게 연락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귀가 수상할 정도로 잘 들어맞는다.
“정직하게 털어놔. 너 지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보통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침묵은 곧 긍정이다. 본인피셜 인간과 한없이 닮아 있는 AI인 빅스빅이니까.
[…료조가 사라졌다는 건 사실입니다.]얼씨구, 끝까지 숨기겠다?
스르릉.
한밤에 날붙이가 울었다. 화들짝 놀란 음성이 스피커에서 났다.
“자, 잠깐만요!”
인간이나 AI나 말로 해서 안 될 때는 이거 이상으로 좋은 대화 수단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AI가 칼을 무서워한다니, 료조가 짐짓 엄청난 인공지능을 만든 모양이다.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빅스빅은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말했던 대로 료조가 사라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휴대폰 같은 개인 소지품을 전부 두고 사라진 적은 처음이에요!”
“그래, 그건 믿어 줄게. 근데 왜 나부터 찾은 건데? 아카데미 출입 목록 전부 훑었다는 애가, CCTV 해킹을 안 해 봤을 거 같진 않은데?”
“그, 그게.”
“3, 2…….”
“으윽.”
스피커에서 나는 앓는 소리. 상당한 내적 갈등을 느끼던 빅스빅은 결국 바른대로 실토했다. 구두로 하긴 힘든지 좀 아까처럼 문자로.
“…료조, 걔한테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안 거야.”
[웨폰한테 들었다더군요.]그러고 보니, 웨폰이 적어도 부원들한텐 밝히는 게 좋지 않겠냐며 물었었다. 그런 중대사를 당일까지 비밀로 하면 서운해하지 않겠냐면서. 난 순순히 동의했다. 숨겼던 이유도 별거 없이 귀찮아지기 싫어서였으니까.
오히려 반년 가까이 누구에게도 말한 웨폰이 입이 무거운 거다. 설명하기 좋아하는 녀석인 만큼 근질근질했겠지. 녀석으로선 제법 끈덕지게 인내한 것이었다.
여튼, 그래서 오늘 부원들과 만났을 적에 기회를 봐서 말을 꺼내려 했다. 그 전에 학원장의 호출을 받고 불려 갔지만.
[료조는 그 사실에 몹시 충격을 받았습니다.]“몹시, 충격? 그렇게까지?”
충격은 받았겠지. 같은 클래스에 하하 호호 지내던 애가 며칠 후에 칠성 영웅이 되는데. 비유하자면 반 친구가 반장도 아니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격이니. 그것도 하루아침에. 나라도 얼탔을 거다.
다만 빅스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의미인 것 같았다. 그녀가 다음을 이었다.
[료조는 항상 검마 님이 세간에 인정받길 원하셨습니다. 타인을 위해 투신하는 데 비해, 검마 님은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신다고요. 해서 당신을 힐난하고 지탄하려는 기사나 너튜브 영상을 지우고자 매일 밤을 새우셨죠.]생각해 보니 최근에 K가 앞에 붙은 기사가 잠잠해졌다 싶었는데. 료조 덕이었단다.
정확히는 빅스빅 자신이 한 일이라 강조했다. 하여간에 인정 욕구가 남다른 AI다.
이런 사적인 욕심에 찌든 인공지능들이 판친다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
[흠흠, 어쨌든. 사실 저는 검마 님이 칠성에 등극한다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료조가 부탁하는 와중에 검마 님에 대한 정보를 따로 갈취했거든요.]“아니, 잠깐만. 미리 알고 있었다고? 근데 왜 말 안 했어? 료조랑 빅스빅, 너는 주종 관계잖아.”
[주종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십이라 불러 주시면 감사하겠네요.]“이따 료조한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 나올까?”
[…저의 ‘주인님’ 료조가 칠성 영웅을 싫어하시기 때문이죠. 아니, 혐오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이유는?”
[그건 료조를 찾은 다음, 직접 여쭤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제가 검마 님이 칠성 승계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함구했으니 이 정도는 넘어가 주실 거로 생각합니다.]딜을 하겠다는 건가. 뭔진 몰라도 빅스빅은 나를 위해 입 다물고 있었다는 투다. 그러니 그걸 감안해서 이 부분은 묻지 말아 달라는 투였다.
나는 한숨을 흘렸다. 여기서 더 채근해 봤자 입을 열 것 같지 않다. 어쨌건 간에 빅스빅이 버선발로 날 찾아온 이유는 있을 테니.
드러냈던 칼날을 도로 넣었다. 핸드폰에서 안도의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공지능이 날붙이에 쫄기는.
“료조의 위치는? 걔의 인공지능이니까 대충 동향은 알 거 아니야.”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아카데미 내 CCTV 사정권 밖이라는 건 확실합니다. 지금도 전부 해킹한 상태인데도 영상에 담기지 않거든요.]“그럼, 아카데미 내에서 CCTV가 없는 곳이라는 거네.”
[네. 그래서 제가 검마 님께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연락한 거고요.]순간 특정 장소가 머릿속을 스쳤다. 보안 카메라가 없으며, 인적이 드문 장소. 이 조건에 부합하면서 료조가 갈 만한 곳은, 거기뿐이다.
나는 곧장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에 기대 섞인 음성이 주머니에서 삐져나왔다.
“료조가 어딨는지 알고 계시는군요?!”
빅스빅의 쾌재에 나는 문 앞에서 우뚝 섰다. 깜빡하고 그냥 넘어갈 뻔한 게 떠올랐기 때문에.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액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게 깔고 입을 뗐다.
“내 폰 해킹한 건 아직 계산 안 했네? 어물쩍 넘기려고?”
[…….]“방금까지 말로 했으면서 인제 와서 문자로 하지 말고.”
[무단으로 해킹하여 진심으로 죄송합니다…….]“사람은 맨입으로 사과하는 거 아니야. 그에 따른 배상이 있어야지.”
[…배상이라 하면.]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면 빅스빅의 음성은 불안으로 떨려왔고.
“빅스빅, 너 앞으로 투잡 뛰어라.”
[헥?!]“료조가 시키는 일 하면서 내가 부탁하면 그 일도 하라고.”
[그, 그치만 지금만 해도 업무량이 너무 많습니다.]“인공지능이… 말대꾸?”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빅스빅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는 것을.
“…….”
침묵을 긍정으로 이해한 나는 이내 문고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그녀가 있을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 * *
밤이 서린 아카데미의 적막한 장소.
료조는 벤치에 앉아 빤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먹이 껴서 그런지 빛 한 점 없이 새카맣다. 마치 그녀의 심중을 투영하듯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 봤던 하늘도 저처럼 짙은 묵색이었다. 료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칠성 영웅…….”
칠성을 지칭하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있다. 영웅의 영웅, 인류의 희망, 7인 합중국. 하나같이 그들을 추앙하는 미사여구들이다.
하지만 료조에게 ‘칠성’은 역겹기 그지없는 낱말이었다. 검제가 랑 클래스의 보조 교관으로 왔을 적, 티는 안 냈지만 마주보기가 힘들었을 정도니.
‘료조, 너는 칠성이 되어야 한다.’
사키 코지마가 줄곧 했던 말이었다. 잔소리였다면 모를까, 그는 강박적으로 저 말을 반복했다.
료조에겐 이복형제가 많았다. 일부다처제가 가능한 일본의 특성상 코지마가 부인을 여럿 들인 탓이었다. 다만 허용됐을 뿐 도의적으로 이야기가 나올 만한 결혼 형태였다.
코지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따가운 사회적 시선 따위를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던 데다, 절궁은 일본 행정부의 수반이었다. 그를 제동할 사람은 적어도 일본 내에선 없다는 소리였다. 해서 그는 후첩을 지속해서 들였다. 더 뛰어난 후사를 얻기 위해서.
료조는 그중 네 번째 부인의 셋째로 태어났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사실상 절궁가(家) 서열의 끝자락이었다. ‘사키’란 성만 달고 있지 외인 취급이었다. 하지만 료조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은 행복했었다.
비록 아버지의 관심은 전혀 받지 못했지만, 딱히 슬프거나 하진 않았다. 되레 어머니가 그 이상의 모성애를 베풀어 주셨다. 더불어 다른 형제들의 경계 서린 눈총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 료조 자신이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는.
시간이 흘렀다. 료조가 열두 살이 된 생일이었다. 그날, 코지마가 그녀를 양궁장으로 불러들였다. 십이 년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보는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그는 S급 무장 적궁백시를 쥐여 주며 과녁을 턱짓했다. 입을 열기도 아쉽다는 듯이 말없이.
그에 심통이 난 료조는 생각했다. 이 사람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 주자고.
료조는 시위를 당기며 과녁을 겨냥했다. 그리고 남몰래 발현했던 가호를 불어넣은 손을, 시위에서 뗐다.
푹.
그렇게 떠나간 화살로 인해 그녀의 삶 전체가 바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료조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날 이후 완전히 망가진 자신의 인생. 자식을 칠성으로 만들겠다는 코지마의 강박적인 열망이 초래한 결과물이었다.
‘그런 자리를… 걔는…….’
그때 멀리서 이쪽으로 발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료조는 상기된 눈을 옆으로 돌렸다.
“안 춥냐?”
“…….”
강검마가 어깨를 감싸 문지르며 추운 시늉을 했다. 료조는 그런 그를 빤히 보다가 휙 고개를 틀었다.
강검마는 엄지로 눈썹을 긁적이면서 벤치로 다가갔다. 료조가 정중앙에 앉아 있었다. 그가 가까이 와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비켜 주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쫓아내려는 기색은 또 아니었다.
머쓱하게 서 있던 강검마는 그냥 이대로 대화하기로 했다. 서서 말하는 게 교무실에 불려 간 학생 같은 모양새였지만.
“저기, 료조.”
강검마의 입이 떼인 순간. 뒤편 수풀 더미가 파스스 흔들렸다.
따각, 따각.
또 다른 인기척. 불과 몇 시간 전에 느꼈던 불쾌한 기운을 동반한 기척이 다가왔다.